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알랭 드 보통의 가차 없는 질문들 | 엘르코리아 (ELLE KOREA)

왜 우리는 그는 사랑하는가? 우리가 편애하는 베스트셀러 작가 알랭 드 보통을 런던의 한적한 작업실에서 만났다. 그에게 궁금한 모든 것, 사랑, 성공, 여행에 대한 가차없는 질문과 그의 철학적인 답변들.::알 랭드 보통, 베이식한, 심플한, 클래식한, 집, 거실, 모임, 일상, 휴식, 여가, 책, 엘르, 엘르걸, 엣진, elle.co.kr:: | ::알 랭드 보통,베이식한,심플한,클래식한,집

휴 그랜트 악센트에 고급영어를 쓰는 알랭드 보통. 상상한 목소리 그대로다. 어려운 질문에도 능수능란하고 철학적이던 답변들. 인터뷰는 상상 이상이다. 그의 책을 동영상 버전으로 읽는 기분이랄까. 한 달전 이사했다는 작업실은 놀랄 만큼 정갈했다. 그림 몇 점 외에는 별다른 인테리어가 없는 응접실, 컴퓨터와 스탠드, 연필통이 가지런히 정리된 책상이 그러했다. 꼭 있어야 할 것만 제 위치에 있는 느낌이다. (왠만한 물건은 입성하기 힘든 그의 공간에 백세주 한 병과 출판사에서 선물했다는 한글 액자가 있다.) 다만 일주일에 1백 권정도 훑는다는 독서량에 걸맞게 방마다 큰 책장이 자리한다. 책에도 순서가 있는지 꺼내 본 책은 반드시 그자리에 돌려놔야 했으며 인터뷰는 두 시간으로 제한됐다. 이런 몇 가지 까다로운 점만 빼면 한국에서 왔다는 이유만으로 꽤 호감을 보였다. 어쩔 수 없이 두 번이나 약속을 변경한 우리에게 ‘No Problem’이라고 답해준 것부터 그랬다. 이번 인터뷰에 응한 것은 의 독자층인 한국의 젊은 여성들과 소통하고 싶어서였다. 그래서 20대에게 미리 공모한 질문을 던졌고, 그는 인생 선배이자 작가로서 매우 철학적이고 어느 정도 명확한 답변을 이어갔다. 1 출판사에서 선물 받은 액자.2 얼마 전 이사한 작업실. EG 팬카페를 통해 당신에 대한 질문을 공모했다. 어떤 질문이 가장 많을까? 힌트를 주면 질문자는 모두 20대다. 일과 사랑 아닐까. 20대는 이 두가지로 고민을 많이 하니까.EG 대부분 여성들이 사랑법에 대해 물었다. 이별의 조건이나 나쁜 남자를 안 만나는 법 같은. 왜 지구 반바퀴 너머에 사는 당신에게 조언을 구하는걸까.한국 사회의 특성 때문인 것 같다. 내가 만난 한국 남자들 대부분 감정을 숨기고 표현에 인색하다.내 책 는 남성의 관점에서 여자를 사랑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상세히 털어놓는다. 그래서 한국 여성들이 유난히 좋아한 것 같고, 내가 사랑에 대한 답을 줄거라 믿는 것 같다. EG 또 당신이 사랑에 대한 정의를 내려주길 바랬다. 사랑은 내게 없는 무언가를 다른사람에게서 찾을 때 온다. 모든 걸 다 가진 완벽한 사람은 없다. 우린 내게 없는 어떤 자질, 특성을 가진 사람과 관계 맺고 싶어하지. 그래서 사랑을하면 보다 완벽해지고 충만해지는 느낌을 받게 된다. 반대로 사랑 때문에 더욱 외로워지기도 하지. 외로움이란 가족, 친구, 사회에게 이해받지 못한다고 느끼는 감정이다. 이런 외로움을 이해해주는 누군가를 만나면 사랑을 하게 되지. 하지만 사랑이란 나의 외로움을 이해해달라 요구하는 강력한 행위라서(상대가 부담스러워하거나 회피할 수 있기에) 오히려 행복하지 않은 시간을 감수해야 할 때도 있다. EG 그리고 당신의 사적인 연애사도 궁금해했다. 당신은 몇 번의 연애 경험이 있나?4~5번 정도. 10대, 20대의 사랑은 대체로 행복하지 않았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날 안 쳐다보고 반대의 경우도 많았지. 하지만 내 사랑이 만족스럽기만 했다면 같은 책은 안 나왔을 거다. 사랑에 관한 책을 쓰는 작가 모두 사랑에 관한 문제를 앓았던 사람일 거다. EG 연애 경험이 많을수록 사랑을 알겠던가? 사랑 경험이 쌓여갈수록 사랑에 대해 이해하게 되지. 