청담동에 우뚝 선 프랭크 게리의 대담한 비전 || 엘르코리아 (ELLE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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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담동에 우뚝 선 프랭크 게리의 대담한 비전

도전적인 공상가, 진보를 꾀하는 물고기자리,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건축가의 국내 첫 작품 '루이 비통 메종 서울'이 청담동에 들어섰다.

ELLE BY ELLE 2019.12.09
 
프랭크 게리 특유의 시적인 구조물이 돋보이는 루이 비통 메종 서울.

프랭크 게리 특유의 시적인 구조물이 돋보이는 루이 비통 메종 서울.

“물고기의 움직임을 표현한 목판화를 보면서 건축을 통해 움직임을 표현하고자 하는 제 잠재의식 속의 욕망을 깨달았습니다. 제 창의성은 세상의 모든 움직임을 건축물로 표현해 내는 데 있는 것 같아요.”
정면에서 보면 새하얀 도포 소맷자락이 너울거리는 모습이 연상되고, 위에서 내려다보면 강을 거슬러 오르는 물고기 떼가 떠오른다. 스타 건축가 프랭크 게리가 한국에 선보이는 첫 작품 ‘루이 비통 메종 서울’(이하 ‘청담 메종’)은 그의 다른 작품들처럼 ‘움직임’을 표현하고 있다. “아주 오래전 물고기의 움직임을 표현한 목판화를 보면서 건축을 통해 움직임을 표현하고자 하는 제 잠재의식 속의 욕망을 깨달았습니다. 제 창의성은 세상의 모든 움직임을 건축물로 표현해 내는 데 있는 것 같아요.” 지난 10월 30일 개관일에 맞춰 한국을 방문한 90세의 ‘살아 있는 전설’은 만면에 편안한 미소를 띠고 현역의 생기를 내뿜으며 말했다. “한국의 전통과 문화에서 영감을 받아 설계”한 청담 메종의 외관은 프랑스 파리 불로뉴 숲에 자리한 돛단배 모양의 루이 비통 재단 미술관과 사이좋은 자매처럼 보인다. 하얀 사각형 석조 건물 위에 살포시 올라앉은 게리 특유의 시적인 구조물은 ‘수원 화성’의 형태를 참고했고, 쇼윈도부터 솟아오른 유리를 주재료로 삼은 특수 제작 패널의 우아한 곡선은 부산 ‘동래학춤’에서 영감을 받았다. 메종의 오픈을 기념해 게리가 고안한 쇼윈도에는 커다란 종이를 구겨놓은 듯한 색색의 나무 형태 조형물이 화려한 색감의 루이 비통 레디 투 웨어 컬렉션과 조응하며 표정을 더하고 있다. 이는 ‘구겨진 종이(Crumpled Paper)’라 불리는 게리의 건축 스타일을 은유하며, 그의 국내 첫 건축물을 환영하는 위트 있는 제스처로 보이기도 한다. 
 
피터 마리노는 건물 외관에서 느낄 수 있는 넘실대는 에너지를 강조하는 방식으로 내부 공간을 설계했다.

피터 마리노는 건물 외관에서 느낄 수 있는 넘실대는 에너지를 강조하는 방식으로 내부 공간을 설계했다.

루이 비통 여성 컬렉션이 자리한 2층 공간.

루이 비통 여성 컬렉션이 자리한 2층 공간.

