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LLE DECOR

키친 문화를 주도해 온 하이엔드 주방 브랜드

보피와 라꼬르뉴, 취향과 관계의 언어로 진화해 온 키친 메이커들의 이야기.

프로필 by 이경진 2025.12.24

BOFFI


1963년 밀란 살로네 델 모빌레 보피 전시 현장.

1963년 밀란 살로네 델 모빌레 보피 전시 현장.


1990년 피에로 리소니의 ‘에스프리(Espri)’ 컬렉션.

1990년 피에로 리소니의 ‘에스프리(Espri)’ 컬렉션.


보피 90주년을 기념해 공개된 ‘노반타(Novanta)’ 컬렉션.

보피 90주년을 기념해 공개된 ‘노반타(Novanta)’ 컬렉션.


‘보피(Boffi)’에게 주방은 단순 요리를 위한 장소가 아니라 집의 질서를 만드는 중심이다. 1934년 이탈리아 브리안차(Brianza)에서 피에로 보피(Piero Boffi)가 세운 작은 목공방으로 시작한 보피는 다양한 건축가, 디자이너들과 협업하면서 디자인 신에서 입지를 굳혔다. 1954년 건축가 세르지오 아스티(Sergio Asti)와 세르지오 파브레(Sergio Favre)가 선보인 ‘세리에 C(Serie C)’는 대부분의 주방이 목재 마감일 때 브랜드 최초로 컬러 라미네이트를 적용했고, 목재와 합성 소재를 결합하고 모듈화 개념을 도입한 ‘T12’로 단순한 가구 디자인을 넘어 공간 설계에 가까운 시스템을 완성했다. 보피의 주방 디자인 철학이 더욱 뚜렷해진 것은 1972년 루이지 마소니(Luigi Massoni)가 ‘실라(Xila)’를 선보였을 때다. 손잡이가 없는 핸들리스(handleless) 모듈형 주방 시스템을 상업화한 시초 모델로, 수평선이 강조된 전면부가 천장부터 바닥까지 물 흐르듯 이어지는 자연스러움을 실현했다. 주방을 향한 보피의 건축적 접근은 이후 더욱 본격화됐다.


조 콜롬보가 디자인한 ‘미니 키친’.

조 콜롬보가 디자인한 ‘미니 키친’.


2017년 자하 하디드와 함께 출시한 후 2024년 리뉴얼 버전으로 새롭게 선보인 코브(Cove) 컬렉션.

2017년 자하 하디드와 함께 출시한 후 2024년 리뉴얼 버전으로 새롭게 선보인 코브(Cove) 컬렉션.


1963년, 조 콜롬보(Joe Colombo)는 작은 상자에 조리와 세척, 수납 기능을 담은 이동식 모듈 ‘미니 키친(Mini Kitchen)’으로 주방 형태를 혁신했고, 피에로 리소니(Pierro Lissoni)가 아트 디렉터로 합류하면서 빛과 재료, 구조가 균형을 이루는 따뜻한 미니멀리즘’은 보피 디자인의 코어가 됐다. 1990년, 그가 선보인 ‘에스프리(Esprit)’ 컬렉션은 주방을 요리와 대화가 이뤄지는 열린 무대, 즉 집 안의 또 다른 거실로 확장한 상징적인 출발점이었다. 또 한 번의 기념비적 협업은 2017년에 이뤄졌다. 자하 하디드(Zaha Hadid)와 협업한 ‘코브(Cove)’가 그것이다. 조리대와 싱크, 수납이 하나의 곡선으로 이어지는 주방은 하디드의 건축이 그러하듯 기능과 형태가 하나로 녹아든 조각처럼 보인다. 2024년 창립 90주년을 맞아 처음 공개한 ‘노반타(Novanta)’ 역시 멀리서 보면 잘 지은 건축물 같다. 공중에 떠 있는 듯한 구조에 매끈한 라인이 하나의 흐름으로 공간 완성도를 높인다. 리소니의 말처럼 보피는 이제 “디자인 프로덕트가 아니라 건축 프로덕트의 세계로 들어선” 듯하다. 한편, 보피는 조만간 서울에서 새로운 장을 연다. 하이엔드 리빙 브랜드 ‘보피|데파도바(Boffi|De Padova)’가 새로운 파트너 비아비(Viab)와 함께 서울 가로수길에 스튜디오를 오픈하기 때문. 조리 공간을 넘어 빛과 재료, 구조가 대화하는 무대로 주방을 확장시킨 보피의 저력을 직접 확인할 날이 머지않았다.



