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타지와 리얼리티 사이, 셰프의 세계 엿보기 | 엘르코리아 (ELLE KOREA)

우리 외식 산업은 그리 역사가 길지 않지만 빠르게 팽창하고 변화하면서 새로운 식문화를 만들어가는 중이다. 그 중심에 있는 존재가 바로 셰프다. 판타지와 리얼리티 사이, 셰프의 세계 엿보기. :: 셰프,인터뷰,칼럼,열정적인,활기찬,치열한,엘르,엣진,elle.co.kr :: | :: 셰프,인터뷰,칼럼,열정적인,활기찬

셰프님, 쏘 핫! 핫! “통근시간엔 지하철을 탈 수 없다. 요즘도 알아보고 말 거는 사람들이 있다. 특히 젊은 여자들, 여고생들. 요리로 관심받고 싶은데 미디어 조명을 받으면서 자꾸 다른 면들이 부각되는 것 같아 부담스럽다. 살면서 처음 있는 일이다.” 지난겨울, 출연으로 유명세를 탄 양지훈 셰프의 얘기다. 청담동에서 프렌치 레스토랑 ‘루카 511’을 운영하고 있던 그는 방송 직후엔 하루 예약 전화만 100~200통을 받는다. 신사동 이탈리아 레스토랑 ‘베네세레’의 김상민 셰프는 “요즘은 셰프들도 외모에 신경 써야 하는 시대.”라고 말했다. 압구정동에서 뉴 코리안 레스토랑 ‘정식당’을 운영하는 임정식 셰프는 업계 내에서도 ‘아이돌’로 불린다. ‘요즘 애들’ 같은 룩과 캐주얼한 애티튜드(이번 인터뷰할 때도 바로 앞에 두고 ‘셰프님은 어디?’ 하며 두리번거리기도 했다) 때문. 겉모습 얘길 더 하자면 셰프처럼 안 보이는 셰프들이 더 많다. 한남동 프렌치 레스토랑 ‘봉에보’의 이형준 셰프를 처음 봤을 땐 “패션 쪽에 일하시는 분 같다.”며 소곤거리기도 했다. 이런 의견에 박재형 셰프가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나도 밖에선 운동하는 사람이냐는 소리 많이 듣는다.” 그는 우리나라 최초로 분자 요리를 선보인 청담동 ‘슈밍화’, 사케 애호가들의 사랑방인 가로수길 ‘센’을 거쳐 홍대 앞 ‘살림’에서 활동 중이다. 그가 셰프의 인상에 대한 설명을 덧붙였다. “셰프라면 동글동글하고 푸근한 인상을 먼저 떠올리는 것 같다. 다 그렇진 않다. 오히려 자기 요리 종목, 요리 스타일과 인상이 묘하게 닮아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왜 셰프 룩에 대해 이렇게 호들갑스럽게 된 걸까? 그뿐 아니다. 스타 셰프의 블로그엔 수많은 네티즌이 드나들고, 셰프를 보러 그 레스토랑에 가고, 하루가 멀다 하고 셰프 기사가 나오고…. 이건 다 근래의 일이다(물론 예전부터 솜씨가 좋아 단골을 거느린 셰프들도 있었지만!). 셰프 개인이 주목받고 인기를 끌고 셰프의 이름이 하나의 브랜드가 된 거다. 이런 셰프들을 두고 미디어는 ‘셰프돌(셰프+아이돌)’이란 신조어를 만들기도 했다. 트렌디 드라마에도 어느새 셰프 캐릭터가 하나씩 꼭 나오고 있다. 그만큼 지금 셰프는 쏘 핫! 핫!한 아이콘이다. 직업적으로도 관심이 몰리고 입문자가 늘어나고 있지만, 그냥 그 자체로도 대중이 궁금해하고 좋아하는 대상이 된 거다. 오후 3시. 원래는 셰프들이 밥을 먹고 한숨 돌리는 시간이다. 하지만 이젠 식사 때와는 또 다른 의미로 제일 바쁜 시간이 됐다. 인터뷰 요청은 늘어났고, 이를 소화하려면 쉬는 시간 밖에 없으니까. 도 오후 3시를 비집고 들어가 셰프의 세계를 들여다봤다. 진실의 종아, 울려라안다.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이라는 걸. 하지만 TV에서 본 영상이 자꾸만 뱅글뱅글 재생되는 것도 사실. 드라마 에서처럼 ‘국내파’와 ‘이탈리아파(외국파)’가 나뉠까? 리얼리티 프로그램 처럼 셰프가 다른 직원들을 쥐 잡듯 잡을까? 셰프 하면 떠오르는 선입관을 모아봤다. 판타지와 리얼리티의 구분은 우리나라 부티크 레스토랑을 중심으로 활발히 활동 중인 30~40대 오너 셰프, 헤드 셰프 14인이 해줬다.외국어 능력과 유학은 필수다? 재료 이름, 조리법 자체가 외국어라든지 자료 서적 중 원서를 볼 일이 많을 수 있다. 외국인 손님이 많아진 만큼 외국어를 할 수 있으면 좋다. 하지만 주방에서 외국어 잘하는 사람들끼리 일부러 외국어로 대화하진 않는다. 유학 역시 ‘필수’라기보다 ‘필요’하다. 다른 나라 요리를 배워 한식에 접목할 순 있겠지만 한식 만드는 것 자체를 유학 가서 배운다는 건 말이 안 되니까. 외국 요리를 할 경우 필요성은 좀 더 높아진다. 음식은 그 나라, 그 지역 사람들이 오래도록 가지고 내려온 문화의 일부분이기 때문이다. 유학이나 외국생활을 통해 그곳 요리와 식문화를 좀 더 쉽고 빠르게 이해할 수 있다. 또 오리지널이 무엇인지도 알 수 있다. 셰프가 레서피를 개발한다 해도 본질을 경험하고 이해하고 있는지 아닌지는 차이가 크다. Chefs say “유학을 통해 성공할 수도 있지만 국내 외식산업에 대한 이해가 없으면 사장될 수도 있다.” (김신) “외국에 가도 레서피 위주보다는 문화적인 걸 관찰하고 얻어와야 한다.” (이형준) “외국어는 좀 더 큰 필드로 뛰어들 수 있는 좋은 카드지만 유학이 성공을 보장하는 간판이 되진 못한다.” (최현석)신의 미각을 타고나야 한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완전히 ‘노(No)’! 답변에 응한 모든 셰프들이 고개를 저었다. 미각이나 후각이 탁월하다면 분명히 장점이다. 요리를 하다 보면 즉흥적인 아이디어나 센스가 필요하기도 하니까. 하지만 셰프를 뽑을 때 미각 시험을 보는 것도 아니고, 손님들이 천부적인 미각의 소유자가 요리하는 레스토랑에만 가는 것도 아니다. 셰프로 성장하는 데는 후천적 노력이 더 중요하다. 어찌 보면 요리도 훈련이고 미각도 훈련이다. 연습할수록, 맛을 볼수록 미각도 발달하게 마련. 