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코스 섬으로의 여행 | 엘르코리아 (ELLE KOREA)

산토리니의 대안이 되어줄 새로운 그리스가 궁금하다면 아테네에서 비행기로 한 시간, 코스 섬으로 향하면 된다. | 그리스,코스,코스 섬,여행

  지중해 동쪽, 에게 해의 한 섬에 대한 얘기를 들었다.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평온한 풍경과 눈부시게 반짝이는 바다, 발가락 사이로 흩어지는 고운 모래들. 이 평온한 헌사는 모두 비밀에 가려진 그리스의 섬, 코스(Kos)를 위한 것이다. 코스 섬은 불규칙적인 삶에 지친 마음을 위로하고 홀로 조용한 시간을 보내고 싶은 이들을 위한 곳이다.  허니무너들로 북적이는 산토리니나 환락의 섬으로 꼽히는 미코노스, 영화 <맘마미아> 촬영지로 관광객들이 몰려드는 스키아토스 섬이 아닌, 낯선 이름을 찾은 이유다. 아테네에서 비행기로 한 시간 거리인 코스 섬은 12개의 큰 섬과 150개의 작은 섬이 점점이 박혀 있는 도데카네스 제도에서도 동쪽 끝자락, 그리스 본토가 아닌 터키를 이웃으로 두고 있다. 비행기 안에서 섬 풍경이 얼핏 내려다보이기 시작하자 설레는 마음과 함께 심호흡을 가다듬었다. 숙소로 향하는 길엔 머릿속에 그렸던 풍경과 함께 섬이 품고 있는 예상치 못한 대조적인 매력과 마주할 준비를 해야 했으니까. 고대 유적지의 허물어진 기둥과 지역 주민이 일광욕을 즐기는 풍경이 어우러지고, 화려하지는 않지만 로컬 문화에 대한 강한 자부심이 섬 곳곳에서 느껴졌다.   숨겨진 보석 같은 풍경이 그림처럼 펼쳐지는 코스 섬. 숨겨진 보석 같은 풍경이 그림처럼 펼쳐지는 코스 섬. 그리스의 뜨거운 태양 아래, 야자수조차 여유롭게 흔들린다  ━  코스를 달린다     섬의 북쪽 해안에 자리한 부티크 호텔 카사 쿡 코스(Casa Cook Kos)에 도착했다. 친절한 직원이 골프 카트에 짐을 실어 객실로 안내해 준다. 부지런히 예약한 룸에 들어서니 정원에 마련된 프라이빗 수영장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그대로 풀에 몸을 던지거나 선베드에 누워 마셜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즐기고픈 마음이 솟구쳤지만 낭만적이기로 소문난 에게 해의 석양을 놓칠 순 없었다. 해변가로 직행해 술 한 잔과 함께 아름다운 일몰을 만끽하며 첫날을 마무리했다. 둘째 날부터는 조금 부지런해지기로 마음먹고, 일찍부터 섬 투어에 나섰다. 여행의 동반자는 바로 든든한 운전기사까지 동반한 렌터카다. 챙이 넓은 흰색 모자와 SPF 50에 달하는 선블록으로 무장한 채 섬 끝에서 반대편 끝까지 뻗어 있는 메인 도로를 따라 차를 몰았다. 섬 전체가 40km 길이에 8km의 폭에 불과하니 웬만해선 길을 잃을 일이 없다는 점도 여행자에게는 맘 편히 차에 오를 수 있는 이유가 된다. 섬의 남서쪽에 당도하자 탄성이 절로 나왔다. 언덕 꼭대기에 자리 잡은 케팔로스(Kefalos)는 반짝이는 바다를 내려다보고 있는 마을이다. 보물처럼 숨겨진 해변을 만나기 위해 현기증도 참아내야 했다. 굽이치는 도로를 정신없이 돌고 돌다 포장도로를 거쳐 다시 차 한 대만 간신히 지나갈 수 있는 좁은 흙길로 접어들었다. 해변 근처에 차를 세우고 주변을 산책하니 섬의 마스코트인 목에 방울을 단 염소들이 반갑게 맞아줬다. 이들을 딸랑이 염소(Jingle Goat)라는 별명으로 부르기로 마음먹었다. 온통 화이트 빛깔에 지붕만 푸른색인 작은 교회는 언덕 위에 우뚝 서서 이 모든 아름다움을 내려다봤다. 살랑거리는 바람 소리가 귓가를 맴돌고, 눈 앞엔 푸른 바다와 하늘이 끝없이 펼쳐지는 이곳에서 평화는 얼마나 가까운 단어인지! 또다시 흙길을 달리다 보니 여러 길이 만나는 지점이 등장했다. 카보 파라디소(Cavo Paradiso), 천국의 동굴이라는 뜻이다. 늦은 오후의 햇살이 황금빛으로 내려앉은 해변을 바라보면 사람들이 왜 이곳에 이런 이름을 붙였는지 절로 깨닫게 된다. 나는 넓게 펼쳐진 비치 타월 위에 누워 실크 같은 모래의 감촉을 느끼며 스르르 단잠에 빠져들었다. 