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테로가 말하는 현실과 환상 그리고 예술에 대한 이야기들 | 엘르코리아 (ELLE KOREA)

풍부한 상상력의 지칠 줄 모르는 화가, 현대미술계의 돈키호테인 페르난도 보테로를 파리의 작업실에서 만났다. 보테로가 말하는 현실과 환상 그리고 예술에 대한 이야기들.::페르난도 보테로,화가,인터뷰,엘르,엣진,elle.co.kr:: | ::페르난도 보테로,화가,인터뷰,엘르,엣진

HIS PROFILE페르난도 보테로●1932 콜롬비아 메데인 태생의 화가이자 조각가로 투우사 양성학교를 나와 일러스트레이션으로 그림 시작. ●1961 뉴욕현대 미술관(MoMA)이 보테로의 를 구매했고 파리, 이탈리아, 뉴욕을 오가며 왕성한 작품 활동을 한다. ●대표작으로 , 가 있다. 화가 페르난도 보테로는 모순 덩어리다. 한결같이 부드러운 미소를 짓다가 얼굴에 카메라만 들이대면 심각해진다. 위트 넘치는 그의 그림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다. 피사체를 풍만하고 뚱뚱하게 그리기로 유명한 그의 이상형 또한 늘 날씬한 몸매의 여자였다. 페르난도 보테로는 나이도 거꾸로 먹고 있다. 이제 막 우리 나이로 여든이 된 그는 지난 5월 뉴욕 말보로 갤러리를 시작으로 이스탄불 페라 박물관, 프랑스 생트로페에서 릴레이 전시를 계속하고 있다. 그에게 젊은이들도 따라할 수 없는 호기심 가득한 노마드 정신과 뜨거운 열정이 느껴진다.집과 작업실을 파리, 모나코, 뉴욕, 이탈리아, 멕시코, 콜롬비아에 두고 있는데. 그런 유목민 정신은 어디서 나오는 건가? 항상 작업실이 필요했기 때문에 그렇게 됐다. 파리와 이탈리아를 오갔고, 15년을 뉴욕에서 살았다. 몬테카를로에는 아내가 그리스 사람이기 때문에 종종 들리는 것이다. 또 나는 알다시피 콜롬비아 사람이다. 계획했던 건 아니었지만 평생 집을 모으며 산 것은 사실이다. 그래도 나는 유목민 삶을 좋아한다.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는 삶을 좋아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을 것 같은데. 지치는 법이 없다. 한 작업실에서 다른 작업실로 옮길 때면 지금까지 한 게 아무것도 소용 없다는 기분이 든다. 작업실을 옮길 때마다 그림을 한 곳으로 보내놓곤 하는데, 덕분에 항상 새로운 곳에 도착하게 되는 거다. 그게 또 매력이다. 더군다나 난 프레임 없이 그림을 그린다. 그렇게 하면 창작에 대한 자유가 한없이 허용되기도 하고, 그림을 그리기 위해 천이 준비될 때까지 기다릴 필요도 없다. 파리에 있는데 뉴욕에서 작업하고 싶다면 그대로 천을 둘둘 말아 뉴욕으로 가는 거다. 이제 그림 값도 상당히 올랐고 당신도 유명해졌다. 그래서 불편하지 않은지? 보고타(콜롬비아의 수도)에 갈 때면 항상 경호원들과 같이 다닌다. 정부에서 안전을 위해서 개인 경비 팀을 붙여주기도 한다. 예전에 한 번은 남자 여덟 명이 보고타에 있는 집에 와서는 나에 대해 물었다고 한다. 그러더니 사람들을 잡아 묶고는 그림 스물여덟 점과 조각상 두 점을 가져갔다. 왜 그랬는지 지금도 이해가 안 된다. 당시 집에 없었는데 그 뒤로 다시 돌아가지 않았다. 그 후 메데인(콜롬비아 제2의 도시) 근처에 전원주택을 따로 구입해서 거기서 지내곤 한다.작업을 하지 않을 때는 어떻게 시간을 보내는가? 