또, 뉴욕엔 아예 혀가 마비됐지만 음식을 잘만 만드는 셰프의 사례도 있었다. Chefs say “기업형 식당을 운영하는데 미각이 지나치게 발달하면 오히려 문제다. 일정 수준에 도달했는데 지나치게 디테일에 집착하다 보면 비용 상승이나 현실성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 (어윤권) “맛을 안 봐도 간을 맞출 수 있다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그건 아니다. 재료 상태에 따라 또 온도·습도에 따라 최종적으로 어떤 요리가 되는지, 이를 위해 양념을 얼마큼 넣어야 하는지는 수시로 바뀐다.” (김은희)여자는 성공하기 힘들다? 흔히 주방 문화를 군대식이라 한다. 위계질서가 확실하기 때문이다. 예전 우리나라 요릿집은 원 맨 밴드처럼 자르고 굽고 끓이는 것 등을 혼자 맡는 경우가 많았다. 지금도 자본이 많지 않은 이상 인건비 절감 때문에 항상 사람이 부족하다. 일손이 부족한 부분에 참여해 자리를 메우는 등 여전히 멀티 플레이어가 돼야 하는 경우가 왕왕 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역할과 임무는 정확히 나눠져 있다. 그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여 최단 시간에 주문량을 소화해내려면 희희낙락하고 있을 수 없다. 손님이 뜸하거나 쉬는 시간까지 그렇진 않지만, 기본적으로 항상 긴장하고 있는 상태다. 칼과 불이 도처에 있어 위험하기도 하고, 조리 기기들은 무겁고, 계속 서 있어야 하니, 남자보다 여자가 체력적으로 불리하다. 힘에 부치다 보니 심리적으로도 영향이 있고, 이 일을 장기적으로 보기보다 중도에 그만두는 경우가 많다. Chefs say “여자들은 특정 분야에만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때는 제빵을 많이 배웠고, 요즘은 또 파스타에 대해 관심이 높다. 일시적인 관심이나 고객 취향에 맞는 요리만 하면 셰프로 성장하기 힘들다.” (김상민) “신체적 조건 차이가 가장 큰 이유다. 나조차 직원을 뽑을 때 남자를 선호한다. 여자를 뽑을 땐 ‘적어도 주방에서는 여자이기를 거부하는’ 사람만 뽑는다.” (이송희) “주방이 오픈된 공간이 아니고, 서로 하소연을 풀어놓는 분위기가 아니다. 그러다 보니 여자들은 마음속에 쌓이는 걸 풀기 어려워하는 것 같다. 또 보기에 예쁜 일이 아닌 것도 영향이 있는 듯.” (이형준)커리어의 정점은 고급 호텔의 헤드 셰프다? 호텔 주방엔 외면하기 어려운 유혹이 있다. 호텔 중심으로 셰프와 주방 문화가 들어왔고 그만큼 배울 것도 많다.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또, 여전히 ‘요리’ 하면 호텔 요리를 최고급으로 치는 시각도 존재하는 게 사실이다. 일정 수준 이상의 맛과 서비스가 보장되는 곳이니까. “5성 호텔에서 총주방장을 지내신 분”이라 소개하면 자동으로 존경의 눈빛을 받는 것도 그 때문이다. 하지만 셰프마다 호텔 선호도에 차이가 있고, 당연히 커리어의 최고봉(?)으로 단정 지을 수도 없다. 직장인처럼 거대 조직의 직급과 연봉 체계 속에서 이미 정해진 매뉴얼에 따라 요리하는 걸 좋아하는 셰프도, 싫어하는 셰프도 있다. 일단 호텔은 셰프 개인의 크리에이티비티를 활짝 펼칠 수 있는 장소가 아닌 건 확실하다. Chefs says “호텔 셰프는 분명히 좋은 직업이다. 우리나라 호텔에서 과장급 이상 되면 괜찮은 연봉과 대우를 받을 수 있다. 하지만 개인 요리 철학에 따라 다르다.” (김신) “커리어를 내세우려면 아직까지 한국 사회에서는 개인 업장보다 호텔을 더 쳐준다.” (이송희) “우리나라는 양식 역사가 특급 호텔 위주로 발전돼서 그런 면이 있으나 이제는 많이 역전됐다.” (박찬일)텃세, 파벌이 심하고 루머가 많다? 어떤 분야는 안 그러랴. 당연히 ‘내 사람’끼리 뭉치면 마음이 더 편할 테고, 셰프들과 레스토랑을 둘러싼 루머도 많다. 일반 레스토랑은 요리사 수가 많지 않아 그 안에서 파벌이 나뉠 수 없다. 처럼 한 지붕 아래 두 셰프가 으르렁대거나 무슨 파끼리 나뉘지 않는다. 하지만 수십 명 단위의 요리사가 움직이는 호텔 주방에서라면 연줄이 있는 사람끼리 뭉칠 수 있다. ‘라인’을 잘 타야 더 빨리 크는 것도 일반 조직이나 다를 바 없다. 애피타이저만 만드는 사람보다는 소스 만드는 사람, 육류 다루는 사람의 목소리가 더 커진다. 부티크 레스토랑 주변의 셰프들은 개인 성향에 따라 많이 차이가 난다. 학교 선후배 위주로 친하게 지내고 모임에도 나가는 사람도 있고, 딱히 교류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 셰프에 대한 뒷담화, 업장 루머 등은 돌고 돈다. 레스토랑 사이를 드나드는 식재료, 주류 유통업자들이 정보통이다. Chefs says “초보보다 경력자가 새로운 곳에서 잘 적응하지 못한다. 자기가 기존에 해온 스타일을 버리고 새로운 주방 스타일에 얼른 맞추지 못하면 더더욱.” (박재형) “파벌이 바람직한 현상은 아니지만 부정하진 않는다. 요리는 ‘핸드메이드’이기 때문에 자긍심으로 연결되고 이게 다시 파벌로 이어진다.” (유희영) “주방은 오랜 시간 몸을 부딪치며 같이 생활하는 일종의 공동체다. 트러블도 있겠지만 그보다 큰 공동체 의식과 애정이 바탕에 깔려 있다고 생각한다.” (이현진)밑바닥 일부터 해야 한다? 당장 뚝딱뚝딱 요리부터 할 수 없다. 누구든 청소와 설거지부터 시작한다. 그 다음이 채소 등 식재료 씻고 다듬기. 언제부터 칼을 잡을 수 있느냐는 개인에 따라 차이가 난다. 아직 도제식이 남아 있기는 하지만 요즘 부티크 레스토랑에서는 비교적 빨리빨리 올라가는 편이다. 