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브라가 어때서 | 엘르코리아 (ELLE KOREA)

이제는 말할 수 있다. 브래지어, 입지 않아도 내 가슴은 그 자체로 예쁘다고. | 노브라,브라리스,브래지어,설리

  지친 하루를 마치고 여성들이 집으로 돌아와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바로 온종일 가슴을 옥죄던 브래지어를 푸는 것이다. 브래지어 후크가 ‘탁’ 하고 풀리는 순간, 깊은 안도감과 함께 비로소 해방됐다는 감탄사가 터져나온다. 특히 요즘처럼 무더운 여름날, 땀에 전 브래지어를 벗어 던질 때의 해방감이란 이루 말할 수 없이 달콤하다. 며칠 전 마감을 마치고 녹초가 돼 집으로 쓰러지듯 들어온 나는 늘 그랬듯 깊은 한숨과 함께 브래지어를 내던졌다. 평소 즐겨 입는 흰 티셔츠로 갈아입고 하루의 고단함을 달랠 배달 애플리케이션의 ‘주문’ 버튼을 클릭하니 곧 배달원이 초인종을 누른다. 음식을 건네받는 짧은 찰나, 브래지어를 깜빡했다는 생각이 스치자 갑작스러운 당혹감과 수치심이 몰려온다. 내 집임에도 불구하고 도망치듯 음식을 받은 나는 거울로 ‘노브라’인 내 상태를 확인했다. 갑자기 이유 모를 ‘현타’가 먹구름처럼 밀려온다. 내 가슴이 어때서? 왜 스스로 노브라인 가슴을 당혹스럽게 여겼지? 과연 누구를 위해 가슴을 브래지어로 꽁꽁 감추는 걸까?     요즘 새롭게 유행하는 신조어로 떠오른 ‘낮브밤노’. ‘낮져밤이’에서 영감받아 탄생한 단어로, 낮에는 브래지어를 착용하고 밤에는 벗어야 하는 여성들의 이중생활(!)을 뜻하는 줄임말이다. 일상의 불편한 습관이지만 그동안 당연하게 여겼던 일이 유머러스한 신조어로 거듭난 데는 이유가 있다. 요즘 여성들에게 브래지어로 가슴을 꽁꽁 봉인하는 일이란 더 이상 의무가 아니며, 노브라가 ‘일탈’이 아닌 ‘일상’으로 받아들여지는 긍정적 움직임이 활발하게 일고 있으니까. 사실 브래지어를 억압된 여성성의 상징으로 인식했던 브라리스(Bra-less) 운동은 꽤 오래전부터 시작됐다. 이미 60년대 여성 히피족은 브래지어 없이 거리를 활보했고, 배우 제인 폰더 역시 평소 노브라 스타일을 즐겼다. 90년대 기네스 팰트로와 케이트 모스는 브래지어를 생략한 채 레드 카펫에 올라 반향을 일으켰으며,그 후 지금까지 영향력 있는 셀럽들이 속옷을 입지 않은 브라리스 룩으로 거리를 누빈다. 하지만 성(性) 문화에 보수적인 한국에서 여성이 노브라 차림으로 직장에 가고, 대중교통을 타며 장을 보는 건 타인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민폐이자 비윤리적 행위로 힐난받았기에 ‘속옷 없는 삶’은 남의 나라 이야기에 가까웠다. 그러나 최근 용기 있는 여성 아이콘들의 행보는 이런 변화가 더 이상 비난받을 일이 아닌, 개인의 자유에 의한 선택임을 일깨운다. “제게 브래지어는 그냥 액세서리에 불과해요. 어울리는 옷이 있으면 하고, 어울리지 않으면 하지 않아요.” 얼마 전 JTBC2 예능 프로그램 <악플의 밤>에 출연한 설리가 말했다. 그녀는 높은 도덕성과 획일적인 여성성을 강요받는 여자 아이돌 중에서 ‘이단아’라 불릴 만큼 가감 없이 자유로운 일상을 공유한다. 설리가 SNS를 통해 처음으로 노브라 사진을 선보였을 때 대중의 갑론을박은 뜨거웠다. ‘보기 불편하다’ ‘예의가 없다’ ‘멋지다’ 등등…. 처음엔 부정적 의견이 대부분이었지만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는 그녀의 꾸준한 ‘브라리스 사랑’은 많은 여성에게 더욱 자유로워질 용기를 전파하며 긍정 에너지를 형성하고 있다. 한편 가수 화사의 행보 역시 남다르다. 연예인 마케팅의 주요 수단으로 자리하며 ‘풀 세팅’의 각축전이 된 공항 패션에서 니플이 과감히 드러난 화이트 티셔츠 룩을 선택한 것. 공공장소에서 속옷을 착용하지 않았다는 비난 글 사이에서 화사는 누구보다 ‘쿨’하게 대처했다. “저는 원래 데뷔 전부터 종종 그렇게 입었어요. 늘 하던 대로 했을 뿐이죠.” 그녀를 응원하고 지지하는 목소리가 오히려 컸던 건 주체적인 사상을 바탕으로 자유를 외치는 여성들이 점점 늘고 있다는 방증이다. 윤리와 비윤리 사이에서 뜨거운 갑론을박을 펼치던 누리꾼 가운데 노브라를 새로운 ‘패션 스타일’로 받아들이며 흥미롭게 바라보는 이들도 늘고 있다. 이들에겐 평소 동경하는 셀러브리티들의 브라리스 룩이 더 이상 진지하고 무거운 사회 이슈가 아닌, 따라 하고 싶은 유행일 뿐이다. 최근 빅토리아 시크릿의 판매량과 영향력이 예전 같지 않음은 이런 흐름에 따른 자연스러운 결과이기도. 반대로 인에이, 엘라코닉, 세컨 스킨 등 언더웨어 브랜드에서 와이어 없는 브라렛과 니플 패치를 앞다투어 선보이고 있으며,실제 판매량도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가슴에 자유를 부여하는 긍정적인 흐름이 포착되고 있지만, 중요한 건 타인의 시선을 뒤로하고 가슴을 ‘오픈’할 수 있는 자신감이다. 와이어로 감싼 가슴 모양에 만족한다면 굳이 노브라 행렬에 뛰어들 필요는 없다. 그러나 에디터처럼 브래지어 착용으로 인한 갑갑함과 피부 트러블을 호소하고, 패드로 만들어낸 봉긋한 가슴에 ‘현타’를 느낀다면 브라리스 트렌드에 동참하길 추천한다. 고백하건대 며칠 전 그간 구입했던 와이어 브래지어를 모두 처분했다. 갑갑한 속옷 탓에 불편함을 호소하는 일도 지겨웠고, 무엇보다 패드로 부풀린 가슴 모양이 더 이상 예쁘게 느껴지지 않았다. 미팅과 행사가 잦은 직업인지라 아직은 니플 패치와 브라렛이 필요한 단계지만 가벼운 착용감만큼 마음도 훨씬 가벼워졌다. 예전처럼 가슴 모양이 봉긋하지도, 옷태가 살지 않아도 나의 일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음은 물론이다. 그러니 있는 그대로의 ‘내 가슴’을 예뻐하고 소중히 하자. 브래지어로 조이거나 부풀리지 않아도, 우리 가슴은 그대로 충분히 아름다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