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 모리스의 타임리스 패턴 디자인
손으로 만든 질서의 미학, 윌리엄 모리스의 패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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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일. 대각선으로 뻗은 가지에 석류와 여러 과일, 드문드문 핀 꽃들이 그려져 있다. 윌리엄 모리스가 패턴을 디자인하고 ‘제프리 앤 컴퍼니’에서 종이에 블록으로 인쇄해 제작했다.
잔디가 점점이 찍힌 배경 위에 데이지, 스위트 윌리엄, 콜럼바인 등의 꽃이 무성하면서도 정돈된 형태로 배열돼 있다. 연녹색 바탕에 초록, 분홍, 파랑, 올리브, 노랑, 회색의 색조로 인쇄.
데이지.
19세기 후반, ‘모리시언(Morrisian)’은 당시 인테리어 업계에서 하나의 형용사로 쓰였다. 윌리엄 모리스의 이름에서 비롯되어 ‘모리스풍’이라는 의미로 사용된 단어다. 기계가 인간의 손을 대체하던 시대. 윌리엄 모리스는 50개가 넘는 벽지 패턴을 디자인했다. 노동집약적 제작 과정을 거친 그의 벽지는 빅토리아 앤 알버트 등의 뮤지엄에 방대한 컬렉션으로 소장돼 있다. 당시 윌리엄 모리스의 패턴은 차분하면서도 급진적인 디자인이었다. 속도와 대량생산을 앞세운 산업 제품의 세계에 맞서 느림과 정성을 선택했고, 사람의 노동과 감각에 깃든 힘을 회복하려는 작업이었다. 시작은 켄트에 있는 자신의 집 정원에 핀 장미의 격자무늬였다. 장미꽃과 넝쿨이 격자 틀을 휘감고 탐스럽게 피어 있는 ‘트렐리스(Trellis)’가 그의 첫 패턴. 이어진 ‘데이지(Daisy)’(1864), ‘프루트(Fruit)’(1865) 등은 자연의 단순한 형태를 섬세하게 양식화해 일상의 벽을 정원으로 바꿨다. 빛과 그림자가 교차하는 정원 한편. 한 송이 꽃이 찰나의 자세로 움트는 순간을 관찰하는 일은 윌리엄 모리스에게 단순한 취미가 아니었다. 패턴의 기초인 드로잉이 이런 정원 관찰에서 시작됐을 것이다. 프랑스풍의 화려한 환영적(Illusionistic) 장식이 유행하던 시절, 모리스는 평면적 패턴에 자연의 리듬과 손맛을 불어넣는 길을 선택했다. 들판의 풀과 울타리의 들꽃, 정원의 장미와 덩굴을 관찰하며 일상의 자연을 도안의 중심에 둔 것이다. 이국적인 수입 꽃 대신 영국 정원과 들판, 울타리에서 본 형태를 중시한, 당시로선 전례 없는 작품이었다.
포도나무.
석류.
‘라 마르가레테(La Margarete)’ 벽지. (아래) ‘스트로베리 시프(Strawberry Thief)’ 장식용 직물.
모리스는 패턴에 대한 타고난 감각으로 형태와 질서의 균형을 이룰 뿐 아니라 당시로서는 드물게 독특한 개성을 지닌 벽지를 제작했다. 아칸서스와 핌퍼넬, 해바라기같이 식물 기반의 형태를 중심으로 한 그의 디자인은 모두 세밀한 자연 관찰에서 시작된 것. 자연적이고 영국적인 해석을 담은 그의 패턴 디자인이 중요한 이유는 자연을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번역했기 때문이다. 모리스는 자연의 형식을 수공예적 질서로 번역했고, 패턴을 통해 자연의 원리를 되찾았다. 모리스의 디자인을 인쇄하는 데는 최소 30개 이상의 목판과 15개가량의 색이 사용됐고, 완성까지 4주 이상 걸렸다. 인쇄 과정에서 생기는 미묘한 불균형과 손의 흔적이 남을 수밖에 없었으나 이는 기계적인 완벽함과는 상반된, 생동감 있게 움직이는 질서를 불어넣었다. ‘아칸서스(Acanthus)’(1875), ‘세인트 제임스(St. James’s)’(1881) 같은 대형 패턴은 벽면을 압도할 정도의 규모였지만 그 안의 선과 곡선은 언제나 자연의 성장 법칙을 따랐다. 