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광대다. 막이 내리기 전까지. 명품 배우 조진웅 | 엘르코리아 (ELLE KOREA)

한 사람의 배우를 알기까지 걸리는 속도는 예측할 수 없다. 하지만 이 남자는 다르다. 어느 틈엔가 듬직한 덩치로 예사롭지 않은 존재감을 드러내더니 순식간에 대중의 시선을 낚아 챘다. 야수처럼 맹렬한 기세로 여우처럼 영리한 순발력으로 브라운관과 스크린을 석권한 사나이 조진웅이다. ::말죽거리 잔혹사, 추노, 우리형, 야수, 비열한 거리, 폭력서클, 맨발의 꿈, 신이라 불리는 사나이, 솔약국집 아들들, 조진웅, 엘르, 엣진, elle.co.kr:: | ::말죽거리 잔혹사,추노,우리형,야수,비열한 거리

익숙하지만 여전히 낯선 남자가 있다. 어수룩한 말투로 ‘오 마이 갓’을 외치던 귀여운 브루터스. 충직한 심복으로 천지개혁을 꿈꾸던 강직한 한섬. 재벌 2세 망나니로 주색(酒色)만 밝히는 천박한 장호. 모두 한 남자다. 연극판에서 ‘놀던’ 조진웅이 브라운관으로 ‘놀러’ 왔다. 전종혁(이하 ‘전’): 어딜 봐도 조진웅이란 배우로 꽉 차있다. 한번 만나서 이야기 나누고 싶었다. 함께 온 기자는 우리 막내다. 팬이란다.김나래(이하 ‘김’): 선배에게 데려와 달라고 졸랐다. 정말 명품 조연이란 생각이 든다.와, 감사하다. 전: 어떻게 연기를 시작하게 되었나? 듣자 하니 조진웅이라는 이름은 가명인데, 아버지 이름이라고! 아버님께 혼나지 않았나?연극만 쭉 하다가 영화를 하게 되었다. 다들 영화 를 데뷔작으로 알고 있지만. 난 연극판에 더 오래 있었다.김: 사람들은 조진웅이 에 나왔는지 모른다. 연극을 하다 영화를 하게 됐을 때, 정말 충격을 많이 받았다. 뭐 이런 게 다 있나 싶을 정도로. 이게 시작이라고 생각했다. 내 연기에 있어서 또 다른 시작 같은 느낌. 뭔가 새로운 것을 가지고 가고 싶었다. 개인적으로 아버지를 굉장히 존경한다. 영화 크레디트에 이름 올라가잖아. 연출부에서 연락이 왔길래 마루에 있던 아버지 이름 쓰겠다고 했다. 아버지한테 이름 좀 빌려 쓰겠다 하니 보증 서는 건 안 된다 그러시더라고. (웃음) 이제 집에서 가져 갈 게 없어서 별 걸 다 가져간다고. 할머니는 아버지 이름을 '딴따라' 하는데 쓴다고 뭐라 그러셨고. 전: 남자들에게 아버지는 무서운 대상일 수 있다. 굉장히 젠틀하다. 위트도 있으시고. 전: 가부장적인 아버지는 아니셨네. 그렇지 않았다. 엄할 때는 굉장히 엄하셨지만. 난 한대도 안 맞아 봤다.전: 정말? 그러기 쉽지 않았을 텐데….안 때렸다고 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아버지 입장이다. 아버지의 카리스마 앞에서는 할 말이 별로 없다. 고등학교 때 담배 피우다 걸린 적이 있는데 아버지가 할말 없냐고 하시더라. 그래서 담배 피웠다 그랬지. 뭐 그런 스타일이다. 연극 할 때도 반대하지 않고 그런 얘기를 하시더라. 지금까지 훌륭한 선배들은 해온 게 많은데, 그 어려운 과정을 다 뚫고 와야 그런 위치에 오를 수 있다고. 