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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호와 여름 바다를 보며 나눈 인터뷰

"수영도 못하면서 물은 좋아해요. 멍하니 보는 게 좋거든요."

프로필 by 전혜진 2025.07.31

정말 더운 날인데 참 많이 웃었어요. 이 뙤약볕을 견딜 수 있었던 힘은

바다죠. 바다 옆에 있으면 괜히 설레잖아요(웃음). 그리고 회사 식구들이 멀리까지 응원하러 와줬어요.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웃어야 저도 힘이 나는 것 같아요.


지난 <갯마을 차차차> 작품 화보로 만났을 때도 바다 얘기를 실컷 했는데, 오늘 바다 풍경은 조금 다르게 보이나요

4년 전 <갯마을 차차차> 홍반장은 바다 한가운데 뛰어들 수 있는 상태였다면, 오늘의 저는 그저 바라보게 되는 것 같아요. 한 발짝 떨어진 채 그림처럼 감상하면서 말이죠. 저는 수영도 제대로 못 하면서 물은 좋아해요. 멍하니 보는 게 좋거든요.


여전히 꽃게도 좋아하나요? 이 근처에 맛집이 많을 텐데

여전합니다. 바다 촬영 있으면 꽃게든 대게든 게를 좋아해서 찾아 먹어요. 그때도 게를 엄청 먹었다고 얘기한 것 같네요(웃음).


김선호가 입은 니트 블레이저와 핑크 스트라이프 스웨터, 오버사이즈 니트 팬츠, 워커 부츠는 모두 Loewe.

김선호가 입은 니트 블레이저와 핑크 스트라이프 스웨터, 오버사이즈 니트 팬츠, 워커 부츠는 모두 Loewe.

이곳에서 ‘무언가’ 열심히 촬영 중이라죠. 촬영 모드에 돌입했을 때만 나타나는 김선호의 특이점이 있다면요? 예민해진다거나 혹은 더 들뜬다거나

저는 오히려 촬영 시기에 일상 패턴이 더 규칙적으로 변해요. 늘 컨디션을 평형으로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예를 들어 우울한 신을 찍는데 도파민이 터진 상태면 안 되니까 최대한 안정적인 마음으로 언제든 감독님의 디렉션과 그 감정을 원활하게 받아 소화할 수 있는 상태이고 싶어서요.


그래서 늘 낯설고 새로운 얼굴을 발견하는 재미가 있어요. 특히 최근작 <폭싹 속았수다>에서 수염 덥수룩한 얼굴로 처음 등장했던 모습이 잊히지 않아요. “저 사람이 김선호라고?” 깜짝 놀랐거든요

그렇다면 성공이에요(웃음). 첫 등장은 ‘고슴도치’라고 설명돼 있었어요. 처음 분장할 땐 머리카락을 한 가닥 한 가닥 붙이느라 거의 세 시간은 걸렸거든요! 그래 보여도 엄청 공들인 외모였습니다. 감독님과 작가님도 충섭이 저라는 걸 알아채지 못하게 의도했고요. 친구들은 제가 끝까지 그 모습으로 나올까 봐 걱정했다는데 개인적으로는 너무 행복했습니다. 처음에는 스포일러 문제로 제가 나오는 부분의 대본만 읽을 수 있었기 때문에 전체 이야기의 맥락을 파악하는 데 꽤 오래 걸렸어요. 그러다 결국 퍼즐이 맞춰지는데…. 와, 정말 너무 좋은 거예요. 대본만 보고도 눈물을 이렇게 뚝뚝 흘린 적 있나 싶을 정도로 말이죠.


특히 충섭의 결혼식 장면에서 상대역인 금명(아이유)에게 윙크하는 장면이 ‘김선호 챌린지’로 번질 만큼 사랑받을 줄 알았나요

챌린지가 유행한다길래 처음엔 장난인 줄 알았어요. 아리아나 그란데가 SNS에 올리고 나서야 비로소 실감했어요. 요즘 행사장에 가면 그 장면을 재연해 달라고 많이 요청하시는데 어색해서 제대로 못 해내는 것 같아 죄송할 따름입니다(웃음).


