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란 가구박람회가 열린 지난 4월 12일. 시내 한복판에 극장으로 쓰인 시네마 아티(Cinema Arti) 안, 아무것도 없는 높고 좁은 방에 여러 개의 스포트라이트 조명이 나무처럼 빽빽하게 설치됐다. 음악도 없고 향기도 없다. 조명이 꺼졌다 켜질 때마다 나뭇잎 사이로 햇빛이 들었다 가렸다 하는 것 같다. 고요함이 몰려온다. 매년 한 명의 디자이너를 선정해 설치미술 작품을 선보이는 COS는 올해 건축가 소우 후지모토와 함께 ‘빛의 숲(Forest of Light)’을 공개했다. 사람들이 움직이면 그를 따라 빛이 점멸하는데, 방의 3면이 거울로 돼 있어 빛들이 무한 반복된다. 소우 후지모토에게 숲과 도쿄, 무형의 건축에 대해 물었다.
왜 빛의 숲을 짓기로 했나
사무실이 도쿄 신주쿠 인근 주택가에 있다. 도쿄 구시가지의 좁은 주택가 골목은 붐비는 듯하면서 동시에 아늑한 느낌도 들고 또 제멋대로 지저분하기도 하다. 그게 꼭 식물들이 어우러지며 숲이 생겨나는 과정과 비슷해서 인공 숲을 떠올렸다. 건축적 관점에서 한 가지 제안을 해 보고 싶었다. 인공적이되 숲이라 불릴 공간을 하나 만들어놓고, 어떤 게 자연스럽고 어떤 게 인위적인지 생각할 여지를 주는 것이다.
COS로부터 이 프로젝트를 의뢰받았을 때 어떤 생각을 했나
기준은 COS를 어떻게 이해하는 것인가였다. 패션과 건축의 관계에서 생각이 시작됐다. 건축도 패션도 우리의 일상, 몸의 움직임, 인간의 행동과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다. 옷이든 건물이든 ‘사람과 어떻게 상호작용할 수 있는지’를 고민해야 한다. 게다가 COS와 내가 추구하는 것 사이의 공통분모도 꽤 많았다. 베이식, 타임리스, 심플 같은 단어들. 그냥 단순하기보다 우아하게 절제된 심플함 말이다.
그런데 이번 설치 작업은 실존하는 것, 예를 들어 콘크리트나 나무 같은 게 아니라 ‘빛’으로 지었다
처음엔 구조물 같은 걸 지으려 했다. 그런데 그렇게 하면 너무 건축만 가져오는 것 같았다. 패션도 건축도 아닌 중간 지점을 찾고 싶었다. 그러다 빛이 떠올랐는데, 물리적인 소재도 아니면서 공간감을 구현할 수 있어서 좋았다. 조도를 조절함으로써 매우 부드럽게 상호작용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건축에서도 빛은 언제나 필수 요소다. 빌딩엔 늘 창문이 있으니까
보통은 건축물 안에 빛을 어떻게 들이느냐 하는 문제다. 하지만 이번 설치 작업은 빛이 주인공이므로 어찌 보면 더 순수하지만 다루기는 어려웠다. 그런데 장소가 과거에 극장이었다는 점이 해결책이 돼줬다. 스포트라이트처럼 쓰기로 했다.
사람이 살거나 머무르는 장기적인 목적이 없는, 단 5일간만 설치되는 작업인데
단기간 공개한다는 게 꽤 괜찮은 ‘슬픔’인 것 같다. 설치미술 작품은 사라져도 여기서의 경험은 계속 살아 있을 테니까. 게다가 요즘 세상엔 영상도 있고 사진도 있고 인스타그램도 있기 때문에(웃음).
팀원은 몇 명인가
도쿄에는 38명이 근무하는데 여섯 개의 팀이 있고, 각 팀은 네다섯 명 정도다. 어쩌다 보니 파리에서 큰 프로젝트를 세 개쯤 진행하게 돼 최근에 사무실을 열었다.
당신은 모든 팀의 구성원인가
그렇다. 감독만 하기도 하고 어떨 때는 깊이 관여하기도 한다.
이 질문을 한 이유는 보통 사람들은 어떤 분야에서 유명해지고 나면 실제적인 일보다 감독만 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때그때마다 다르다. 요즘 나는 그림을 그리지 않는다. 프로그래밍하는 법을 잊었다. 물론 이메일은 보낼 줄 안다(웃음). CAD 작업을 실제로 하는 대신 주로 큰 그림을 그리는 컨셉트에 대해 생각한다고 말하는 게 맞겠다. 하지만 건축이란 작업은 팀 없이 혼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덕분에 원래 하던 일을 놓고 상전으로 지낸다는 느낌은 없다.
