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얼리에 얽힌 긴 사연 | 엘르코리아 (ELLE KOREA)

오랜 시간 여행을 마치고 박물관의 진열장에, 은행의 금고 속에, 개인의 보석함 안에서 숨쉬고 있는 다섯 점의 주얼리에 얽힌 긴 사연. ::나폴레옹,마리앙투아네트,해리 레빈슨,월시 맥린,아름다운,격조있는,화려한,스페셜 장소,행사,파티,데이트, 생일, 스페셜 데이, 축제,호프,리젠트,우상의 눈,다이아몬드,보석,주얼리,달걀,악세서라이즈,엘르,엣진,elle.co.kr:: | ::나폴레옹,마리앙투아네트,해리 레빈슨,월시 맥린,아름다운

1 45.52캐럿 블루 다이아몬드인 '호프(Hope)'2 미국의 금융 재벌 네드 맥린의 아내 에블린 월시 맥린. 맥린 가족은 '호프' 다이아몬드의 저주 때문인지 모두 비극적으로 삶을 마감했다.3 나폴레옹은 대관식 때 '리젠트' 다이아몬드를 장식한 칼을 찼다.4 '리젠트'다이아몬드를 소유했던 필립 2세.5 수많은 다이아몬드를 사고판 보석상. 해리 윈스턴6 진주를 사랑한 비운의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7 경매에 부쳐진 마리 앙투아네트의 네크리스8 파베르제의 달걀 안에는 정교하게 제작한 각종 미니어처가 들어 있다.세상에서 가장 비극적인 다이아몬드신비스런 블루 컬러로 루이 14세가 소유했던 그 유명한 다이아몬드 ‘호프(Hope)’. 이 보석을 소유했던 사람은 누구나 비극적인 인생의 종말을 맞이한다는 저주를 만들어낸 다이아몬드다. 이 보석을 제일 처음 손에 넣었던 페르시아의 왕은 암살당했고, 그 틈을 타 이를 훔친 승려는 모진 고문을 당하다가 세상을 떠났으며, 이후 호프를 손에 넣은 밀수업자는 인도 여행 중 이리에게 물어 뜯겼다. 이를 사들인 루이 14세는 유일하게 호프의 저주를 비껴간 인물로 꼽히는데 그가 112.5캐럿이었던 다이아몬드를 67.5캐럿으로 컷팅했기 때문이라는 설도 있고, 이 다이아몬드를 아낀 나머지 단 한번만 착용한 덕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이후 이 다이아몬드를 자주 걸쳤던 루이 15세의 애인이었던 듀발리 자작부인과 마리 앙투아네트는 프랑스 대혁명 때 참수당했고, 마리 앙투아네트로부터 다이아몬드를 종종 빌려 착용했던 람벨르 부인은 페르시아 건달들에게 구타당해 사망했다. 1830년 이 다이아몬드를 구입한 런던의 은행장이자 못말리는 보석 컬렉터 헨리 토마스 호프는 다이아몬드를 구입한 직후부터 가세가 기울었고 결국 파산했다. 1908년 터키의 술탄은 40만달러를 주고 이 다이아몬드를 구입해 애인에게 선물했지만 1년도 채 되지않아 본인의 칼로 애인을 찔러 죽였으며 본인도 폐위당했다. 다음으로 다이아몬드를 가졌던 그리스인 딜러는 가족 전체가 사고로 세상을 떠났으며, 미국의 금융재벌 네드 맥린의 아들은 교통사고로, 딸은 마약 남용으로 죽었고 본인도 정신병원에서 사망했다. 결국 이 다이아몬드는 해리 윈스턴이 구입해 미국의 스미소니언 박물관에 기증했는데, 종종 미국에 안 좋은 사건이 터질 때마다 해리 윈스턴은 아직도 이 다이아몬드 때문이라는 항의 편지를 받고 있단다. 노예의 비극에서 시작된 왕가의 보석으로1701년 인도의 키스트나 강에서 한 노예가 발견한 410캐럿의 다이아몬드 원석. 당시 자신의 다리에 상처를 내어 다이아몬드를 숨기고 붕대를 감은 채 도망친 이 노예는 폼페이로 가는 배의 선장에게 자신이 도망을 도와주면 다이아몬드의 반을 나눠주겠다고 제의하고 배에 올랐다가 결국 살해당하고 만다. 선장은 이 다이아몬드를 꺼내어 보석상에게 팔았고(이후 죄의식 때문에 목 매어 자살했다) 1702년 영국 윌리엄 피트 수상의 할아버지인 토마스 피트의 손에 들어갔다. 이로 인해 토마스 피트는 ‘다이아몬드 피트’라는 별명으로 불리게 되었다. 그는 이 다이아몬드를 140.5 캐럿으로 컷팅했다. 1717년에 프랑스를 섭정하던 필립2세가 65만 달러에 이 다이아몬드를 구입했고, 이때부터 ‘리젠트 다이아몬드’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1772년에는 루이 14세의 대관식용 왕관에 장식되었고, 1804년 나폴레옹은 이 다이아몬드를 칼자루에 달아 대관식에 허리에 찼다. 이후 나폴레옹 3세 시대까지 왕관을 장식하고 있다가 현재는 루브르 박물관의 아프론 화랑에서 보관하고 있다. 마리 앙투아네트의 눈물프랑스 왕실의 주얼리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 마리 앙투아네트. 