만난지 얼마 되지 않아 상대방에게 느끼는 욕구들은 진짜 사랑이 아닌 경우가 많다. 하지만 어렸을 때는 쉽게 사랑에 빠지고 영원한 사랑을 확신한다. 그러다 갑자기 이런 확신이 흔들리면서 괴로워한다. 사랑 경험이 많은 나이든 사람들은 사랑에 조심스럽게 다가간다. 지금 상대방에게 느끼는 매력을 사랑이란 감정과 분리해서 생각해본다. 예를 들면 지금 이 상대방에게 엄청 끌리지만 ‘아직은 이른 것같아’하는 식으로 자신을 다잡는 방법을 배운 거다. EG 잡지에 연애 칼럼을 연재한다면 엄청난 인기를 끌 거다. 독자들이 고민을 보내오면 당신이 상담해주는…. 어떤가?거절할 거다. 사랑엔 정답이 없으니까. 얼토당토한 해결책보다는 그저 당신뿐 아니라 우리 모두가 그런 문제를 겪고 있다고 말해주는 것이 적절하다. 난 작가니까 책을 통해 사랑에 관련된 문제들을 자세히 묘사하고 설명함으로써 독자들이 ‘아, 이건 내 문제야. 나만 이런 게 아니었어’라고 공감하고 위로받도록 하고 싶다. EG 많은 독자들이 같은 책을 더 써달라 부탁했다. 준비중인 사랑에 관한 책이 있나?언젠가 또 쓸 것이다. 대신 사랑의 종류가 조금 달라지겠지. 이젠 20대가 아닌 40대의 사랑이나 결혼을 다룰 것이다. 어린 친구들은 결혼하면 한 평생 행복하게 살거라 생각하지만 당연히 아니다. 결혼 생활에도 갖가지 문제들, 행복들이 엉켜있다. 이들에 대해 얘기하고 싶다. EG 다음으로 많았던 질문은 당신의 철학적인 사고에 관한 것들이다. 평소에도 관찰하고 사색하는 습관이 있을 것 같다. 세상의 무수한 분야 중에 인간 관계, 회사생활, 가족처럼 우리 삶과 밀접한 것들에 관심이 많다. 우리와 깊은 관련이 있지만 너무나 익숙해서 잊고 있는 것들, 작가라면 이들을 감지하고 관찰해야 한다. 이렇게 아무도 얘기하지 않는 생활의 비밀스런 부분들에 대해 글을 쓰고자 한다. EG 현재 최대 관심사는? 종교에 대한 책을 쓰고 있다. 만약 종교, 신, 가족, 전통이 사라진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사람들은 자기 일이나 사랑에 더 집중하게 될까? EG 책의 주제가 정해지면 관련 서적부터 독파하나?우선 주제에 대해 정말 많이 생각한다. 그 다음에 관련 서적들을 읽는다. 그들의 생각을 차용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읽으면서 내가 놓친 부분을 잡고, 나와 다른 견해에 반발하면서 생각을 정리하는 거지. 문제는 그다음이다. 책상에 앉아있다고 글이 나오진 않거든. 무심코 거리를 걷다가, 한밤중에 잠이 깨서 글이 써질때도 있다. 언제 어떻게 글쓰기가 시작될지 모를 일이다. 3 일정을 체크하고 글을 쓰는 공간. EG 한 달에 몇 권의 책을 읽나? 일주일에 1백 권 정도 훑는다. 다른 것은 사지 않고 책만 절제 없이 구입한다. 나의 유일한 사치라 할 수 있지. EG 팬레터는 많이 받겠지?하루에 이메일 열 통 정도.EG 혹시 당신을 비판하는 내용은 없나? 왜 없겠나. ‘넌 죽어야해’, ‘왜 내 돈 훔쳐갔어’라는 식의 비정상적인 이메일도 있는 걸. 물론 99%는 긍정적인 내용이다. 한국에서도 많은 이메일일이 오는데, 다른 나라에 비해 굉장히 사적인 내용이다. 사랑과 진로 문제에 힘들어하는 그들에게 어떤 답장을 할지몰라 무력해진다. 작가도 당신들과 마찬가지로 혼돈의 인생을 살고 있다. 삶에 대해 좀 더 고민해봤을 뿐이지. EG 책이 너무 어렵다는 독자도 많다. 갑자기 슬퍼지네. 나부터 어려운 책에 질색하기에 최대한 쉽게 쓰려한다. 작가는 보통 사람들이 어렵게 느끼는 문제들을 이해하기 쉽게 언어로 풀어쓰는 사람이다. 보통 철학책과 달리 내책만은 혼란스럽지 않게, 유리처럼 투명하게 전달되길 바란다. EG 당신의 작품은 세계 수십 개국에 20여 개 언어로 출판된다. 하지만 판매 부수는 차이가 많다.나도 그점이 흥미롭다. 한국, 브라질, 터키, 중국, 대만에선 베스트셀러지만, 그리스나 일본에선 인기 없다. 