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 달라진 춤꾼들의 리얼 토크 | 엘르코리아 (ELLE KOREA)

송글송글 땀이 맺힌 무용수의 탄탄한 몸, 그 몸 구석구석에서 표출되는 다양한 감정. 살맛나게 살고 싶다면 춤을 추시길. 춤 때문에 인생이 달라진 춤꾼들의 리얼 토크. 온몸으로 이야기를 들려주는 그들이 표정 풍부한 손끝으로 말을 건넨다. 같이, 춤추실래요. :: 임동진,엄재용,김재덕,김병건,박성희,열정적인,아름다운,예술적인,엘르,엘라서울,엣진,elle.co.kr :: | :: 임동진,엄재용,김재덕,김병건,박성희

부모님 손 잡고 국립극장 대극장 맨 뒷자리에서 봤던 발레는 이었다. 어린 클라라가 꿈 속에서 훤칠한 숙녀가 될 때, 세상은 홍해처럼 양쪽으로 갈라졌다. 신세계의 문이 열렸다. 나는 차이코프스키를 듣고 발레 이야기 모음집을 읽으며 이사도라 던컨의 일대기 한 줄에 일희, 그 다음 줄에 일비했다. 곧게 뻗은 팔과 다리, 우아하게 흐르는 목선, 금방이라도 와르르 쏟아질 듯한 큰 눈을 깜빡이며 왕자님에게 안기는 비운의 여주인공. 발레 예찬을 하자는 게 아니다. 중요한 건 내게 춤은 여기까지였다는 거다. 발레에만 국한되는 얘기가 아니고 나만의 개인적인 경험담도 아니다. 많은 이들에게 춤은 ‘보는 것’이지 홍해가 스무번을 열린대도 ‘하는 것’은 아니다. 미술, 음악, 운동. 사람들은 다양한 것들을 취미로 즐기지만 그게 춤인 경우는 많지 않다. 우리는 춤 앞에서 유독 작아진다. 헬스장은 가다 말다 끊임없이 문턱을 드나들어도 무용 학원은 문을 열어볼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원래 무용은 아기 때부터 시작해야 돼. 춤은 다른 거 하다가는 못하는 거야. 어떻게 내가, 지금, 감히.무용은 몸을 단련시키고 숙련시키는 장르다. 시작하는 시기도 이르고 한번 길을 정하면 춤 외의 것은 쳐다보지도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건 사실이다. 하지만 조금 다른 춤 인생을 살아온 사람들이 있다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누군가는 한때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드라마의 아역 주인공이기도 했고, 아이스하키 선수이기도 했다. 스트릿에서 공연장으로 무대를 바꾼 이도 있고 쪽진 머리로 한복을 입다가 화려한 원색 의상까지 먼 길을 온 이도 있다. 어떤 이에게는 무용수, 안무가 뿐 아니라 뮤지션이라는 이름도 있다. 그들은 중요한 순간에 인생의 행로를 기꺼이 바꾸기도 했고 인생을 춤에 걸겠다는 과감한 결정을 내리기도 했다. 그리고 춤에 미쳐 지금의 자리까지 왔다. 왜? 대답은 뻔하다. 춤이 좋으니까. 카메라 앞에 선 그들은 자신들처럼 춤에 인생을 걸고 인생의 행로를 바꿀 과감한 선택을 하라는 무리한 조언은 하지 않는다. 어떤 이에게 춤은 인생의 전부일 수 있지만 또 다른 어떤 이에게는 별 의미가 없을 수도 있는 게 당연한 거다. 그들이 각자의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하고 싶은 말은 그저 ‘일단 시작’해보라는 것. 그들이 ‘일단 시작’해보지 않았다면 지금의 그들은 없었을테니 말이다. 