그녀가 소유했던 진주 목걸이가 2007년 크리스티 경매에 나왔다.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진 그녀는 프랑스 대혁명이 일어나자 자신이 갖고 있던 물방울 모양의 천연 회색 진주 21개와 다이아몬드가 든 가방을 당시 프랑스 주재 영국 대사관 부인이었던 서덜랜드의 엘리자베스 레브슨-고어 백작부인에게 맡겼다. 마리 앙투아네트가 사형을 당하자 백작부인은 다이아몬드로 목걸이를 만들었고, 1849년 손자의 결혼식을 위해 이 목걸이에 진주를 세팅했다. 이 진주 목걸이는 200년 넘게 서더랜드 가문에서 보관되어 왔는데 은행 금고에 넣어둔 채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고. 2007년 이 목걸이의 경매 예상가는 80만달러였지만 제시된 가격이 그보다 낮아 이 진주 목걸이는 당시 새 주인을 찾지 못하며 세간의 화젯거리가 되었다. 고향으로 돌아간 파베르제의 달걀19세기 후반과 20세기 전반에 걸쳐 에나멜 주얼리의 부흥을 선도한 러시아의 파베르제(Peter Carl Faberge)는 고대 에나멜 작품의 세공 기술을 복원해 세계 각국의 왕족과 귀족들에게 제공했다. 부활절에 달걀을 주고받던 전통에 따라 러시아의 알렉산더 3세와 니콜라이 2세는 30년에 걸쳐 파베르제에게 금과 은, 루비 등으로 만든 달걀 모양의 보석을 주문했다. 1897년에 만들어진 ‘대관식 달걀’은 황금색 에나멜을 칠한 모조 달걀에 다이아몬드를 장식하고 이 달걀을 열면 황금 마차가 들어있는, 초호화 달걀이었다. 파베르제는 15개월 동안 하루 16시간씩 작업해 이 달걀을 만들었다고. 2004년 미국 포브스(Forbes) 가문이 소장하고 있던 9점의 파베르제 달걀은 그해 4월 소더비 경매에 출품하기로 되어 있었는데 경매 직전 러시아의 석유 재벌 빅터 벡셀베르크에게 팔렸다. 낙찰가는 무려 1억달러. 그는 이 컬렉션을 사드리느라 퍼스트시티뱅크에서 4천만 달러를 긴급 대출 받았는데 이 대출로 인해 퍼스트시티뱅크는 자금부족현상으로 결국 파산하고 말았다. 전설로 등장해 다시금 전설이 된 ‘우상의 눈’‘우상의 눈(Idol’s Eye)’이라 불리는 70.21캐럿의 다이아몬드가 1600년 인도의 골콘다 근처에서 발견되었다. 에 등장한 다이아몬드라고도 하고, 리비아 북쪽의 도시 뱅가지(Benghazi)에 있는 사원의 동상에 박힌 눈이었다는 설도 있지만 학자들은 뱅가지가 이슬람 도시이기 때문에 이 설은 거짓이라고 입을 모은다(이슬람에서는 우상숭배를 금지하기 때문에 동상이 있을 수 없다). 이 다이아몬드에 대한 공식적인 첫 기록은 1865년 런던 크리스티 경매 때 등장했다. ‘아름답고 커다란 다이아몬드 ‘우상의 눈’은 작은 보석들과 함께 세팅되어 있다’ 이후 터키의 술탄이 소유하고 있다가 1909년 폐위되어 유배생활을 하게 되자 하인을 시켜 다이아몬드를 안전한 곳으로 옮겨놓으라 지시했지만, 그는 주인을 배신하고 파리에 있는 보석상에게 팔았다고 전해진다. 이 이야기는 믿거나 말거나였지만, 1906년 여름 유명한 보석상 살로몬 하비브(Salomon Habib)이 다이아몬드를 손에 넣었다는 건 진짜다. 이후 스페인의 한 귀족이 다이아몬드를 구입했다가 1946년 해리 윈스턴에게 팔았고, 그는 덴버 포스트 설립자의 딸이자 유명한 보석 컬렉터였던 메이 본필스(May Bonfils)에게 다시 ‘우상의 눈’을 넘겼다. 베르사유의 트리아농을 본 딴 호화 맨션에서 외롭게 산 메이 본필스는 매일 아침 이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걸고 혼자 식사를 했다고. 그녀가 세상을 떠나고 또다시 경매에 부쳐진 이 다이아몬드는 시카고의 보석상 해리 래빙슨(Harry Levinson)이 37만5천 달러에 구입해 그의 아내에게 선물했다. 이후 1979년 로렌스 그래프(Laurence Graff)가 이 다이아몬드를 구입했고 1983년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누군가가 최고로 비싼 가격에 ‘우상의 눈’을 구입한 이후로 다시금 이 다이아몬드 목걸이의 행방은 묘연해졌다. 1 파베르제의 장인 정신이 돋보이는 탁상시계2 '우상의 눈'다이아몬드를 구입한 보석상 해리 레빈슨.3 시카고의 보석상 해리 레빈슨은 아내에게 '우상의 눈' 다이아몬드를 선물했다.*자세한 내용은 악세서라이즈 본지 10월호를 참조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