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지한 혁수씨 | 엘르코리아 (ELLE KOREA)

의외로 권혁수는 진지했다. 드라마 <미씽나인>으로 모처럼 외출에 나선 그와 나눈 자정의 수다 ::권혁수,배우,미씽나인,드라마,SNL,SNL코리아,개그,콩트,분장,인터뷰,화보,권혁수인터뷰,조검사,스타,엘르,elle.co.kr:: | 권혁수,배우,미씽나인,드라마,SNL

서른두 살이 됐다 해가 바뀔 때마다 기분이 좋고 흥분된다. 해를 거듭할수록 내 안에 무언가 쌓이고, 정립돼 가는 것 같거든. 더 많이 경험하고, 아프고, 사랑할수록 이제껏 이해할 수 없었던 상황과 글을 이해하게 되고, 그런 경험치는 연기력과 직결되니 말이다. 2016년은 배우 권혁수에게 중요한 해였다 내 예상보다 훨씬 빨리 큰 관심도 받고, 상도 받았으니, 감사할 따름이다. 2017년은 정극으로 활동을 시작한다. 비행기 불시착과 연루된 사건을 다룬 드라마 <미씽나인> 첫 방영일이 1월 18일이다 맞다. 그리고 이것이 올해 첫 인터뷰다. 하하. <미씽나인>은 현재도 촬영이 한창이다. 제주도와 서울을 오가며 찍는데, 나는 서울 촬영에만 참여한다. 내 역할이 이야기의 중추신경은 아니거든. 초반에는 존재감이 좀 미미하다. 사건을 파헤치는 조력자 역할인 만큼 중반부를 지나며 비중이 커진다. 검사 역할인 양동근과 함께하는 조검사 역할인데, 수트를 입고 나오나 맞다. 늘 수트를 입고 안경을 끼고 나온다. 음, 내가 동안인 줄 알았는데…. 하하하. 전문가가 꾸며주시니 어울리더라. 양동근과는 이번 작품으로 첫 호흡을 맞춘다 사실 우리에겐 드라마 같은 인연이 있다. 내가 <SNL 코리아>(이하 <SNL>) 데뷔 무대를 마친 지 채 열흘이 지나지 않아 게스트로 양동근 선배가 출연해 함께 야외 촬영을 했다. 그때 그가 정말 멋있어서 “열심히 해서 나중에 출연하시는 드라마 오디션을 꼭 보겠습니다!”라고 수줍게 고백했는데, 그걸 이번 촬영장에서 처음 만난 날 언급해 주더라. 신이 나 바로 술자리를 가졌지.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지난가을이었다. 막걸리를 탁! 개인적으로 양동근을 진지한 코믹함의 대가라고 생각하는데, 권혁수가 추구하는 개그 코드도 맥락이 비슷한 느낌이다 음, 최근 내가 좀 탈선하긴 했다. 너무 분장 쇼가 돼서. 나는 양동근이라는 배우가 가지고 있는, 진중함과 진솔함을 기반으로 뿜어져 나오는 엉뚱함이 좋다. 아마 굉장히 많은 고민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나 역시 비슷한데, 콩트 하나를 할 때도 생각이 많다. 누군가는 콩트를 가볍게 취급할 수도 있지만, 사실 콩트라는 게 연기력 부족이 탄로 나기 쉬운 장르다. 그래서 감독이나 PD들과 소통을 많이 하는데 ‘진중하게 연기할수록 더 재미있다’는 평가를 많이 받는다. 이번 역할은 불의한 거대 권력에 맞서는 정의로운 인물이다. 지금과 같은 시기에 그 같은 역할을 소화한다는 건 비행기 추락 사고로 사라진 이들의 행방을 좇는 동시에 한 사람, 한 사람이 가진 기억의 조각들을 짜맞추며 거짓과 진실을 찾아간다는 내용 자체가 시국과 많이 겹친다. 사실을 염두에 두고 시작한 건 아닌데 말이다. 이야기가 진지하고 무겁다 보니 <운빨로맨스>와는 많이 다르겠다 <운빨로맨스> 촬영장에서 내 별명이 ‘촬영장 깔깔깔’이었다면 할 말 다했지. 방송에 나오지 못한 어마어마한 양의 애드리브가 있었다. 류준열이라는 동갑내기 배우와 급속도로 가까워지며 더 그랬지. 왜, 동갑이 주는 힘이 있지 않나? 친구가 있고, 스토리도 유쾌한 드라마다 보니 촬영장에서 늘 즐거웠다. 어떤 면으로는 <SNL> 보다 더. 류준열과는 요즘도 가깝게 지내나 물론이다. 며칠 전에는 갑자기 나오래서 갔더니, 영화표를 끊어놓고는 다짜고짜 상영관으로 끌고 들어가더라. 불이 바로 꺼지길래 제목이라도 알려달랬더니 “영화라는 건 뭔지 모르고 봐야 된다”고 하더라. 예상한 것과는 달리 꽤 낭만적인 관계네 하하. 그 영화가 힘든 유년기를 보낸 주인공에 관한 내용이었는데, 어딘지 내 이야기가 투영된 듯해 감정이 요동쳤다. 