내 이름을 걸고 요리를 하려면, 즉 오너 셰프가 되려면 적어도 10년은 필요하다는 게 공통된 얘기. 학벌, 경력(정식 취업 전 경험)을 내세우며 밑바닥 일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기초 과정을 밟지 않고 갑자기 고참 셰프로 등장할 수는 없다. 외국의 경우 간혹 크리에이티비티와 실제 만드는 역할이 나뉘기도 한다. 센스와 창의성을 일찍 인정받아 전격 셰프로 발탁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는 드문 경우이고, 주방 장악력이 부족하면 그 자리에서 버틸 수 없다. Chefs says “설거지하면서 접시의 용도를 알고, 냉장고 청소를 하면서 식자재 구성을 알 수 있다. 이렇게 흐름을 파악하는 과정이 꼭 필요하다.” (김상민) “2년 정도는 기초를 다져야 한다. 이 기간을 얼마큼 참고 성실하게 했는지에 따라 좋은 셰프가 되느냐 아니냐가 결정된다.” (어윤권) “밑바닥 과정을 건너뛸 수도 없거니와 그렇게 하면 주방을 컨트롤할 수 없다.” (박재형)박봉이다? 풍족한 월급을 기대할 수 없다. 물론 업장 규모와 성격, 오너 방침에 따라 차이는 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거대 자본이 들어가고 거대 수익이 발생하는 곳이 아니다. 또 각개전투 식으로 돌아가는 업계다 보니 일정한 기준선이라는 게 마땅히 없다. 조심스레 의견을 종합해보면 신입은 수십 만원대에서 시작해 헤드 셰프가 되면 수백만원에서 1천만원대까지 편차가 커진다는 것, 적어도 월급 면에서는 개인 레스토랑보다 호텔이 낫다는 것 정도. 이직률이 높고 초반에 버티지 못하는 사람이 많은 것도 육체적 고단함에 비해 보수가 적다는 점도 한몫한다. 그나마 요리하는 것, 내 요리를 먹은 사람들이 즐거워하는 것에 행복을 느끼는 사람, 장기적으로 높은 목표를 가슴에 품은 사람들이 필드에 남는다. Chefs says “그래도 꽤 몸값을 올려 흥청대며 사는 이들도 있는 걸로 안다. 확실한 건 돈을 많이 벌기 위해서라면 펀드 매니저를 하는 게 낫다.” (김신) “내가 일을 시작할 때는 급여를 따지기보단 배울 게 있는가 하는 것이 내 판단 기준이었다.” (이송희) “미디어와 입소문을 통해 성공한 소수들도 박봉이 많다.” (최현석)프랜차이즈 레스토랑, 패밀리 레스토랑을 혐오한다? 부티크 레스토랑 중심의 셰프들에게는 ‘식재료와 맛에 있어서 상대적으로 우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살짝 깔려 있지 않나 싶다. 체인 레스토랑은 규모가 큰 만큼 요리 하나하나의 디테일에 신경 쓰기 어려운 건 사실이니까. 하지만 요리 철학, 시장 접근법,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 등이 다르다는 점만 인식하는 정도지 “대체 그런 곳엘 왜 가는 거얏!” 하는 히스테릭하고 부정적인 반응은 없다. 어차피 대형화된 레스토랑과 부티크 레스토랑은 같은 파이를 나눠먹는 게 아니다. 부티크 레스토랑에 오는 손님, 패밀리 레스토랑 가는 손님이 정확히 반쪽으로 나뉜 건 아니지만 아무래도 교집합이 크진 않다. 그리고 셰프들도 김밥 체인점 배달도 시켜먹고, 친구들과 패밀리 레스토랑에도 간다.Chefs says “왜 저런 음식을 만드는지 싫어한 적 있다. 하지만 외국 어딜 가도 체인 음식점들이 있지 않나.” (김상민) “전문 요리사라면 다 어느 정도는 낮게 평가할걸? 정형화된 레서피를 만드는 곳이라 셰프에 따른 차별화된 감각은 느낄 수 없다.” (박재형) “케이준 샐러드가 생각날 때가 있다. 이렇게 거부할 수 없는 메뉴들이 있다. 먹으면 맛있잖아.” (이형준) “굳이 비싼 레스토랑만 최고는 아니다. 컨셉트에 따라 품질, 가격, 손님층 등 다양성이 공존해야 한다.” (이현진)일반 밥집은 가지 않는다? 셰프라면 왠지 좋은 음식만 먹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물론 직업 특성상 좋은 음식 접할 기회도 많고, 의무감에서라도 먹어봐야 하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만들어 파는 음식과 자기가 먹는 음식은 다르다. 엄마들도 “냄새에 이미 배부르다”며 차려만 주고 당신은 안 드실 때가 많은 것처럼. 하물며 셰프들은 매일 만지는 재료, 매일 만드는 음식인데 끼니까지도 매번 그 안에서만 해결하라고 하면 질리지 않을까? 그리고 뭐니 뭐니 해도 셰프도 한국 사람이다. 그 어떤 요리보다도 쿰쿰한 된장찌개에 쌀밥 한 술 뜨는 게 든든할 수 있다. Chefs says “밥집에서 식사를 많이 한다. 그러나 훌륭한 셰프가 되려면 좋은 식재료로 만든 요리를 많이 먹어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셰프 입장에선 그것도 공부다.” (유희영) “파스타를 만든다고 해서 밥도 그걸로 먹진 않는다.” (박찬일) “맛있는 집 찾아다니는 걸 좋아한다. 주변 사람들에게 추천도 받고, 인터넷 검색도 해본다.” (이형준)입맛이 까다롭다? 맞다. 직업상 당연히 까다로워야 하고, 일을 할수록 더 까다로워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건 어디까지나 주방 안에서만 해당되는 얘기다. 일터를 떠난 순간, 가족이나 친구들 등 개인적인 식사 자리에서는 굳이 입맛 까다로운 티를 내지 않을 뿐이다. 가까이에서 비슷한 사례를 들자면 이런 게 있겠다. 스타일리스트가 화보 촬영장에선 잔뜩 날이 선 채 트렌디한 비주얼을 만들지만 가족이나 친구들이 덜 시크하고 덜 에지 있다고 해서 나무라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랄까. 