LA CORNUE

주철과 황동으로 제작돼 빠르고 고른 열 전도로 맛과 풍미를 높이는 화구.

주철과 황동으로 제작돼 빠르고 고른 열 전도로 맛과 풍미를 높이는 화구.


샤또 그랑 팔레 180(Château Grand Plais 180)로, 샤또 후드 180, 샤또 캐비닛으로 이뤄진 주방.

샤또 그랑 팔레 180(Château Grand Plais 180)로, 샤또 후드 180, 샤또 캐비닛으로 이뤄진 주방.


주방의 근본은 불이다. 인류는 불을 잘 다루기 위해 주방을 발명했다. 불은 오랫동안 주방의 중심에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며 점점 존재를 감췄다. 실내 공간에 통합된 주방은 효율과 청결, 수납 중심으로 재편됐으며, 본격적인 ‘모던 키친’의 시대가 열리며 화구와 오븐은 배경으로 물러났다. ‘라 꼬르뉴(La Cornue)’는 그렇게 잊힌 불을 다시 주방의 중심으로 가져왔다. 1908년, 창립자 알베르 뒤피(Albert Dupuy)는 파리 지하철 터널의 아치 구조에서 영감을 받아 세계 최초의 곡선형 오븐 ‘볼티드 오븐(Vaulted Oven)’을 만들었다. 평평한 오븐과 달리 불길이 둥글게 흐르며 재료를 부드럽게 감싸 열이 고르게 순환하는 것이 가장 큰 차이였다. 여기에 완벽한 밀폐와 적정 습도 유지 기술로 ‘궁극의 겉바속촉’에서 오는 풍미를 구현하는 데 성공했다. 이 작지만 큰 혁신에서 출발한 브랜드는 프랑스식 오트 쿠튀르 개념을 주방에 가져왔다. 그 결과 오븐 전문 브랜드에서 주방 전체를 정의하는 브랜드로 진화했다.


라 꼬르뉴의 시작이 된 볼티드 오븐.

라 꼬르뉴의 시작이 된 볼티드 오븐.


샤또 그랑 카스텔 90(Château Grand Castel 90) 매트 블랙.

샤또 그랑 카스텔 90(Château Grand Castel 90) 매트 블랙.


골드 트림과 버튼이 적용된 라 꼬르뉴만의 디테일.

골드 트림과 버튼이 적용된 라 꼬르뉴만의 디테일.


파리 근교 생투앙로몽 공방에서 장인이 100시간에 걸쳐 제작하는 레인지는 주조된 강철과 황동, 7~8번에 걸쳐 구워낸 에나멜 도장으로 완성된다. 이 레인지를 중심으로 한 라 꼬르뉴의 디자인은 고전 건축의 파사드를 연상시킨다. 황동 · 코퍼 · 스테인리스 트림은 주얼리처럼 포인트가 되지만 과하지 않으며, 에나멜 표면은 생동하는 빛과 컬러를 머금고 있다. 색감은 라 꼬르뉴 디자인의 또 다른 언어다. 무채색 일색인 주방을 보르도, 네이비, 샴페인 골드처럼 다채롭고 활기 넘치는 컬러로 물들이고 있다. 라 꼬르뉴의 플래그십 라인인 샤또(Château) 시리즈는 모델에 따라 두 개의 아치형 오븐과 넓은 레인지 톱을 갖췄으며, 샤또 그랑 카스텔(Château Grand Castel)은 보다 컴팩트한 공간을 위한 모델이다. 모두 라이프스타일과 공간에 맞춰 화구 구성과 컬러, 부속 요소를 커스터마이징할 수 있다. 결국 소비자는 조리 공간을 넘어 정교한 오브제에 가까운 주방을 갖는 셈이다. 이처럼 오븐을 중심으로 전개된 라 꼬르뉴의 오랜 여정은 요리를 넘어 일상 공간까지 예술적으로 변화시키고 있다.

Credit

  • 에디터 이경진·윤정훈·길보경
  • 아트 디자이너 김강아
  • 디지털 디자이너 김려은
  • COURTESY OF BOFFI
  • COURTESY OF LA CORNU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