컨셉트, 달리 말하면 아이디어가 가장 중요하다는 뜻인가
그렇다. 그러나 시작 단계의 아이디어뿐 아니라 프로세스 전반에 걸친 아이디어라고 말하고 싶다. 아주 큰 그림을 구현해 가는 것과 동시에 아주 작은 디테일, 소재나 치수 등도 중요하다. 그 과정 전부에 관여하는 게 좋다.
사무실은 왜 도쿄에 차렸나
그냥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다. 도쿄에서 학교를 졸업했으니. 파리의 사무실도 그랬듯이 난 그저 상황에 따를 뿐이다.
외국에서 유학한 적이 없다는 게 되려 특이(?)하기도 하다
도쿄도 꽤 괜찮은 도시다(웃음). 처음에는 일본에서 진행되는 프로젝트만 했다. 그땐 도쿄 사무실에 외국인 직원 한 명 있는 것도 꽤 불편(?)했다. 당시엔 내가 영어도 잘 못했고 외국 프로젝트도 들어오는 게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직원 절반이 외국인이고, 70% 이상의 프로젝트가 해외에서 진행된다.
10년 사이 당신은 세계적으로 가장 주목해야 할 젊은 건축가라는 평을 받는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건가
잘 모르겠다(웃음). 더 흥미로운 건축물을 만들려 했을 뿐이다. 그 수밖에 없다. 또 어떤 일이 내게 오든 간에 차분하게 받아들이려 한다. 일상적인 곳에서 벗어나 새로운 나라, 새로운 도시에 가서 새 것을 보는 순간이 재미있다. 알던 곳과는 다른 영감을 받을 수 있다.
아주 강한 인상을 받았던 도시가 있나
물론 도쿄다.
왼쪽부터 COS의 수석 디자이너 카렌 구스타프슨, 소우 후지모토, COS의 남성복 수석 디자이너 마틴 앤더슨. 이들은 전시를 위해 여러 번의 회의와 대화를 거쳤다.
small talk with 카렌 구스타프슨 & 마틴 앤더슨
올해의 협업 파트너로 소우 후지모토를 선정한 이유는
카렌 우리는 그의 작품을 전부터 좋아했다. 3년 전 런던의 서펜타인 갤러리에 그가 파빌리온을 만들때부터 우리가 후원하는 작가 중 한 명이었고, 당시 작품의 인상이 강렬했다. 패션과 관련 없는 분야라 해도 우리가 영감을 받은 작가들과 새로운 일을 하는 것이 좋다.
패션 외의 다른 영역에 관심이 많은가
카렌 내 생각엔 COS 팀 전체가 건축과 영화, 디자인 등에 관심이 많은 것 같다. 또 새 시즌 컬렉션을 디자인하기 전에 이것저것 자료도 찾고 연구하는 데 시간을 많이 할애하는 편이다. 어떤 그림에서 색감에 관한 영감을 얻을 때도 있고, 어떤 아티스트가 우리의 디자인 과정에 영향을 줄 때도 있다. 어떤 작품 하나만 알고 있다가 점점 깊게 리서치하다 보면 아티스트의 개인적인 작업 과정까지 모든 방면을 좋아하게 된다.
COS가 옷이 아닌 다른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이유가 늘 궁금했다
마틴 우리가 여러 가지 협업을 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우리가 영감을 받은 것들을 공유하고 싶기 때문이다. 좋아하는 것을 나누고 싶은 마음에 대해선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이번 밀란 설치미술 작품 다음엔 스톡홀름에 있는 마켓 아트 페어를 위해 또 다른 사색 공간을 디자인했다. 그 다음엔 베를린에 있는 한 갤러리와의 협업도 예정돼 있고….
요즘은 세상이 너무나 빨라졌고, 영감이라든가 철학이라든가 예술 같은 단어들을 말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해지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카렌 우리는 컬렉션을 디자인할 때 ‘타임리스’에 기준을 두고 있다. 당장 이번 시즌뿐 아니라 몇 달, 몇 년이 지나도 질리지 않는 옷 말이다. 고객들도 그런 가치를 알아주고 즐긴다는 느낌을 받곤 한다. 세상이 어떻게 변한다 해도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추구하는 가치에 집중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