오사카 클럽에서 아저씨가 팝핀을 하고 아주머니들이 발레나 밸리댄스 학원에 등록한다. 그 이유가 궁금하다면 영화 에서 춤추던 야쿠쇼 코지의 표정을 떠올려보길. 춤이 그런 거란다. 그저 즐기는 것, 한번 맛보면 인생이 ‘살맛’ 나는 것. 한국밸리댄스협회 박성희Belly Dance발레로 시작해 한국무용을 전공했다. 스포츠댄스나 플라맹고도 배워봤다. 그렇게 먼길을 돌아 밸리댄스를 만났다. 힘들게 온 만큼 놓치고 싶지 않다.어릴 때부터 무용을 했다고 들었다. 고3때까지 발레를 했다. 그러다 발목도 다치고 집안 영향도 있고 해서 한국무용으로 돌렸다. 우리 집이 한국무용 집안이다. 전통무용단에서 꽤 오래 있었는데, 그것도 나랑은 잘 안 맞더라. 발레나 한국무용을 하다가 밸리댄스를 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처음에는 닷새 나가고 관뒀다. 발레나 한국무용 어디에도 배꼽 내놓고 엉덩이 흔드는 건 없다. 나름 ‘무용’이란 걸 하던 사람이라는 자존심 때문에 적응을 못했다. 왜 다시 시작했나. 교통사고가 났다. 목과 허리가 너무 아프더라. 6개월을 입원하니 살도 찌고 우울증도 생기고. 안 되겠다 싶어서 다시 갔다. 전에 돈 낸 것도 아깝고. 하하. 하루에 딱 3시간 밸리댄스할 때만 안 아프더라. 목이나 허리에 무리를 주지 않으면서 운동이 되니까. 재활 목적으로 시작한 게 일이 커졌다. 밸리댄스라는 게, 느는 게 눈에 보인다. 배우는 재미가 생기니까 강사 자격증만 따보자 싶고 자격증 따니까 대회만 한번 나가보자 싶고. 첫 대회에서 덜컥 상을 탔다. 30년 넘게 무용을 했어도 어디서 상을 타긴커녕 칭찬 들은 기억도 별로 없는데. 하하. 이건 내가 진짜 잘 할 수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이 다른 춤보다 밸리댄스를 편하게 시작하는 것 같다. 밸리댄스는 단순한 동작 몇 개가 전부다. 따라하기도 쉽고 알려주기도 쉬워서 잘하든 못하든 일단 해보게 된다. 그래서 동네 문화센터 같은 데 발레는 없어도 밸리댄스는 다 있는 거다. 보기에 재밌기도 하고. 밸리댄스의 장점은? 동작 몇 개로 수천 수만 가지 작품을 만들 수 있다. ‘꽃’, ‘무조건’ 이런 노래에도 맞출 수 있고 수준에 맞춰서 난이도 조절도 가능하다. 남들 8번 흔들 때 난 4번 흔들고 이러면 되니까. 파트너나 넓은 공간도 필요없고 쪽거울 하나만 있으면 된다. 밸리댄스로 해보고 싶은 게 있다면? 밸리댄스는 예술의전당 같은 데서 공연을 못한다. 그런 데서 공연할 수 있도록 밸리댄스를 예술의 경지까지 끌어올리고 싶다. 3년 쯤 뒤에는 라스베가스나 이집트 세계대회에 나갈 생각이다. 김병건Poppin한때 좀 날리던 팝퍼 ‘건’. 하지만 요즘 그는 ‘배우 김병건’이라는 조금 낯선 이름으로 불린다. 스트릿에서 자유롭게 춤출 때도 좋았지만, 무대에 서면서 그의 꿈은 조금씩 커지는 중이다.팝핀이 정확히 뭔가. 스트릿 댄스의 한 종류다. 우리끼리 말로 근육을 ‘튀긴다’고 하는데, 근육을 수축시켰다 이완시켰다 하면서 튕겨내는 거다. 거기에 소위 ‘웨이브’나 ‘롤’처럼 다른 스타일 댄스를 섞고. 팝핀을 시작한 계기는? 어릴 때부터 가수 따라하길 좋아했다(장기자랑 때 ‘현진영과 와와’의 와와 1이었다). ‘터보’의 김정남이 추던 춤이 진짜 멋지더라. 혼자 따라하다가 2001년에 일본에서 팝핀을 배워온 사람이 스쿨을 열어서 거기 들어갔다. 