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는 봤나, ‘5분 미팅’ | 엘르코리아 (ELLE KOREA)

“띵동” 종이 울리자 남자들이 일어나 자리를 바꿨다. 나는 지금 '5분 미팅’ 현장에 나와있다. “내가 여기 왜 앉아있지?” 우유니 킴이 풀어놓는 보통 여자들의 현실 연애 잔혹사 두 번째 에피소드.:: 연애, 러브, 섹스, 로맨스, 커플, 남친, 여친, love, romance, sex, 5분 미팅, 소개팅, 우유니 킴,엘르, elle.co.kr:: | 연애,러브,섹스,로맨스,커플

영화 <Valentine's Day>(2010) 스틸. EP02 5분에 한 번씩 소개팅하기 ‘5분 미팅’이라고 들어는 봤나. 강남역의 지하 와인바. 남 10명, 여 10명이 테이블 마다 한 커플씩 앉아있다. 5분 동안 서로 얘기를 하다가 종이 울리면 남자들이 일어나 다음 테이블로 간다. 얘기는 주로 자기 소개-몇 살이세요, 어디 사세요, 직업이 뭐예요-다. 그마저도 시간이 부족해 빨리 대답하지 않으면 미처 정보를 얻지 못한다. 다음 테이블에선 자기소개가 반복된다. 지금 내 앞에 있는 남자의 번호는 14번. 이곳에 14번째로 등록했나 보다.  역시나 그는 예의상 “이름이 어떻게 되세요?”라고 묻는다. 기억도 못할 거면서. 내 이름은 여자 3번이다. 나는 이름과 내친김에 나이를 말한다. “어디 사세요, 직업이 어떻게 되세요, 힘들지 않으세요?”가 연타로 들어온다. 아까 13번 남자에게 했던 대답을 녹음기로 틀고 싶다. 그래도 난 시종일관 웃음을 잃지 않는다. 여기서 0표 여자로 전락하고 싶지 않다. 이 미팅이 끝나면 남자와 여자들은 1순위부터 3순위까지 마음에 드는 이성의 번호를 쪽지에 적어 낸다. 5분마다 정확히 종을 울린 MC는 이 쪽지를 받아 들고, “오늘도 몇 몇 이성분에게 몰표가 몰렸네요.”라는 잔인한 말을 건네고, 출입구를 가르치며 “사랑을 찾으시길 기원한다”고 마지막 인사를 건넨다. 토요일 오후 3시, 거의 똑같은 옷을 입고 온 여자들은(거의 블랙 미니드레스) 수줍은 듯 그곳을 빠져나간다. 그녀들의 기분은 어떨까? 난 거지 같았다. 어쩌다 이런 자리까지 왔을까. <섹스 앤 더 시티>에서도 미란다가 이런 비슷한 미팅을 하고 자괴감에 빠졌던 거 같은데. 함께 미팅에 참가한 친구와 강남역 스타벅스에 들어갔다. “오늘 거지 같지 않았니?” 나는 동조를 구하는 눈빛으로 물었다. “남자들 전반적으로 별로더라. 그래도 10번이랑 11번은 괜찮던데. 아마 여자들은 다 걔네 찍었을 걸.” 친구는 덤덤하게 그날의 미팅을 평가했다. 그녀는 이 미팅의 단골이다. 자기도 한 군데 업체만 다니기는 민망했던지, 3-4군데의 미팅 업체를 번갈아 가며 참여한다. 그래서 그녀는 매주 토요일 오후 3시면 강남역 스타벅스에 앉아있다. 가끔 홍대나 서대문에서 미팅이 열리지만, 그녀의 경험상 강남역 미팅이 가장 번듯한 직장인들이 나온다고 했다. 우린 커피를 시키고 아까의 투표 결과를 기다렸다. 미팅에 참가한 남자들이 ‘마음에 드는 이성’으로 나를 얼마나 적어냈는지 휴대전화로 전송될 예정이다. 아까의 거지같은 마음은 어디 가고 내심 떨린다. “설마 0표는 아니겠지, 여자들은 어리기만 하지 다 촌스럽던데.” 그런 생각을 하는 내가 더 거지 같아졌다. 2표. 10명의 남자들 중 2명은 내 이름을 적어 냈다는 얘기다. 내가 1순위였는지, 2순위였는지, 3순위였는지는 나오지 않는다. 고마운 일이다. 내 친구는 이번에도 부동의 인기녀가 됐다. 거의 몰표였다. 