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다이, 유령이 되다 | 엘르코리아 (ELLE KOREA)

한동안 뜸했던 이완 맥그리거가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유령작가’와 더불어 당당하게 은막으로 돌아왔다. 언론의 돌풍까지 가세한 대단한 소용돌이 속에서 벌어지는 이 스릴러 영화에서 이완 맥그리거는 이제까지 맡았던 배역 중에서 단연 돋보이는 중요한 연기를 펼친다. 대필 작가라는 숙명적 무명성에도 불구하고, 그의 존재는 찬란하게 빛난다.::아이 러브 유 필립 모리스, 유령작가, 이완 맥그리거, 로만 폴란스키, 로버트 해리스, 킴 캐트럴, 고스트, 테스, 아멜리아, 염소를 노려보는 사람들, 트레인스포팅, 엘르, 엣진, elle.co.kr:: | ::아이 러브 유 필립 모리스,유령작가,이완 맥그리거,로만 폴란스키,로버트 해리스

에서 짐 캐리의 여자로 나와 관객들을 즐겁게 해주었던 이완 맥그리거. 그의 인물 됨됨이에서 자연스럽게 풍겨지는 부드러움과 상처받기 쉬운 성격이 유난히 돋보였다. 그런데 이번엔 그와는 전혀 다른 풍의 영화에서 주인공 역을 맡았다. 에서 그는 문학 대필가로 나온다. 로버트 해리스의 라는 제목의 추리 소설을 각색한 이 작품에 로만 폴란스키 감독은 감독 자신의 온갖 강박증을 쏟아 부었다. 대니 보일에 의해서 발탁된 스코틀랜드 출신 배우 이완 맥그리거는 요즘 피어스 브로스넌과 같이 감독 몫까지 영화를 홍보하느라 고군분투 중이다. 폴란드 출신 폴란스키 감독은, 언론을 통해 대서특필 되었던 불미스러운 사건 때문에 스위스 크슈타트 자택에 연금 상태이므로, 마치 자신이 만든 작품의 대작자가 되어버린 격이다. 이 때문에 주인공 역할을 맡은 배우들의 입장은 대략 완전난감 상태가 아닐 수 없다.Q. 폴란스키 감독과 만나기 전에 그의 어떤 작품들을 주로 보았나요?이건 좀 웃기는 이야기인데 말이죠, 아주 어렸을 때 나는 웬 대학생이 폴란드의 한 작은 마을에서 찍은 단편 영화를 본 적이 있었습니다. 이라는 제목의 영화였죠. 그 영화를 보고 받은 충격이 어찌나 컸던지, 나는 커서도 그 영화를 잊지 못했습니다. 폴란스키 감독과 일을 하기로 결정이 되었을 때, 나는 DVD로 나온 그의 전집을 샀습니다. 그리고는 문제의 그 단편 영화가 바로 폴란스키 감독의 작품이었음을 알게 되었죠! 나는 그 때까지 이나 , 같은 영화는 본 적이 없었습니다. 와 내가 좋아하는 같은 영화는 예전에 보았던 작품들이지만 다시 보았죠. ”퀴드삭“이 아주 마음에 들더군요. 시종일관 마음을 불안하게 만드는 분위기 속에서 진행되긴 하지만요. ”맥베스“도 좋았습니다. 나는 연극 무대에서 셰익스피어 작품을 연기한 적이 있는데,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사람이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그토록 설득력 있게 영화로 옮긴다는 건 보통 일이 아닙니다.Q. 두 사람의 첫 만남은 어떻게 이루어졌습니까?우선 전화를 통해서 첫 번째 접촉이 이루어졌죠. 나는 그때 을 촬영 중이었고, 뉴멕시코의 사막 한 가운데 있는 주차장에서 전화를 받았죠. 그런 다음 베를린으로 가서 그를 만났습니다. 사실 시나리오에 대해서는 거의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습니다. 나는 시나리오에 내 의견을 첨부해야 직성이 풀리는, 그런 부류의 배우가 아닙니다. 어디까지나 충실한 병정처럼 나에게 주어진 역할을 성실하게 수행하는 편이죠. 베를린에서의 만남이 있고난 뒤, 이번에는 연기 테스트를 위해서 그의 사무실에서 다시 만났습니다. 폴란스키 감독은 매우 상냥하고 철저하게 상대방을 배려하는 자세였습니다. 요컨대 배우에게 흠잡을 데 없이 완벽한 대접을 해주는 감독이었죠. 이틀 후, 나는 대본 읽기를 하자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니까 그 때가 촬영 시작을 이틀 앞둔 시점이었는데, 그때까지도 감독은 내가 어떤 투로 대사를 발음하게 될 지 들어보지도 않은 상태였거든요. 