수상경력이 꽤 화려하던데. 잘 나갔다. 하하. 2004~2006년이 전성기였다. 솔로 배틀 나가면 우승 아니면 준우승. 스트릿에서 뮤지컬 무대로 간 게 독특하다. 친구들이 이런 비슷한 공연을 하길래 보러 갔는데, 멋있더라. 내가 하면 참 잘하겠다 싶어 오디션을 봤다. 을 하고 전과 달라진 게 있다면. 은 일종의 댄스 뮤지컬이다. 연기도 할 줄 알아야 된다. 여기서 연기를 기초부터 제대로 배웠다. 지금은 연기에 대한 욕심이 춤에 대한 것 못지 않다. 춤추다가 연기하는 게 쉽지 않았을듯. 은 대사가 거의 없다. 몸으로 표현하는 건 자신 있다. 대사 치는 건 앞으로 더 배워야지. 춤은 오래 춘 사람 못 따라잡는다. 연기도 마찬가지겠지만, 늦게 시작해도 가능성이 있는 것 같다. 한번은 브로드웨이 관계자가 와서 ‘조커가 누구냐’고 물어봤다더라. 얘기가 잘 돼 브로드웨이 공연도 갔다. 팝퍼로서 전성기 때 를 시작했다. 포기해야 되는 것들이 아쉽진 않았나. 내가 속한 팝핀 팀 ‘비트벅스’ 동생들이 날 많이 찾았는데 많이 못 챙겨준 게 미안했다. ‘병건인 요즘 연기하잖아’ 식의 얘기가 들리면 서운한 건 사실이다. 가끔은 배틀 나가서 나 아직 살아있다고 보여주고도 싶고. 그래도 후회한 적은 없다. 연기라는 또 하나의 길을 만났으니까. 사람들이 발레나 현대무용을 어려워하는 반면, 스트릿 댄스는 ‘노는 애들 춤’ 정도로 쉽게 보는 경향이 있지 않나. 뭐, 애초에 길에서 나온 댄스니까 쉽게 볼 수도 있겠다. 그만큼 자유롭고 편안한 거라 생각한다. 앞으로의 꿈은? 세계 최고 팝퍼로 레벨업하기. 막연하지만 아직 시간은 많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팝퍼들도 40대다. 연기도 세계 최고가 되면 좋겠다. 하하. 당장은 이 세계적으로 어디까지 커갈지, 내가 이걸 통해서 얼마나 성장할 수 있을 지가 더 궁금하다. LDP무용단 김재덕Modern Dance그는 많은 이름을 갖고 있다. LDP 무용단(이하 LDP)의 단원, 안무가, 작곡가, 더 나아가 ‘김재덕 프로젝트’의 예술감독. 국내외에서 인정 받고 있는 전방위 아티스트를 만났다.현대무용의 특징이 뭘까. 다른 무용에 비해 시대에 따라 유연하게 변하는 것 같다. ‘현대무용’의 범위 자체를 스스로 정할 수 있다. 개인적인 가치관도 마음껏 반영할 수 있고. 무용, 특히 현대무용을 어렵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확실히 난해한 데가 있다. 그게 내가 개인 작업을 계속하는 이유다. 쉽고 대중적인 현대무용 공연을 만들고 싶다. 김재덕 프로젝트의 공연은 어떤 건가. 적당한 단어를 아직 못 찾아서 일단 ‘무브먼트 퍼포먼스’라고 부르고 있다. 내가 만든 음악이 들어가고, 춤이라기보다 움직임을 보여준다. 라는 작품은 내가 생각하는 현대무용 뮤지컬인데, 뮤지컬 하는 사람들이 뮤지컬과도 다르다고 하더라. 작업은 어떻게 이뤄지나. 음악을 만들면서 안무를 같이 짠다. 그래야 음악과 내 움직임이 만드는 이미지가 유기적으로 결합된다. 음악을 직접 만든다는 게 특이하다. 원래 있는 노래에 맞춰서 안무하는 것보다 시간이 몇 배로 걸리지만 성취감이 장난 아니다. 최종적으로는 구석구석 모든 곳에 내 영혼이 속속들이 들어가는 작품을 만들고 싶다. 일종의 종합예술 작품. 사실 디지털 앨범도 낸 적 있다. 