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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는 좀비의 아버지 대니 보일이 '28년 후'에서 하고 싶던 말

23년 만에 돌아온 '분노 바이러스', 시간은 독이 된 걸까?

프로필 by 라효진 2025.06.18

좀비물의 근원을 일컬을 때 가장 먼저 언급되는 작품은 우발도 라고나의 <지상 최후의 사나이> 혹은 조지 A. 로메로의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일 겁니다. 이미 죽은 존재가 죽지 않은 것처럼 움직이고, 산 것들을 갈구하는 데서 오는 예측 불가능성은 공포 소재의 한 갈래로 자리잡았죠. 이후로도 좀비물은 비슷하면서도 다양한 방식으로 진화해 왔습니다. 그리고 2000년대 초, 좀비물에 속도감을 더한 대니 보일의 영화 <28일 후>가 등장했어요. 실제로 사람에게로 달려 오는 좀비들과 감독 특유의 카메라 워크가 절묘하게 조화된 이 작품은 21세기 좀비물의 견본으로 여겨집니다.



<28일 후> 개봉 23년이 지난 2025년, 시리즈의 정식 속편인 <28년 후>가 나옵니다. 중간에 <28주 후>도 있었지만 대니 보일과 알렉스 가랜드 콤비가 손을 댄 영화는 아니었죠. 다만 <28년 후>의 시대적 배경은 <28주 후>의 결말 이후입니다. 분노 바이러스가 결국 영국을 초토화시키고, 유럽 대륙이 감염 확산을 막기 위해 영국 본토를 격리시켜 버린 다음의 이야기죠. 코로나19 팬데믹으로 하늘길이 통제됐던 경험을 한 지금의 관객들에겐 예전보다 이 설정이 훨씬 현실적으로 다가올 법합니다.


대니 보일 감독은 18일 <28년 후> 개봉을 앞두고 한국 취재진 앞에 섰습니다. <28일 후>를 향한 팬들의 식지 않는 애정과 <28년 후>의 놀라운 스토리에 힘입어 다시 시리즈 재가동에 나섰다고 입을 연 감독이었는데요. 그는 "(약 20년 동안) 우리가 겪은 여러 상황을 통해 <28일 후>에 나온 장면들이 현실과 동떨어져있지 않다는 인식을 하게 됐다"라며 "바이러스 탓에 텅 빈 거리, 유럽연합(EU)로부터 분리된 영국(브렉시트) 같은 것들을 알게 되며 이런 사건들이 영화에 녹아 들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이번 영화는 <28일 후>에서 도입한 '분노 바이러스'가 시간의 흐름 속에서 어떻게 변화하는지 탐구하는 과정에서 탄생했습니다. 대니 보일 감독은 "흥미로운 건 사람만이 생존하는 것이 아니라, 바이러스 역시 생존할 수 있다는 설정"이라고 입을 열었어요. 극 중 유럽이 바이러스가 창궐한 영국을 고립시킨 건 격리를 통해 모든 바이러스가 언젠간 소멸할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었는데요. 하지만 현실에서 코로나19가 살아남기 위해 여전히 모습을 바꾸고 있듯, <28년 후>의 분노 바이러스는 사라지기는 커녕 여러 모습으로 진화하고 말았습니다.


감독은 이러한 설정을 강조하기 위해, 격리된 채 '감염자' 사냥을 다니는 '생존자'들을 산업화도 농업화도 되지 않은 태고적 자연으로 몰아붙이고요. 촬영에 아이폰 15 프로 맥스를 적극 활용한 것도 2.76대1의 와이드 화면으로 자연을 담아내는 동시에 장비 경량화까지 꾀한 것이라고 하는군요.



<28년 후>는 23년 만의 시리즈 부활을 알린 작품이자, 이 영화를 포함한 트릴로지의 시작이기도 합니다. 그 연결점에는 <28일 후>에 출연한 킬리언 머피가 있었습니다. 대니 보일 감독은 "<28년 후>에 등장하진 않지만, 이그제큐티브 프로듀서로 참여했다"라며 "내년 개봉할 두 번째 영화, 그리고 세 번째 영화에 그가 나온다"라고 귀띔했어요. 그러면서 트릴로지 1부가 가족의 본질에 대한 영화였다면 2부는 악의 본질을 다룰 예정이라고 했죠. 그는 이미 촬영을 마친 2부 속 킬리언 머피가 나타나는 대목에서 "미소가 번졌다"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3부는 온전히 킬리언 머피의 영화가 될 테니, 기다려 달라는 당부도 잊지 않았어요.



마지막으로 대니 보일 감독은 "<28년 후>를 보고 인간성이란 무엇인가, 무엇이 인간성을 지속시키는가 생각해 보길 바란다"라고 했습니다. '죽음을 기억하라'는 말로 연결된 본토와 섬의 생존자들이 극한상황에서 '인간성'이라는 가치를 대하는 태도를 본다면 보다 색다른 공포를 느낄 수 있을 듯해요. 바이러스가 진화하는 동안 인간은 어떻게 살고 있고, 살아가야 하는지, 이 물음에 답해 줄 <28년 후>는 19일 개봉합니다.

Credit

  • 에디터 라효진
  • 사진 영화 <28일 후> · <28년 후> 스틸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