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ILLIANT

진정한 빈티지 워치를 찾아서

히스토리와 세월의 흔적, 희소성까지 대체 불가한 매력으로 사람들을 매혹시키는 빈티지 워치에 대해 전문가와 이야기를 나눴다.

프로필 by 김영서 2024.05.08
2000년을 기념해 365점 한정으로 제작한 1930년대 ‘까르띠에 탱크 바스큘란트’ 디자인 워치는 CARTIER. 1970~1980년대 코인워치는 모두 PIAGET. 1970~1980년대 아이보리 다이얼의 ‘까르띠에 탱크’ 워치는 CARTIER. 1921년에 제작한 회중시계는 PATEK PHILIPPE.

2000년을 기념해 365점 한정으로 제작한 1930년대 ‘까르띠에 탱크 바스큘란트’ 디자인 워치는 CARTIER. 1970~1980년대 코인워치는 모두 PIAGET. 1970~1980년대 아이보리 다이얼의 ‘까르띠에 탱크’ 워치는 CARTIER. 1921년에 제작한 회중시계는 PATEK PHILIPPE.

‘빈티지 워치가 갖고 싶다’는 생각이 스치면 바로 어디서 살지가 고민이다. 요즘은 패션 편집숍, 온라인 플랫폼, 전국 각지의 퍼스널 브랜드 등 판매하는 곳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지만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이제는 재개발로 사라진 서울 종로구 예지동 시계 골목이 성지였다. 그곳에는 수천 가지의 오래된 시계가 모여 있었지만, 우리가 찾는 빈티지 워치를 찾기는 그때도 쉽지 않았다. 100살이 훌쩍 넘은 1900년대의 앤티크 워치와 2000년 이후에 출시한 청소년급의 리셀 워치들. 그 100년의 어느 사이, 변화무쌍한 워치 세계에서 탄생한 빈티지 워치를 찾아야 한다. 빈티지 워치에 대한 전문가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워치 컬렉터 김문정 대표를 찾아갔다. 그를 만난 곳은 더현대 서울에서 ‘크리에이티브 그라운드’ 층으로 불리는 지하 2층. 각종 편집숍과 팝업 스토어, 컨템퍼러리 브랜드가 모여 있는 트렌드의 중심에 김문정 컬렉터가 운영하는 용정콜렉션이 위치해 있다. 1965년부터 이어온 빈티지 워치 숍 용정콜렉션은 오래도록 인사동에 있던 본점을 이곳으로 이전했다.

“빈티지 워치에도 여러 말이 있는데 제가 정의하는 빈티지 워치는 1930~1950년대에 생산한 워치예요. 그리고 요즘 많이 찾는 게 1970~1990년대 워치로, 보통 ‘네오 빈티지’ 워치라고 합니다. 네오 빈티지 시대에 각 브랜드가 무브먼트에 공을 많이 들이면서 정교함이 최고점을 찍었어요. 2000년대 이후로는 각자 내세우는 시그너처 모델을 조금씩 변형해 출시하죠.” 김문정 컬렉터의 말이다. 20세기 초반까지 애용하던 회중시계는 20세기 초.중반에 손목시계로 메커니즘이 변경됐고,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20세기 후반에는 되레 작은 다이얼의 워치가 고도의 기술을 표방했다. 21세기에 들어서면서는 기술력보다는 장식적인 디테일에 여러 베리에이션을 적용해 외형적으로 크고 화려해졌다. “1970년대 까르띠에 탱크의 경우 남자 워치는 31mm, 여자 워치는 28mm였어요. 요즘 남자 워치의 다이얼이 작아지기 시작했다고 해도 40mm 전후가 주를 이루죠.” 김문정 컬렉터는 직접 아이보리 컬러 다이얼의 까르띠에 탱크 빈티지 워치를 보여주며 설명했다.

최근 럭셔리 워치 하우스들도 빈티지 워치 시장에 더욱 집중하고 있다. 피아제는 스위스에 위치한 메종에서 마스터 워치메이커가 빈티지 워치를 복원해주는 유료 서비스를 운영하기 시작했다. 지난 150년 동안 개발한 피아제의 모든 무브먼트를 수리할 수 있고, 더 이상 구할 수 없는 부품은 직접 제작한다는 안내로 전통의 위상을 증명했다. 바쉐론 콘스탄틴은 일찍이 헤리티지 부서를 설립해 ‘레 컬렉셔너’ 컬렉션을 선보이고 있다. 이 부서는 전 세계에 퍼져 있는 바쉐론 콘스탄틴의 역사적인 빈티지 타임피스를 전문가의 손길로 발굴하여 진품 확인 및 복원 작업을 거친 후 대중에게 판매한다. 헤리티지 디렉터 크리스티안 셀모니는 빈티지 워치를 매입, 복원해 재판매하는 것이 오랜 역사를 가진 럭셔리 워치메이커의 전통과 기술력을 가장 효과적으로 알리는 방법이라고 판단했다. 이처럼 브랜드의 역사적인 피스를 자체적으로 컬렉팅하거나, 새로운 기술력을 더해 단종되었던 디자인을 다시 내놓는 움직임이 활발해졌다. 김문정 컬렉터가 최근 컬렉팅한 워치도 까르띠에의 옛 모델을 재해석한 것이었다. “까르띠에 탱크 바스큘란트 리미티드 제품이에요. 바스큘란트는 1920년대 후반, 테니스와 폴로셔츠 등의 유행으로 스포츠 워치 개발이 급물살을 타며 1930년대 초에 출시한 모델입니다. 회전축으로 돌아가는 리버서블 워치예요. 바스큘란트 빈티지 워치를 이미 가지고 있었는데, 밀레니엄(2000년)을 기념해 365점만 출시한 리미티드 제품을 최근에 구하게 되었어요. 일반 바스큘란트 워치는 뒷면에 아무 무늬가 없는데, 이 리미티드 제품은 숫자 ‘1999’, ‘2000’, ‘2001’이 새겨져 있습니다. 또 숫자판의 12시가 로마자 ‘ⅩⅡ’가 아닌, 밀레니엄을 의미하는 ‘MM’으로 표시되어 있어요.”