일하고, 일하고 또 일한다. 매일매일, 주말도 포함해서. 그림 그리는 것보다 재밌고 즐거운 일을 못 찾았다. 내게 회화는 뭔가 매우 특별한 의미가 있다. 엑스터시 같은. 매일 같이 일어나는 소소한 중독 말이다. 매일 10시 30분이면 이곳에 와서 저녁 8~9시까지 있다가, 아내 소피아를 만나기 위해 레스토랑엘 간다. 그런 라이프스타일이 좋다. 이 직업이란 게 너무 적막해서 밤에는 좀 시끌벅적한 게 필요하단 생각도 들긴 하지만.어릴 적에 투우사가 되고 싶었다던데. 투우를 너무 좋아했다. 평생 동안. 지금도 위대한 투우사 엔리케 폰세를 무척이나 동경하고 팔로모 리나레스와도 개인적인 친분이 있다. 자신의 첫 장검과 투우복 한 벌을 내게 선물하기도 했다. 예술에 대한 열정이 투우에서 나오는 걸까? 예술과 투우가 무슨 관계가 있냐고 묻겠지만 투우를 보며 자라서 열정적인 사람이 된 것 같다. 열정을 가지고 그림을 그리면 고스란히 작품에 묻어난다.열정적인 예술가로 성공했지만 상처도 참 많았다. 그렇다. 아픔 없는 예술은 없는 것 같다. 스페인 세비야에서 코르도바로 가는 길에 네 살 난 아들을 차 사고로 잃었다. 평소에 그리던 양의 배로 그림을 그렸다. 아내와 나는 무섭게 일만 하며 아픔을 이겨냈다. 아내인 소피아 바리(Sofia Vari)도 화가, 조각가, 보석 디자이너로 활동하고 있다. 다른 분야의 예술가와 함께 사는 건 어떤가? 같이 보내는 시간이 많기 때문에 긍정적인 점이 많다. 아내는 추상화가지만 둘 다 예술 역사에 관심이 많아 같이 박물관이나 대성당을 구경하기도 하고, 미술에 대해 이런저런 얘기도 하면서 시간을 보낸다.서로의 작품에 대한 얘기도 하는지 궁금하다. 물론이다. 한 번씩 소피아가 작업실에 오면 작업 중인 그림을 그녀에게 보여준다. 나 역시 아내의 작업실에 가면 그녀의 그림을 본다.아내의 추상주의를 보고 추상화를 시도해본 적 있었나? 없었다. 구상주의가 중요하다는 생각에 한 치의 의구심도 없다. 추상주의가 매력적이긴 하지만 너무 장식적이다. 나는 예술을 장식적 가치와 표현적 예술 사이의 균형이라고 본다. ‘예술가가 대의명분을 품으면 정치 삽화가가 될 수 있기에 위험하고 예술의 목적은 아름다움을 표현하고 즐거움을 주는 것’이라고 말했는데. 예술은 항상 즐거움을 주기 위해 존재해왔다. 푸생은 “예술이란 즐거움을 주기 위해 평면 위에 존재하는 형태와 색의 표현”이라는 말로 예술을 완벽하게 정의한 바 있다. 그건 나에게도 가장 우선인 가치다. 예술 표현의 중요성을 정치적 선전으로 희생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항상 정치에 관심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런 의미에서 영원히 한 길만 고수하는 화가는 아니다. 독재 시대에는 그네들을 풍자하는 그림을 그렸고, 그 이후에는 콜롬비아의 극적인 드라마와 아부 그라이브(Abu Ghraib) 포로수용소에 관한 그림을 거대한 시리즈로 그렸다. 어떤 것으로부터 강렬한 영감을 받았을 때 뭔가 그와 관련된 작품을 만드는 식이다.어째서 콜롬비아 대학살이나 아부 그라이브에서 자행된 고문을 작품으로 그린 건가?아부 그라이브의 경우에는 미국의 위선 행위에 대한 반발이었다. 과거 사담 후세인이 고문을 자행했던 바로 그곳에서 똑같이 고문을 자행하고도 세상에 자신이 연민과 관대함의 모범이라 자청하지 않는가. 스스로를 자유의 수호자라 표명하면서 동시에 자신들과 다른 문화를 천시하는 두 얼굴의 미국, ‘미국스럽지 않은’ 것은 모조리 업신여기는 그런 미국인들의 스타일이라니.