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온천, 얼마나 알고 계신가요?

한국의 대표 온천 관광 시설이었던 유성온천호텔이 문을 닫은 건 1년 전 이맘때다. 이 소식은 많은 사람에게 충격을 던졌지만, 어느 정도 예견된 결과이기도 했다. 2017년 부곡하와이, 2021년 말 온양관광호텔이 폐업 소식을 알렸고, 지난해 12월에는 한화리조트 백암온천까지 영업을 종료했다. 2020년부터 3년간 전국 온천 이용 업소 중 40곳이 문을 닫았다. 한국에서 온천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뜻일까? ‘2024 전국 온천 현황’에 따르면, 2019년 약 6000만 명에서 2020년 약 3000만 명까지 감소한 온천 이용객 수는 2023년 약 4000만 명까지 회복했다. 지난해는 한국과 일본을 오간 항공 승객 수가 역대 최대 2000만 명에 도달한 해이기도 하다. 그중 일본을 찾은 한국 관광객은 720만 명으로 전년보다 30% 증가했다. 가장 많이 방문한 여행지 상위 10위 리스트에는 구마모토와 다카마쓰가 새롭게 올랐는데, 두 도시 모두 온천과 자연경관으로 유명하다. 여기에 국내 여행사들도 앞다퉈 일본 온천 여행 상품을 내놓고 있는 상황. 일련의 흐름을 볼 때 수요 감소의 문제는 아닌 듯하다.

“소비자들이 많이 바뀌었어요. 해외에서 좋은 온천을 경험한 사람이 많아졌고, 지인들과 온천 투어를 하는 경우도 빈번해졌죠.” 국내 온천에 대한 연구를 바탕으로 <온천, 천탕천색의 매력에 몸을 담그다>를 쓴 이은주 작가는 온천에 대한 수요가 질적으로 달라졌음을 체감하고 있었다. 그는 책을 통해 특색과 효능이 다른 한국의 온천들을 알리며 국내 온천 재평가에 앞장서고 있다. “저 역시 과거에 온천이라면 ‘경치 좋은 곳에서 즐기는 목욕’ 정도로 생각했어요. 하지만 온천을 공부하며 국내에도 탄산천, 유황천, 유산염천 등 다양한 성분으로 이루어진 온천들이 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매일 집 근처 목욕탕에 들러 수돗물 대신 온천수를 이용한다는 그는 고유한 특성을 지닌 온천들을 막힘없이 추천했다. “한국에서 용출되는 대부분의 탄산천은 용출 온도가 낮은데, 능암 탄산온천은 높은 편이에요. 기포가 잘 보여 시각적 재미도 선사하죠. ph 5~6의 약산성 온천으로 보습성도 좋고요. 영천 사일온천은 한국에서 보기 드문 강력한 황산염천입니다. 황산 덕분에 입욕 즉시 뼈마디가 시원해져요. 부곡 한성호텔 가족탕에서는 갓 뽑아 올린 신선한 열천을 만날 수 있는데, 그야말로 ‘극락’입니다. 부곡 고운장 온천은 부곡온천을 처음 발견한 신현식 박사의 자손이 운영하는 온천이에요. 낡긴 했지만 제가 정말 좋아하는 곳이었는데, 안타깝게도 팬데믹 기간을 버티지 못하고 폐업하고 말았네요.”

2024년 기준 한국엔 383개의 온천지구가 있다. 화산섬 일본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적은 수도 아니다. 동래온천·온양온천·수안보온천 등은 길게는 신라시대, 짧게는 조선시대부터 기록이 남아 있을 정도다. 긴 역사에도 불구하고 국내 온천 문화가 다양하게 발달하지 못한 이유 중 하나는 온천과 목욕의 구분이 명확하지 않기 때문이다. “일본은 이용자들이 온천을 구분할 수 있도록 온천 성분 분석표를 시설마다 고시하고 있어요. 수돗물을 쓰는 목욕탕과 구별되는 지점이죠. 한국은 성분 고시는 고사하고 어설프게 효능을 적는 정도에 불과해요.” 이용자들이 성분 차이를 인식하고 그 차이를 몸으로 체감하게 되면 온천을 향유하는 방식이 더욱 풍부해질 수 있다는 것이 이은주 작가의 설명이다. <온천 명인이 되었습니다>를 쓴 안소정 작가 역시 성분 분석표에 대한 이야기를 빼놓지 않았다. “목욕탕과 온천이 시설적으로 차이 날 이유는 없어요. 다른 건 물뿐이죠. 물이 어떻게 다른지 설명할 수 없으면 차별화가 어려워요. 목욕탕과 다른 경험을 제공하지 못하는 거죠. 국내 몇몇 온천에 성분 분석표를 보여달라고 한 적 있는데, 도리어 불쾌해하는 경우가 꽤 있었어요.” 벳푸 온천을 시작으로 꾸준히 목욕을 기록해 온 안소정 작가에게 온천은 좋은 물을 경험하는 차원에 그치지 않는다.