그 과정 속에서 네가 포기할 것 같으면, 지금 그만 두고 새롭게 시작하는 게 어떠냐고. 나는 부산에서 학교를 다녔다. 부산으로 가는 기차 안에서 정말 혼란스럽더라. 전: 오히려 아버지의 말씀이 더 부담스러웠겠다. 그 말씀은 뭐지? 그랬다. 이제는 조금 알겠다. 작업을 하면서. 이게 뭐다. 이게 이런 느낌이구나 하고 안 거지. 김: 왜 연극영화과를 가게 됐나?참 희한했던 게 연극영화과를 가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다만 어릴 때부터 ‘나는 이쪽 계통이구나’란 생각을 했었지.김: 막연하게? 글 쓰는 것도 좋아했고 극작에도 관심이 많았다. 내 생각을 글로 쓰기도 했었고. 사촌형이 경희대 국문학과를 다녔는데, 그 영향을 많이 받았다. 언젠가 그 형이 그러더라. 자기 생각이 있으면 그걸 글로 써내라고. 그 형님은 글로 풀어내는 거고 누구는 그림으로 풀어내는 거라고. 음악도 좋아했다. 고 3때 글을 쓸 지 음악을 할 지 연극을 할 지 고민을 많이 했다. 놀다가 풀렸는데.전: 무슨 의미지? 방탕하게 살았다는 말?‘작업’이라는 단어도 몰랐을 때니까. 고민을 한창 할 때 ‘극작’이라는 단어를 만난 거다. 누가 쓴 글을 내가 표현해보는 것도 재밌겠다 싶었지.전: 연극은 어떻게 시작했나?부산에는 배우 인프라가 없다. 그래서 내 소스가 너무 좋은 거지. 저건 어디다 걸어 놔도 그림은 나오니까. 나 같은 경우에는 선생님들이 이리 와서 연기해 봐 이러면서 공연 시작하게 됐다.전: 발성이나 연기 호흡도 전혀 모를 때?그렇지. 그런 거 하나도 몰랐다. 근데 지금 생각하면 꽤 큰 역할을 많이 맡았다. 배우가 없는 거지. 장군 역할인데 그만한 풍채를 가진 사람이 없는 거다.김: 와, 큰 장점이다. 내가 장점이 됐던 게. 부산 배우들은 표준말을 안 쓴다. 다 사투리 쓰니까. 그래서 번역극 같은 경우 사투리가 툭툭 나온다. 김윤석 선배와는 부산에서 같이 연극을 했었거든. 형님이 테네시 윌리엄스의 에서 짐 역할을 맡았는데 ‘남부 지방의 융숭한 대접 감사했습니다’란 대사(김윤석 흉내를 내며)를 사투리로 하는 거다.전, 김: 와, 하하하. (웃음) 대학교 1학년 때부터 연극을 했다. 이리저리 굴러다니면서. 연극을 하니까, 못하는 것 같지도 않았고. 그때부터 계속 공연만 하는 거야. 그러니까 나는 학교에서 이론으로 배우는 연극론, 서양 연극사 같은 거 다 공연으로 배운 거다. 전: 영화 이야기를 좀 해볼까? 영화에 처음 들어가게 된 계기는 뭔가. 서울시립극단 나오고. 어쨌든 부모님이 다 서울에 계시니까 대학 졸업하면 다시 가려고 했다. 그러다 서울에 적이 없으니까, 서울시립극단에 들어가게 됐고. 근데 거기서 오래 못 버틴 거다. 부산에서는 굉장히 저항적으로 연극을 했었다. 치열하게. (서울 시립에서는) 스스로 나태해지는 걸 느꼈다. 몇 시에 출근하고 퇴근한다는 명칭을 쓰니까.김: 공무원 같은 느낌이었겠다. 처음에는 좋았다. 돈도 준다고 하니까. 