정식 교육을 받지 않고 주류의 흐름 밖에서 커리어를 쌓아왔는데. 나는 비평가들에게 빚진 게 하나도 없다. 평생 주류의 흐름을 거스르며 살아왔다고 자부한다. 미술계가 ‘추상주의’를 숭배할 때 나는 ‘구상주의’를 추구했고, 여전히 오늘날의 흐름과 반대되는 길을 걷고 있다. 예술은 결코 정답이 없는 건데 나 같은 스타일은 성공을 가늠하기 힘들지 않을까 싶다. 뭐, 어떤 사람들은 내 추종자들이 많다고들 하고, ‘짝퉁 보테로’ 공장이 베트남에 있단 소리도 듣고, 그림을 복제하는 공장이 중국에 있단 기사를 봤다는데 ‘짝퉁’은 다 찢어진 눈이라더라. 눈만 동양인들의 눈으로 바꾼 거지.작품 복제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무서운 일이다. 복제품이 어찌나 많은지 셀 수도 없다. 물론 악의 없는 복제도 있긴 하지만 일단 있을 수 없는 일이다.그런 일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있을 것 같은데. 복제를 막는다는 건 완벽한 타이밍을 요한다. 결국 불가능한 일이란 거다. 작가의 사인이 있으면 변호사들이 개입할 수 있지만 그 과정이 길고 복잡하다. 유명한 화가들이라면 한 번씩 겪는 일이다.그림을 누가 구입하는지 궁금하지 않나? 전혀 궁금하지 않다. 그림을 전 세계에 열두 명 정도 있는 화상들에게 파는데 어쩌다 한 번씩 잭 니콜슨이나 실베스터 스탤론 같은 유명인들이 샀다는 사실을 접할 때도 있다. 하지만 딱히 관심을 두진 않는다.오늘날의 예술시장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예술이 비싼 건 좋은 거다. 부자들이 가진 부에 걸맞은 비싼 장난감들을 만들어줄 필요는 있으니까. 그렇다 해도 세상에 몇 점 없는 조각품 을 사기 위해 사람들이 1천만 달러를 쓰는 것처럼 정도가 상상을 초월하기도 한다.그와 비슷한 가격대의 작품을 많이 갖고 있을 것 같다. 물론 부자가 되는 건 나쁘지 않다. 하지만 나는 그림이 좋아서 그림을 그린다. 앞으로도 그런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창의력에 위기가 온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나? 없었다. 오히려 시간이 부족해 탈이다. 아이디어를 어떻게 다 쓸지 고민이다.최고라 자부하는 작품은 어떤 건가? “이 그림이 최고다!”라는 말은 아마 죽을 때까지도 못할 것 같다. 물론 전시회를 열 때, 꼭 전시하고 싶은 그림이 20~30여 점 정도 있기는 해도. 다만 그게 맞아떨어졌을 때, 목표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는 것을 느낀 다는 거지 이 작품이 최고, 저 작품이 최고라는 말은 못한다. 항상 다음 작품이 내 생의 최고의 작품일 거란 생각을 한다.* 9월 15일부터 롯데 갤러리에서 열리는 에서 페르난도 보테로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1 185× 122cm, 20002 167×127cm, 19783 그의 작업실에는 풍성한 햇살과 책, 붓, 그림 그리고 추억이 넘친다.*자세한 내용은 엘르 본지 9월호를 참조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