일 외의 사람들에게 굳이 입맛 까다롭다는 걸 노출하고 싶어 하지 않고, 그럴 필요도 없는 거다.Chefs says “먹다 보면 그러지 않으려 해도 맛을 평가하게 된다.” (박재형) “음식 만드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알기 때문에 절대 컴플레인하지 않는다.” (이송희) “맛이나 향을 잡아내는 부분은 매우 예민하지만 남이 만들어주는 음식은 어지간하면 맛있게 먹는다.” (최현석) “주방에선 까다로울 수 있다. 하지만 개인적인 식사에서는 맛 자체보다 함께하는 친구들, 분위기, 그 순간이 더 중요하다.” (이현진)집에서는 요리하지 않는다? 일과 아무 관련이 없는 상태에서 순수한(?) 목적으로 요리하는 게 리프레시된다는 의견도 소수 있다. 하지만 집에선 안 한다는 답이 대다수. 아무래도 몸이 고된 게 가장 크다. 하루 열두 시간 넘도록, 또 주중·주말 할 것 없이 서서 일하니 집에 가면 파김치가 될 수밖에. 또 아무리 셰프라 해도 자기 집 주방까지 화려하게 꾸미진 않는다. 널찍한 공간에서 온갖 장비와 기구, 알토란 같은 식재료들을 늘어놓고 하는 것에 비해 집 주방에선 딱히 솜씨를 부릴 만한 여건이 되지 않는다. 그러면 셰프들이 집에서도 마음먹고 요리에 나설 때는? 가족 행사가 있거나 특수한(?) 재료를 구한 가족이나 친구들의 SOS 요청이 있는 경우. Chef says “집에 가서 밥할 정신이 없다. 칼도 무디고 그러면 짜증나고 하기 싫다.” (박찬일) “셰프가 친구들을 모아서 요리를 해줬다는 이런 기사는 다 거짓말이다. 미디어에서 기획하고 시켜서 하는 것뿐이다. 온종일, 주중·주말 내내 주방에 묶여 있으니 집에 가면 너무 피곤하다.” (스스무 요나구니) “개인적으로 스트레스도 풀고 여유를 찾기 위해서 일주일에 한 번은 꼭 집에서 요리하려고 한다.” (이현진)서빙 직전 마지막 단계만 참여한다? 주방 인원 규모가 어떤지, 얼마나 바쁜 시간인지, 어떤 요리인지에 따라 참여도가 다르다. 찰나의 불 조절, 소량의 양념에 따라 맛이 확연히 달라지는 요리(주로 육류, 생선류 등)는 직접 하기도 하고, 만드는 과정은 간단하지만 데커레이션에 따라 퀄리티가 달라지면 마지막 터치만 직접 하는 식. 어느 정도 정형화돼 있는 요리는 중간 과정만 체크하기도 한다. 어떤 단계를 얼마큼 직접 ‘실행’하는 것보다 메뉴 개발부터 그날그날 모든 주문의 조리를 다 지켜보고 체크한다는 것에 의미를 둬야 한다. 혼자 전 과정을 다 하는 건 물리적으로도 불가능하다. 또 주방은 팀워크이기 때문에 주방 멤버들을 믿고 맡기는 것도 중요하다. Chef says “실제로 얼마큼 요리하느냐가 중요하진 않다. 헤드 셰프는 요리의 전 과정에 관여하는 사람이지, 그걸 실제로 다 하는 사람은 아니다.” (스스무 요나구니) “욕심 같아선 재료 준비부터 불판에 서서 굽고 볶고 다 하고 싶은데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김은희) “셰프는 실제로는 다 할 줄 알지만 현실적으로는 할 수 없다. 계속 고기만 굽고 있으면 주문을 통제할 사람이 없어지니까.” (박찬일) (가나다순) 김상민(‘베네세레’ 오너 셰프), 김신(‘올리브&팬트리’ 오너 셰프), 김은희(‘더그린테이블’ 오너 셰프), 박재형(‘살림’ 헤드 셰프), 박찬일(‘누이누이’ 헤드 셰프), 스스무 요나구니(‘오키친’ 오너 셰프), 어윤권(‘구르메 에오’ 오너 셰프), 양지훈(전 ‘루카 511’ 오너 셰프), 유희영(‘유노추보’ 오너 셰프), 이송희(‘그랑씨엘’ 오너 셰프), 이현진(전 ‘피에르 가니에르’ 셰프), 이형준(‘봉에보’ 헤드 셰프), 임정식(‘정식당’ 오너 셰프), 최현석(‘엘본더테이블’ 오너 셰프) 등 총 14명이 서베이에 참여해 주셨습니다. 대한셰프변천사드라마 에 그려진 셰프는 절대 권력자요, 최고 상사다. 직원들은 말 끝마다 “예! 셰프!!”를 재깍재깍 붙이며(‘Yes, Sir’와 비슷하게 들린다) 경의(?)를 표한다. 한국식 셰프의 특징을 보여주는 사례다. 알려져 있듯이 셰프는 본래 프랑스어다. 우리나라에선 원래 뜻과 좀 다르게 자리 잡았다. “셰프는 상업적으로 요리하는 사람의 총칭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헤드 셰프, 즉 총주방장을 셰프라 부른다. 굉장히 높은 직급처럼 여겨지는 것.” 요리평론가 강지영의 말처럼. 어쨌거나 우리나라에서 처음 셰프 역할을 한 사람들, 즉 1세대 셰프를 찾자면 70년대 후반이다. 셰프에겐 주방이 필요하다. 요리 각 단계와 분야를 나눠 맡을 수 있는 인력, 식자재 공급부터 요리 과정이 돌아가는 체계적인 주방. 70년대의 한국에서 그런 시스템을 갖춘 주방은 호텔뿐이었다. 70년대 후반, 첫 조리학과 졸업생들이 배출됐고 이들이 호텔에서 일을 시작했다. 1세대 셰프들의 등장이었다. 당시엔 셰프란 말은 없었다. 그냥 조리장님, 주방장님으로 불렸다. 이들은 지금은 업계 어르신들이다. 은퇴한 경우도 있지만 호텔과 대형 레스토랑 헤드 셰프로 현직에도 남아 있다. 2세대 셰프, 즉 남들이 “셰프!”라 불러주는 셰프들이 등장한 건 90년대 들어서다. 외국과의 교류가 활발해지고 서구형 산업이 들어왔다. 무역협회가 1990년에 들어서 푸아그라 수입량 통계를 내기 시작했다는 건 하나의 모멘텀이었다. 미식에 대한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관심, 외식 수요의 증가를 뜻했으니까. 90년대 중반 ‘밥집’이 아닌 ‘구어메 레스토랑(Gourmet Restaurant)’이 속속 등장했고, 이곳에 2세대 셰프들이 자리를 잡았다. 이때까지만 해도 셰프는 그렇게 팬시한 직업이 아니었다. 전문 교육을 받기보단 우연한 기회에 기술을 배워보자는 생각에서 일을 시작한 사람들이 대다수였다. 