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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ERE I AM, WHO I AM 내 생활을 몇 단어로 압축해 보라면 “쉬지 않고 달려왔다.” 이 말이 제일 먼저 떠오른다. ‘이동’과 ‘여행’이라고 하는 편이 더 정확할지도 모르겠다. 지난 몇 년 동안 아주 다양한 곳으로 여행을 거듭했다. 한밤중에 잠에서 깰 때면 여기가 어딘지 언뜻 떠오르지 않거나 도무지 알 수 없는 경우도 빈번했다. 전날 밤과 다른 도시에서 아침을 맞는 일도 내게는 흔하다. 당일치기로 도시들을 옮겨다니지 않고 며칠간 한 곳에 머문다 해도 어차피 얼마 후면 똑같은 과정이 반복된다. LA에서 콘서트를 끝내고 바로 공항으로 달려가서 하룻밤 동안 비행기에 몸을 싣고 서울로 가고, 다시 도쿄, 런던, 파리, 뉴욕…. 이런 식이다.
내 삶이 줄곧 이랬던 건 아니다. 처음 비행기를 탄 건 15세 때였다. 요즘이야 비행기 여행이 흔해졌지만 상대적으로 내겐 늦은 편인 그때의 경험이 생생하게 남아 있다. 비행기를 탄 이유는 학교를 다른 지역으로 가게 돼서다. 당시 우리 집은 워싱턴 주였고, 내가 가야 할 학교는 노스캐롤라이나 주에 있었다. 기숙사 생활을 해야 했고, 음악을 집중적으로 가르치는 곳이었다. 이런 얘기를 꺼내면 사람들이 자주 물어보는 질문이 있다. 음악학교에 들어간 순간, 내 삶이 이런 식으로 흘러갈 줄 알았느냐고. 내 대답은 “전혀 몰랐다!”다.
물론 대학 진로는 자연스럽게 음악으로 정했다. 그리고 줄리어드는 음악에 있어서 가장 좋은 학교들 중 하나다. 하지만 여기 입학한다고 해서 ‘연주자로 살아가기’ 같은 과목을 배우진 않는다. “연주자가 되면 삶은 여행으로 가득 차고, 스스로 생활을 경영할 수 있어야 하고…” 이런 걸 알려주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그저 연습, 연습, 또 연습. 수백 시간 동안 열심히 악기 연습을 하게 될 뿐이다. 사람들은 또 궁금해한다. 맹목적으로 연습하는 건 아닌지, 어떤 뜻(?)을 품고 연습하는지. 물론 대개 이런 생각을 한다. ‘오케스트라, 체임버 앙상블, 대학교에서 자리를 얻을 수 있을까?’ ‘아주 드문 일이지만 솔리스트가 될 수도 있을까?’
BEING A SOLOIST 솔리스트가 되면 그건 정말 감사하고 운 좋은 일이다. 하지만 솔리스트로서 산다는 건 어려운 일이다. 그 동안 꾸준히 연습해서 저장해둔 레퍼토리에 지장을 주지 않으면서도 계속 새로운 레퍼토리를 연습해야 한다. 수백 번 연주했던 곡이라 해서 혹은 새로운 곡을 충분히 연습했다고 해서 방심할 순 없다. 연습을 소홀히 하면 피해는 결국 나에게 돌아온다. 그리고 시간이 갈수록 그 파장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주말은 당연히 쉬는 날일지도 모르겠다. 주말에 일을 한다면 그건 어디까지나 추가적인 업무일 테고. 하지만 나는 주말에 마지막으로 쉬어본 게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금요일 밤 친구들과 함께 놀러 나가는 일? 명절을 가족과 함께 보내는 일? 소파에 앉아 좋아하는 TV 프로그램을 보는 일? 늦잠 자는 일? 미처 소중하게 인식하지 못했던 이런 일상이 어느 순간부터 내게는 최고의 사치가 된 거다. 내가 이런 즐거움을 조금이라도 누리기 시작한다면? 안 된다, 안 된다. 일정하게 유지되는 사이클이 걷잡을 수 없이 헝크러질지도 모르니까.
다른 분야라면 어떨지 모르겠다. 많은 사람들이 노력을 통해서 각자 분야에서 성공을 거두겠지? 솔리스트들은 우리가 가진 것을 지키기 위해, 그걸 잃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연습해야만 한다. 음과 박자와 멜로디와 곡 전체를 스스로 완전하게 통제할 수 있어야 하고, 완벽히 기교를 부릴 수 있어야 하고, 악기 본래의 아름다운 소리를 지켜야 하고, 내 자신의 본질과 성격을 굳건히 유지해야 한다. 이 모든 게 어우러져야 하고, 어느 하나도 어긋나거나 실패해서도 안 된다.
I PLAY MUSIC 소리는 탄성력이 있는 도구를 통해 나타나는 기계적인 진동이다. 당연히 늘 같은 결과를 보장하지 못한다. 예술가로서 우리는 항상 끊임없이 변화하는 세계 속에서 움직일 수밖에 없다. 무대 위에 서면 음악도 움직이고, 음악의 기분과 의도도 다르다. 매 순간 각각 다른 음을 최선을 다해 내보내는 게 연주자의 역할이다. 이처럼 고려해야 할 사항이 너무도 많기 때문에 한 번의 콘서트를 준비하기 위해서는 정말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악기를 자유자재로 다루는 법을 배우는 일은 아무리 재능이 있어도 단번에 되지 않는다. 평생에 걸쳐 겨우 이룰 수 있는 그런 목표다. 그렇게 해야만 음악에 대해 알 수 있다. 그저 음만 외우는 것은 마치 셰익스피어의 대사를 아무런 억양이나 감정 없이 암기하는 것과 마찬가지니까. 연기를 할 때도, 어떤 의미를 전달하는 수단이 항상 말이 아니라 그 뒤에 숨은 의미인 것처럼 말이다.