식물의 꼬임과 반복으로 무한히 순환하는 생명을 은유적으로 표현해 내는 미학은 ‘아츠 앤 크래프츠(Arts and Crafts)’라는 예술공예운동의 핵심과 맞닿아 있었다. 모리스는 러스킨의 사상인 ‘예술은 손과 머리와 마음이 함께 움직이는 일’을 실천했던 인물이기도 하다. 노동 분업이 인간을 파편화하고, 창작의 기쁨은 처음부터 끝까지 손으로 만드는 과정에 있다고 믿었다. 손으로 만든 질서의 미학. 윌리엄 모리스의 패턴은 시대의 생산 구조에 대한 비판이자 대안이었다. 모리스의 벽지 패턴 디자인의 성공은 그의 숙련되고 면밀한 자연 관찰에 기인한다. 모든 벽지는 식물 기반 형태를 중심으로 하는데 ‘아칸서스’나 ‘핌퍼넬’처럼 화려하고 자연스러운 스타일로 표현되든 ‘해바라기’나 ‘세인트 제임스’처럼 평평하고 형식적인 스타일로 표현돼도 마찬가지였다. 모리스의 디자인은 항상 자연을 문자 그대로 옮겨 적기보다 미묘하고 양식화된 방식으로 재현했다. 에세이 ‘소예술(The Lesser Arts)’에서 그는 벽지를 디자인하는 사람들에게 “종이를 손으로 그린 것처럼 보이게 하려는 함정에 빠지지 말 것”을 당부하기도 했다. 자연을 단순화하고 구조화하는 그의 패턴 논리는 지금 패턴 디자인의 근원인 그리드(Grid)와 모듈의 개념으로 이어졌다.
윌리엄 모리스의 1883년 디자인이다.
튤립이 등장하는 꽃무늬 벽지 디자인.
장미가 만발한 직물 디자인 ‘로즈(Rose)’.
윌리엄 모리스의 작업을 꾸준히 옹호한 이들은 주류 사회 밖의 예술가들이었다. 화가 에드워드 번 존스는 자신의 런던 자택 벽을 모리스의 패턴으로 장식했고, 풍자화가 에드워드 린리 샘번 또한 스태퍼드 테라스 18번지의 인테리어 전체를 그의 벽지로 꾸몄다. 모리스의 감각은 예술가들의 심미안뿐 아니라 귀족층의 안목도 사로잡았다. 1880년대, 요크셔의 하워드 성은 모리스의 ‘새와 아네모네’와 ‘해바라기’ 패턴으로 단장했고, 이후 세인트 제임스 궁전과 밸모럴 성에도 그의 벽지가 채택됐다. ‘세인트 제임스’ 벽지에는 참나무 잎, 아티초크, 석류, 덩굴이 반복되며 고딕 양식의 장식성이 섬세하게 녹아 있었다. 무려 68개의 블록으로 인쇄되고, 두 폭의 종이를 맞붙여야 완전한 패턴이 완성되는 거대하고 정교한 작품이었다. 1887년, 빅토리아 여왕은 모리스 앤 컴퍼니에 밸모럴 성을 위한 특별한 벽지를 의뢰했고, 그 안에는 왕실의 암호 ‘VRI’가 숨겨져 있기도 했다. 이런 의뢰들로 모리스는 상업적 성공과 명성을 동시에 얻었다. 긴 세월 동안 수많은 디자이너와 제조업체들은 ‘모리스풍’ 벽지를 제작하며 그의 유기적 구조미와 미묘한 색채감을 모방해 왔다. 윌리엄 모리스의 사후에는 찰스 보이지(Charles Voysey) 같은 후배들이 모리스의 원칙을 계승하기도 했다. 윌리엄 모리스의 패턴은 단순히 아름답기 때문이 아니라, 그 안에 특유의 자연 질서를 담아냈기에 오늘날까지 빛을 발한다. 꽃과 잎이 질서 있게 펼쳐지는 그의 패턴 드로잉은 자연을 재현하지 않으면서도 그 본질을 닮았다.
윌리엄 모리스. 1876년 디자인인 ‘스네이크헤드(Snakeshead)’.
옥스퍼드셔의 ‘켈름스콧 매너(Kelmscott Manor) 내부.
윌리엄 모리스는 이곳에서 1871년부터 1896년까지 거주했다.
Credit
- 에디터 이경진
- 아트 디자이너 김강아
- 디지털 디자이너 김려은
- GETTYIMAGES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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