애드리브였나요? 비하인드가 있다면

애드리브는 아니었어요. 대본에 ‘금명이가 총을 쏜다. 충섭이 맞고 웃는다. 두 사람은 장난을 친다’ 정도로 쓰여 있었죠. 아이유 배우가 워낙 유연하게 에너지를 잘 받아주니까 별다른 고민 없이 그 분위기, 그 자리에서 자연스럽게 완성된 장면이에요.


실제 김선호의 모습처럼 보이기도 했어요(웃음). 충섭과 당신은 비슷한 지점이 있나요

충섭이는 봉천동 출신인데, 저 역시 같은 동네에서 자랐습니다. 어릴 적 봤던 풍경이 작품에 고스란히 담겨 있어 향수를 느끼고 역할에 몰입할 수 있었죠. 그 시절 정취나 사람 냄새 같은 것들로 부모님의 삶도 필름처럼 떠올려볼 수 있었어요. 매 장면 찍으면서 생각했습니다. 모두 아름답게 살아주셔서 감사하다고요.


김선호가 입은 컬러 블록 스웨터와 울 팬츠, 레이스업 로퍼는 모두 Loewe.

김선호가 입은 컬러 블록 스웨터와 울 팬츠, 레이스업 로퍼는 모두 Loewe.

김선호가 입은 레더 재킷과 셔츠, 체크 팬츠, 카프스킨 라지 퍼즐 바이커 백은 모두 Loewe.

김선호가 입은 레더 재킷과 셔츠, 체크 팬츠, 카프스킨 라지 퍼즐 바이커 백은 모두 Loewe.


주로 다정하고 단단한 얼굴 뒤편에 그림자를 지닌 인물을 연기해 왔던 것 같아요. 겉으로는 젠틀해 보여도 외로움을 안고 사는 <스타트업>의 지평, 속 깊어 보이지만 상처 가득한 <갯마을 차차차>의 두식, 멀게는 연극 <얼음>의 날카롭고 거칠지만 누구보다 정의의 균열에서 방황하는 형사까지. 이런 인물에 끌리는 편인가요

작품 전체를 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늘 제가 연기할 인물에 ‘왜’라는 질문을 던져요. 답을 모르겠다면 그와 거리가 생기고 한발 물러서게 되더라고요. 인물에 대한 공감도는 사람마다 다르니까, 꼭 스스로에게 질문하며 그와 마주해 보죠. 납득이 되면 막 벅차올라요. 그 인물로 서 있으면 주변이 보이지 않고, 최면에 걸린 느낌이 들 때도 있어요. 감정이 가득 찬 느낌이랄지.


안 아픈 손가락은 없겠지만, 그중 당신을 가장 많이 흔들었던 인물은

지금 돌아보면 아무래도 <스타트업>의 지평이가 가장 마음에 걸려요. 그가 늘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바라죠. 김해숙 선생님께 안겨 울었던 장면은 다시 봐도 왜 그렇게 마음이 아팠나 싶을 정도예요. 엄청 울었던 기억이 나는데…. 지평이는 그런 친구였어요.


하반기 공개되는 넷플릭스 시리즈 <이 사랑 통역 되나요?>의 통역사 주호진은 어때요? 고윤정 배우가 지난 <엘르> 인터뷰 때 당신에게 정말 많이 의지하며 재밌게 찍었다고 증언했어요

하하, 저도 증언해보자면, 고윤정 배우는 에너지가 참 좋아요. 제가 툭 한마디 하면 열 마디로 돌아오는, 없던 에너지도 만들어내는 친구랍니다(웃음). 저도 현장에서 즐겁게 찍는 편인데, 굳이 그러지 않아도 덕분에 웃을 일이 많았어요. 서로 아이디어를 내기 바빴죠. 윤정 씨가 타고난 게 많아요. 센스와 소리, 배우로서의 유연함. 제가 그 나이 때 갖지 못했던 거라 부럽다고 말했어요. 함께 호흡하며 대본에 있는 것보다 더 풍성해진 장면이 많으니 기대해주셔도 좋을 거예요.