그런데 공연을 안 한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거다. 부산에서는 돈 받고 공연 한 적이 거의 없었거든. 연기의 목적은 무조건 의식이었으니까. 그런데 서울에서는 안 그런 거다. 물론 적응할 수도 있었겠지. 근데 나랑은 스타일이 좀 안 맞았다. 나는 뭔가 하면 땀도 나야 되고 피도 나야 되는데. 뭔가 펄펄 끌고. 때려 부숴야 하고. 전: 맞다. 그렇게 치열한 삶이 아닌 거지.서울시립극단도 정확한 텍스트가 주어져 있고, 거기에 이미지를 만드는 과정은 비슷했다. 하지만 그 결과물이 굉장히 정형화되어 있고 양식화되어 있더라. 스스로 용납이 안 되는 거다. 쉽게 얘기 하자면, 노예로 살다가 양반이 됐는데 양반이 안 맞는 거지. 그래서 나오게 됐다. 짚신이 마음에 편하다. 전: 그래서 영화를 한 건가?서울에서 역삼동인가를 걷다가 우연히 군대 고참을 만났다. 그 친구가 연출부로 일하고 있더라. 뭐하냐 묻길래 ‘놀지’ 그랬더니, 이 친구는 알아 듣는 거다. 아직 연기를 하고 있다는 걸. ‘그럼 영화 한 번 놀아볼래’ 그러더라. 그 영화가 다. 전: 영화를 하겠다고 마음 먹게 한 작품이 뭔가?사실 실질적인 계기는 가 아니라 때였다. 오디션을 4차까지 보더라. 마지막에 다섯 명 중에서 한 명을 선택한다고 했었지. 한 사람 당 30~40분씩 보는 거야. 그때 나는 진인사 필름에 곽경택 감독이 있었기 때문에, 곽경택 감독님이 하는 줄 알았다. 감독님은 언제 보나 했었지. 전: 당시에는 감독이 아직 안 정해졌나 보다.난 알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다. 그것보다 역할을 맡는 게 더 중요했으니까. 감독이 누가 될지는 별로 안 중요했다. 근데 오디션을 보는데, 화장실에서 낯익은 목소리가 들리는 거다. 안권태 감독( 감독) 목소리야. 동기거든. 사실 나보다 나이가 5살 많은 형님이지. 아씨. 동긴데 어떻게 이렇게까지. 당시에 내가 형 이렇게 못 하잖아. 감독이 날 보더니 ‘남은 시간 잘 좀 해줘요’ 이러면서 들어가는 거야. 잠깐만 우리 동기잖아. 열 받는 거야. 진짜 웃긴다 그랬지. 감독 되니까 변하는 구나 싶었다. 예전에 형을 만나서 술 몇 잔 마실 때도 영화감독으로 데뷔 하더라도(안 그런다고). 자기는 그게 모토라고 했었거든. 그런데 실제로 그렇게 될 줄 몰랐지. 전: 형이라도. 학교 동기는 친구지 뭐. 오디션 보고 부산으로 내려가는 기차 안에서 전화가 왔더라고. 권태형한테서. 이거 형 전화번호니까 입력해두라고. 오늘 네 연기 너무 좋았고 앞으로 네가 두식이 역할을 계속했으면 좋겠다고. ‘된 거야…요?’이러니까, 그냥 형이라고 편하게 부르라고. 두식이 역할로 캐스팅 됐으니까 열심히 하라고. 아, 그래도 괘씸하잖아. 하여튼 그렇게 된 거다. 그래도 권태형이 이것저것 설명을 많이 해줬다. 끝나고 다시 부산으로 내려갔다. 극단이 많이 어려워져서. 대표가 와서 우는데 어쩔 수 없었다. 다시 내려가서 연극을 했지. 그러니까 또 영화에서 일한 게 없어졌다.전: 그걸 발판으로 영화를 계속 했어야 했는데. 