내가 연기해야할 대필 작가라는 인물에 대해서는 사실 별로 알려진 것이 없었습니다. 원작 소설에서도 그렇고, 시나리오에서도 그건 마찬가지였습니다. 고작 케임브리지에서 공부한 사람이라는 내용 정도만 알려져 있었을 뿐이었으니까요. 그러니 확실하게 구별되는 케임브리지 액센트, 다시 말해서 약간 잘난 척 하는 투로 말하는 인물을 그려내는 것이 정석이었겠죠. 그런데 내가 보기엔 그를 런던 식 액센트로 말하는 사람, 그래서 자신이 속한 계층에서 이방인처럼 취급되는 사람으로 만드는 것이 훨씬 흥미로울 것 같아 보였습니다. 어쨌거나 나는 대본 독회를 얻어냈고, 입을 열어 제일 처음 나오는 대사를 읊조렸습니다. 그러자 로만이 소리쳤습니다(이 대목에서 이완은 완벽한 성대모사를 구사했다). “아냐, 아냐, 아니라니까! 그건 말도 안 돼! 그건 이렇게 해야 해, 다른 어떤 식도 안 되고, 꼭 이렇게 해야 한다니까.” 이윽고 폴란스키 감독은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대본을 읽기 시작했죠. 그제야 나는 최고의 대접으로 나를 맞아주던 이 남자가 일단 일이 시작되면 무지 까다롭고 엄격한 사람, 배우들을 선택의 극한까지 몰고 가는 사람으로 돌변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러자 마음속에서 ‘이런 젠장! 저 자와 이런 식으로 넉 달을 살아야 하겠군!’하는 탄식이 저절로 새어나오더군요. 하지만 나한테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폴란스키 감독의 일하는 방식은 장면 하나 하나와의 정면 대결을 통해 진실에 도달해가는 방식이니까요. 그걸 깨닫고 나면, 더 이상은 연기를 한다는 말이 어울리지 않게 됩니다. 결국 나는 이 영화에서 거의 연기를 하지 않은 셈이 되죠. 말하자면 반(反) 연기인 셈이죠!Q. 영화의 배경이 되는 그 섬은 어떤 곳인가요? 굉장히 인상적이던데.실트 섬이라고 하는 곳입니다. 독일과 덴마크가 인접하는 곳이죠. 돈 많은 독일인들의 휴양지라더군요. 물론 우리가 촬영을 하던 무렵엔 죽은 곳이나 다름없었어요! 어찌나 추운지 추위가 영화 속으로까지 스며든 것 같더라니까요. 여가 시간을 보낼 만한 시설이라고는 눈을 씻고 봐도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그러니 나는 촬영장에서 스태프들과 꼬박 4개월을 동고동락하는 수밖에 없었죠. 다른 배우들은 잠깐씩 다녀가곤 했죠. 덕분에 나는 이렇게 잠깐 다니러오는 피어스(브로스넌)나 올리비아(윌리암스) 같은 배우들을 마중 나가는 일을 도맡았습니다. 이렇게 말하면 좀 뭣하긴 하지만, 여러 영화를 찍다보면, 잠을 잘 자는 촬영이 있고, 밤새도록 파티를 즐기는 촬영이 있습니다. 의 경우는 단연 수면제 같은 촬영에 속하죠!Q. 다른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면, 는 히치콕 식의 단순한 스릴러가 되었을 것 같더군요. 그런데 폴란스키 감독 덕분에 카프카 식 동화가 된 것 같아 보입니다.감독마다 작품에 자신의 족적을 남기죠. 는 물론 스릴러물이지만, 액션이라고는 전혀 없고, 추격전도 난투극도 전혀 없죠. 고작 자전거 타고 달리는 정도가 전부에요! 제이슨 본 같은 인물의 모험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다니까요! 처음엔 그 때문에 약간 두렵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폴란스키 감독이 긴장감과 불안감을 잔뜩 집어넣은 덕분에 그 같은 액션쯤은 충분히 상쇄되는 것 같더군요.Q. 는 망명과 스캔들이라는 주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당신이 연기한 작중 인물과 피어스 브로스넌이 연기한 인물을 통해서 폴란스키 감독은 결국 감독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 같습니다. 혹시 이 점에 대해서 감독과 이야기를 나눠보셨나요? 아뇨. 