디즈니+ <현혹>으로 첫 시대극에 도전하죠. 1935년 경성, 의혹과 소문이 가득한 매혹적인 여인 송정화의 초상화를 의뢰받은 이호가 그의 비밀에 다가가면서 벌어지는 이야기입니다

작품을 감상할 땐 특정 감독님을 정하고 보는 편은 아닌데, 늘 재미있게 봤다 하면 한재림 감독님의 작품이었어요. 그래서 캐스팅 소식을 들었을 때 너무 기뻤고요. 왠지 감독님과 취향이 같을 거라고 기대했습니다(웃음). 어떤 신을 구현하는 데 어떤 디렉션으로 그런 아이디어가 나온 건지 늘 궁금했거든요. 매 순간 즐겁게 촬영하고 있어요.


김선호가 입은 니트 블레이저와 스트라이프 스웨터는 모두 Loewe.

김선호가 입은 니트 블레이저와 스트라이프 스웨터는 모두 Loewe.


함께한 배우나 스태프들이 늘 당신을 칭찬해요. 조금 전에도 기술적 오류로 애써 찍은 영상을 재촬영하게 됐는데 괜찮다고, 금방 다시 찍자고, “커피 한 잔 사주시면 된다”고 말하는 걸 듣고 실감하긴 했지만

하하, 저 편하려고 그런 거예요. 분위기가 가라앉으면 저도 영향을 받으니까. 이건 혼자 하는 일이 아닌 데다 현장의 모든 분이 애정을 갖고 열심히 해줘야 결과가 좋지 않겠습니까.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생각할 뿐이에요.


스스로 정의하기에 요즘 김선호는 어떤 사람인 것 같나요

배우에게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아가는 일은 매우 중요해요. 저도 뭘 하고 싶은지, 어떤 사람인지 알아가는 과정에 있고요. 연차가 쌓이고 책임감이 커지면서 “선호라면 알아서 잘할 거야”라는 말을 들으면 참 뿌듯하지만, 또 가끔은 허술한 사람이고 싶어요. “선호는 저런 점이 부족하니 웃고 넘어가 줘”라는 너스레도 좋게 들리거든요. 기댈 수 있는 신뢰 가득한 배우이자 친구처럼 편안한 사람. 그 경계를 탐방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요즘 특히 <케이팝 데몬 헌터스>에 완전히 빠져 있어요! 사자보이즈 좋아해요.


당신의 연기는 늘 말보다 눈빛이 먼저 말을 거는 느낌입니다. 지금 배우로서 좋은 이야기, 말을 거는 작품이란 무엇이라 말하고 싶나요

예전에 배우 형에게 좋은 연기에 관해 물어본 적 있어요. 그 형이 말하길 좋은 연기란 조금은 어른스러운 선택을 하는 것이라고 하더군요. ‘어른스러움’은 단지 나이나 연륜의 문제가 아니라, 현명한 선택을 의미해요. 현실을 감각적으로 이해하는 태도에 가깝달까요. 누군가에게 어른스러운 방식으로 연기가 가 닿을 때 진짜 ‘멋’이 생긴다고 믿어요. 저는 아직 제가 다 이해하지 못한 세계 앞에서는 한 발짝 물러서서 바라보는 편입니다. 결코 혼자서는 못하는 일이죠. 그러니 좋은 사람들과 함께 저를 만들어가려고요.

Credit

  • 패션 에디터 김명민
  • 피처 에디터 전혜진
  • 사진가 김신애
  • 패션 스타일리스트 박선영
  • 헤어 스타일리스트 박미형
  • 메이크업 아티스트 김도연
  • 세트 스타일리스트 이예슬
  • 아트 디자이너 이소정
  • 디지털 디자이너 오주영
  • 어시스턴트 함서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