내부를 디자인한 건축가이자 인테리어 디자이너 피터 마리노는 볼륨과 대조를 테마로 삼았다. “게리의 건물 외관에서 느낄 수 있는 넘실대는 에너지를 강조”하는 방식으로 내부 공간을 설계한 것. 무엇보다 기존 매장에서는 일정하던 층고가 변화를 띠고 있는 것이 리드미컬한 재미와 개방감을 선사한다. 피터 마리노는 12m에 이르며 3층까지 아우르는 홀에 다채로운 예술 작품을 배치해 주제를 강조했다. 대표적인 것이 루이 비통의 핵심 철학인 ‘여행 예술(Art of Travel)’을 테마로 세계적인 산업 디자이너들이 창작한 한정판 가구 컬렉션 오브제 노마드(Objets Nomades)다. 금빛 고리에 달려 유유자적 공중을 점유한 캄파나 형제의 ‘코쿤’ 건너편 천장에는 아틀리에 오이의 ‘오리가미 플라워’가 만개하고,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에서 여신을 태운 조개를 떠올리게 하는 ‘봄보카 소파’가 종이 꽃 무더기를 호응하는 시노그래피라니. 디자이너들의 뛰어난 재능과 최고급 소재 그리고 루이 비통의 노하우가 접목된 오브제 노마드 컬렉션에 대한 하우스의 열정을 응원하고 싶어진다. 또한 루이지 마이놀피, 안젤름 라일레, 그레고어 힐데브란트 등 현대미술가들의 컬러플한 회화 작품이 오브제 노마드 작품과 긴밀한 대화를 나누듯 메종 곳곳에 자리하며, 피에르 폴랑과 르네 보나르 등의 가구도 사려 깊게 배치되었다. 청담 메종은 지하 1층부터 4층까지 총 5개 층으로 이루어져 전 카테고리의 컬렉션을 망라한다. 지하 1층은 루이 비통 남성 컬렉션을 위한 공간이며, 루이 비통 여성 컬렉션을 만날 수 있는 1층과 2층은 의류, 가죽 제품, 액세서리, 향수와 파인 주얼리 및 워치 컬렉션을 소개한다. 3층은 맞춤형 쇼핑 경험을 선사하는 프라이빗 살롱으로 운영된다. 각 도시의 개성을 참신한 시선으로 담아낸 <루이 비통 시티 가이드>를 비롯해 루이 비통의 역사를 반영하는 아카이브도 메종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프랑스 시각예술가 듀오 이시노리의 그림을 통해 서울을 새롭게 여행하게 해주는 <루이 비통 트래블 북> 서울 편까지 하우스의 ‘여행 정신’을 구현한 출판물은 놓치면 안 된다.   
 
자코메티의 조각 작품이 공개되는 4층 에스파스 루이 비통 서울 개관전 전경.

자코메티의 조각 작품이 공개되는 4층 에스파스 루이 비통 서울 개관전 전경.

루이 비통 메종 서울을 표현한 프랭크 게리 특유의 자유분방한 스케치.

루이 비통 메종 서울을 표현한 프랭크 게리 특유의 자유분방한 스케치.

4층에는 전시 공간 ‘에스파스 루이 비통 서울(Espace Louis Vuitton Seoul)’이 문을 열었다. 개관 기념으로 2020년 1월 19일까지 재단이 소장한 컬렉션 가운데 미공개 작품을 선보이는 전시 프로젝트 ‘미술관 벽 너머(Hors-les-murs)’의 일환으로 <알베르토 자코메티전>이 열린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두 번의 세계대전과 지인들의 죽음을 겪으며 앙상한 청동 조각으로 인간의 본질을 표현한 작가의 생전 모습이 관람객을 맞는다. 지붕을 양철로 덮어놓은 1.5평 남짓한 공간, 이름만 아틀리에지 회색 먼지 아래 낡은 테이블·붓·팔레트 등이 흐트러져 있는 은신처에서 드로잉을 하다 잠시 넋을 놓고 있는 자코메티의 대형 사진은 유명을 달리하기 며칠 전에 찍힌 것. 그 앞에는 2m가 넘는 ‘베네치아의 여인 Ⅲ’가 천창에서 쏟아져 내리는 햇살을 받아 시시각각 다른 느낌을 뿜어낸다. 언젠가 프랭크 게리는 이렇게 말했다. “건물이 완공될 때는 그리 기쁘지 않아요. 하지만 건축 재료를 뚫고 나오는 빛, 모형과 도안에서 볼 수 없던 반사광을 만났을 때 자질구레한 일상의 고민거리가 모두 잊힙니다.” 바로 그때가 건축물에 생명을 불어넣는 순간이라는 그의 말처럼 4층에 방문한 이들은 게리가 창조한 유리 구조물을 통과해 들어오는 햇살을 맞으며 특별한 순간을 만끽할 것이다. 프랭크 게리는 지난 60여 년간 ‘쓰레기가 도시를 망쳐놓았다’는 혹평이나 프로젝트의 무산, 개인적 아픔을 이겨내며 매번 새롭고 대담한 건축 디자인을 선보여 왔다. 그건 아마도 70대까지 아이스하키를 하거나 직접 디자인한 요트를 몰고 바다로 나가는, 일평생 정신적·예술적·육체적 모험을 즐겨온 프랭크 게리의 기질에서 시작된 것일 테다. 도전적인 공상가, 진보를 꾀하는 물고기자리, 편안한 유머를 구사하는 유쾌한 할아버지, 프랭크 게리를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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