말아먹었지만. 하하. LDP에 입단한 이유는? 어릴 때부터 들어오고 싶던 곳이었다. LDP의 공연은 실험적이지만 정통적인 기반도 확실하다. 테크닉이 탄탄하게 다져진 무용수들로만 구성돼 있다. 한편으로는 선배들과의 교감이란 것도 느껴보고 싶었고. 학부 때는 학교에 잘 안 갔거든. 하하. LDP에서의 김재덕과 김재덕 프로젝트의 김재덕은 뭐가 다른가. LDP 공연을 할 때는 철저하게 무용수 입장에서 작품을 이해하고 표현하려고 한다. 형들에게 의지하고 배우는 것도 많고. 형들은 내 출발점이 춤이라는 걸 잊지 않게 해준다. 반면 김재덕 프로젝트의 나는 내 관념을 작품으로 표현하는 아티스트다. 그만큼 책임감이나 부담도 크다. 며칠 뒤 공연이 있다고. 라는 작품이다. 음악의 비중이 특히 큰데, 퓨전 국악 그룹 훌이 내 곡을 연주해준다. 꼭 와라. 유니버설발레단 엄재용Ballet선화예술학교, 워싱턴 키로프 아카데미, 유니버설발레단 입단. 한국 발레의 엘리트 코스를 착착 밟아온 대한민국 최고의 발레리노가 입단 10년째를 맞았다.에 출연했더라. 내가 신청했다. 신청할 땐 다들 안 될 줄 알고 건성으로 ‘네네, 해보세요’ 하더니, 막상 되니까 깜짝 놀라더라. 하하. 발레단이 예능에 나오다니 의외다. 발레하는 사람들에 대한 편견을 깨고 싶었다. 우리도 라면도 먹고 할 거 다 한다. 그리고 남자 무용수들을 알리고 싶었고. 발레는 여자가 하는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아직 많으니까. 아이스하키 선수였다던데. 운동을 워낙 좋아한다. 초등학교 ‘특활’ 시간에 처음 해보고 어쩌다보니 중학교 때까지 갔다. 그런데 선수 생활이 힘들더라. 스트레스도 많이 받고 수업도 거의 못 듣고. 아이스하키에서 발레는 좀 반전이다. 어머니가 발레 교수다.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봐온 거라 어느 순간 하고 싶어진 것 같다. 결정적인 계기는 바르시니코프의 . 남자가 춤을 춘다는 게 저런 거구나, 했다. 은퇴 공연도 이면 좋겠다. 시작이 이었으니까. 여전히 운동을 좋아하나. 발레와 운동을 맞바꾼 셈이다. 요즘도 운동한다. 다치면 발레를 못 하니까 몸 사리면서 한다. 농구, 골프, 당구, 공놀이는 다 좋은데 특히 축구. 잡지와 인터뷰한 적도 있다. 정기구독자를 무작위로 선정해서 인터뷰하는데 뽑혔다. 박지성 선수가 싸인한 티셔츠 들고 사진도 찍었다. 하하. 3월 말에 공연을 앞두고 있다. 지그프리트로 데뷔했으니 나한테는 각별한 작품이다. 데뷔날이 또 생일이었다. 다른 캐스팅이 부상을 당해서 우연히 그날 무대에 서게 됐다. 데뷔 후 제일 많이 했던 작품이기도 하고. 그동안 지그프리트는 어떻게 달라졌나. 연기력의 차이다. 10년 전엔 과연 내가 이걸 해낼 수 있을까 덜덜 떨면서 올라갔다. 테크닉을 신경쓰느라 연기가 부족했다. 지금은 편안하게 몰입해서 연기한다.클래식 발레와 컨템포러리 발레, 어떤 걸 더 좋아하나. 클래식 작품에서는 정확한 테크닉을 구사하고 캐릭터를 완벽하게 소화했을 때 성취감을 느낀다. 컨템포러리 때는 근육이 터질 듯한 그런 느낌이 있다. 막 폭발할 것 같고. 설명은 못하겠다. 나만 아는 느낌이다. 하하. 유니버설에서 하는 컨템포러리 발레 캐스팅엔 절대 안 빠진다. 꼭 해보고 싶은 작품은? 안무가 지리 킬리안의 모던 발레. 클래식은 이나 처럼 남성적인 작품. 