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SHION

패션 하우스의 공예적 사고가 작품이 될 때

이 이야기는 만드는 노동을 사랑하는 마음에 관한 것이다.

프로필 by 김영재 2024.12.12
2024 보테가 포 보테가스 캠페인.

2024 보테가 포 보테가스 캠페인.

공예. 보테가 포 보테가스 캠페인은 귓가에 불어오는 캐럴처럼 홀리데이 시즌이 되면 공예라는 단어를 환기시킵니다. 보테가 베네타는 장인들의 경이로운 공예성과 모방 불가능한 손재주를 조명하는 캠페인을 매년 선보이고 있습니다. 세상이 고립되고 단절된 팬데믹 시절 소규모 공방을 지원하기 위해 시작되었는데요. 하우스가 가진 영향력과 광고 채널, 공식 웹사이트, 오프라인 매장 등 다양한 플랫폼을 통해 공방들의 우수성을 전파하고 그들의 발전을 격려하는 것입니다.

보테가 포 보테가스 캠페인은 2021년 이탈리안 장인 정신을 여실히 보여주는 12곳의 공방들로 출발해, 이듬해 이탈리아 문화와 연결된 전 세계 14곳의 공방과 함께했습니다. 2023년에는 3대째 이어 온 한국 전통연 장인의 공방을 비롯해 이탈리아, 대만, 중국의 수공예를 세상에 알리는 데 큰 역할을 했고요. 올해 보테가 포 보테가스 캠페인의 타임라인은 베네치아를 겨냥합니다.

여기에는 깊은 의미와 명분이 담겨 있습니다. 보테가(Bottega)는 이탈리아어로 우수한 장인 정신과 창의성을 강조함과 동시에 공방을 일컫습니다. 그러니까 보테가 베네타에 깃든 의미는 ‘베네치아 장인들의 공방’. 이번 캠페인에는 하우스의 뿌리인 베네치아에 대한 커다란 경외와 함께 이 지역과 인근 소규모 공방 6곳의 예술적 기운이 응집해 있습니다.
모디아노 공방의 트럼프 카드. 시뇨르 블룸 공방의 목재 블록 퍼즐. 폰데리아 아티스티카 발레제의 청동 오브제. 웨이브 무라노 글라스의 유리 디자인 오브제. 브루노 아마디의 불가사리 형상 오브제. 라구나~B 유리 공방의 공예 작품.
여섯 공방들의 면면은 실로 탁월합니다. 조각적인 목재 직소 퍼즐에 깊이 천착해온 시뇨르 블룸, 베네치아의 마지막 주조 공장인 폰데리아 아티스티카 발레제, 1868년부터 수공 기법으로 카드 제품을 생산하는 모디아노, 유리 장인들과 협업한 실험적인 방식으로 유리 공예의 새로운 정의를 제시한 라구나~B, 다양한 자연의 형상을 유색 유리 오브제로 구현하는 브루노 아마디, 가장 현대적인 유리 공방으로 꼽히는 웨이브 무라노 글라스.

12월부터 보테가 베네타 공식 웹사이트, 뉴스레터, 밀라노 플래그쉽 매장의 윈도우 디스플레이에 이곳들의 예술 세계가 펼쳐지는데요. 손으로 만든 아름다운 기물의 형상, 색채, 맵시는 창조적 노동에 담긴 가치를 맨눈으로 체험할 수 있는 가장 틀림없는 방법이 될 것입니다.

예술과 연결고리를 가진 브랜드는 꽤 있습니다. 하지만 전 세계에서 가장 큰 공방으로 꼽히는 보테가 베네타라면 할 수 있는 이야기가 많아집니다. 보테가 포 보테가스 캠페인 외에도 창조적 협력을 이룬 흔적들은 쉽게 눈에 띕니다. 지난 11월 런칭한 새로운 캡슐 컬렉션에도 그 궤적이 담겨 있는데요. ‘베스트 에버(Best Ever)’ 시리즈로 잘 알려진 미국의 인기 작가이자 일러스트레이터인 리처드 스캐리의 작품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리처드 스캐리 캡슐 컬렉션.

리처드 스캐리 캡슐 컬렉션.

스트라이프 패턴의 인트레치아토 더스트 백. 사과 모양의 버클이 달린 벨트. 카드 홀더. 스트라이프 벨트.
리처드 스캐리 특유의 섬세하고 풍부한 일러스트, 매력적인 캐릭터, 친근한 스토리는 여느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보테가 베네타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마티유 블라지에게 상상력의 원천이 됐습니다. 세월이 흘렀지만 유년 시절의 기쁨과 영감을 여전히 간직한 마티유 블라지는 이번 캡슐 컬렉션에 리처드 스캐리 세계관의 컬러와 모티프를 투영했죠. 그중 대형 아트 북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는데요. 리처드 스캐리의 ‘비기스트 워드 북 에버(Biggest Word Book Ever)’ 특별판입니다. 두 팔로 끌어안아야 하는 큼직한 크기도 크기지만, 보테가 베네타의 아이코닉한 인트레치아토 패턴으로 마감한 표지가 아주 특기할 만합니다.
'비기스트 워드 북 에버' 특별판. '비기스트 워드 북 에버' 특별판. '비기스트 워드 북 에버' 특별판. '비기스트 워드 북 에버' 특별판.

최근 보테가 베네타가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조명 디자이너 지노 사르파티의 테이블 램프를 재해석한 ‘모델 600' 스페셜 에디션은 또 어떻고요. 1912년 베니스에서 태어난 지노사르파티는 재료, 형태, 조명 기술에 걸쳐 혁신적이고 독창적인 방식으로 전통적인 조명 디자인에 새로운 기운을 불어넣었습니다. 1966년에 출시한 ‘모델 600' 테이블 램프가 대표적입니다. 당시 조명들의 정형적인 실루엣을 깬 디자인은 혁신과 다름없었죠.

보테가 베네타는 하우스의 초기 가방 디자인과 닮은 유연하고 미학적인 형태, 혁신적인 장인 정신과 창의성이 깃든 이 램프에 주목했습니다. 이탈리아 조명 브랜드 플로스와 협업해 ‘모델 600' 스페셜 에디션을 선보인 것인데요. 원래의 가죽 베이스에 인트레치아토와 인트레치오 풀라드를 입혔고 전구 대신 최신 LED 기술을 적용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보테가 베네타가 이탈리아 비첸차에서 설립된 것도 1966년의 일입니다.
모델 600 램프 스페셜 에디션.

모델 600 램프 스페셜 에디션.

보테가 베네타는 미술, 공예, 디자인 영역에 걸쳐 종횡무진했습니다. 꾸준하고 굵직한 행보를 이어왔죠. 그때마다 반갑고 신선한 생동과 소란을 일으켰습니다. 당연하게도 하우스의 근간인 장인 정신과 창의적 기운을 어떤 의심도 없이 가늠할 수 있는데요. 이렇게 보고 나니, 마음은 벌써 보테가 베네타가 이다음 보여줄 무언가에 가 있습니다.

Credit

  • COURTESY OF BOTTEGA VENET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