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하는 손 vs. 등 돌리고 앉은 곰 | 엘르코리아 (ELLE KOREA)

겉보기에 닮은꼴이라는 점에서 눈에 띄는 두 건물이 있다. 하나는 장충동의 경동교회이고 다른 하나는 동자동의 게이트웨이타워(구 벽산125빌딩, 이하 ‘벽산125’로 표기)다. :: 신비한, 웅장한, 세련된, 엘르,엘라서울,엣진,elle.co.kr :: | :: 신비한,웅장한,세련된,엘르,엘라서울

겉보기에 닮은꼴이라는 점에서 눈에 띄는 두 건물이 있다. 하나는 장충동의 경동교회이고 다른 하나는 동자동의 게이트웨이타워(구 벽산125빌딩, 이하 ‘벽산125’로 표기)다. 이 둘은 고 김수근 선생의 역작으로 분류된다. 전자는 80년대 초반 우리나라 개신교 교회건축의 새로운 장을 열었고, 후자는 90년대 초반 사무소건축의 전형에 저항하며 건축이 도시공간의 신바람을 불어넣은 발화자가 되어야 한다는 내러티브 건축 출현의 계기가 되었다는 점에서 주목되었다. 경동교회가 김수근의 최고 절정기에 설계된 작품이라고 한다면 벽산125는 그가 세상을 뜨기 직전까지 디자인 에스키스를 행한 마지막 작품이라는 점에서 의미를 달리 한다. 또한 사용된 건물 외장재의 차이와 건축이 존재하는 방식에서도 특이점을 찾을 수 있다. 70년대 후반 마산양덕성당이 비정형 스타일 교회건축의 양상을 선보인 이래 곧바로 이어진 경동교회의 조형언어는 보다 발전된 표현주의적 성향이 강한 붉은 벽돌 외장의 건물인 반면 벽산125는 알루미늄 패널을 두룬 금속성의 이미지로 이 또한 김수근 특유의 표현주의적 성향의 건축의장적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김수근은 양덕성당을 통해 천주교회의 본당으로 접근하는 과정적 공간을 근대건축의 거장 르 꼬르뷔제가 제시한 바 있는 건축적 산책로라고 하는 전이공간으로 마련하여 성과 속의 구분을 짓고, 성당의 신비감을 고조시키는 수법을 도입한 바 있다. 크지 않은 규모임에도 이 같은 전이공간의 존재는 교회 내외부공간을 잇는 동선의 중요성을 환기시키며 이후에 출현하는 많은 교회건축에 영향을 미쳤는데 경동교회의 경우, 개신교의 건축동선에서 예의 과정적 공간을 도입한 첫 사례가 된다는 점에서 관심을 끌었다. 내용인 즉 종교의 색채를 무시한 채 가톨릭 천주교회와 동일한 외부동선을 개신교회에 적용시키는 것이 타당한가, 라는 의문에 근거하는 것이기도 했다.엄혹한 군부독재 시절에 자유민주화 운동의 한 축을 감당했던 기존 경동교회는 종종 집회의 장으로서 개방되어오던 장소였는데 새 성전의 건축을 통하여 시민사회의 아픔을 신앙의 힘으로 끌어안으며 마치 중세 시대에 북유럽에서 유행했던 개신교인들에 의한 경건주의 건축의 양상처럼, 성경에 충실한 건축동선과 내외부공간과 형태를 만들어내기에 이른 것이다. 타락한 세상에서 교회의 존재는 보다 구조화되는 것이 당연한 일로 경동교회는 세속과의 확연한 구분을 짓는 공간구성의 방식을 채택하게 되었으며 김수근이 그 원류를 양덕성당으로부터 찾는 것은 그렇게 엉뚱한 발상은 아니었던 것 같다. 비교인의 신분으로 가톨릭과 개신교의 교회건축 설계를 연달아 감당하며 한국교회건축사의 이정표를 세운 건축가로 평가되는 김수근은 교회의 진정성이라는 면에서 과거 서양의 교회들이 보여주고 있는 공간과 형태언어의 유사성에서 위안을 삼은 것이 분명해 보인다. 아무튼 김수근의 이러한 태도는 우리나라 개신교 교회건축의 의장적 변곡점에 위치함은 물론 천주교회와의 공간적 형태적 구분의 무의미함을 주장하고 있다는 점에서 특별하다.