나는 얘가 남자를 찾고 싶어서 매주 미팅에 나오는지, 인기투표 결과로 존재감을 입증받고 싶어서인지 헷갈린다. 둘 다 일거다.  서로의 이름을 적어낸 이성은 상대의 전화번호가 문자로 온다. 나도 2순위인가로 써낸 포항 공대 나온 남자의 번호를 문자로 받았다. 이 남자는 나를 몇 순위로 적어냈을까? “그런데, 얘 이름이 뭐였더라.” 기억나는 건 포항공대를 졸업했다는 것, 무슨 회사인지 회사 다니기가 힘들다는 말뿐이었다. 얼굴도 제대로 기억나지 않는다. 와인바의 발광하는 형광등 아래에서 그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기가 좀 그랬다. 그도 내 어깨 언저리에 시선을 두고 얘기하는 듯 했다. 가끔 고개를 들어 내 인중을 보는 거 같긴 했는데, 아마 그도 내가 잘 기억 나지 않을 거다. 10명의 여자를 5분 동안 휘릭 만나고, 다 기억할 수 있다면 뭘 해도 성공할 거다.  “나는 이런 미팅에 왜 나와 이런 자괴감에 빠져야 할까.” 그렇다고 이 미팅에 참여한 여자들, 특히 여기에 매달리는 내 친구를 욕하고 싶지 않다. 누구나 외롭다. 하지만 소개팅을 부탁하기도 구차하고, 또 부탁한다고 나올 소개팅의 숫자도 점점 줄어든다. 친구의 친구가 해주는 남자들은 그 나물의 그 밥이다. 저 멀리 나와 인연이 닿을 리 없는 수원의 대기업에 다니는 성실하고 착한데 숫기가 없어 여자친구가 없는 과장님을 만나기란 쉽지 않다. 그 만날 리 없는 외로운 남녀들이 이런 자리를 통해 인연을 이어간다면 괜찮은 일이다. 후보가 많아야 하나라도 얻어걸릴 확률이 높기에 많은 남녀가 한자리에서 시간과 비용을 효율적으로(10명의 이성을 일일이 소개팅한다고 생각해보라) 사용해 만남을 갖는 다니, 또 괜찮은 일이다. 결국 문제는 나다. 그 자리까지 나가서도 ‘남자를 고르지’ 않았다. 어떻게 하면 옆에 주르륵 앉은 10명의 여자들보다 예뻐 보일까. 남자에게 정말 궁금한 걸 물어보지 않고, 그의 대답에 어떻게 자연스럽게 웃을지 신경 썼다. 정작 그의 얼굴을 살피지 않고 어떻게 하면 내 앉은 자세가 예쁜지 고민했다. 또 억울한 건 와인을 더 마셨다간 얼굴이 빨개질까 봐 3만원 회비에도 와인은 입만 댔다 뗀 거. 이 5분의 시간 동안 10명의 남자에게 일일이 잘 보이려 애쓴 내가 가엽다. 5분 동안 내가 남자를 살피고 고르면 안 되는 거였나. 결국 나는 그 자리까지 가서도 선택 받고 싶어하는 여자였다. 선택하는 여자가 될 수 없었을까. 나는 그 미팅에 다시 나가지 않는다. 5분 동안 10명의 남자를 기억하기엔 기력도 쇠하고, 토요일 날 ‘그 짓’을 하러 버스를 1시간 동안 타고 강남역에 나가기 싫었다. 내 친구는 여전히 거기에 출입한다. 여전히 부동의 여자 인기 투표 1위지만(이것도 경험치에서 나오는 노하우가 있나 보다), 여전히 남자친구는 없다. 그래도 주말 스케줄이 있어서 외로워 보이진 않는다. To be continued… 우유니 킴이 전하는 인사 30대 중반. 패션지의 피처 에디터로 일하면서, 연애 해볼 만큼 해봤습니다. 연애 칼럼을 늘 쓰고 싶었어요. 그런데 세상 다 아는 언니처럼 이래라저래라 하기에, 제 연애는 시궁창입니다. 저처럼 연애에 치이고 구른 한국 여성들에게 말해주고 싶어요. 당신만 이렇게 힘든 거 아닙니다! 부끄러움은 제 몫. 저와 제 친구들의 현실적인 경험담이 당신에게 공감 혹은 위로가 되길 바랍니다. 혹시 압니까? 남 일은 잘 보인다고, 당신의 연애에 해답을 얻을지. elle.co.kr에서 매주 수요일 찾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