음악은 완벽하다. 하지만 해석된 음악 뒷면에 감정과 확신이 없다면 그 연주는 활기 없고 따분한 것이 될 뿐이다. 음악가들은 색다른 음악과 완벽한 기교를 위해 몇 년 혹은 몇 십 년을 바친다. 내가 생각하기엔 예술가의 삶이 매력적인 이유는 바로 이거다. 누군가에겐 힘겹고 답답할 수 있는 과정과 목표가 내겐 매력적이기에 이 삶을 살 수 있는 것 같다.
관객을 어떻게 바라보고 생각하는지도 중요하다. 관객은 분명히 음악가의 자신감과 연주 능력에 영향을 미친다. 수많은 관객들 앞에서 말해야 한다고 상상해보길. 당신은 불안한가? 기분이 좋든 나쁘든 매일 밤 2천 명의 사람들 앞에서 그 일을 해야 한다면 어떨까. 이런 압박감과 스트레스는 몇몇 음악가들의 일상생활에도 문제를 일으키게 된다. 그것이 심리적이건 감정적이건 간에 말이다. 나는 연주가 썩 훌륭하지 못했더라도 결과나 평가에 대해서 지나치게 반응하지 않기 위해 노력해왔다. 대신 전체적인 과정을 우선시한다. 항상 최선을 다하고 최고의 결과가 나오기를 원하지만 가끔은 그러지 못할 때도 있으니 말이다. 그 자체를 받아들이고 다음을 준비하는 것이 정신 건강을 위해서나 예술가로서의 성공을 위해서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I PLAY MY LIFE 일 외에 내가 몰입할 대상이 있다. 일에서 도망치고 싶은 혹은 의도적으로 그래야 하는 순간에 도망칠 수 있도록 말이다. 내 경우에 그건 마라톤이었다. 내 삶이 먼저 필요로 한 운동이기도 하다.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는 6개월 내내 내가 스트레스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강력한 트레이닝으로 마라톤만한 게 없었다. 지난 10월에는 생애 처음으로 보스턴 마라톤을 완주하기도 했다. 그리고 지금은 두 번째 마라톤인 LA 마라톤을 위해 꾸준히 준비하고 있다. 나는 첫 번째 마라톤을 준비하기 위해 600마일 이상을 달렸고, LA 마라톤을 위해서는 800마일 이상을 달릴 것이다. 단 한 번의 마라톤을 위해 너무 긴 시간인 것 아니냐고? 마라톤을 보면, 그리고 여기에 열정을 가지는 나를 보면, 클래식 음악가가 되는 게 어떤 건지 함축적으로 알려주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나는 먹는 것도 좋아한다. 잘 먹고 건강을 유지하며 적절히 휴식을 취하고 운동하는 건 내게도 마찬가지로 중요하니까. 프렌치 레스토랑에서 먹는 근사한 저녁이건 아니면 콘서트 후에 먹는 빅맥이건 간에 말이다.
세계 여러 곳을 오가지만(당장 이번 3월 5일, 오후 8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3월 7일, 오후 5시, 고양아람누리 아람음악당에서 ‘리처드 용재 오닐 2010 리사이틀:노래’ 공연이 있어 한국에 들어온다) 주 생활지는 뉴욕이다. 내게 가장 완벽한 하루는 아침에 맨해튼의 끝에서 끝까지 15마일을 뛰고 난 후(나는 지난 달에 이걸 네 번이나 했다), 어퍼 이스트 사이드에 있는 근사한 브런치 레스토랑 ‘사라베스’에서 아침식사를 하고 뉴욕 현대미술관이나 구겐하임 미술관,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 들른 후, 센트럴 파크를 지나 메디슨 가에 있는 가게들을 구경하고, 마지막으로 ‘앨리스 튤리 홀(Alice Tully Hall)’에서 열리는 ‘뉴욕 링컨센터 체임버 뮤직 소사이어티’ 주최 연주회에서 공연을 하는 날이다.
공연이 끝나고 솔리스트가 무대 밖으로 걸어나갈 때 관객도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들은 좋은 연주에 대해 저마다의 감상을 가지고 돌아갈 거다. 연주자가 한 곡을 연습하기 위해서 1백 시간 이상을 투자했거나 기술을 연마하기 위해 수십 년을 노력했다는 사실은 모를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가 이 모든 것을 기쁘게, 그리고 기꺼이 한다는 것을 나는 믿기 때문에 그런 건 상관없다. 기분이 좋지 않을 때면 나는 할머니가 좋아하고 교회에서 자주 부르시던 찬송가인 ‘네가 누리는 복을 세어보라’를 떠올리려고 노력한다. 그 노래는 아주 단순하지만 의미는 아주 깊다. 결론적으로 나는 솔리스트로서의 삶이 즐겁고, 내가 누리는 많은 것들을 감사히 잘 알고 있다.
HIS STEPS 1978년 생, 줄리어드스쿨 음악대학원에 비올리스트 최초로 입학 2000년 로스앤젤레스 필하모닉 협연으로 데뷔 2005년 1집 2006년 2집 2006년 에버리 피셔 커리어 그랜트상 수상 2007년 3집 2008년 4집 2008년 패트릭 지(첼로), 쟈니리(바이올린), 지용(피아노), 스테판 재키(바이올린), Michael Nicolas(첼로)와 함께 ‘앙상블 디토’ 데뷔 2010년 솔로 5집 앨범 발매 예정 2010년 현재 UCLA 교수
* 자세한 내용은 엘르 본지 3월호를 참고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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