그 다음이 국내에서 클래식한 경로(조리학과 졸업 후 취업)를 통해 성장한 사람들, 호텔에서 나온 경력자들. 외국에서 들어온 이들은 극히 적었다. 문물 유람을 떠난 유학 1세대들 중 소수가 요리를 배워온 거다. 다른 공부를 하러 갔다가 중간에 진로를 바꾼 경우였다. 90년대 후반엔 외국인 셰프 초빙도 늘어났다. IMF 직후, 위축된 경제 상황과는 달리 아이러니하게도 퓨전 요리 붐이 일어나면서 생긴 현상이다. 이와 함께 요리 유학을 떠나는 이들도 점점 늘어났다. 배낭여행, 어학 연수 등 외국 경험을 장려하는 사회 분위기의 연장선상으로 보면 된다. 미식 문화가 대중화된 2000년대. 눈도 입도 즐거운 밥을 만들어주는 이가 바로 셰프다. 옷이든 밥이든 무언가 ‘만드는’ 업계는 주먹구구식 혹은 가내수공업 수준을 벗어나 몸집이 커지고 체계가 생기면서 결국 ‘크리에이티브’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 말하자면 셰프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와도 같은 역할. 그래서 관심은 자연스럽게 셰프로 옮겨갔다. 셰프와 주방 풍경이 등장하는 대중 매체의 영향도 컸다. 영화 를 비롯해 드라마 까지. 또 리얼리티 프로그램의 공도 빼놓을 수 없다. 훈훈한 외모의 제이미 올리버의 , 카리스마 작열하는 고든 램지의 등등. 지난가을엔 우리나라에도 리얼리티 프로그램이 등장했다. 에드워드 권이 신인 셰프를 뽑는 라는 프로그램이 방송돼 화제를 모았다. 스타 셰프들이 나타나고, 셰프에 대한 관심은 훨씬 더 부풀어갔다. TV 광고도 셰프들을 등장시켰다. ‘셰프가 맛있다면 진짜 맛있는 것, 안전하다면 정말 안전한 것’이란 믿음을 심어줄 수 있기 때문이다. 셰프의 존재가 미식가와 업계 사람들만 알던 것에서 대중에게 알려지고 인식이 좋아지면서 셰프 워너비도 늘어났다. 좀 더 다양한 학교로 요리 유학을 떠났고, 일선에서 일하다가 경험차 유학을 다녀오는 셰프도 많아졌다.최근 3~4년 사이 등장한 셰프들이 국제화, 미식 문화 저변과 셰프 수요 확대의 수혜를 입은 3세대 셰프들이다. 2000년대에 유학을 떠나 중후반이 돼서야 돌아왔고, 각자 여러 시도와 경험을 거쳐 자신의 레스토랑을 오픈하는 추세다. 70년대 중후반부터 80년대 초반에 태어난 젊은 셰프들은 레스토랑 업계에 새로운 에너지를 수혈했다. 창의적인 메뉴, 이를 대중에게 전달할 수 있는 키워드(‘뉴 코리안’ ‘컨템퍼러리 코리안’ ‘크리에이티브 코리안’ 등이 가장 최근에 등장하는 키워드다)를 집어내는 감각, 세련된 프레젠테이션, 마케팅·PR 마인드를 겸하고 있는 것 등이 장점이다. 반면, 외국 경험을 과장하거나(사실 제아무리 미슐랭 레스토랑에서 6개월 있었다 한들 거기서 감자만 깎았는지 알 수 없다), ‘내 요리’가 아닌 모방 요리를 선보이는 건 아닌지 의심의 눈초리도 있다. 또, 지나치게 셀러브리티화되는 경향이나 ‘과연 중간에 사라지지 않고 계속 요리를 선보일지’에 대한 염려도 들린다. 앞으로 2~3년을 보자면? 북적북적, 사람도 많아지고 자본 구조와 운영 방식도 다양해질 것이란 전망. 관심도 몰리고 자리도 늘어났다(물론 어느 정도 체계와 내실을 갖춘 곳인지는 따져봐야 하지만). 당연히 요리 배우는 이들도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 “요리사에 대한 인식이 좋아지면서 이쪽 일을 시키려는 엄마들도 많아진 것 같다.” 양지훈 셰프(그는 ‘루카 511’에 이어 새로운 레스토랑을 준비 중이며 모교인 경희대학교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처럼 강의를 맡은 셰프들은 셰프 꿈나무들이 얼마나 많은지 몸소 느끼고 있다. 2006년 미국의 CIA를 졸업한 임정식 셰프도 비슷한 말을 했다.“지금 외국 요리학교에 유학 중인 한국인이 엄청 많다. 2~3년 후면 대거 들어올 거다. 물론 요리학교를 나왔다고 다 셰프가 되는 건 아니다. 실제로 내가 나온 CIA도 졸업생의 95%가 다른 일을 한다. 반면, CIA 출신 중에서도 한국인은 절반 가량이 이 분야에 남아 있다.” 다음은 요리평론가 강지영의 얘기다. “셰프에 입문할 수 있는 길과 방법이 늘어나고 장벽이 낮아졌다. 새로운 인력이 계속 유입될 거고, 연령대도 낮아질 거다. 아예 어릴 때 시작하는 사람들도 늘어나고 있다. 또, 여태까지는 외국에 진출해도 호텔 위주였으나 이제 자기 브랜드를 가지고 나가는 셰프들이 등장할 거다.” 셰프로 살기셰프로 살아가는 삶은 어떨까? 막연한 판타지와 호기심만 가지고서는 알기 어려운 세계. 어윤권, 김은희, 스스무 요니구니, 유희영, 임정식 등 다섯 명의 오너 셰프와 미니 인터뷰를 나누며 이들의 삶을 살짝 들여다봤다.●어윤권(‘구르메 에오’ 오너 셰프/이탤리언) 셰프로 사는 이유는? 단순하다. 지금 하는 일에 만족과 행복을 느끼기 때문이다. 스트레스는? 물론 많다. 그런데 나중에 보면 스트레스와 즐거움이 구분되지 않는다. 우리나라 식문화 수준. 한국인은 오감이 잘 발달돼 있다. 그중 미각은 굉장히 뛰어나다. 외식을 하나의 가치로 삼으면서 평균치가 굉장히 높아질 거다. 다른 레스토랑에 갈 때마다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청결함을 체크하게 된다. 직업병. 먹는 것에 집착을 많이 하게 된다. 맛있는 음식을 밝히게 되고. 그러면서 요리에 대한 ‘감’을 잃지 않는 건가? 복합적이다. 자신의 퀄리티를 컨트롤하는 것도 있고, 새로운 요리에 대한 영감을 받을 수도 있다. 체력 관리법. 잘 먹고 잘 쉬면 된다. 그리고 주방에서 일하는 것 자체가 운동이 된다. 음식은 손으로 만든다. 손의 중요성이 클 텐데…. 