다시 공백이 생긴 셈이다. 아쉽지는 않았다. 단역부터 시작했지. 그 때 권상우와 다시 만났지. 상우 씨가 나를 기억하더라고. 때 같이 하지 않았냐고. 그 친구 사람이 됐더라고. 기억을 해! (웃음) 를 마치고 나서 을 이어서 하게 됐다. 그리고 그때 처음으로 포스터에도 얼굴을 내밀었지. 나는 그거 하면 좀 될 줄 알았다. (웃음)전: 메인으로 왔다는 의미니까. ‘그래, 이제 끝났구나’ 싶었는데. 안 되더라고. 하여튼 그렇게까지 올라가면서. 전: 드라마가 영향력이 더 크다. 아주머니들도 좋아해 주시니!정말 많은 드라마 오디션을 봤다. 못생겼다고 계속 떨어뜨리잖아. 전: 드라마는 얼굴 조그만 사람들이 나오는 거다?무조건 잘생겨야 된다는 거야. 살 빼고 뭐고 다 필요 없고. 그런 소리를 앞에서 하니까 기분이 상하잖아. 방송 쪽에 있는 분들은 영화 쪽을 경계 하더라고. 내가 영화만 했다니까, 드라마는 안 해봐서 힘들 거라고. 실제로 (탤런트)봤는데 ‘걔 뭐 그렇게 얼굴이 잘 생긴 거 아니더라고’. 나중에 어떤 드라마 감독님한테 ‘우리 엄마가 내가 제일 잘 생겼대요’ 하고 나왔지. 전: 드라마 은 어떻게 하게 됐나?배우 하면서 주말드라마 누가 보나. 사실 잘 안보잖아. 근데 시놉시스를 봤는데, 괜찮은 거야. 원래 내가 셋째 아들 역할에 (오디션)보기로 했었다.김: 한상진 씨 역할?그런데 작가님이 보더니, 왜 매니저가 왔냐는 거다. 난 그런 경우 정말 많았다. 예전에 김태균 감독님이 준비하던 작품에 회색 양복 차려 입고 들어 갔더니 ‘조진웅 씨 매니저 말고 배우 들어오라고’. 그래서 내가 ‘배우 불러올게요’ 그러고 나갔다 다시 들어와서 ‘안녕하세요. 조진웅입니다.’그랬잖아. 그제서야 감독님도 미안하다고.전: 완전 코미디 오디션이다!근데 이번에도 보자마자 ‘무슨 매니저가 왔어?’ 하니까 이젠 여의도 63빌딩만 봐도 기분이 나쁘다. 하도 드라마 오디션에서 떨어지니까. 때도 진짜 가기 싫었다. 이번에는 캐릭터가 좋다고 그러니까 간 거지. 이런 마음으로 오디션을 보러 들어갔는데, 매니저가 왔냐는 둥 옷에 신경을 안 썼다는 둥 이러는 거다. 얼마나 기분이 나빴겠냐. 원래 이렇게 입고 다닌다고 그랬다. 한번 대본 읽어보라고 해서 그때 (오디션 보러 왔던) 최정윤 씨랑 연기를 했었다. 그러더니 작가님이 잠깐 나와 보라는 거다. 옆방에 데려가서 미국에서 온 캐릭터가 있는데, 마누라한테 혼나는 연기를 해보라는 거다. 갑자기. 그래서 손들고 혼나는 장면을 연기했다. 작가님이 재밌다고 내일 시간되면 다시 찾아오라고 하더라.전: 주인공 중 한명인 줄 알고 갔는데. 옆집 아저씨 역할로 좌천됐네. 솔직히 좋지 만은 않았지. 처음엔. 전: 어쨌든 작가를 감동시킨 셈이다.그래서 그 작품을 하게 된 거다. 조정선 작가 사무실을 많이 찾아갔다. 첫 대본 리딩을 마쳤는데 도무지 모르겠더라. 그래서 작가님 하고 같이 울고 웃으면서 연구를 많이 했지. 재미 교포라는 게 표현하기가 애매한 게 있다. '오 마이 갓' 이러면서. 김: 너무 오버하면 미워 보이잖아. 