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한가운데 세워진 왕국 | 엘르코리아 (ELLE KOREA)

우아한 스타일을 지닌 에스티 로더의 상속녀 에이린 로더의 파리 아파트 첫 공개. | 에스티 로더,에어린 로더,파리,아파트,에펠탑

  거실에서 지암바티스타 발리 드레스를 입고 서 있는 에어린 로더. 아파트에서 바라본 에펠탑 풍경. 장 루아예르의 1950년대 소파, 장 프루베의 빈티지 의자와 칵테일 테이블, 파트리크 주앵의 라운드 테이블 등으로 꾸민 모던한 거실. 오른쪽에 놓인 독특한 모양의 조각상은 추상화가 애그니스 마틴의 작품이다. 시카모어 단풍나무 목재로 아늑하게 꾸민 안방 침실. 벽에는 독일 사진작가 토마스 스트루스의 대형 사진이 걸려 있다. 주문 제작한 식탁 주위로 장 프루베가 1930년대에 디자인한 의자들이 정갈하게 놓인 다이닝 룸. 거실 한편의 책상과 책장, 회전의자 모두 장 프루베가 디자인한 것. 빈티지 스콘스 조명은 세르주 무이 제품. 벽면에 걸린 그림은 장 뒤뷔페의 작품이다. 에어린 로더(Aerin Lauder)가 파리와 처음 사랑에 빠진 건 다섯 살 때였다. 친할머니이자 코스메틱 업계에서 전설적 존재인 에스티 로더 여사와 함께 1975년, 생애 처음으로 파리에 발을 내디뎠다. 눈앞에 펼쳐진 생경한 풍광에 들떴던 어린아이에서 이제는 자신의 이름을 내건 뷰티&라이프스타일 브랜드 ‘에어린’을 이끄는 성공한 기업가가 된 에어린 로더가 어느 화창한 날 아침, 파리 레프트 뱅크(Left Bank) 지역에 있는 로더 패밀리의 보금자리에 앉아 이야기를 시작했다. “당시 할머니와 전 유서 깊은 플라자 아테네 호텔에 머물렀어요. 를레 바 레스토랑에서 먹었던 구운 치킨과 프렌치프라이가 정말 맛있었는데….” 파리에 대한 그녀의 사랑은 여전하다. 업무 혹은 가족과의 단란한 휴가를 위해 1년에 서너 번은 제트기를 타고 파리를 찾는다. 앵발리드 군사박물관 맞은편에 있는 침실 세 개짜리 아파트는 1990년대 초 에어린의 부모인 로널드(Ronald)와 조 캐럴 로더(Jo Carole Lauder) 부부가 구입한 것으로, 1996년 투자금융 전문가이자 은행가인 남편과 결혼한 후부터는 에어린이 관리하고 있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파리 한가운데라는 위치와 이곳의 환상적인 전망에 반하셨대요. 아름다운 금빛 지붕을 지닌 앵발리드와 에펠탑 뒤로 펼쳐지는 저녁노을이 특히 아름다운 곳이죠.” 전통적인 프랑스 건축양식으로 지어진 이곳에 이사할 당시, 로더 부부는 모더니스트 건축가 앙투안 스탱코(Antoine Stinco)에게 리모델링을 의뢰했다. 죄드폼(Jeu de Paume) 국립현대미술관 재건축을 맡기도 한 스탱코는 내구성이 좋고 단단하며, 밝은 아이보리 컬러를 띠는 시카모어 단풍나무로 실내를 덮어 오래된 아파트의 흔적을 과감하게 덜어냈다. 특히 침대 헤드보드와 협탁을 같은 재질의 붙박이 가구로 제작한 침실에 있으면 “마치 요트에 있는 느낌”이 든다고 에어린은 표현한다. “거친 물결 위에서도 안락함을 선사하는 요트처럼 활기로 가득 찬 도시 한복판에서도 언제나 완벽한 평화를 느낄 수 있거든요.”   미니멀한 감각의 소유자인 스탱코가 모던하게 꾸민 실내는 로더 패밀리의 오랜 소장품으로 빼곡하게 채워져 있다. 