영화가 폴란스키 감독의 삶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아무도 이견이 없을 겁니다. 하지만 그는 촬영장에서 그렇게 말한 적이 없고, 우리도 그 점에 대해서 그에게 묻지 않았습니다. 1970년대 이후, 그는 영국이나 미국 땅을 밟은 적이 없습니다. 피어스 브로스넌이 연기한 인물이 그에게 여행 허가를 받은 나라가 어디인지를 묻는 장면은 아마도 모든 관객들에게 시사하는 점이 있을 겁니다. 또 영화가 끝나갈 무렵 내가 연기한 인물이 두 명의 경찰로부터 조사를 받는 장면이 있습니다. 경찰 역을 맡은 배우들이 주먹으로 탁자를 내리치는 등, 미국식의 거친 경찰을 재현했습니다. 그러자 폴란스키는 즉시로 이 장면을 바로잡았죠. “아니, 그게 아니지. 이 경찰들은 아주 상냥하고 점잖은 사람들이라네”라고 설명하더군요. 이쯤 되면 그가 이 방면에 어느 정도 경험이 있음을 암시한다고 볼 수 있죠. 이따금씩 폴란스키 감독은 체험에서 우러난 것 같은 힌트를 주었습니다. 하지만 그게 전부죠. 그는 어디까지나 현실적이고 실리적이었습니다. 촬영장에서 그 어떤 거북함도 느낄 수 없었습니다.Q. 이 영화는 희한하게도 앞날을 예고하는 것 같더군요.아니, 그렇지 않습니다. 촬영 당시 이미 로만의 삶에 대해서는 언론에서 까발릴 대로 까발린 상태였습니다. 이 영화를 영국에서 찍을 수 없었다는 한 가지 사실만으로도 벌써 언론에서는 이러쿵저러쿵 말이 많았으니까요. 그가 체포되고 난 후, 서글프게도 이 이야기가 조금 더 유행되었을 뿐이죠.Q. 프랑스에서는 불과 3개월 사이에 당신이 주연으로 출연한 영화가 네 편이나 상영됩니다. (2월 10일 개봉), (3월 3일 개봉), (3월 10일 개봉), 그리고 (4월 14일 개봉), 이렇게 네 편입니다. 아니, 어떻게 이럴 수 있죠, 혹시 터보 엔진이라도 단 겁니까?우연의 일치라고 해야겠죠. 하긴 내가 스피드를 좀 낸 것도 사실입니다. 2004년부터 2007년 사이에 나는 오토바이를 타고 두 번이나 세계 일주를 했습니다. 한 번은 서쪽에서 동쪽으로, 다른 한 번은 북쪽에서 남쪽으로 여행했죠. 준비하는 데에만 8개월이 걸렸고, 실제로 오토바이 핸들을 잡은 건 6개월 동안이었습니다. 또 런던에서 , 이렇게 두 편의 연극에 출연했습니다. 그러다보니 그 3년 동안 영화엔 뜸했죠. 그래서 컴백을 해야 할 필요를 느꼈고요! 덕분에 미친 듯이 일을 했습니다. 방금 말씀하신 네 편의 작품 외에 두 편을 더 찍었습니다. 한 편은 데이빗 맥킨지 감독의 로, 에바 그린과 함께 출연했습니다. 세기말 적인 분위기 속에서 전개되는 낭만적인 사랑 이야기인데, 마침 내 고향에서 촬영을 했고, 그래서 무척 좋았습니다. 촬영 당시 아침마다 나를 촬영장으로 데려다주던 기사가 있었는데, 그 자는 글래스고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부류의 남자였죠. 입만 열었다 하면 짐마차꾼처럼 상소리를 해대는 욕쟁이지만, 그 상소리라는 것을 가만히 들어보면 대부분 삶의 지혜 그 자체였죠. 일종의 신탁을 전달하는 메신저라고나 할까요. 어쨌거나 그 자는 내 진정한 사부님이 되었습니다. 나는 로스앤젤레스에 있을 때에도 그 사람한테 전화를 하곤 하는데, 그 자는 언제나 나를 흥분하게 만들죠. 나머지 한 작품은 마이크 밀스 감독의 입니다. 멜라니 로랑과 같이 찍었습니다. 부인이 죽자 아들에게 자신이 동성연애자라고 고백하는 아버지에 대한 영화죠. 멜라니와 연기하는 것이 무척 즐거웠습니다. 우리 두 사람은 둘 다 본능적으로 연기하는 배우로, 말하자면 같은 부류에 속하죠.Q. 에서 짐 캐리는 여느 때와 똑같지만, 당신은 뭐랄까, 예외적인 모습을 보인다고 할까요?나는 여자 같은 인물을 맡게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진짜 필립 모리스는 만나보니 무척 남성적인 인물이더군요. 여자 흉내를 내는 방식으로 동성연애자를 연기하는 이성 연애자는 실패하게 되어있어요. 남자처럼 연기를 해야 합니다. 더구나 그들이 좋아하는 상대가 남자인 만큼 남자다워야죠. 처음 시나리오를 읽었을 땐 전혀 코메디라는 느낌이 들지 않았어요. 