진짜 교포 같으면서도 귀여운 구석도 있는 그런 게 있잖아.그걸 찾기 위해서 작가님하고 고민을 많이 했지. 서로 울고 싸우고 난리였다. 작가님이 나중에는 글 써야 되는데 왜 자꾸 찾아 오냐고. 그래도 막무가내로 갔다. 모르겠는데 어떻게 해!김: 시청자 반응 좋았는데. 사실 시청자 반응을 볼 틈이 없었다. 손(현주) 선배님은 시스템에 대해서 많이 알려주셨다. 당시에 다른 선생님들도 가족처럼 잘해주셨고. 다들 나한테 그러더라. 넌 좋은 환경에서 연기하는 복 받은 배우라고. 너무 역할 안에 있으니까, 특히 부인(최지나)이 아픈 사실을 안 뒤부터 거의 한 달 반 동안 매일 울었다. 나중에 누구 생일 파티에 갔는데, 그 모습이 꼭 죄를 짓는 것 같았다. 내가 지금 즐거우면 안 될 거 같았거든. 이거 오래 하면 정신병 걸릴 것 같았지. 전: 배역에 몰입을 해서 그랬겠지.제일 기억에 남는 장면은, 부인이 암인 걸 알고 체념을 하는 거다. 그 다음에 방에서 침대를 갖다 버린다. 수진(동생)이가 와서 뭐 하는 거야 물어봐도 침대를 버리면서 그냥 막 울기만 하는 거다. 그러고 들어가서 아이들한테 그런다. 이제 엄마랑 같이 잘 거라고. 촬영 하면서 울고 있는데 감독님이 ‘컷’을 했다. 그 소리를 못 들었다. 감독님이 옆에 와서, 이제 끝났어라고 토닥거려 주는 데도 계속 눈물이 안 멈추는 거다. 나도 내가 그럴 줄 몰랐다. 난 굉장히 이성적인 배우거든. 실존주의 철학도 좋아하고. 근데 촬영 끝나고 집으로 가는 차 안에서도 계속 울었다. 매니저 보는데. 쪽 팔리게. 얼마나 창피한지.전: 감정에 푹 빠졌네.그렇게 해야 한다. 드라마에서는 호흡을 잘 잡고 있어야 하니까. 다른 배우들은 그런 걸 잘하지만, 나는 못하겠더라. 나 때문에 촬영이 한 시간이나 연기 된 적도 있다. 전: 감정 전환이 안 돼서?그렇다. 어떻게 해야 할 줄 몰랐던 거지. 옆에서 소음 다 들리고 집중도 안되고. (박)선영이가 와서 손을 잡아주면서 전날 대사부터 같이 맞춰줬다. 감독님도 주변에 조용히 해달라고 하고.전: 한 시간을 기다려 주기란 쉽지 않다.그러니까. 한 시간을...전: 현장에선 대충하고 그냥 가. 이런 식인데. 그렇다. 그런데 감독님과 스태프들이 굉장히 많이 도와줬다. 기다려 준 거지. 시간이 좀 지나서 적응하니까 그 다음부터는 좀 쉽게 가더라. 영화, 전: 영화 에도 출연했던데. 순박한데 뭔가 좀 있는 것 같더라. 영화에서 작가인 백희수(엄정화)가 글을 쓰려고 시골로 가잖아. 나는 그 시골 마을의 청년 회장이다. 그 나이 되도록 결혼도 못하는 찌질한 타입이지. 하지만 이유가 있는 삶을 살아간다. 나중에 밝혀지지만. 매력 있는 캐릭터다.전: 촬영 순서가 어떻게 되나? 들어가기 전에 부터 촬영한 건가.먼저 끝났고. 촬영이 맞물렸다.전: 와와, 정말 처럼 달렸겠다. 드라마에서 그렇게 많이 달리는 것 처음 봤다. 배우도 배우지만, 카메라 들고 뛰는 스태프들이 장난 아니겠더라. 다들 고생했지. 사람들은 재밌다고 하더라. 나는 제주도 용오름에는 다신 안 갈 거다. 너무 힘들었어. 살집이 좀 붙어서 무릎도 아팠다. 