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운동도 식이요법도 안 하잖아?”때는 다이어트 의지가 불타오르던 지난 3월, 다이어트 약을 6개월이나 먹고 있는데 살이 안 빠진다며 투덜대는 내게 친구가 일침을 가했다. 식이조절을 하고 운동도 열심히 할 거면 약을 왜 먹냐며 묻는 내게 친구는 답답하다는 듯 고개를 저었지만 둘 다 이렇다 할 결론은 내리지 못했다. SNS 피드에 매일같이 뜨는 압도적 조회 수의 다이어트 약을 보고 안 먹는 게 이상할 정도라는 생각이 들어 친구들에게 조사를 들어갔다. 웬걸, 아침 7시면 어김없이 헬스장으로 달려가는 ‘핫 보디’ 친구조차 “어? 나 저거 보라색 먹어봤어”라며 ‘약밍아웃’을 할 때는 어찌나 배신감이 들던지! 한때는 덴마크 다이어트, 원 푸드 다이어트 등 요행을 바라지 않고 ‘단식’의 어려운 길을 걸었건만, 이젠 손만 뻗으면 쉽게 약을 구입해 체중 감량의 꿈을 이룰 수 있다니? 이왕 먹는 약, 알고 먹자는 생각에 전문가를 찾았다.다이어트 약, 약이 아니라고?지난 9년 동안 FDA는 비만과 관련해 획기적인 신약 네 가지를 승인했다. 큐시미아, 벨빅, 콘트라브, 삭센다가 그 주인공. 이름이 낯설다고? 우리가 흔히 드럭스토어나 약국, 온라인 몰에서 접할 수 있는 약과는 태생이 다르기 때문. “다이어트 약은 크게 두 종류로 나눠지죠. 처방이 필요한 약과 필요 없는 약. 전자는 콘트라브, 벨빅 등의 의약품이고, 후자는 어디서든 구입할 수 있는 건강기능식품이죠. 즉, 우리가 일반적으로 여겨온 다이어트 약이 실은 ‘식품’이에요!” 김지영 약사의 설명이다. 의사의 처방이 필요한 의약품은 우리가 그토록 원해온 ‘먹기만 해도 살이 빠지는 약’이다. 하지만 웨일 코넬 메디컬 센터의 루이스 J. 애런 박사는 저서 <생체 다이어트를 변화시켜라>에서 ‘강력한 약일수록 체중 감량 효과에 비해 부작용의 위험이 크다’고 경고한다. 눈에 띄는 신체 변화를 느낄 수 있지만 정신 이상이나 사고력 저하, 혈관 질환이라는 하이 리스크를 감당해야 한다는 뜻. 비용 차이도 건강식품 한 달치가 의약품 한 알에 맞먹을 정도로 어마어마하다. 가격 때문이라도 의사들이 전자를 100% 처방하지 않을 정도니까. 그렇다면 우리가 흔하게 접하는 다이어트 약, 건강기능식품은 과연 안전할까? 인증된 경로를 통해 정식 유통되는 브랜드의 제품이라면 믿고 구입해도 된다. 그러나 SNS나 온라인 몰, 해외 직구 사이트 등 검증되지 않은 경로로 판매, 수입되는 제품이라면 꼼꼼하게 따져볼 필요가 있다. 정부의 감시 레이더는 약국 등 정식 유통처에 한정돼 법의 통제가 어렵기 때문이다. 안전한 다이어트 약을 고르는 가장 간단하고도 확실한 방법은 식약처 인증 마크를 확인하는 것! 생각보다 식약처 마크가 없는 시중의 제품들이 많다는 점에 놀라지 말 것. 다이어트 약, 정말 효과가 있는 걸까?건강기능식품을 합리적으로 의심해 봐야 할 때다. 쉽게 말해 ‘힘든 다이어트를 조금 쉽게 하기 위한 보조제’로 생각하면 된다. 린클리닉의 김수경 원장은 “이미 쌓여 있는 지방을 빼내는 것이 아니므로 살이 드라마틱하게 빠지거나 눈에 띌 정도로 보디라인이 변하지는 않아요. 그러나 지방 연소와 기초대사량 유지에 도움을 줘 다이어트 효율을 높이는 보조 수단 역할만큼은 확실히 하죠.”라며 효과를 제한한다. 즉, 평소처럼 생활한다면 보조제의 효과는 전혀 없을 것. 삼시세끼 든든히 먹고 약 한 알 챙겨 먹었다며 위안해 봐도 소용없다는 이야기. 콜로라도 대학 안슈츠 헬스 앤 웰니스 센터의 홀리 와이어트 교수도 이런 의견에 힘을 보탠다. “물론 일시적으로 다이어트 보조제의 힘을 빌릴 수는 있죠. 그러나 우리는 체중 조절을 위한 건강한 방법을 잘 알고 있어요. 