가구 장인 장 루아예르(Jean Roye‵re)의 소파, 20세기 프랑스 디자인을 선도한 도예가 조르주 주브(Georges Jouve)의 도자기, 푸른빛의 시그너처 컬러로 유명한 프랑스 화가 이브 클랭(Yves Klein)의 조각상은 물론 장 프루베(Jean Prouve′)가 만든 보기 드문 가구들도 무심하게 놓여 있다. 벽마다 걸려 있는 사진 역시 이곳에서 빠질 수 없는 인테리어 요소. 미국 포토그래퍼 티나 바니(Tina Barney)가 1982년 촬영한 <선데이 뉴욕 타임스 Sunday New York Times>의 대형 사진도 그중 하나다. “언제나 사실적이고 재미있는 순간을 포착해 내는 유능한 사진가이자 어머니의 절친 중 한 명이기도 해요. 여기 화병 옆에 있는 할머니 집에서 찍은 가족사진도 그렇고 제 결혼식 사진도 티나가 찍어줬어요.” 사진계의 거장 윌리엄 웨그먼(William Wegman)과 토마스 스트루스(Thomas Struth)의 사진들이 빛바랜 가족사진과 조화롭게 배치된 집 안 풍경은 에어린의 어머니 조 캐럴 로더의 솜씨. 그녀는 덕분에 아파트가 “단순히 아름답기만 한 공간이 아닌, 추억까지 깃든 따뜻한 공간”이 됐다며 두 눈을 반짝였다.   유명 사진작가 루이스 포러, 개리 위노그랜드 등의 사진으로 입구를 장식한 안방 욕실. 아담한 크기의 찰스 임스 빈티지 체어가 공간에 포인트를 준다. 발렌티노와 지암바티스타 발리 드레스가 걸린 침실에서 샤넬 재킷과 프라다 팬츠를 입은 채 미소를 짓고 있는 에어린 로더. 꽃병 옆에 진열돼 있는 가족사진. 에어린은 일찍부터 세련된 파리지엔의 삶을 경험할 수 있게 해준 할머니 에스티 로더 여사에게도 감사함을 드러냈다. “할머니 덕분에 어릴 때부터 정말 많은 패션쇼에 다녔어요. 클라우디아 시퍼가 웨딩드레스를 입고 샤넬 피날레를 장식하는 순간에도 그 자리에 있었죠. 지방시 쇼도 많이 참석했고요. 패션쇼에 가지 않는 날엔 할머니 손에 이끌려 부티크와 백화점으로 향했어요.” 할머니의 영향을 받아 2012년 자신의 브랜드 ‘에어린’을 설립한 이래 그녀는 지금까지 22가지의 향수를 선보였다. “패션이 그렇듯 향수도 때와 장소, 경험에 따라 달라야 한다는 할머니의 말씀을 아직까지 가슴속에 새기고 있어요. 스치듯 말씀하신 그 얘기가 ‘에어린’의 철학이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파리에 머물 때마다 미술관과 박물관을 즐겨 찾는다는 그녀. 특히 피카소 미술관은 에어린이 가장 사랑하는 장소다. 그런 다음 지극히 ‘파리스러운’ 캐비아 전문 레스토랑 카비아  카스피아(Caviar Kaspia)에서 여유롭게 식사하고, 인테리어 전문 매장 탈마리스(Talmaris)나 카사 로페즈(Casa Lopez)에 들르거나 플라워 숍 물리에(Moulie′)에서 꽃을 사며 파리에서 자유를 만끽한다. “파리에서는 그냥 거리를 거니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져요. 사람들이 어떤 향수를 뿌리고, 어떤 옷을 입는지 유심히 보는 것도 재미있고요. 저는 매 순간 영감을 받으며 살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