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예올 X 샤넬, 소목과 백자로 재해석한 현대 문인의 방

예올 X 샤넬이 선정한 '올해의 장인'과 '올해의 젊은 공예인'은 소목장 조복래와 도자공예가 백경원이다. 천 년 동안 자란 느티나무와 손으로 쌓아 올린 흙. 재료의 본질로 돌아간 예올과 샤넬의 다섯 번째 가을.

프로필 by 이경진 2026.08.19

공예의 본질은 무엇일까요? 올해로 5년째, 매해 가을마다 이 오래된 질문을 미래로 잇고 엮는 즐거운 자리가 열립니다. 재단법인 예올과 샤넬의 프로젝트 전시죠.

도자공예가 백경원과 소목장 조복래.

도자공예가 백경원과 소목장 조복래.


8월 21일부터 10월 16일까지 예올 북촌가에서 열리는 올해의 예올 X 샤넬 프로젝트 전시 제목은 ‘진소(眞素) 공예: 진경의 눈, 조형의 손’입니다. ‘진소(眞素)’에서 소(素)란 물들이지 않은 흰 명주를 가리키던 글자입니다. 여기에 진(眞)이 붙어 애초에 손대지 않은 바탕의 의미를 더욱 강조합니다. 재료를 재료 그 자체로 보는 눈. 공예를 오래 지탱해온 조건이이 두 글자 안에 담겨 있습니다.


부제에 놓인 ‘진경(眞景)’은 진경산수화에서 가져온 글자입니다. 18세기의 화가들이 중국 화보 속 관념의 산수를 접어두고 금강산과 인왕산을 직접 걸어 화폭에 옮긴 그림을 진경산수라 부르죠. 진경은 눈앞의 풍경을 옮겨 적은 기록과는 다릅니다. 대상 앞에 오래 서서 그 참됨을 골라낸 뒤 다시 구성한 화면에 가깝죠. 부제로 강조하듯, 본질을 가리는 장식을 걷어낸 자리에, 이번 전시는 나무와 흙을 두었습니다.


소목장 조복래.

소목장 조복래.

올해의 장인으로 선정된 소목장 조복래는 지리산과 인접해 소목이 발달한 경남 진주에서 어릴 적부터 어깨너머로 나무를 접하며 자랐습니다. 故 정돈상, 故 오행구 선생의 문하에서 수련하며 소목의 정수를 이어받았습니다 소목(小木)은 쇠못을 쓰지 않고 짜맞춤만으로 농·장·궤 등의 가구를 완성하는 전통 공예 기법이죠. 나무가 서로 물리는 힘으로만 서기 때문에 시간이 지날수록 오히려 견고해집니다. 기법과 재료의 특성을 완벽히 조응시키는 지혜가 담겨 있죠.


조복래 장인이 뿌리로 삼는 스승의 말이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곳이 보이는 곳과 다르지 않아야 한다"는 것. 표면과 이면을 같은 밀도로 대하는 태도로, 그는 작업의 모든 공정을 섬세하고 정밀하게 완성합니다. 예올 북촌가에 펼쳐진 전시에서 소목장 조복래의 가구는 ‘현대 문인의 방’으로 재해석됐습니다. 오랜 기간 장인이 수집한 진귀한 목재들이 이번 전시 작업의 재료가 되었죠. 조복래 장인은 이 전시에서 선보이게 된 재료에 관한 특별한 애정을 숨기지 않습니다.


전라북도 정읍시의 약 800년 된 느티나무(용목)을 20년간 건조하여 만든 '용목액자'. 자연과 시간이 빚어낸 용목의 회화적인 무늬가 하나의 풍경으로 담겼다.

전라북도 정읍시의 약 800년 된 느티나무(용목)을 20년간 건조하여 만든 '용목액자'. 자연과 시간이 빚어낸 용목의 회화적인 무늬가 하나의 풍경으로 담겼다.