손은 셰프의 감성, 마음과 같다. 어느 수준까지 요리를 하다 보면 꽤 알려진 사람의 경우엔 접시에 담겨진 모양만 보고도 누구의 것인지 딱 알 수 있다. 손을 감성과 함께 보는 이유다. 셰프에게 유리한 손이란? 손가락 마디마디가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손. 손가락이 머리보다 빨라야 어려운 테크닉을 구사할 수 있다.그런 손을 가졌나? 남들이 그렇다고 하긴 하더라. ●스스무 요나구니(‘오키친’ 오너 셰프/이탤리언) 요리를 시작한 계기. 정말 돈이 없어서. 대학을 중퇴하고 무작정 런던에 갔다. 거기서 할 수 있는 게 당장은 설거지밖에 없잖아. 그러면서 주방에 발을 들였다. 미각을 천부적으로 타고났나? 아니다. 집이 가난해 잘 못 먹고 자랐다. 주로 채소 요리를 먹다 보니 유럽에서 일할 때 푸아그라처럼 무게 있는 요리가 잘 맞지 않았다. 남들이 모르는 셰프의 즐거움. 새로운 요리를 만든다는 것. 솔직히 총주방장이 되기 전까진 재미가 없다. 정해진 것만 하고 시키는대로 만들어야 하니까. 총주방장이 돼서야 비로소 뭘 요리해야겠다는 생각을 할 수 있었다. 새로운 요리의 영감은 어디에서? 손님 많은 식당에 가서 메뉴를 보고 음식도 먹어본다. 그걸 내 식으로 어떻게 만들지 고민한다. 그대로 카피하는 건 셰프 생명의 끝이다. 요리도 하나의 예술인가? 음식에 자기 색깔이 있는 요리사가 예술을 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런 사람은 정말 소수에 불과하다. 난 그저 평범한 셰프다. 좋은 식당의 조건. 그곳의 요리를 즐길 줄 아는 단골이 많이 있어야 한다. 진상 손님 대처법. 불만을 갖는 손님은 무시한다. 셰프로서 받는 스트레스. 테이블에 나간 음식이 그대로 있을 때. 첫 손에 꼽는 재료는? 소금. 그것 없이는 어떤 요리도 만들 수 없다. 한국 사람들은 외국인 셰프에 대한 환상이 있는 것 같다. 그렇게 생각한다. 한국만의 특징인 것 같다. 외국에선 누가 요리하는지가 아니라 접시를 보고 평가한다. 자신의 요리가 평가받는다는 건 어떤 의미? 좋은 이야기가 있어도 온전히 내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주방의 모든 사람들이 음식을 만드니까. ●김은희(‘더그린테이블’/프렌치)미식의 세계를 깨달은 때. 언니들이 컵케이크 만드는 걸 보고 따라 만들었다. 맛을 봤는데 딱 느낌이 왔다. 초등학교 4학년쯤이었나? 그때부터 혼자 요리를 하곤 했다. 웹디자인에서 진로를 바꾼 계기. 늘 요리에 대한 미련이 있었다. 교통사고를 당하고 ‘오늘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다’ 싶었다. 하고 싶은 일을 해야겠단 생각이 확 들었다. 새로운 메뉴를 만드는 영감은 어디에서? 일단 책을 많이 본다. 좋은 그림을 보고 음악을 듣기도 하고. 다른 사람의 음식을 먹었을 때 떠오르기도 한다. 가장 중요한 주방 도구를 하나 꼽는다면? 칼에 대한 욕심이 크다. 밤에 잠 안 자고 칼을 갈기도 한다. 돈 모으면 칼 사야지 하는데 가격이 만만치 않다. 미각 관리법. 좋은 체력과 컨디션을 유지해야 맛을 제대로 볼 수 있다. 요즘 젊은 ‘셰프돌’이 부각하고 있다. 개인적인 생각은? 좋은 현상이다. 그런 분들이 있어 이 직업이 조명받고 인재들이 몰려 한층 더 성장할 수 있지 않을까. 여자로서 주방 일이 힘들지 않나? 체력적으로 버겁다. 요즘엔 보약에 의지하고 있다. 자신의 요리가 평가받는다 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항상 정성껏 공들여서 음식을 만든다. 하지만 그렇게 애쓴 음식은 손님이 먹고 나면 순식간에 사라진다. 요리사는 그런 일을 매일 되풀이한다. 그런 부분을 알아줬으면 좋겠다. 지금까지의 평가 중 가장 기분 좋았던 건? 음식 하나하나에 정성이 깃들어 있다. 다른 레스토랑에 가면 어떤 부분들을 주로 보게 되는지. 나도 모르게 주방을 살피게 된다. 어떤 사람들이 있는지,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본다. 요리 외에 하고 싶은 것. 기타. 지난해에 조금 배웠다가 레스토랑을 오픈하면서 손을 뗐다. 마흔이 되면 통기타 콘서트를 열고 싶다. 라디오 DJ도 해보고 싶고. 레스토랑을 오픈한 이후로 가장 기억에 남는 손님. 얼마 전이다. 한 커플이 잘 먹었다고, 고맙다고 팬레터를 남겼다. 주방 식구들이 여러모로 많이 지쳐 있을 때였는데 마침 그 편지를 받은 덕분에 다같이 기운을 낼 수 있었다. ●유희영(‘유노추보’/재패니즈) 요리를 택한 이유. 90년대 초 ‘선진국 청소년 직업선호도조사’에서 요리사가 상위권에 속해 있더라. 어릴 적부터 손재주가 있었고 왠지 잘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셰프로 일하는 즐거움. 많은 사람들이 내가 만든 요리를 먹고 행복해 하는 모습을 볼 때. 그리고 그 요리가 모든 사람들을 평등하게 만든다고 느낄 때. 주문이 들어오면 빠른 시간 내에 요리를 내야 한다는 긴장감도 좋다. 요리하며 얻고 싶은 최고의 명예가 있다면? 명예보단 내 고객들과 평생 함께하고 싶다. 분명 미운 손님들도 있을 거 같은데…. 글쎄. 고객을 보며 ‘진상’이라 생각해본 적은 없다. 최근 체감하고 있는 외식 업계의 흐름. 단순하게 배를 채우기보단 외식이 문화적인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맛집을 찾아다니고 블로깅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또 많은 사람들이 해외를 자주 다녀 외국에서 맛봤던 요리나 분위기를 비슷하게 연출하려고 한다. 