여행 중에 만난 천국 같은 잠, 세상 끝에 와 있는 것 같았다.   풍경의 악센트가 돼주는 푸른 지붕이 인상적이다. 천국의 동굴로 안내하는 표지판. 최고의 휴식을 누릴 수 있는 카사 쿡 코스.  ━  섬에서 받은 치유     호텔 레스토랑에서 퀴노아 샐러드와 사과, 케일, 셀러리, 오이, 레몬, 생강을 넣은 주스 ‘서머 디톡스’를 마시며 계획을 세워보기로 했다. 해수욕과 쇼핑, 마사지, 신선한 지역 음식 맛보기 등 매일 아침마다 그날 하고 싶은 일들을 적으며 충실히 천국을 만끽하기로 한 것. 오늘은 코스 시내에서 쇼핑할 계획이다. 유향으로 만든 천연 매스틱 비누, 이곳만의 발 각질 관리를 위한 퍼미스 스톤, 수제 가죽 샌들 그리고 이 섬에서 태어난 가장 유명한 인물인 히포크라테스 조각상 등은 섬에서 꼭 사야 할 필수 아이템이다. 쇼핑 후에는 특별한 트리트먼트에 도전했다. 히포크라테스의 후손들은 자신의 선조를 기리기 위해 무려 기원전 4세기에 의학전문학교를 세웠고, 이어서 세상에서 가장 유서 깊은 병원 중 하나를 지었다. 그 정신을 이어받은 호텔 스파, 시그너처 하맘(Signature Hammam)은 로마시대 귀족이 받았을 법한 히포크라틱 마사지를 비롯해 독특한 트리트먼트를 제공한다. ‘하맘’은 본래 터키식 목욕탕을 가리키는 단어로, 이곳에선 그리스식 하맘을 체험할 수 있다. 오랜 역사를 가진 스파를 받는 건 마치 시간 여행을 하는 느낌을 선사한다. 따뜻한 스톤 베드에 몸을 누이자 테라피스트는 올리브오일과 이 지역에서 만든 에센셜 오일을 이용한 헤어 마스크부터 시작했다. 헤어 케어가 끝나면 따뜻한 물을 전신에 붓고 비누칠을 한 후 히말라야 록 솔트와 알로에 베라를 이용해 보디 스크럽을 해준다. 다시 전신 마스크 팩을 하고 구석구석 온몸을 헹궈내고 특별한 영양 성분이 함유된 비누로 헤어 마스크를 닦아낸 다음, 두피 클렌징과 하이드레이팅 과정까지 거친다. 온몸의 세포가 다시 태어나는 느낌, 가장 호화로운 감각으로 세상에 재탄생한 느낌이다. 찰랑이는 머릿결은 또 어떻고! 이런 특별한 마사지를 받을 수 있는 기회가 또 올까? 그러나 이게 끝이 아니다. 마무리를 위한 마사지를 받으러 다음 트리트먼트 룸으로 향했다. 올리브오일과 다양한 그리스 허브 오일을 혼합한 수천 년 전통의 마사지는 서로 다른 마찰과 지압을 지속적으로 가하면서 전신을 풀어준다. 그 순간 테라피스트는 내게 그리스 영웅이자 히포크라테스였다. 몸과 마음이 편안하게 정돈된 후 일몰을 보러 가는 발걸음이 한결 가뿐해졌다. 아름다운 석양과 매미의 노랫소리 그리고 구름 위를 걷는 것 같이 가벼운 몸.        ━  최고의 석양   마지막 모험지는 디케오스 산꼭대기에 자리 잡은 비잔틴 시대의 성곽 파일리(Pyli)다. 석양을 감상하기에 으뜸으로 꼽히는 장소이지만 만만치 않은 산행을 각오해야 한다. 준비해 온 반스 운동화로 갈아 신고 거대한 바위들이 솟아오른 구불구불한 산길을 올랐다. 사랑스러운 딸랑이 염소들은 여기에도 있다. 잘 보존된 유적지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염소들 덕분에 ‘딸랑딸랑’ 경쾌한 소리가 퍼져나간다. 나는 눈을 감고 해발 1320m의 꼭대기에서 이곳에 살던 2만여 명의 고대인들을 떠올렸다. 그때도 염소들이 있었을까? 산길이 조금 험하지만 주변에 펼쳐진 근사한 풍광은 계속해서 발걸음을 옮기게 했다. 살짝 지칠 즈음 오리아(Oria)란 간판을 단 소박한 식당을 만났다. 웅장한 산세가 바라다보이는 테라스에 앉아 송진으로 만든 지역 특산 화이트 와인 레치나를 한 잔 시켰다. 가지 피클과 포도, 장미와 장미과의 과일 나무인 마르멜로를 설탕에 절인 달콤한 안주가 함께 나온다. 낯선 안주였지만 결국 너무 맛있어서 하나 더 시키고 말았다. 드디어 해가 바다 너머로 뉘엿뉘엿 지기 시작하고 아름다운 석양이 두 산의 허리를 물들였다. 염소들은 여전히 풀을 뜯고 매미 소리가 정겹게 들려온다. 그 어느 때보다 행복했다. 이 모든 건 내가 코스에 있는 덕분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