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30년 유나이티드항공의 전신인 아메리칸보잉에어 트랜스포트가 간호사 출신의 여승무원을 고용한 일 또한 현대의 기내 서비스를 갖추는 데 중요한 근간이 됐다. 그전까지 승무원은 남성들이었다. 특히 초기에는 남성 중에서도 체구가 작은 10대 소년들을 고용했다. 안전이나 서비스보다 비행기 하중이 더 중요하던 시절이었다. 몇몇 항공사는 소년들이 살찌면 벌금을 물리기도 했다. 여성은 남성보다 체구가 작지만, 사회 진출이 어려웠고 무엇보다 비행은 위험한 일로 분류됐다. 그도 그럴 것이 흑백사진 속 비행기 좌석들은 바람 불면 날아갈 듯 가벼워 보인다. 또 항공사들이 고급 호텔 서비스를 추구한 만큼 제복 입은 남성을 선호했다. 이런 분위기에서 아메리칸보잉에어 트랜스포트가 여승무원을 채용한 이유는 그들이 간호사였기 때문이다. 당시 비행 환경은 열악했다. 기압이 현저히 낮았고, 기체는 크게 흔들렸다. 간호사 출신의 여승무원들은 기내 서비스를 제공하며 환자를 돌봤다. 여담이지만 그들이 자신의 역할을 전문적으로 잘 수행했기에 오늘날까지 수많은 여성 비행 전문가를 배출할 수 있었던 셈이다.
1950년에 들어 항공 기술이 발달하며 기체가 한층 커지고 비행시간도 대폭 줄었다. 그전에는 유럽에서 아시아까지 12일 이상 걸렸다면 누가 믿겠는가. 항공사들은 어떻게 하면 더 높은 요금에 좌석을 팔 수 있을지 고민했고, 기내식을 고급화하는 일이 가장 효과적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1946년 기내에 오븐이 처음으로 장착되면서 기내식은 냉동 식품으로 발전했다. 그전까지는 따뜻한 기내식을 제공하기 위해 지상에서 조리한 음식을 보온 상자에 담아 보관했다. 밥을 생각해 보라. 몇 시간씩 전기밥솥에서 보온 상태로 묵힌 밥보다 차라리 먹기 직전에 해동한 밥이 낫지 않겠는가. 덩달아 음식의 질이 개선되고 기내식 메뉴도 다양해졌다. 아, 이때만 하더라도 퍼스트, 비즈니스, 이코노미 등의 좌석 구분이 없었다. 항공 여행은 여전히 선택받은 소수만이 즐길 수 있었으니. 당시 사진을 보면 모든 승객이 지금의 퍼스트 클래스 좌석보다 더 넓은 공간을 차지하고 있다. 또 다이닝 공간을 따로 두어 식사 시간이 되면 레스토랑을 찾듯 승객들은 기내에서 이동했다. 특히 2층짜리 비행기일 경우 2층은 휴식 공간, 1층은 레스토랑 겸 라운지로 활용했다. 당시 다이닝 공간은 실제로 지상의 고급 레스토랑과 다를 바 없었다. 하얀 식탁보에 꽃과 과일이 탐스럽게 놓여 있고, 은식기와 크리스털 잔에는 트러플, 캐비아, 로브스터, 푸아그라 등 최고급 식재료로 완성한 요리와 돔 페리뇽 등의 고급 샴페인이 채워졌다. 물론 기압과 습도가 낮아 지상에서만큼 맛을 입체적으로 느끼진 못했으나 사람들은 3만 피트 상공에서 초호화 만찬을 즐긴다는 사실에 도취됐다.
처음 좌석 등급제가 등장한 건 1955년의 일이다. 트랜스월드항공은 더 많은 사람을 싣기 위해 일부 좌석을 좁게 만들고, 이를 ‘세컨드 클래스’라고 명명했다. 항공사들은 세컨드 클래스로 다다익선의 미덕을 추구하는 한편, 퍼스트 클래스로 부가가치를 높이려 했다. 문제는 세컨드 클래스가 등장하며 기존 승객은 여분의 공간을 잃었고 식사도 제자리에서 해야 했다. 항공사들은 그들의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 등급별 기내식 격차를 키우는 데 집중했다. 흡사 뷔페 진열대를 연상시키는 큼지막한 카트에 전 세계의 산해진미를 푸짐하고 화려하게 차려낸 후 이동하며 승객이 원하는 요리를 즉석에서 접시에 담아줬다. 이때 조리복을 풀 착장한 셰프가 등장하는 곳도 있었다. 또 식사의 완성도를 결정하는 스테이크는 레어, 미디엄, 웰던 등 굽기 정도를 고를 수 있도록 했다. 한편 세컨드 클래스에서는 기내식을 쟁반에 담아 카트에 싣고 다니는 현대의 서비스가 이때 완성됐다.

대한항공 기내식 인기 메뉴, 비빔밥.

마리메꼬 식기에 담겨 나오는 핀 에어 비즈니스 클래스 기내식.

터키 항공 플라잉 셰프 서비스.
최근 항공사마다 스타 셰프 모시기에 바쁘다. 셰프와 가장 활발히 협업하는 항공사는 단연 에어프랑스다. 미식의 성지답게 알랭 뒤카스, 조엘 로부숑, 기 마르탱, 미셸 로스 등 자국 출신의 천재 셰프들을 초빙하여 메뉴를 꾸준히 개발한다. 콴타스항공은 닐 페리를, 델타항공은 미셸 번스타인을, 일본항공은 세이지 야마모토를, 핀에어는 토미 밀리마키 등을 섭외했다. 터키항공은 스타 셰프를 모시는 차원을 넘어 아예 모든 국제선에 셰프를 태우기에 이르렀다. 조리학을 전공하고 레스토랑에서 다년간 경력을 쌓은 셰프가 기내에 탑승해 마지막 순간까지 기내식에 전문가의 손길을 닿도록 한 이 제도를 터키항공은 ‘플라잉 셰프’라고 부른다. 한편 저가 항공사들이 프랜차이즈 기업과 협업하여 개발한 기내식도 흥미롭다. 이스타항공은 BBQ와 손잡고 하늘 위에서 치킨을 먹는 진귀한 경험을 선사하는가 하면, 에어부산은 부산의 명물인 어묵 요리를, 에어서울은 서울 대표 음식인 불고기를 판매한다. 항공 여행의 경험이 늘며 사람들은 더 이상 기내식에 큰 기대를 걸지 않는다. 하지만 가만히 앉아 있기만 해도 따박따박 나오는 밥을 누가 마다하랴. 심지어 옴짝달싹할 수 없는 3만 피트 상공에서 말이다. 기내식 한 그릇에는 여전히 그 여행을 꿈결처럼 기억하게 해줄 마력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