거기다 애를 안고 뛰어야 되니까. 그나마 애가 귀여워 다행이지. (웃음) 애가 울고 미웠으면 어쩔 뻔했나. 평생 안아야 될 애기를 이미 다 안은 것 같다. 전: 영화 의 캐릭터도 재밌는 것 같다. 많이 나오지 않아도 굉장히 빛 날 수 있는 캐릭터다. 이름도 흔한 제임스. 뭔가 친숙하다. 진짜 동티모르에서 사기꾼은 한국 사람이라더라. 서로 사기를 치고 당한다고. 제임스는 그냥 봐도 진짜 사기꾼처럼 보인다. 김: 로케이션 장소가 동티모르인데.40도가 넘는 더운 지방이다. 나는 거기다 오픈카를 몰고 촬영을 했다. 도착하자마자 쉴 틈도 없이 바로 찍기 시작했다. 근데 인상적인 게 먼저 도착한 박희순 선배님은 벌써 도인이 됐더라고. 거의 체류 50일째. (웃음)전: 에 나오는 마론 브란도처럼?이미 달관한 표정이더라. 박희순 선배가 머리를 갈색으로 약간 염색 했는데, 나중에 뜨거운 햇볕에 샛노랗게 탈색이 된 거야. 그 땡볕 아래 공터에서 축구를 하니까. 내가 도착해서 팔을 내밀면서 선배님한테 한국 냄새 한 번 맡아 보라고 그랬지. (웃음)전: 고생 진짜 많이 했겠다.그렇게 고생하는 스태프들은 처음 봤다. 거기 현지인들은 절대 뛰어 다니지 않는다. 거기서 뛰어다닌 사람은 우리 스태프들밖에 없었다.전: 한국 사람이니까 가능한 거다. 그런 데서 왜 축구를 하나! 난 햇볕이 가장 센 오전 11시부터 4시까지 촬영했다. 근데도 내가 거기서 고생한 건 고생도 아니다. 다들 얼마나 고생 했는지. 한국에 와서 내가 우리 팀 고생 한 거 알려야겠다 싶어서 인터뷰 할 때마다 항상 이 얘기 꼭 한다. 정말 영화가 잘 됐으면 좋겠거든. (영화가)의미가 있고. 사람들이 감동을 많이 받았으면 좋겠다. 가슴 뭉클했던 게 실제 동티모르 축구팀의 아이들이 영화에 나온다. 박희순 선배가 그러더라고. 이 아이들이 '동티모르의 1호 영화배우'라고.전: 그러고 보니 동티모르에서 영화를 찍은 적이 없네.영화를 제작한 적이 없더라고. 실제 (한국의)감독님께서 가끔 아이들을 호텔에 데리고 와서 재우고 먹이기도 했다. 내가 상상한 것보다 훨씬 더 열악하더라. 아직도 내전 중인 나라라서. 환경이. 삶이. 참. 전: 영화로 도와 줄 수도 있겠다. 영화 티켓 일부와 축구 용품 사서 보내는 건 어떤가. 의미가 있을 것 같다. 맞다. 그런 거 진짜 하고 싶다. 만약 실제로 하면 후원도 할 거다. 전: 동티모르의 보안이 그렇게 심각하나?무조건 해 지기 전에 숙소로 들어가야 한다. 우리가 있던 빌라에는 교도소처럼 이중 철창이 있었다. 아예 밖으로 나가면 안 되는 거지. 우리가 촬영했던 곳은 나름대로 시가지였는데, 그런 시가지에 나쁜 사람들이 다 모여 있다더라. 실제로 촬영하고 있는데, 돌을 던져서 마이크 장비가 부러진 적도 있었다. 사고가 있고 난 다음부터는 현지 경찰들이 우리를 보호하면서 촬영했다. 근데 현지 경찰 혼자 왔더라. (웃음) 전: 의 무대처럼 휴양지가 아니니까.정말 열악한 환경이었다. 그런데 그림은 너무 좋았다. 그냥 들이대면 앵글이지. 따로 배경을 만들 필요도 없었다. 