김영희 무트댄스 임동진 Korean Dance한국 전통무용을 기반으로 모던하고 세련된 춤을 만들어내는 이들이 있다. ‘김영희 무트댄스’는 그 대표격인 무용단. 이곳에서 그녀는 오늘도 자부심을 갖고 춤춘다.의 몽실이였다고 들었다. 맞다. 하하. MBC 어린이 합창단이었는데, 마침 그때 오디션 중이었다더라. 감독님께서 오디션에서 마음에 드는 친구를 못 찾았는지 합창단 원서를 보고 부르셨다. 재밌었나. 11살이었다. 아무것도 모르니까 시키는 대로 했다. 새롭기도 하고 즐겁고 그랬다. 소중한 추억이다. 꽤 큰 경력인데, 연기를 포기하는 게 아깝지 않았나. 포기가 아니었다. 애초에 연기에 별 생각이 없었으니까. 계속하려니 부담스럽고 거부감이 들더라. 한국무용은 달랐다. 친구 따라 시작했는데, 부담은 커녕 하나하나 다 너무 재미있었다. 너무 좋아서 이게 잘하는 건지 못하는 건지도 모르고 그냥 열심히 했다. 한국무용이 왜 좋았나. 그냥 끌렸다. 한이라든가, 그런 한국적인 정서가 나랑 잘 맞는 것 같다. 발레는 싫었다. 왕관 쓰고 공주같은 옷 입고. 잠시나마 연기를 했던 게 춤에 도움이 됐나. 사실 잘 모르겠다. 마임 수업을 들을 땐 큰 도움이 됐는데. 둘 다 감정을 표출한다는 공통점이 있으니 간접적으로 도움이 됐을 것도 같다. 김영희 무트댄스에 어떻게 들어갔나. 1997년 고3때 첫 정기공연을 봤다. 그때 여기 꼭 가야겠다, 김영희 교수님께 꼭 배우고 그분 작품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2001년 겨울에 입단해서 2002년 처음으로 무대에 섰다. 무트댄스란 어떤 건가. ‘무트’의 의미가 여러 가지 있지만 우선 우리말로 ‘뭍’이란 뜻이다. 땅. 한국인의 근원이 땅이기도 하고 한국무용도 워낙 땅 지향적이다. 근원을 잃지 않겠다는 거다. 호흡과 기본 동작을 한국무용에서 가져와 현대적으로 변용하는 춤이다. 호흡이란 게 어떤 걸 말하는 건가. 단전호흡 비슷하다. 숨을 배 아래서부터 끌어올려서 완전히 들이쉬고 내쉬는 연습을 하면 호흡만으로도 전신의 근육이 이완된다. 호흡이 손끝까지 전달되면서 몸이 충분히 풀리면 몸에 힘을 주지 않아도 에너지가 전달된다. 실제로 관객들에게 에너지가 전달되나. 사람들은 무용 공연이 어렵다고 하는데. 물론 무용은 말 대신 몸으로 얘기하는 거니까 이해하기 힘들 수도 있다. 그런데 기본적으로는 그냥 보면서 즐기지 못해서 어려운 거 아닐까. 예술이라는 건 이성보다는 감정으로 받아들이는 건데, 동작 하나하나에서 일일이 의미를 찾고 분석하려면 힘들다. 있는 그대로 보고 즐기면 좋겠다. 연기를 다시 하거나 다른 춤을 춰보고 싶지는 않나. 지금 최대 관심사는 무트댄스에서 훌륭한 무용수가 되는 거다. 기억에 남는 해외 공연은? 이란 공연. 무대 위에서도 히잡을 쓰고 몸 선이 드러나지 않게 타이즈까지 껴입었다. 공연 전에 심의까지 받고. 고산지대라 조금만 움직여도 힘들었다. 그리고 대만 공연. 무대에 딱 올라갔는데, 관객보다 무대 위에 있는 우리가 머릿수가 더 많은 거다. 하하. 우리끼리 무지 웃었다. 알고 보니, 비 때문이었다. 대만 사람들은 비가 오면 모든 약속을 취소하고 아무데도 안 간다더라. 다음 날은 비가 안 와서인지 많이들 왔다.* 자세한 내용은 엘라서울 본지 4월호를 참고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