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선호와 여름 바다를 보며 나눈 인터뷰
"수영도 못하면서 물은 좋아해요. 멍하니 보는 게 좋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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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더운 날인데 참 많이 웃었어요. 이 뙤약볕을 견딜 수 있었던 힘은
바다죠. 바다 옆에 있으면 괜히 설레잖아요(웃음). 그리고 회사 식구들이 멀리까지 응원하러 와줬어요.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웃어야 저도 힘이 나는 것 같아요.
지난 <갯마을 차차차> 작품 화보로 만났을 때도 바다 얘기를 실컷 했는데, 오늘 바다 풍경은 조금 다르게 보이나요
4년 전 <갯마을 차차차> 홍반장은 바다 한가운데 뛰어들 수 있는 상태였다면, 오늘의 저는 그저 바라보게 되는 것 같아요. 한 발짝 떨어진 채 그림처럼 감상하면서 말이죠. 저는 수영도 제대로 못 하면서 물은 좋아해요. 멍하니 보는 게 좋거든요.
여전히 꽃게도 좋아하나요? 이 근처에 맛집이 많을 텐데
여전합니다. 바다 촬영 있으면 꽃게든 대게든 게를 좋아해서 찾아 먹어요. 그때도 게를 엄청 먹었다고 얘기한 것 같네요(웃음).

김선호가 입은 니트 블레이저와 핑크 스트라이프 스웨터, 오버사이즈 니트 팬츠, 워커 부츠는 모두 Loewe.
이곳에서 ‘무언가’ 열심히 촬영 중이라죠. 촬영 모드에 돌입했을 때만 나타나는 김선호의 특이점이 있다면요? 예민해진다거나 혹은 더 들뜬다거나
저는 오히려 촬영 시기에 일상 패턴이 더 규칙적으로 변해요. 늘 컨디션을 평형으로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예를 들어 우울한 신을 찍는데 도파민이 터진 상태면 안 되니까 최대한 안정적인 마음으로 언제든 감독님의 디렉션과 그 감정을 원활하게 받아 소화할 수 있는 상태이고 싶어서요.
그래서 늘 낯설고 새로운 얼굴을 발견하는 재미가 있어요. 특히 최근작 <폭싹 속았수다>에서 수염 덥수룩한 얼굴로 처음 등장했던 모습이 잊히지 않아요. “저 사람이 김선호라고?” 깜짝 놀랐거든요
그렇다면 성공이에요(웃음). 첫 등장은 ‘고슴도치’라고 설명돼 있었어요. 처음 분장할 땐 머리카락을 한 가닥 한 가닥 붙이느라 거의 세 시간은 걸렸거든요! 그래 보여도 엄청 공들인 외모였습니다. 감독님과 작가님도 충섭이 저라는 걸 알아채지 못하게 의도했고요. 친구들은 제가 끝까지 그 모습으로 나올까 봐 걱정했다는데 개인적으로는 너무 행복했습니다. 처음에는 스포일러 문제로 제가 나오는 부분의 대본만 읽을 수 있었기 때문에 전체 이야기의 맥락을 파악하는 데 꽤 오래 걸렸어요. 그러다 결국 퍼즐이 맞춰지는데…. 와, 정말 너무 좋은 거예요. 대본만 보고도 눈물을 이렇게 뚝뚝 흘린 적 있나 싶을 정도로 말이죠.
특히 충섭의 결혼식 장면에서 상대역인 금명(아이유)에게 윙크하는 장면이 ‘김선호 챌린지’로 번질 만큼 사랑받을 줄 알았나요
챌린지가 유행한다길래 처음엔 장난인 줄 알았어요. 아리아나 그란데가 SNS에 올리고 나서야 비로소 실감했어요. 요즘 행사장에 가면 그 장면을 재연해 달라고 많이 요청하시는데 어색해서 제대로 못 해내는 것 같아 죄송할 따름입니다(웃음).
애드리브였나요? 비하인드가 있다면
애드리브는 아니었어요. 대본에 ‘금명이가 총을 쏜다. 충섭이 맞고 웃는다. 두 사람은 장난을 친다’ 정도로 쓰여 있었죠. 아이유 배우가 워낙 유연하게 에너지를 잘 받아주니까 별다른 고민 없이 그 분위기, 그 자리에서 자연스럽게 완성된 장면이에요.
실제 김선호의 모습처럼 보이기도 했어요(웃음). 충섭과 당신은 비슷한 지점이 있나요
충섭이는 봉천동 출신인데, 저 역시 같은 동네에서 자랐습니다. 어릴 적 봤던 풍경이 작품에 고스란히 담겨 있어 향수를 느끼고 역할에 몰입할 수 있었죠. 그 시절 정취나 사람 냄새 같은 것들로 부모님의 삶도 필름처럼 떠올려볼 수 있었어요. 매 장면 찍으면서 생각했습니다. 모두 아름답게 살아주셔서 감사하다고요.

김선호가 입은 컬러 블록 스웨터와 울 팬츠, 레이스업 로퍼는 모두 Loewe.