그는 온천수에 포함된 유익한 성분은 기본이고, 물이 주는 심리적 안정과 탕의 다양한 형태에서 오는 공간감을 온천의 선택 기준으로 꼽았다. “한국은 세신 문화가 발달해 뜨거운 물에 몸을 불리는 데 집중하잖아요. 이 또한 한국만의 온천 문화로 볼 수 있지만, 그래서 물을 감각하고 즐기기 어려웠던 것 같아요. 여유를 느낄 수 있도록 설계된 대중탕도 많지 않고요. 일본엔 다양한 공간 설계를 통해 이용자가 물을 폭넓게 즐길 수 있어요. 목욕탕만 건축하는 사람도 있죠. 타일 등 인테리어 자재에 포인트를 주기도 해 목욕탕 타일만 수집하는 사람도 있어요.” 그는 국내에서 온천다운 온천을 추천해 달라는 질문에 “주관적 기준에서는 없다”고 털어놓았지만 이내 인제의 필례온천을 언급했다. “아담한 규모의 온천이에요. 세신할 정도로 넓지 않고 한국의 통상적인 목욕탕과 구조가 달라요. 업주분께 그 이유를 물었더니 ‘여기는 물을 즐기러 오는 곳이라서 굳이 때를 밀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다’는 말씀이 기억에 남네요. 물에 대한 설명도 나름 잘돼 있었고, 온천수 화장품을 개발하는 등 상품화 노력도 기울이고 있어 좋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국내 온천에 대해 이야기할 때 울진에 있는 덕구온천은 빠지지 않고 등장했다. 일본에서 온천 소믈리에 자격을 취득한 중앙일보 이영희 기자 역시 이은주· 안소정 작가에 이어 덕구온천을 우선으로 꼽았다. “국내에서 유일한 자연 용출 온천이에요. 인위적으로 땅을 파 물을 끌어 올린 게 아니기 때문에 물을 데우거나 수돗물을 섞지 않고, 용출량도 하루 2000t 정도로 충분해 호텔 욕실에서도 온천수를 사용할 수 있어요. 확실히 물이 몸에 감기는 느낌도 남다르더군요. 산중턱에 있어 자연과 함께 즐기니 휴식의 느낌이 충분했고요.” 그는 오늘날 온천의 가치를 효능으로만 접근하긴 어렵다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일본 온천 소믈리에 수업에서 효능은 엄격히 제한되는 표현이었어요. 의학적으로 모두 검증된 건 아니니까요. 대신 수질별 적응증(온천이 효과 있는 질환과 증상)이라는 말을 썼죠. 오랫동안 반복적으로 온천수 성분에 노출되면 효능을 기대할 수 있겠지만 한두 번 몸을 담그는 것으로는 어려워요. 물이 선물하는 시간, 몸과 마음의 긴장을 풀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시간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이 요즘 같은 때에 더욱 강조돼야 할 것 같습니다.”

2023년 행정안전부는 충주, 아산, 창녕을 대한민국 최초 ‘온천 도시’로 지정해 목욕업에 국한됐던 온천 산업을 공공·치유·에너지 분야로 확장하고 지역마다 특징을 살리는 산업을 도입한다고 밝혔다. 부산 역시 침체된 동래구를 대상으로 온천 중심의 도시 재생을 추진 중이다. 몇몇 지자체 차원의 조치로 한국 온천의 부흥을 낙관하긴 어렵지만, 분명한 것은 어떤 식으로든 변화를 맞고 있다는 점이다. 안소정 작가는 목욕업 자체가 이미 사양산업에 들어섰고, 근래 여러 온천이 문을 닫은 것도 맞지만 주로 대형 시설이라는 점을 짚었다. 오히려 팬데믹을 거치며 프라이빗 온천 숙소에 대한 수요가 눈에 띄게 늘었고, 일반 목욕탕처럼 운영되던 온천 업소들이 객실 재정비를 통해 대절이 가능한 소규모 가족탕을 많이 갖추고 있다고 설명했다. 고령화와 건강 이슈가 있는 한 온천 산업이 쇠락할 것 같진 않다는 것이 그의 전망이다.


“물의 문제만은 아닌 것 같아요. 물의 가치를 회복하려는 기본적인 노력도 따라야 하지만, 소비자로서 콘텐츠가 필요한 걸 느껴요. 제가 일본에서 온천을 좋아하기 시작한 이유도 그랬거든요. 온천 지구마다 분위기와 이용자에게 제공하고자 하는 포인트가 달랐어요. 사장님의 캐릭터가 독특하거나, 건축적 특징이 도드라지는 등 운영 철학이 와닿았죠. 고유한 스토리를 지닌 공간이 늘어나야 온천의 의미를 느낄 기회가 많아질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