첨단 테크닉과 아날로그적인 요리로 양분화되고 있는 현상도 큰 특징이라 볼 수 있다. 새로운 요리에 대한 아이디어는 어디에서 얻는 편인지? 책을 읽고 음악을 듣고 사진을 찍는 등 취미가 많다. 이런 문화생활을 하다 보면 내면에 쌓여 아이디어로 연결된다. 요리하며 가장 기분 좋을 때. 어떤 평가를 받느냐보다는 단골이 잊지 않고 찾아왔을 때. 요리 말고 하고 싶은 게 있다면? 워낙에 많다. 굳이 꼽으라면 미술 공부는 꼭 하고 싶다.꼭 있어야 하는 도구. 대부분의 일식 요리사들이 칼을 꼽지 않을까. 칼에 애착이 크다. 지금 하고 있는 일식 요리의 매력. 복잡하지 않고 단순하지만 깊이 있는 요리. 마치 한 장의 수묵화 같은 느낌이다.●임정식(‘정식당’/뉴 코리안) 레스토랑 준비 과정. 관심을 받기 위해서는 특이한 컨셉트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전에 없던 ‘뉴코리안을 하기로 했다. 그 다음은 장소 선정. 청담동, 압구정동, 한남동 일대를 돌아보다가 신사동에 계약했다. 거기가 제일 싸더라. 지금의 자리(압구정동)로 옮긴 지는 3~4개월 정도 됐다. 오픈한 지 1년이다. 예상한 대로 흐르고 있나. 이제 어느 정도 PR은 된 것 같다. 운영 상황은 원하는 만큼 또 기대치만큼은 아니다. 이런 곳에 다니는 사람들은 정해져 있잖아. 레스토랑이 너무 많다 보니, 소비자를 두고 나눠먹기 해야 된다. 예상치 못했던 부분들은? 보험, 세스코, 세콤, 발렛 파킹 등 고정비가 그렇게 많이 나갈 줄이야! “어? 돈이 벌리네?” 이런 생각도 들었다. 일단 밀어붙여서 시작했는데 얼마든 간에 실제로 수익이 발생하니까 신기하게 느껴진 거다. 왜 요리인가? 나는 할 줄 아는 게 이것밖에 없는데? 군대에서 처음 요리를 해보고 미국 어학연수 가서도 친구들 불러모아 요리를 해보니 ‘오늘은 뭐 해먹지?’ 이런 재미가 있더라. 주위에서도 잘한다 하고. 그때 ‘먹이는 즐거움’을 알게 됐다. 지금도 그 마음을 기본으로 가지고 한다. 지금도 직원들 밥을 내가 직접 만든다. 집에서도 요리하는지? 안 한다. 시간이 없기도 하고, 어머니가 별로 안 좋아한다. 엄마 밥이 더 맛있다. 사실 부모님은 맥도날드, 스타벅스 등 단품 위주에 안정적이고 글로벌한 걸 하라고 하셨다. 지금 하는 일은 업 앤 다운이 있으니까. 마케팅과 PR의 필요성. 지금은 따로 하고 있지 않지만 하려면 제대로 해야겠지? 특히, 외국인 VIP를 대상으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계획. 3월 말 뉴욕에 오픈할 장소를 보러 간다. 11월부터 뉴욕 오픈 준비를 했다. 셰프도 뽑아놓고 나 없이도 잘 돌아갈 수 있게끔. 주위에서는 만류한다. 그런데 더 나이 들면 못할 것 같아서 간다. 뉴욕에서 경쟁해 내 위치를 확인하고 싶다. 셰프의 변신은 무죄?! “밖에 놓을 테이블 하고 의자는 언제 온대?” “테이블보는 어떻게 됐어?” 지난해 8월 양지훈 셰프가 문을 연 ‘루카 511’을 찾았을 때다. 길 건너 동명의 레스토랑에서 실력 발휘를 하던 그가 자신의 이름을 단 프렌치 파인 다이닝을 냈다고 했다. 그런데 이게 웬걸. 아직 오픈하지 않은 매장에서 본 그는 주방을 진두지휘하는 셰프가 아니었다. 식재료를 살피듯 조명에서부터 인테리어 소품 하나하나까지 꼼꼼히 체크하는 모습은 매니저에 가까웠다. “어휴, 가게 문을 열고 보니 챙겨야 할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루카 511의 오너 셰프는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하루를 보내고 있다면서 어디선가 들려오는 전화 벨소리를 쫓아갔다.셰프들이 역할 변신을 외치고 있다. 주방장에 익숙했던 귀가 셰프란 단어와 친해진다 싶더니 오너 셰프란 말이 여기저기서 튀어나오고 있다. 몇 년 사이 셰프들이 요리와 경영을 하는 이른바 오너 셰프 레스토랑이 강남 일대를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다. 이젠 음식점이라고 무조건 사장 따로, 요리사 따로 있는 게 아니다. 셰프들이 멀티플레이어가 되는 거다. “지금의 외식 업계는 80년대 후반에서 90년대 초반 사이의 일본 식당가와 비슷하다. 오너 셰프가 트렌드처럼 늘어나고 있다.” 신사동 ‘올리브&팬트리’의 김신 오너 셰프의 말이다. 해외 경험을 쌓고 돌아온 뒤 실력을 펼치려는 유학파와 업계에서 경험을 쌓은 셰프들이 자신의 이름을 걸고 가게를 오픈하기 시작했다. 지난해 방송됐던 드라마 에서 류시원이 연기했던 유학파 오너 셰프를 떠올리면 된다. 단, 이런 움직임을 외식 업계 전체에 불어닥친 최신 트렌드로 보는 건 양식 분야에서만 가능하단 의견도 있다. 논현동 ‘누이누이’의 박찬일 헤드 셰프는 한식과 중식, 일식에선 예전부터 셰프가 경영과 요리를 도맡아하는 식당들이 많았다고 한다. 그렇다면 무슨 연유로 주방을 지휘하는 셰프가 식당 경영에까지 칼자루를 쥐려는 것일까? 이유는 단순하다. 자기 요리를 하기 위해서다. “총주방장이 되기 전까지 요리는 정말 재미없다. 기계처럼 위에서 시키는 일만 해야 하니까.” 이태원 ‘오키친’의 스스무 요나구니 오너 셰프의 얘기다. 그러니 주방에서 요리사들이 인고의 시간을 보내며 내공을 쌓아 헤드 셰프가 되길 꿈꾸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주방의 지휘봉을 쥔 셰프라 해도 열이면 열 모두 마음 가는대로 손 가는대로 음식을 만들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동업을 했든 고용의 형태가 됐든 오너가 따로 있는 식당에 몸담고 있는 경우엔 한계가 있다. 