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R

21세기 록 스타 'The 1975'

귓가를 휘감는 기타 리프 사운드와 눈을 현혹하는 비디오 비주얼로 전 세계를 ‘로킹’한 록 스타, 맨체스터 출신의 밴드 The 1975와 <엘르>가 단독으로 만났다.

프로필 by ELLE 2016.02.29

The 1975를 만나러 가는 길이 유난히 마음 무거웠던 이유는 공교롭게도 그들이 대미를 장식할 현대카드 컬처 프로젝트 <5 Nights II>의 공연 시작이 몇 시간 남지 않은 타이밍이었기 때문이다. 기대보단 우려의 감정을 품고 그들이 잠시 머무르고 있는 그랜드 인터컨티넨탈 호텔 스위트룸의 문을 두드리자, 예상과는 달리 여유로운 표정의 프런트맨 매튜 힐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제 막 팬에게 전달할 수십 장의 CD에 사인을 마친 상태였다. “미안하다”는 에디터의 진심 어린 인사에 “우리는 언제든 열려 있으니 괜찮다. 아니, 정정할게. <엘르>와 함께인 지금 이 순간만 열려 있다”는 농담을 건네는 센스까지 발휘했다(실물로 영접한 매튜의 ‘잘생김’은 훨씬 더 치명적이었다!). 맨체스터 변방의 체셔 주, 정확하게는 윔슬로(Wilmslow)의 중산층 가정에서 성장한 고교 동창생, 매튜 힐리(보컬, 기타), 조지 대니얼 (드럼), 아담 한(기타) 그리고 로스 맥도널드(베이스)로 구성된 The 1975는 밴드 결성 10년 만에 발매한 데뷔 앨범 한 장으로 ‘신생 밴드’란 타이틀이 무색할 만큼 무서운 속도로 뮤직 신을 잠식했다. ‘스타일리시한 모던 록 사운드의 새로운 기준’이라는 영예로운 찬사를 얻을 정도로 그들의 음악은 다양한 질감을 품고 있다. 보통의 인터뷰에선 주로 매튜가 홀로 등장한다는데, 이날은 웬일인지 멤버들이 모두 합세한 가운데 아담과 로스가 침착하게 이야기를 듣고 매튜와 조지가 주도적으로 나서 말을 이어갔다.


공연 당일인데 이토록 여유 넘치는 모습이라니 

매튜 솔직히 무대에 서는 횟수가 늘수록 더욱 편안해지는 감이 없지 않다. 어제 저녁엔 코엑스 몰에서 쇼핑까지 했다. 나는 지금 입은 바지를 샀고, 조지는 매그놀리아 컵케이크를 사먹었지. 


The 1975는 국제적으로 잘 알려진 상태지만 그 유명세를 처음 얻게 된 순간이 궁금하다 

매튜 그거 아나? 대부분의 뮤지션들에게 첫 쇼는 사실 ‘어쩌다 생긴 해프닝’에 가깝다는 걸. 어느 날, 아담이 우리 마을에 자선 콘서트가 있을 거란 소식을 알려왔고, 거기에 우리가 밴드로 출전(!)하자는 아이디어를 냈다. 취향을 정확하게 단정할 순 없겠지만 그때 모인 250명가량 되는 젊은 관객 대부분이 반항아 기질을 지닌 ‘이모(Emo; 기타를 중심으로 한 음과 멜로디, 감성적인 선율을 특징으로 하는 음악 장르)’ 팬들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다 같이 미친 듯이 놀고 난 그때 이후부터 ‘무대’를 갈망하게 된 것 같다. 비록 그로부터 10년의 세월이 훌쩍 지난 23세가 돼서야 첫 앨범을 발매하긴 했지만. 


그토록 데뷔 앨범이 늦어진 데는 무슨 특별한 이유라도 있나 

조지 아직 자신 있게 우리를 내보일 단계가 아니라고 생각해서다. 졸업 후에 우리 힘으로 앨범을 낸 건 굉장히 다행스러운 일 같다. 만일 15세에 앨범을 발매했다면 지금처럼 행복하지 않았을 테니까. 그나저나 어젯밤에 우리 팬 하나가 인스타그램에 우리를 태깅해 자신이 몸에 새긴 타투를 보여줬는데 우리의 초창기 시절 노래 제목이더라. 진정한 우리의 ‘프리 팬’임을 인증한 셈이지. 

매튜 그게 우리 밴드의 재미있는 부분이다. 지금 우리는 밴드치곤 상업적으로 성공해 얼마든지 쉽게 접근 가능한데도, 정작 우리 팬 층의 심장부에 있는 이들은 이토록 제정신이 아니라는 게 굉장히 쿨하지 않나(웃음)? 


밴드의 셀프 타이틀이 붙은 데뷔 앨범에 비해 오는 2월 26일 발매될 2집 앨범 타이틀은 굉장히 길고 시적이다
조지 좀 웃기지? 처럼 긴 앨범 타이틀은 전 세계를 뒤져봐도 드물 거다. ‘시적’이라는 포장으로도 설명 안 되는 부분이 있지.
매튜 이 제목은 부분적으로 ‘이모’ 장르에 관한 우리 식의 감성적인 표현이 깃들어 있다. 앨범 수록곡을 축약하기에는 과하게 낭만적이긴 한데 대단히 충격적인 사랑 얘기에 영감을 얻어 짓게 됐다. 그런데 아이러니한 게 과장된 제목 덕에 수록곡들이 골고루 ‘바운드’ 있게 갈 수 있는 자유가 생겼다는 점이다.