왜그럴까?EG 번역 문제도 있을 거다.내 책이 안 팔리는 나라는 번역이 문제인 듯하다. 번역가가 내 책을 이해 못한 거지. 특히 나의 은근한 유머와 농담이 표현 안 될까봐 겁난다. 나비 수집가의 성공은 원하는 나비가 망에 잡혔을 때이듯이, 작가로서의 성공은 작가 원하는 나비, 즉 단어가 망에 잡혔을 때다. 그렇게 신중하게 단어 하나하나 선택해 쓴 책인데 오역된다는 것 자체가 공포다. 오역 하나에 책이 완전히 망가질 수 있다.EG 그래도 세계 곳곳에서 들어오는 저작권료가 엄청날 듯하다. 혹시 돈따위엔 무감각한가?작가 세계에서조차 큰 돈을 벌면 진정한 작가가 아니라는 잘못된 풍조가 있다. 책을 사는 것은 사과나 빵을 사는 것처럼 단순한 구매 활동이 아니다. 책을 구입하고 자기 인생의 서너 시간을 할애해 읽는 행위는 작가와 독자가 개인적인 관계를 맺는 것이다. 이점에서 저작권료는 돈 문제가 아니라 독자들과 나의 관계에 대한 징표다. 이 점에서 난 행복한 작가다. EG 당신이 성공에 대해 강연하는 것을 봤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성공은 다른 이의 생각을 흡수한 거라 했지. 당신이 원하는 성공은 무엇인가?작가에게 끔찍한 순간이 언제인지 아나? 지금 쓰고 있는 이 글이 버려질지, 좋아해줄지 느낌이 올 때다. 더 끔찍한 건 매번 그 예감이 온다는 사실. 지금 쓰고 있는 글에 좋은 예감이 들고, 실제 이 책을 좋아하는 독자가 있고, 내가 그들에게 이해받고 있다면 성공한 거다.EG 성공을 위해선 무언가 대가를 치러야 한다고 했다. 당신이 성공을 위해 양보한 것은? 20대 때는 개인적인 행복을 희생하고 일에 집중했다. 하지만 가족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는 요즘엔 작가로서 성공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곤 한다. 일과 가정 동시에 성공하기란 정말 힘들다. EG 당신이 불안해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을 누그러뜨리는 노하우가 있다면?작가의 성공은 무척 불확실하다. 대부분의 작가는 크게 평가됐다가도 나락으로 떨어지는 등 굴곡이 심하다. 나 역시 이점이 불안하다. 내 글을 계속 읽어줄까, 작가로서 잘 하고 있는 걸까. 이런 불안이 엄습할 때면 죽음을 생각한다. ‘인생은 짧고 모든 인간은 언젠가 죽는다’고 생각하면 웬만한 불안은 없어지고 내가 집중해야 할 인생의 의미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EG 당신을 얘기할 때 ‘여행’을 빼놓을 수 없다. 요즘에도 여행을 많이 다니나. 예전에는 홀로 여행을 떠나 사색하길 즐겼는데, 지금은 가족 여행을 떠난다. 젊을 땐 질색하던 해변가의 리조트로. 얼마전에 가족들과 아프리카 근처에 있는 테너리프 섬에 다녀왔다.EG 여행을 많이 다닌다 해도 당신의 정착지는 런던이다. 작가에게 런던이란 도시의 매력은?영어로 글을 쓰는 작가다 보니 영어로 소통한다는 것이 큰 이점이다. 하지만 미국에선 별로 살고 싶지 않다. 그렇다고 런던을 사랑하지는 않는다. 런던은 정말 문제가 많은 도시니까. 런던 생활이 만족스러웠다면 아마 창조적인 글을 못 썼을 테니 고마운 일이지. 파라다이스에 사는 작가는 글을 쓸 수 없으니까. EG 마지막으로 당신에게 제안을 하나 하겠다. 최근 히드로 공항에 머물면서 쓴 을 펴냈다. 이처럼 한국에 장기간 체류하며 우리와 관련된 책을 써도 베스트셀러일 거다. 그거 마음에 든다. 사람들이 내 책을 통해 나에 대해 아는 것이 아닌, 내가 누군가를 알아가고 발견한다는 아이디어가 굉장히 흥미로운 걸. 예를 들면 어떤가.* 자세한 내용은 엘르걸 본지 3월호를 참고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