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하다. 풋풋하다. 이 말은 바로 이들을 보고 하는 말이 아닐까? 영화 <마을에 부는 산들바람>은 보기만해도 얼굴에 웃음이 번지는 순수한 첫사랑 이야기로 옛 추억을 되새기기에 충분하다. “키스는 어떻게 하는 거야?”라는 ‘소요’의 말은 첫 키스에 대한 환상을 가졌던 학창 시절, 하지만 처음이기에 어설프기만 했던 그 시절을 생각나게 한다. 뭐,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말이다. 이렇게 순박하고 때묻지 않은 중학생 소녀 소요에게 드디어 완벽하고 멋진 동급생 친구 ‘히로미’가 나타났지만, 이 녀석 무뚝뚝하고 정말 자기 중심적이다. 이런 녀석에게 뭘 기대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도 잠시 가끔씩 보여주는 자상함은 자꾸 소요를 설레게 한다. 주변에 아무도 없어 우울할 때 조용히 사라졌다 갑자기 나타나서는 인형 하나 툭 던져주는, 큰 돌덩이에 허덕이고 있을 때는 무차별적으로 돌을 부수더니 작은 돌덩이 하나를 쥐어주는, 하나하나 세심하게 챙겨주지는 않아도 나에게 관심이 있다는 것을 느끼는 순간 나도 모르게 물들어 버리는 이게 첫사랑의 시작 아닐까?
보는 것만으로도 설레고 옆을 지나가는 것만으로도 심장 박동이 빨라지는 것이 바로 짝사랑이다. 학창시절 짝사랑을 한번도 해보지 않고서 영화 <하프웨이>를 본다면 아마 ‘히로’의 마음을 10분의 1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꿈에서라도 고백하고 싶은 그 간절한 마음을, 그렇게라도 그와 말하고 싶은 마음을 말이다. 양호실에서 히로의 꿈 이야기가 재미있었을까? 아님 그런 히로가 귀여웠을까? 멋지고, 운동도 잘하고, 공부도 잘하고, 인기까지 많은. 뭐 하나 부족한게 없는 완벽한 남자 ‘슈’가 히로에게 먼저 고백을 해오다니, 자전거를 타고 가다 넘어지는 게 당연한 일이다. 꿈만 같던 일이 이루어졌는데 말도 없고 애정표현도 없는 무뚝뚝한 슈가 히로는 속상하기만 하다. 다른 여자랑 얘기하는 것도 보기 싫고, 멀리 떠나 보내기도 싫은데, 이런 마음을 단번에 알아주지도 못한다. 짝사랑, 정말로 먼저 마음 줬던 사람이 더 고생한다는 말이 사실인가보다.
아직은 사랑 ‘히로미’VS 현실을 직시 ‘슈’
히로미와 슈는 마치 한 소년의 성장기처럼 닮았다. 완벽하지만 무뚝뚝한 성격을 가진 것부터 도쿄 진학으로 여자친구를 속상하게 한다는 것까지 좋은 것만 닮아도 되는데 안 좋은 것도 비슷하게 닮았다. 그래도 역시 중학생과 고등학생의 차이일까? 영화 <마을에 부는 산들바람>의 히로미는 멋 부리기를 좋아하는 영락없는 중학생 소년이다. 도쿄 진학을 꿈 꾸는 이유도 삭발을 피하기 위한 방법이자 수단이었을 뿐, 큰 이유를 품고 있지는 않았다. 고등학교 진학을 앞두고 함께 떠난 여행에서도 그런 마음은 안 비추더니, 삐뚤어진 단추를 다시 달아주는 소요가 “고등학교까지 같이 함께할 줄 알았어…” 단 한마디 했을 뿐인데 삭발을 감수하면서도 소요 옆에 남아있는 걸 보니 히로미에게 아직은 도쿄, 멋, 꿈, 이런 것 보다는 첫사랑 힘이 더 위대했나 보다. 그럼 고등학생 슈는 어떤가. 고3. 현실 직시하고 내 미래를 생각해야 하는 나이다. “와세다? 와세다는 가까워?”가깝지 않을 거다. 부산에서 서울에 있는 대학에 진학하려는 남자친구를 잡는 마음이 과연 히로의 마음과 같을까? 헤어지는 게 아쉬워 화가 난 건지, 미리 말을 하지 않아 화가 난 건지 그 마음도 모르면서 무작정 와세다에 가지 않겠다 말해버리니, 얼굴에는 ‘와세다에 가고 싶어요’라고 써 있는데 말이다. 공부만 하는 모습이 싫어서 낙엽을 한아름 던지며 대학 떨어지라 소리를 질러봐도 책만 들여다보고 있는 슈의 모습에 도쿄 보내줘야 되겠다 생각한 히로, 이런 변덕쟁이 히로가 이해가 안되고 갑작스런 상황이 받아들여지지 않지만 원하던 곳에 갈 수 있다는 생각에 도쿄 진학을 선택하는 슈는 사랑의 힘으로는 미래까지 감당하기는 힘든 걸 이미 아는걸까.
엉뚱하지만 순수한 ‘소요’vs 자유분방하면서 솔직한 ‘히로’
시골마을 아이들의 대장 같은 순수한 소요, 밝은 성격에 때론 엉뚱한 매력이 주변 사람들을 더욱 즐겁게 한다. 기찻길에 혼자 넘어져서는 유령이 잡고 있다며 울지를 않나, 히로미의 점퍼가 탐이나 신사 앞에서 키스를 해주지 않나 (이렇게 첫키스를 하다니) 평범한 것 같으면서도 어떨 땐 너무 바보 같을 정도로 순수하다. 같은 마을의 꼬마 아이가 수박 주스라고 건네 준 오줌을 그대로 원샷 했을 때는 순간 멈칫 하면서도 그 순수함에 절로 큰 웃음이 난다. 어린 시절 나는 저렇게 순수했던 적이 있었나, 모든 것에 하나하나 반응하던 적이 있던가 이런 생각을 돌아보게 해주던, 바로 소요가 그런 소녀다. 반면 짝사랑으로 가슴앓이 하던 히로는 “저기…”만을 외치던 수줍음 많던 소녀였지만 고백을 받은 후에는 감정에 누구보다도 솔직한 소녀로 거듭났다. 싫으면 싫다 좋으면 좋다, 말하지 않으면 기분이 나쁘고 다른 여자와 있으면 기분이 나쁘고 말로 표현하지 않으면 행동으로라도 다 표현하는, 그런 자신의 감정들이 어느 순간 충돌해 “가버마”(가지마 + 가버려)가 나오고, 남자친구에게 낙엽 던지면서 대학에 떨어지라 저주도 하고, 더 이상 다가오면 소리질러 버린다는 둥, 짝사랑에게 고백을 받아보지 않은 나는 그 감정을 이렇게 이해하고 싶다. 아마 힘든 짝사랑 끝에 얻은 사랑이기에 더욱 놓치고 싶지 않은 그 누구보다도 더 솔직한 히로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