The 1975 하면 실험적인 비주얼을 지닌 동시에 풍부한 내러티브를 담고 있는 뮤직비디오 얘기를 빼놓을 수 없다. 이번 2집 수록곡으로 선 공개된 ‘Love Me’의 경우 영화 <록키 호러 픽쳐 쇼>가 떠오를 정도로 강렬하고도 빈티지한 색감이 예술이더라
매튜 ‘Love Me’는 ‘셀피 컬처’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그 안에서 내 캐릭터는 모두가 사랑하는 록 스타다. 엘비스 프레슬리, 리한나, 해리 스타일스 등 역대 히어로들의 패널을 잔뜩 세워둔 것도 그런 의미가 담겼지. 그걸 찍기 위해 참고한 여러 레퍼런스 중엔 <록키 호러 픽쳐쇼>도 물론 있었다. 고스족 느낌이 진하게 풍기지? 어쨌든 음악에 있어선 꽤 진지하지만 우리 모습이 어떻게 비춰질지에 대해선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
아담 우린 항상 음악과 그 외 모든 영역이 동일한 연장선에 있도록 보이는 데 강한 의지가 있다. 뮤직비디오도 음악을 다른 채널로 확대, 재생산한다는 생각으로 만든다.


1집에 기반을 두고 추론해 보면, 좋아하고 영향받은 문화에 기반해 골고루 곡을 창조해 내는 성향이 짙어 보인다 

매튜 The 1975의 음악은 모든 걸 말해주지 않는다. 대신 스스로 생각하고 대화할 거리를 던져주는 걸 좋아한다. 주로 우리가 1집에서 취한 방식이다. 하지만 2집은 조금 다를 거다. ‘Loving Someone’엔 여전히 ‘내’가 담겨 있긴 하지만 ‘Nana’엔 어떤 ‘상황’만 담겨 있다. 아직 전부 말해줄 순 없지만 우린 앞으로도 특별히 정치적 혹은 예술적이란 형용사와 어울리는 음악을 하진 않을 거란 사실은 확실히 말해줄 수 있다. 


밴드의 지금을 완성하는 데 영감을 준 사람으로는 누가 있나 

매튜 모든 건 마이클 잭슨에게 배웠다. 그가 전 앨범에 걸처 행한 것들, 아트워크를 비롯해 의상, 댄스, 조명, 느낌처럼 말 그대로 모든 걸 흡수했다. 특히 ‘Thriller’는 사운드와 시각적인 요소가 완벽하게 일체화된 사례였지. 


친구 사이인 멤버들과는 어떤 어린 시절을 보냈나 

조지 솔직히 우리가 어릴 땐 어느 누구도 쿨하지 않았다. 보통 자신의 음악 세계를 개척해 나갈 능력이 생기기 전까지 부모님이 듣던 음악만 듣지 않나. 우리가 15세가 될 때까지만 해도 인터넷도 부재했고, CD를 살 자금도 충분하지 않았다. 어떻게 우리의 스타일 센스를 키울 건지에 대한 결정 또한 내리기 힘들었지. 다만, 음악에 대한 이론 하나만은 확실하게 습득했다고 해야 하나. 우리 네 사람에겐 음악에 대한 공통점이 있었다. 마이클 잭슨 기반의 1980년대 댄스 팝, 아메리칸 R&B, 블랙 뮤직, 아주 짧게 들었던 힙합 뮤직이 우리의 자양분이었다. 


The 1975가 밴드 포맷이긴 하지만 팝의 느낌이 풍기는 것도 이토록 다양한 음악적 뿌리를 근간으로 해서인가 보다 

매튜 처음 우리가 밴드를 하겠다고 결심했을 땐 미국 얼터너티브 뮤직에 영향을 많이 받았다. 우리는 맨체스터 외곽에서 성장했기 때문에 ‘월드 뮤직’으로 미국 음악을 접했다. 우리가 고등학생 땐 스켈리(Scally)라 불리는 조금 다른 종족들이 있었는데, 주로 공원에서 랩 음악을 듣거나 술을 마시는 그룹이었지. 16세쯤 됐을 땐 일렉트로닉 댄스 뮤직, 그리고 개러지 뮤직을 발견했다. 개러지, 이모가 우리의 뼈대이긴 하지만 초창기와 지금의 음악색은 조금 다르다. 

아담 요사인 확실히 우리가 어릴 때보다 문화가 단일화된 느낌이다. 음악과 문화, 패션 사이의 경계가 흐릿해졌다. 서로의 영역에서 조금씩 개념을 빌려와 확대 생산해 나가는 느낌이다. 어떤 규칙이 없기 때문에 더 열려 있고 그래서 위협적인 상황이다. 

매튜 뭐가 쿨인지도 알 수 없지? 쿨함을 잃지 않는 것도 우리의 한 역할인데, 언제든 접속 가능한 인터넷 덕분에 어떤 사람에게 특별한 영향을 주는 게 쉽지 않다. 


유명세를 얻은 지금, 밴드에게 유명세는 얼마나 크게 작용하나? 

매튜 만일 우리가 17, 18세기에 지금과 같은 명성을 얻었다면 새로운 ‘유니언’을 결성하는 대의를 도모하고 있겠지. 하지만 사람들은 우리가 24세가 될 때까지 우리 존재를 거의 몰랐다. 알다시피 나이를 먹으면 사람은 누구나 자신을 지키기 위해 내면 속으로 걸어 들어가잖아. 24세쯤 되면 내가 누구인지를 기본으로 성장하기 때문에 유명세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전체 중의 아주 일부일 뿐이지. 물론 난 프런트맨이기 때문에 늘 표면에 나와 있어야 한다는 약간의 스트레스가 있지만 그래도 겸손하게 여기고 감사하는 중이다.






Credit

  • EDITOR 김나래
  • PHOTOGRAPHER 김상곤
  • ART DESIGNER 이상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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