하지만 짐 캐리와 연기를 하다 보니 자연히 코메디가 되더군요. 그는 모든 장면을 우습게 만드는 비상한 재주가 있어요. 나는 그저 그의 연기에 묻어가다보니 덤으로 그렇게 된 셈이죠. 모든 건 다 짐 캐리가 했어요!Q. 당신은 의 프리퀼에서 오비-원 케노비 역할을 맡았습니다. 에서 당신이 맡은 배역은 은유적으로 자신 안에서 제다를 찾는 것 같습니다. 혹시 아는 사람만 알아들으라는 농담인가요?그건 나도 모르겠습니다! 시나리오에 대해서 나는 두 가지 불안감을 안고 있었습니다. 우선, 내가 맡은 등장인물이 조지(클루니)나 제프(브릿지스), 케빈(스페이시) 등이 맡은 인물들에 비해서 너무 딱딱하고 까탈스러운 사람인 것 같아 은근히 겁이 났습니다. 다른 인물들은 그래도 어딘지 모르게 유머나 장난기가 느껴지는 인물들이었거든요. 게다가 제다를 암시하는 언급들 때문에 솔직히 상당히 거북했습니다. 그런데 그랜트 헤스로브 감독은 그것이 절대로 프라이비트 조크가 아니며, 그 자신은 단 한 순간도 그런 생각조차 해보지 않았다면서 내 입장을 두둔했습니다. 솔직히 난 그 말에 대해서 의문을 품고 있지만요.요즘 들어 당신과 대니 보일과의 관계는 어떻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나는 최근에 두 번 가량 그를 만났습니다. 처음엔 상하이 영화제에서였지요. 내가 주연한 영화 가 영화제에 초청되었거든요. 상하이로 가는 길에 나는 대니가 영화제 심사위원장이라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우린 벌써 몇 년 째 서로 말하지 않고 지낸 상태였지요. 그래서 그런지 그를 만날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마음이 몹시 불안했습니다. 그런데 영화제 마지막 날 두려워하던 그 일이 현실이 되었습니다. 우린 그저 악수를 나눴습니다. 그게 전부였어요. 하지만 나는 그를 만난 것만으로도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습니다. 그가 나에게 준 그토록 커다란 상처(를 찍기로 되어있던 대니 보일 감독이 스튜디오의 압력에 굴복한 나머지, 막판에 가서 이완 맥그리거를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로 대체했다) 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우리 사이에는 아무 것도 해결된 것이 없습니다. 우린 그 문제에 대해 논의하기 위해 협상 테이블에 앉은 적도 없어요. 그리고 두 번째는 내가 그에게 상을 수여하게 된 어느 시상식장에서였지요. 나는 그러겠다고 수락했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내가 얼마나 나 , 같은 작품을 그와 함께 찍을 수 있어서 기뻤는지 공개적으로 이야기했죠. 나는 이제까지 그와의 사이에 있었던 구차스러운 일들을 그렇게 함으로써 모두 덮어버리고 앞만 보고 달릴 수 있기를 희망했습니다. 우리는 함께 지내면서 즐거웠어요, 그런데 지금은 따로 떨어져서 일을 해야 하다니, 참 어리석은 짓이죠.당신은 왜 당신의 옛 애인 주드 로와 공동으로 설립한 제작회사 내추럴 나일론을 떠났나요?그거야 그 회사가 잘 안되었기 때문이죠. 그 회사를 세울 때 우리 두 사람은 너무 어렸어요, 1990년대였으니까요. 문제는 너무 말만 많고 실제 행동으로 이어지는 건 거의 없었다는 점이죠. 우리는 라고 하는 영화를 제작했습니다. 그 영화에서 나는 제임스 조이스 역을 맡았는데, 몇몇 사람들은 지금까지도 출연료를 못 받았어요. 나와 감독도 거기에 포함되지요! 나는 직원들에게 돈도 주지 못하는 제작사의 임원이 되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습니다. 나는 젊은 배우들이 아무런 대가도 받지 못하고, 그저 예술을 위해서 일했다, 잠깐 동안이라도 일자리를 얻었다는 마음의 위안만을 얻기 위해서 일하는 건 반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