약에 의존하기보단 스스로 조절하는 법을 택해야 해요. 다이어트 약은 어디까지나 보조적인 수단이지, 마법은 아니니까요.” 그렇다. 고전적인 해답에 실망했을지도 모르지만, 다이어트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식이요법과 운동이다.다양한 다이어트 속설들친구들에게 다이어트 약에 대한 궁금증을 모으는 덴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관심이 많은 만큼 후문도 다양했기 때문. 가장 흔하게 들은 건 “그거 먹다 끊으면 요요 온대!” 김수경 원장은 ‘전문 의약품’에 있어서 어느 정도 맞는 말이라고 말한다. “약물에 의해 기초대사 상태가 영향을 받아 체중 감량이 이뤄진 뒤, 갑작스럽게 약 복용을 중단하면 반발적으로 식욕이 증가할 수 있고, 이것이 요요 현상의 원인이 되죠.” 의사들이 점진적으로 양을 줄여가며 약 처방을 끊는 이유가 바로 이것. 그렇다면 ‘건강기능식품’의 경우는 어떨까? 약사 김지영은 이렇게 설명한다. “굳이 다이어트 식품 때문이라곤 할 수 없죠. 식사량을 줄여 다이어트에 성공한 뒤 원래대로 먹으면 요요가 오듯, 자연스러운 현상이죠.” 마냥 건강기능식품만 탓할 수 없다는 의미다.또 하나, 다이어트 약이 심장을 빠르게 뛰게 한다는 속설은 진실일까? 다이어트 약을 먹으면 우리는 ‘싸우기 전 상태’에 있게 된다. “식욕을 억제하는 건 몸을 예민하게 만드는 거예요. 경계 태세로 전환돼 혈관이 수축되고 소화기관과 근육 쪽으로 피가 쏠리죠. 전쟁이라는 긴박한 상황에서 배고프다는 생각은 안 들겠죠? 이런 이유로 식욕이 떨어지는 거예요. 편안한 상태는 그 반대라고 보면 되죠.” 우리 몸은 원래 상태로 돌아오려는 항상성이 있다. 그러나 약을 먹으면면 계속 ‘전투 상태’가 유지되고, 심장이 빠르게 뛰어 심할 경우 잠을 설칠 수 있다. 다이어트 약 섭취가 혈관 질환으로 연결될 수 있다는 속설도 여기에 기인한다. 다이어트 약의 주 소비층인 20~30대는 회복 능력이 빠르기 때문에 혈관 스트레스가 고혈압으로 발전하는 경우가 드물지만, 30대 이상이라면 전문의의 경고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갱년기 이후 여성이나 노인, 성인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은 다이어트 약 처방에 신중해야 해요. 갱년기 이후 여성들은 당뇨나 고혈압, 골다공증 등의 질환에 쉽게 노출될 수 있고, 평소 고혈압이나 심장 질환이 있는 사람은 다이어트 약이 해당 질환을 악화시키거나 부작용을 유발할 수 있어요.” 처방이 필요 없는 건강기능식품도 방심은 금물이다. 또 걱정스러운 것은 분별력이 부족한 10대들의 섭취. 약사 김지영은 “키 성장이 멈출 수 있다”고 단호하게 경고한다. 중추신경을 흥분시키는 다이어트 약의 성분이 칼슘과 마그네슘 같이 성장기에 필요한 성분들까지 체내로 빠져나오게 하기 때문이다. “성장기가 청소년기에만 해당된다고 잘라 말하긴 어렵지만 칼슘과 마그네슘이 많이 필요한 시기이니 약 섭취는 피해야 해요.” 이 말에도 끄떡없는 10대들에게는 이 사실을 밝히고 싶다. “청소년과 성인의 신체 조건과 상태는 다를 수밖에 없어요. 대부분의 다이어트 약의 임상 데이터는 성인을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얻은 것이에요.” 린클리닉 김수경 원장의 조언. 10대는 식이요법과 운동만으로도 충분히 살을 뺄 수 있는 건강한 나이. 이른 욕심은 접어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