“이 작품에 사용한 재료는 ‘용목’이라 합니다. 한 800년쯤 된 나무입니다. 이런 나무는 전세계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을 겁니다. 아주 작은, 동그란 무늬가 동글동글 들어 있는데, 이걸 ‘새알 무늬’라 합니다. 최고의 문양입니다. 세계적으로 이를 따라올 목재가 없습니다.” 재료와 공예의 관계에서, 오래된 장인들은 오히려 재료를 읽는 일에 몰두합니다. 재료에 묻고 응답하듯 작업을 이뤄나갑니다. 소목장 조복래의 작품에선 손대기 이전의 자리에서 장인이 발견한, 재료의 가장 순도 높은 아름다움을 목격할 수 있습니다.

2000년 전라북도 진안군의 용담댐 수몰 지역의 약 1000년된 느티나무(용목)로 만든 '병풍'. 용목이 지닌 결을 따라, 오랜 시간 자연이 새겨온 흔적이 담겼다. 산수화를 마주하듯 나무가 품은 풍경을 감상하게 한다.

2000년 전라북도 진안군의 용담댐 수몰 지역의 약 1000년된 느티나무(용목)로 만든 '병풍'. 용목이 지닌 결을 따라, 오랜 시간 자연이 새겨온 흔적이 담겼다. 산수화를 마주하듯 나무가 품은 풍경을 감상하게 한다.

도자공예가 백경원.

도자공예가 백경원.


올해의 젊은 공예인 백경원은 물레 대신 흙과 손을 쓰는 도자공예가입니다. 흙을 손으로 말고 쌓아 올리고 펴서 이어 붙이는 것은 도자 공예에서 가장 기본의 방식입니다. 어린시절, 점토 놀이를 하며 빚어 올렸던 점토컵처럼 말이죠. 단순한 듯 보이는 이 원시적인 기법은 손의 움직임에 따라 재료를 변주하고 연결하여 작가만의 작업을 펼치기 위한 최적의 방식이기도 하죠. 기술이 개입할 자리를 줄인 만큼, 손의 움직임이 그대로 형태로 자리잡습니다.


백경원 작가는 기물을 단순한 쓰임새로만 보지 않고, 하나의 작은 공간처럼 여깁니다. 그렇게 보면 그가 만든 도자 기물의 내면 역시 비어 있는 부분이 아니라, 만들어진 부분이 되죠. 기하학적 조형과 현대적인 미감을 모두 발견할 수 있는 작가의 작품은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수년간 익숙하게 사용해 온 방식과 재료에서 또 한 번 벗어났습니다. 새로운 질감과 색감을 탐구한 결과로, 산수화를 옮겨 놓은 듯한 은은한 색감의 도자기를 선보입니다. 샤모트(초벌 알갱이) 상감기법과 새롭게 개발한 유약에 의한 산수화적 풍경 표현, 그릇 작업에 이를 응용했습니다.


“백자 점토판 위에 검정 샤모트(초벌 알갱이)를 흩뿌렸습니다. 그런 다음 플라스틱 헤라로 슥슥 문질러 알갱이를 박히게 했어요. 점토판에 박힌 샤모트의 색이 자연스럽게 번지고 깊이감이 생기니, 남겨진 여백과 어우러져 마치 산수화를 연상시키는 표면이 만들어졌죠.” 오브제 작업에서는 작가가 기존에 사용하던 여러 개의 삼각뿔이 등장합니다. 이것이 샤모트 상감 기법 그리고 새로 개발한 유약과 어우러져 하나의 풍경 혹은 산수를 바라보는 듯한 인상을 만들어냅니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서 5년째 이 프로젝트 전시를 이끌어온 디자이너 양태오는 본질을 가리는 장식을 걷어내고 재료의 바탕을 바라보는 태도를 이번 전시의 축으로 삼았습니다. 전시장은 작품을 늘어놓는 대신 문인이 책을 읽고 차를 나누며 사물을 완성하던 방을 오늘의 감각으로 옮겨 옵니다. 800년을 자란 나무의 결과, 흩뿌린 알갱이가 번져 산수가 된 표면. 소목장 조복래와 도자공예가 백경원의 작품에는 두 사람이 재료 앞에 머문 시간이 그대로 남아 있죠. 결국 공예의 본질은 무엇일까요? 이번 전시는 그 답으로, 나무와 흙 앞에 오래 서 있던 두 사람의 눈을 빌려줍니다. 재료를 오래 바라보는 일에서 공예가 시작된다는 사실을 조용히 전하면서 말이죠.


Credit

  • 사진 예올
  • 샤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