힘들고 어렵게 사는 와중에도 정의로움을 잃지 않는 주인공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 올해 첫 영화였는데, 오늘까지도 많은 장면과 대사가 문득문득 떠오른다. 오랜만에 ‘이래서 영화를 보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충격적이었다. 아, 제목은 <나, 다니엘 블레이크>다. 류준열이라는 친구가 동료로서 많은 자극이 될 것 같다 자극보다 힘이 되는 것 같다. 운 좋게 나는 주변에 좋은 친구이자 배우인 이들이 많다. 그러다 보니 속 편하게 연기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나눈다. 그러지 않을 것 같지만 꽤 진지하게. 힘들거나 즐거운 부분, 그날그날 에피소드 같은 것들도 공유하고. 최근 본 영화는 알았고 최근 읽은 책은 무엇인가 여행을 좋아하는데, 못 간 지 좀 됐다. 대리만족이라도 하려고 이병률 작가의 여행 산문집을 읽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심적으로 변화가 생겼다. 원래 여행할 때 사진 찍는 것보다 ‘당장 눈앞에 있는 것을 오롯이, 집중해서 보고 느끼겠다’는 마음이 강했거든. 산문집의 사진들을 보고 있자니 문득 사진을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 <원나잇 푸드트립> 시즌 2에 발탁돼 곧 유럽을 갈 것 같아서 더 그런 가보다. 프로그램과 잘 어울린다. 미식가라면서 먹는 걸 즐기고, 좋아한다. 원래 자기 전에 먹을 것 생각하면 돼지라던데, 그럼 난 100% 돼지다. 하루도 음식 생각을 거른 적 없다. ‘내일 뭐 먹지?’라는 생각만으로도 행복하다. 최근 꽂힌 메뉴가 있나 국물떡볶이! 요즘 일정상 인천 집에 자주 못 가고, 회사에서 생활하곤 하는데 강남구엔 국물떡볶이 집이 정말 많다. 집마다 특색이 강해 우열을 가리긴 힘들고, 하나씩 정복해 가고 있다. <수요미식회>에서는 “아침마다 샌드위치를 먹고, 커피를 마신다” 했다 서구화된 입맛의 끝판 왕 같지? 샌드위치가 아니더라도 견과류와 시리얼 혹은 도넛을 먹는다. 저녁엔 이성적으로 먹어야 하니까 점심은 헤비하게 꼭 먹고 싶은 메뉴로! 사실 고등학교 때까지 쭉 100kg대일 정도로 덩치가 컸다. 어떻게 다이어트했나 어릴 때부터 늘 연기를 꿈꿨다. 비겁하게 외모에 자신이 없다는 이유로 ‘연기로 내가 입시 시험을 붙을 수 있을까?’ 이런 바보 같은 생각을 했다. 물론 키가 크고 잘생기면 유리할 수 있지. 그런데 그건 너무나 부차적인 요소란 걸 어릴 땐 몰랐다. 일단 부딪혀보자는 마음으로 육중한 몸을 이끌고 시험을 봤는데, 덜컥 예대에 붙었다. 대학교 가서 보게 될 오디션 걱정이 돼서 습관적으로 다이어트를 시작했다. 간장 없는 만두를 먹고 소금 안 넣은 설렁탕을 먹는 건 그때부터 이어져온 습관이다. 아니 종전에 국물떡볶이 얘기를 해 놓고 아! 그런 건 무조건 한 끼만. 솔직히 살 빼기 전엔 내가 스스로 긁지 않은 복권인 줄 알았다. 살 빼면 훨씬 잘생길 줄 알았지. 이제 안다. 꽝이었다는 걸. 조금 좋게 말하면 9등 정도? 그래도 나름 귀엽다고!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건, 자신감과 끼가 있기 때문이다. <SNL> 최고의 화제 코너 ‘더빙극장’을 볼 때마다 혀를 내두른다 과찬이다. 더빙극장이 반응이 좋은 건 스태프들 덕이다. 오래 함께한 팀워크가 어마어마하거든. 그리고 배우가 자신감 있게, 확신을 갖고 해야 촬영이 빨리 끝난다. <카드캡터 체리>를 그렇게 소화할 수 있는 이가 대한민국에 몇 명이나 될까 하하하. 그 편은 정말 힘들었다. 원래 애니메이션에 대한 애정이 컸나 아니다. 딱히 기억에 남아 있는 만화가 없을 정도로 일찍 만화 시청을 접었다. 더빙극장을 하면서 오히려 더 좋아하게 됐다. 캐릭터의 경우 PD나 작가들과 상의하는 부분이 크고, 시청자 추천도 많이 받았다. 사실 저작권 문제로 무산된 것도 많다. 초반엔 다루는 만화가 지나치게 세대 편중적이란 말도 있었다. 최신작들을 다루려 했지만 쉽지 않더라. 제작진도 내 또래, 조금 손위 나이대가 대부분이거든. 그러다 보니 마지막을 대망의 <달려라, 하니>가 장식했지. 