김선호가 입은 레더 재킷과 셔츠, 체크 팬츠, 카프스킨 라지 퍼즐 바이커 백은 모두 Loewe.
주로 다정하고 단단한 얼굴 뒤편에 그림자를 지닌 인물을 연기해 왔던 것 같아요. 겉으로는 젠틀해 보여도 외로움을 안고 사는 <스타트업>의 지평, 속 깊어 보이지만 상처 가득한 <갯마을 차차차>의 두식, 멀게는 연극 <얼음>의 날카롭고 거칠지만 누구보다 정의의 균열에서 방황하는 형사까지. 이런 인물에 끌리는 편인가요
작품 전체를 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늘 제가 연기할 인물에 ‘왜’라는 질문을 던져요. 답을 모르겠다면 그와 거리가 생기고 한발 물러서게 되더라고요. 인물에 대한 공감도는 사람마다 다르니까, 꼭 스스로에게 질문하며 그와 마주해 보죠. 납득이 되면 막 벅차올라요. 그 인물로 서 있으면 주변이 보이지 않고, 최면에 걸린 느낌이 들 때도 있어요. 감정이 가득 찬 느낌이랄지.
안 아픈 손가락은 없겠지만, 그중 당신을 가장 많이 흔들었던 인물은
지금 돌아보면 아무래도 <스타트업>의 지평이가 가장 마음에 걸려요. 그가 늘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바라죠. 김해숙 선생님께 안겨 울었던 장면은 다시 봐도 왜 그렇게 마음이 아팠나 싶을 정도예요. 엄청 울었던 기억이 나는데…. 지평이는 그런 친구였어요.
하반기 공개되는 넷플릭스 시리즈 <이 사랑 통역 되나요?>의 통역사 주호진은 어때요? 고윤정 배우가 지난 <엘르> 인터뷰 때 당신에게 정말 많이 의지하며 재밌게 찍었다고 증언했어요
하하, 저도 증언해보자면, 고윤정 배우는 에너지가 참 좋아요. 제가 툭 한마디 하면 열 마디로 돌아오는, 없던 에너지도 만들어내는 친구랍니다(웃음). 저도 현장에서 즐겁게 찍는 편인데, 굳이 그러지 않아도 덕분에 웃을 일이 많았어요. 서로 아이디어를 내기 바빴죠. 윤정 씨가 타고난 게 많아요. 센스와 소리, 배우로서의 유연함. 제가 그 나이 때 갖지 못했던 거라 부럽다고 말했어요. 함께 호흡하며 대본에 있는 것보다 더 풍성해진 장면이 많으니 기대해주셔도 좋을 거예요.
디즈니+ <현혹>으로 첫 시대극에 도전하죠. 1935년 경성, 의혹과 소문이 가득한 매혹적인 여인 송정화의 초상화를 의뢰받은 이호가 그의 비밀에 다가가면서 벌어지는 이야기입니다
작품을 감상할 땐 특정 감독님을 정하고 보는 편은 아닌데, 늘 재미있게 봤다 하면 한재림 감독님의 작품이었어요. 그래서 캐스팅 소식을 들었을 때 너무 기뻤고요. 왠지 감독님과 취향이 같을 거라고 기대했습니다(웃음). 어떤 신을 구현하는 데 어떤 디렉션으로 그런 아이디어가 나온 건지 늘 궁금했거든요. 매 순간 즐겁게 촬영하고 있어요.

김선호가 입은 니트 블레이저와 스트라이프 스웨터는 모두 Loewe.
함께한 배우나 스태프들이 늘 당신을 칭찬해요. 조금 전에도 기술적 오류로 애써 찍은 영상을 재촬영하게 됐는데 괜찮다고, 금방 다시 찍자고, “커피 한 잔 사주시면 된다”고 말하는 걸 듣고 실감하긴 했지만
하하, 저 편하려고 그런 거예요. 분위기가 가라앉으면 저도 영향을 받으니까. 이건 혼자 하는 일이 아닌 데다 현장의 모든 분이 애정을 갖고 열심히 해줘야 결과가 좋지 않겠습니까.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생각할 뿐이에요.
스스로 정의하기에 요즘 김선호는 어떤 사람인 것 같나요
배우에게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아가는 일은 매우 중요해요. 저도 뭘 하고 싶은지, 어떤 사람인지 알아가는 과정에 있고요. 연차가 쌓이고 책임감이 커지면서 “선호라면 알아서 잘할 거야”라는 말을 들으면 참 뿌듯하지만, 또 가끔은 허술한 사람이고 싶어요. “선호는 저런 점이 부족하니 웃고 넘어가 줘”라는 너스레도 좋게 들리거든요. 기댈 수 있는 신뢰 가득한 배우이자 친구처럼 편안한 사람. 그 경계를 탐방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요즘 특히 <케이팝 데몬 헌터스>에 완전히 빠져 있어요! 사자보이즈 좋아해요.
당신의 연기는 늘 말보다 눈빛이 먼저 말을 거는 느낌입니다. 지금 배우로서 좋은 이야기, 말을 거는 작품이란 무엇이라 말하고 싶나요
예전에 배우 형에게 좋은 연기에 관해 물어본 적 있어요. 그 형이 말하길 좋은 연기란 조금은 어른스러운 선택을 하는 것이라고 하더군요. ‘어른스러움’은 단지 나이나 연륜의 문제가 아니라, 현명한 선택을 의미해요. 현실을 감각적으로 이해하는 태도에 가깝달까요. 누군가에게 어른스러운 방식으로 연기가 가 닿을 때 진짜 ‘멋’이 생긴다고 믿어요. 저는 아직 제가 다 이해하지 못한 세계 앞에서는 한 발짝 물러서서 바라보는 편입니다. 결코 혼자서는 못하는 일이죠. 그러니 좋은 사람들과 함께 저를 만들어가려고요.
Credit
- 패션 에디터 김명민
- 피처 에디터 전혜진
- 사진가 김신애
- 패션 스타일리스트 박선영
- 헤어 스타일리스트 박미형
- 메이크업 아티스트 김도연
- 세트 스타일리스트 이예슬
- 아트 디자이너 이소정
- 디지털 디자이너 오주영
- 어시스턴트 함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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