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SHION

에이셉 라키와 이영애가 참석한 보테가 베네타의 새 컬렉션

불타버린 황무지에서 피어난 마티유 블라지의 새로운 비전.

프로필 by 김명민 2024.04.02
붉게 타오르는 듯한 메마른 공간, 곳곳에 조명처럼 선 선인장. 이를 배경으로 우아하고 정제된 보테가 베네타의 겨울 컬렉션이 차례로 등장했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마티유 블라지는 이번 시즌 컬렉션을 통해 ‘재생과 회복의 힘’을 전하고자 했다. “매일 비슷한 뉴스를 듣고 있어요. 이런 시점에서 기뻐하거나 축하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부활이라는 개념은 아름다워요. 땅이 불타고 난 뒤에도 꽃들이 피어나면 희망을 느낄 수 있잖아요. 그리고 그 꽃은 이전보다 더 강하게 자라겠죠.” 그는 이러한 스토리를 컬렉션 피스와 베뉴에 세심하게 표현했다.
컬렉션에는 ‘과거의 재탄생이자 미래를 위한 새로운 시작’이라는 의미를 담았다. 보테가 베네타에서 인트레치아토 기법이 탄생하기 전의 뿌리로 다가가 옷이나 액세서리의 본질, 목적이나 기능을 탐구하고 재해석한 것이다. 별다른 장식 없이 아우터의 실루엣을 강조한 룩, 심플한 저지 수트 등이 바로 그 예다. 보테가 베네타의 정수라 할 수 있는 장인 정신은 소재 자체로 표현했다. 여권 속 스탬프와 낙서를 겹겹이 쌓아 만든 프린트 드레스, 레이저 커팅한 마이크로 플리세로 사막의 꽃을 표현한 드레스, 가볍고 부드럽게 가공한 가죽 셔츠와 팬츠 등이 이를 잘 보여준다. 액세서리는 유행을 넘어 불변의 가치를 지닌 물건에서 영감받아 완성했다. 이를테면 할머니의 토트백, 엄마의 클러치백, 아빠의 옥스퍼드 슈즈 등 대대로 물려받아 쓰는 아이템 같은 것들 말이다.

컬렉션의 색감은 전체적으로 불과 밤을 닮았다. 카본 블랙과 번트 오렌지, 그레이, 올리브 드래브 등의 색이 주를 이룬 가운데 레몬, 스카이 블루, 레드 등의 색을 포인트로 사용해 황폐한 세계에도 여전히 빛과 희망이 존재한다는 의미를 담았다. 고대의 옷처럼 비대칭으로 드레이핑해 젬스톤으로 고정한 드레스와 길이가 다른 프린지 장식으로 꽃을 형상화한 드레스 역시 주목할 만한 룩이다. 거친 나무 무늬와 선인장 오브제가 돋보이는 베뉴는 이번 시즌 보테가 베네타의 메시지를 더욱 확실하게 드러낸다.

구조적인 실루엣의 스커트 룩을 입고 온 배우 이영애. 블랙 코트로 시크한 무드를 완성한 케이트 모스.
공간 디자인 역시 마티유 블라지의 솜씨로, 밤이 되면 찾아오는 황량한 풍경의 빛과 색감에서 영감받은 것이다. 선인장은 무라노 섬의 수공예 글라스로 만들었고, 쇼장의 의자로 쓰인 르 코르뷔지에의 LC14 카바농 스툴은 모두 수작업으로 일일이 불에 그을려 제작했다. 런웨이 룩부터 공간까지 세밀하고 일관성 있게 완성한 보테가 베네타의 2024 겨울 컬렉션. 이를 통해 마티유 블라지는 자신의 확고한 철학과 새 시대의 장인 정신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Credit

  • 에디터 김명민
  • 글 안주현
  • 아트 디자이너 민홍주
  • 디지털 디자이너 오주영
  • COURTESY OF BOTTEGA VENET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