가발과 의상 등은 직접 준비하나 아니다. <SNL>은 ‘한 주의 기적’을 만드는 팀이다. 월요일에 회의하고, 화요일에 결정하고, 수요일에 준비해서 목요일 온종일 촬영한다. ‘호박 고구마’ 나문희 선생님이 역시 ‘인생캐’겠지 나문희 선생님 캐릭터는 내가 이름을 알릴 수 있게 된 캐릭터라 마음이 찡하다. 지금도 길에서 많은 사람들이 나를 보면 “호박 고구마!” 이렇게 외친다. 그럼 나도 “호박 고구마!”로 응답하고. 우리만의 외계어처럼 그들은 ‘잘 보고 있어요, 파이팅!’이라는 의미를, 나는 ‘감사해요!’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거지. 인물들의 포인트를 기가 막히게 잡아낸다. 평소 사람들을 열심히 관찰하나 보다 일부러 ‘내가 저 사람을 관찰하겠다!’ 결심하고 행동하는 건 아닌데, ‘정성호’라는 인간문화재 같은 장인 곁에서 오래 함께한 게 영향이 있는 것 같다. 전수자처럼 이어받게 된다. <SNL> 크루로서 ‘오늘 내가 못 웃기면 어쩌지?’ 이런 부담감은 없나 에이, 그랬으면 5년씩 못 버텼다. 어차피 신동엽, 안영미 같은 선배들이 계시지 않나. 거기서 내가 그런 식으로 생각하면 계란으로 바위 치는 느낌이다. 아, 그리고 <SNL> 이야기를 하니까 생각났는데, <엘르>를 미용실에서 자주 봤다. 나는 <SNL>이 굉장히 변화에 민감한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하거든. <엘르> 기사 문구나 사진, 이런 걸 통해 트렌드를 터득했다 지난가을에 쓸쓸하다는 인터뷰를 했던데 요샌 어떤가 그건 뭐랄까, 일종의 ‘제철 고독’ 같다. 가을에만 찾아오는. 사실 그 요상한 기분을 좀 좋아해서 2017년의 가을을 기다리는 중이다. 하하. 새로운 가을이 찾아올 때까지 계획하고 있는 일들도 굉장히 많고. 사적인 새해 계획이 있다면 일단 2월에 서울로 독립할 예정이다. 쉴 때는 주로 뭐 하나 크로스핏을 비롯해 운동하는 걸 좋아한다. 최근 바빠서 걸렀더니 몇 개월 만에 5kg 이상 살이 쪘다. 여유가 생기면 계절 변화도 만끽해야 하고, 섭섭하게 했던 지인들도 챙겨야 하니, 이래저래 정신없다. 성격이 즉흥적이기까지 해서 혼자 야밤에 자전거 타러 가고, 이자카야 가서 밥 먹고, 그런다. 최근 인터뷰에서 휴대폰을 놓고 산책을 나가기도 한다는 구절을 보고 연애 중은 아닌가 보다 싶더라 맞다. 헤어진 지 13개월쯤 된 것 같다. 요즘은 ‘내 시간’을 이해하고 존중해 주거나 혹은 그녀 역시 자기 시간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을 만나고 싶다. 보다 의연한, 어른의 연애를 하고 싶다. 상대방이 너무 힘들어 보일 땐, 꼬치꼬치 묻지 않고 품어줄 수 있는 그런 연애 말이다. 술을 즐기는 편인가 하하하. 매일 마신다. 와인, 코냑. 사실 주종을 가리지 않는 편이다. 주량은 폭음하는 적은 거의 없고 매일 그날 마음이 동하는 주종을 골라 소량 마신다. 많이 마실 때가 와인 반 병? 보통 와인 한두 잔이나 코냑 한 잔 정도다. 1인 가구가 되면 더 마실 텐데 혼술가이자 ‘즐술가’이니 그렇겠지? tvN 드라마 <혼술남녀> 봤는지 물론! 재미있더라. 시즌 2가 나온다면 꼭 도전해서 리얼한 혼술의 진가를 보여주고 싶다. <라디오스타> 출연했을 때 보니, 말하는 대로 되던데 나의 ‘말하는 희망노트’ 말하는 건가? 그래서 더욱 좋은 말, 즐거운 얘기만 하면서 살자는 다짐을 하게 되더라. 그럼 다시 한 번 말해야겠다. <혼술남녀> 시즌 2, 내가 들어가야지! 사람들이 권혁수를 ‘어떤’ 배우로 기억하면 좋겠나 아직 뭐든 도전할 때라 일단 드는 생각은 ‘뭐든 잘하는 배우’로 기억되고 싶다는 거다. 음, 말하고 나니 더 노력해야겠다. 인터뷰하는 걸 좋아하는 건 지금처럼 대화하면서 내가 깨닫지 못했던 생각을 정리해 보는 계기가 되어서다. 오늘 촬영은 특별히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아까, 순간적으로 굉장히 고독했다. 분장 지우는 신을 찍는데 더빙극장 마무리 현장에 와 있는 느낌도 들고 이제야 2016년이 끝난 기분이 들었다. 이제, 제대로 새 출발을 할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