새로운 고객층 유입도 빈티지 워치 시장의 부흥에 큰 영향을 미쳤다. “팬데믹 전후로 많이 바뀌었어요. 이전에는 고객층이 40~50대가 대부분이었습니다. 소수의 부유한 세대로, 웬만한 시계는 다 있으니 아무나 구할 수 없는 빈티지 제품을 찾았죠. 이제는 고객층이 30대를 넘어 20대까지 낮아졌는데 인플루언서, 유튜버 등 젊은 나이에 재력을 가질 수 있는 직업이 많아진 영향도 있어요. 폭넓게, 현명한 소비를 하는 사람들은 패션을 넘어 그림, 와인, 가구를 찾는데 종국에는 빈티지를 찾게 되어 있습니다.” 김문정 대표는 이어 젊은 소비층의 특징에 대해 설명했다. “젊은 고객들은 본인이 갖고 싶은 것에 관한 공부를 많이 해서 제품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먼저 요청합니다. 그만큼 이해도가 높아요. 현재 나오는 제품과 디자인이 같더라도 수동으로 작동하는 빈티지한 디테일을 중요시하죠. 실제로 전자시계는 중추인 IC 회로가 외부 환경과 충격에 파손되기 쉬워 수명이 최대 30~40년입니다. 반면 기계식 시계는 분해 청소 등 관리만 잘해주면 100년 넘게 사용할 수 있죠.” 4대 글로벌 경매사 중 하나인 필립스의 홍콩 지사 시계 부문 헤드 질 첸 역시 이와 비슷한 말을 했다. “한국에서 만난 컬렉터들은 대부분 자신이 어떤 시계를 좋아하는지 명확하게 설명합니다. 이런 태도는 장기적이고 성공적인 워치 컬렉션을 구축하는 데 필요한 핵심 가치 중 하나입니다.” 한국에 똑똑한 워치 소비자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관점이다.

관심이 높아진 만큼 수요도 늘었지만 온전한 빈티지 워치는 한정되어 있다. 결국 가짜 혹은 상태가 좋지 않은 제품까지 시장에 풀리게 되고, 따라서 구매업체의 감정과 수리, 신뢰도가 중요해졌다. 실제로 빈티지 워치 판매를 시작한 다양한 멀티 플랫폼들이 국제적인 수상 기록으로 증명된 명품 워치 감정사 및 워치 커스텀 전문가를 모시려 애쓰고 있다. 김문정 컬렉터는 “문제는 내부입니다. 부품이 너무 많이 교체되었거나, 모든 부품이 진품이더라도 침수되어서 사망하기 직전인 제품일 수도 있죠. 거래 시 시계 내부를 확인하지도 않지만, 안을 열어 보여드려도 일반인이 알아보기는 힘듭니다. 믿고 구매하고 수리와 점검까지 맡길 수 있는 업체 선정이 중요합니다. 할 수 있는 최선은 ‘외관을 보고 속지는 말자’인데, 아예 브랜드에서 출시한 적이 없는 디자인의 워치도 많습니다. 그런 건 고객이 주머니에서 꺼낼 때부터 알 수 있죠. 용두의 생김새와 위치, 다이얼의 크기 등 공부를 많이 하는 게 좋아요”라며 일반인은 가품을 확인하는 게 어렵다고 말했다.

모든 사람이 찾는 제품을 탐내기에는 재테크로도, 빈티지 워치의 유니크함도 놓치는 것 같아 그에게 제품 추천을 부탁했다. “요즘은 태그호이어의 모나코가 눈에 띄던데요? 모나코는 1969년에 출시한 모델로 볼드한 사각형 디자인으로 유명합니다. 특히 블랙 다이얼에 오렌지 컬러의 스리 핸즈 디테일을 더해 더욱 사랑받았죠. 재테크로는 독립 제작자가 만든 시계가 각광받고 있어요. 렉세프 렉세피가 설립한 아크리비아가 대표적입니다. 설립한 지 이제 막 12년이 넘었지만 렉세프 렉세피는 파텍필립에서 견습과 이력을 쌓은 독립 시계 제작자로, 전문성과 기술은 보장되죠. 혼자 처음부터 끝까지 도맡아 시계를 조립하고, 1년에 30개 미만의 시계를 생산합니다. 출시부터 폭발적인 인기를 얻어 앞으로 몇 년간의 예약은 이미 다 찼다고 들었어요.”

쉽고 빠른 답을 구하려고 시작한 빈티지 워치의 길은 결국 남들의 이야기보다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분명히 알아야 한다는 결말과 마주한다. 제대로 된 빈티지 워치를 갖고 싶다면 내가 원하는 모델이 어느 시기에 성행했는지, 어느 브랜드에서 어떤 특징을 담아 출시했는지 등 진짜를 알아보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근거 있는 고집으로 선택할 당신의 빈티지 워치는 어떤 스토리를 갖고 있을까?

Credit

  • 에디터 김영서
  • 사진가 배준선
  • 아트 디자이너 박경혜
  • 디지털 디자이너 오주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