벽산125는 남대문로 동자동 사거리 건너편에 위치한 서울스퀘어(구 대우센터빌딩, 이하 ‘대우빌딩’으로 표기)를 의식한 디자인으로 건물의 파사드가 종전까지의 많은 오피스들이 그러했듯 순리적으로 정면을 강조한 것이 아닌, 대우빌딩에 등을 돌린 채 웅크리고 앉아 있는 곰의 등허리를 연상시키는 배면을 강조함으로써, 주변 환경을 비판적으로 사유하는 의도된 조형의 의지를 선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건립 당시 세인의 눈길을 끌었다.김수근은 생을 마치기 직전에 행한 이 건물 디자인의 에스키스 끝에 ‘현대건축=richness=맛=멋’이라고 정의하면서 벽산125 설계를 수행하던 팀원들에게 “나는 자네들이 부럽다”라는 말을 끝으로 유명을 달리했다. 수평의 띠를 강조하며, 태연히 건물의 배면을 가로변에 드러냄으로써 건물의 존재 의미를 되새기게 한 벽산125에서 김수근은 본인 특유의 표현주의적 경향성에 대하여 의장적 풍요야말로 현대건축의 맛과 멋을 불러내는 것이라 두둔하며, 후배들의 디자인 의지를 부추겨 세워주었다. 그렇게 탄생한 벽산125는 압축경제의 발전을 상징하며 한국 내 모더니즘 건축의 심볼로 자리 잡고 있던 대우빌딩의 비판적 어바니즘 건축이란 평가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구불구불 파동치는 곡면을 의장적 특징으로 삼은 벽산125는 오늘날 성행하는 비정형건축 디자인수법에 의한 곡률의 건축과는 비교할 바 못 되지만 이 건물이 특별한 것은 수직수평의 엄격한 직교체계로 둔중해 보이는 거대볼륨의 건축외관으로 서울역 앞의 도시공간 분위기를 위압해오던 대우빌딩에 대하여 건축디자인을 통한 치유적 행위의 소산이라는 점에서 각별한 의미를 띤다고 할 것이다. 이는 김수근의 문하에서 설계를 담당한 장세양(1996년 타계)의 성격과 무관하지 않은데, 그는 김수근 사후 공간의 2대 수장의 자리를 지킨 자로 고집스러우리만치 건축의 진정성을 맥락주의적 건축수법에서 찾은 인물이었다. 경기도립박물관, 국립김해박물관 등이 그가 직접 작업한 건물들로서 형태주의에 몰입하기보단 오히려 공간론적 형태주의의 구현에 치중했다. 벽산125의 경우, 도시 공간의 문제를 치유하는 과정에서 건축의지를 디자인으로 연장한 결과이지 형태를 우선시한 결과가 아니란 점이다.한편 경동교회의 설계담당은 웰콤시티와 수백당 등으로 친숙한 승효상(현 이로재 대표)으로 그는 김수근의 문하에서 이미 양덕성당의 디자인을 담당한 배경이 있었다. 공간에서의 재직 시 그는 이성적 본질주의자로 불리던 장세양과 달리 감성주의에 기반한 디자이너로서 상반된 평가를 받을 만큼 상대적으로 드로잉이 탁월하고 그로부터 공간화 하는 치밀함과 순발력이 돋보이는 성향을 보여준 바 있는 인물이었다. 70년대 후반 80년대 중반에 이르는 김수근 건축의 후기 건축디자인에서 보이는 표현성 강한 건축경향이 가히 그의 손끝에서 받쳐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경동교회와 벽산125를 보면서 대(大)건축가의 문하에서 동시대, 한 공간에서 서로 다른 꿈을 꾸고 있던 두 사람의 차세대 건축리더의 존재를 불러내는 기회를 갖는 것은 또 다른 의미가 있을 듯싶다. 건물은 그 자체의 존재의의와 함께 그걸 있게 한 사람들의 끈으로 엮여있다는 사실을 새삼 돌아보게 한다.* 자세한 내용은 엘라서울 본지 5월호를 참고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