헬기 막 날아다니고. 현지 자국 군인들이 ‘갈 지(之)’ 자로 들어 앉아서, K2 소총 들고 있는 게 즐비하니까. 김: 촬영하는데 어려운 점은 없었나?동티모르 도착하자마자, 지프 차 몰고 가는 장면을 촬영했다. 도시에 신호등이 두 개 밖에 없더라. 가자 마자 운전석이 우측인 차량으로 운전도 하고 연기도 해야 되니까. 나는 이곳을 잘 아는 인물처럼 연기해야 하는데, 실제로는 처음 온 사람이라서. 설정이 익숙하지도 않잖아. 김: 고생이 많았겠다.그래도 커피는 정말 맜있더라. 한 잔 얻어 마셨는데, 정말 맛있다.김: 개성이 강한 인상이다. 혹시 닮고 싶은 배우나, 존경하는 배우가 있나? 어렸을 때부터 포레스트 휘태커를 무척 좋아했다.전: 휘태커는 정말 연기 하는 것처럼 안 보인다.닮고 싶다. 그리고 우리나라 선배들은, 너무 잘한다. 우리한테 기회를 좀 주셨으면. (웃음) 선배들이 다한다. 우리는 할 게 없어. 내가 저렇게 몇 년 후에 (연기)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너무 철두철미하게 말이지. 존경스럽다. 전: ‘이런 역할 시켜주면 진짜 잘 할 수 있을 것 같다’싶은 게 있나?욕심 많지. 배우가 어떤 역할을 맡아도 다 잘해야 되는 것 아닌가? (웃음)김: 마음이 열려 있다. 어려서부터 많은 작업을 하면서 많은 연출(감독)을 만났다. 부산에 연출하는 한 형님이 나한테 그러더라. ‘스펀지 같은 배우’라고. 그게 나의 장점인 것 같다. 감독이라는 위치는 하나의 기점인 것 같고 등대인 것 같다. 보고 갈 수 있는. 어떤 불빛을 나에게 제시하는 가에 따라 색도 많이 달라지더라고. 그런 부분을 나에게 제시했을 때, 어떤 평도 유연하게 받아들이는 것. 그게 내 장점이다. 전: 하긴 배우가 이해가 안 되는 역할을 맡으면, 연기는 힘들어진다.이번에 친해진 장혁, 오지호가 를 보고 내 연기 모니터링을 해주더라. 너무 고맙지. 내가 생각하고 있었던 부분을 시청자의 입장에서 바라보고 연기자의 느낌으로 재해석 해주니까. 그런 조언을 내가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 그게 좋다. 정말 연기 잘하고 싶다. 연기를 잘하는 기준은 잘 모르겠지만. 나도 주연 배우를 하고 싶거든. 그런 욕심은 있다. 그리고 대중도 분명 그걸 원할 거라는 생각도 하고.전: 우리는 조진웅이라는 배우를 어떻게 지켜봐야 할까?조진웅이란 사람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그 사람을 아는 것은 중요하지 않지. 지금도 ‘듣보잡’이지만, 예전에 더 듣보잡일 때가 있었잖아. 카페에 앉아 있는데, 바로 옆 테이블에서 내 얘기를 하더라. 그게 정말 캐릭터일까. 아니면 정말 조진웅이라는 사람의 얘기 일까 하고서. 너무 재밌더라. 내가 그 캐릭터를 잘 표현하면 사람들이 그렇게 알아주잖아. 난 그게 너무 행복하다. 그렇게 신명 나게 노는 광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