드라마 에서 곧잘 그려졌던 셰프 이선균과 오너 알렉스와의 갈등에서 엿볼 수 있듯 ‘장사꾼’과 ‘장인’의 마인드가 다른 탓이다. 메뉴와 식자재, 서비스를 두고 100% 궁합이 맞지 않을 수도, 마찰이 생길 수도 있다. 손님에게 자신의 색깔을 담은 ‘누구누구’표 음식을 내놓고 싶은 셰프들이 규모가 작거나 테이블 한두 개만 놓더라도 자신의 가게를 내고 싶은 까닭이다.셰프들의 솔로 선언은 손님에게도 반갑다. “경영인이 관리하는 식당과 비교했을 때 효율적으로 재료 관리가 이뤄지고 낭비도 적어 좋은 재료를 쓸 수 있다.” 한정식 레스토랑 ‘품 서울’의 오너 셰프이자 푸드 스타일리스트인 노영희는 오너 셰프 레스토랑이 많이 생기는 건 고객 입장에선 행운이라고 말한다. 주방의 생리를 꿰차고 있는 셰프가 식당을 쥐락펴락해 높은 퀄리티의 음식을 맛볼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오너 셰프 레스토랑에선 ‘눈앞의 이익에 연연하지 않고 좋은 음식을 내놓겠다.’는 셰프들의 정성과 욕심이 크게 반영된다. 청담동 ‘구르메 에오’의 어윤권 오너 셰프는 “본인의 것을 직접 하는 것과 남의 것을 하는 건 동기부터 다르다.”고 한다. 무엇보다 자신의 이름을 내걸었으니 정직한 요리를 내놓을 수밖에 없다. 식당을 비위생적으로 운영하거나 재료를 속였다가는 커리어에 심각한 타격을 입게 될 테니 말이다. 소비자 입장에서. 오너 셰프 레스토랑의 등장에는 또다른 이점이 있다. 음식점이 우르르 생겼다 금세 사라지는 국내 외식 업계에서 옥석을 가릴 수 있다는 점이다. 스스무 요나구니 셰프는 “식당 문을 열고 직접 요리를 하면 셰프라 할 순 있겠지만 실력이 없으면 절대로 살아나지 못한다. 건물이 요리를 하는 게 아니라 셰프가 하는 거다.”고 했다. 그만큼 오랜 경험과 실력 을 갖추지 않고서는 업계에서 오너 셰프로 살아남을 수 없단 얘기다.그러나 사업자등록증에 자신의 이름을 새긴 식당을 열었다고 해서 걱정 끝, 행복 시작인 건 아니다. 한남동 프렌치 레스토랑 ‘봉에보’의 이형준 셰프는 “그만두겠다는 직원에게 무엇이 힘든지 물어도 봐야 하고, 단가 계산에 식기구와 재료 구매 등등 예상치 못한 업무가 많다. 셰프가 요리만 하는 게 전부가 아니다.”고 말한다. 경영자를 따로 둔 레스토랑에서 일하는 헤드 셰프도 이러한 어려움을 얘기할진대, 주방과 경영을 혼자 다 챙기고 책임져야 하는 오너 셰프들이 얼마나 힘들지 십분 이해된다. “외국 레스토랑에서 일하며 맡겨진 조리만 하는 ‘라인쿡(Line Cook)’으로 있을 때가 행복했단 생각이 가끔식 들기도 한다. 그땐 요리에만 전념할 수 있었으니까. 내 레스토랑을 오픈한 후 신경 쓸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서래마을 프렌치 레스토랑 ‘더그린테이블’의 김은희 오너 셰프의 얘기다. 이런 부분을 짚어 셰프의 경영 도전을 긍정적으로만 볼 수 없다는 조심스런 견해도 있다. 차라리 오너가 따로 있어 음식 만드는 일에만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이 더 나을 수 있단 얘기다. 그렇다면 오래전부터 오너 셰프 레스토랑이 일반화됐고 외식 문화가 선진화된 외국의 경우엔 어떨까? “분명 오너 셰프 레스토랑의 등장은 긍정적이다. 그런데 외국을 보면 실력이 뛰어난 톱 셰프는 자기 돈으로 레스토랑을 내지 않기도 한다. 내 기획과 메뉴가 좋으니 투자를 하란 식이다. 그러면 관심 있는 일반인이나 셀러브리티, 법인 형태의 레스토랑 그룹이 투자자로 나선다.” 레스토랑 컨설턴트와 홍보를 맡고 있는 ‘이노피알’의 김소영 대표의 설명이다. 그녀는 “외국에선 셰프가 요리에만 전념하도록 최적의 조건을 만들어준다. 셰프를 위해 경영자 따로 매니저 따로 고용해준다. 국내 시장에도 스타 셰프처럼 스타 경영자가 나와야 한다.”고 덧붙였다. 셰프들 사이에서도 이런 희망이 느껴진다. 오너 셰프가 늘어나는 건 좋지만 운영 체계의 현실성을 갖춰야 한다는 것. “대기업이 외식 산업에 뛰어드는 게 바람직하다. 개인은 자본 규모가 적을 수밖에 없다. 그러면 물가는 오르고 이에 맞춰 음식값을 올릴 순 없고 고정비는 아껴야 되니, 품질 유지가 어려운 악순환이 반복된다. 반면에 대기업은 레스토랑이 자리 잡을 때까지 버틸 수 있는 자본력이 있잖아. 이탤리언 레스토랑 ‘보나세라’가 좋은 사례다. 80억원이 투자된 레스토랑이다. 3~4년간 잠잠할 동안 계속 기다릴 수 있었고, 그 이후부터 수익이 나기 시작했다. 게다가 이번에 드라마 배경이 되면서 대박이 났다.” (양지훈) “우리나라 오너 셰프 레스토랑은 ‘맨땅에 헤딩’으로 해 나가는 곳이 많다. 내 요리를 얼른 선보이고 싶은 꿈도 있겠지만 막상 발전 가능성과 체계적 스폰서 등을 갖춘 일터가 많지 않아서 자기가 차리는 걸 수도 있다. 개인과 대형 자본이 같이 가야 한다.” (이형준)우리나라의 외식 산업은 역사가 그리 길지 않다. 당장 가까운 일본과 비교해봐도 10년 가까이 차이가 난다. 업계 전문가들은 과도기 단계에 놓여 있다고 말한다. 그럴듯해 보이지만 아직 체계와 내실을 갖췄다고 말할 순 없다. 바꿔 말하면, 시행착오를 겪으며 성장할 수 있단 의미이기도 하다. 그런 상황에서 중심에 있는 이들은 아무래도 셰프들이다. 그리고 이들도 스스로 변신을 꾀하고 있다. 옳고 그른지에 대한 답은 아직까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분명한 건 셰프가 요리와 경영을 동시에 맡든, 오너와 셰프가 공생을 하든 양쪽 모두 경험과 실력을 겸비해야 한다는 거다. 그래야 양적으로 팽창하는 국내 외식 산업에서 오래가는 레스토랑이 나올 수 있다.* 자세한 내용은 엘르 본지 4월호를 참고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