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양진
graphic designer
할 말을 디자인하는 남자
‘지치지 마세요’ ‘반대를 반대한다’ ‘아프면 청춘이 아니라 환자다’. 읽기만 해도 속 시원한 문장들을 디자이너 김양진은 타이포그래피로 보여준다. 둥글게 때론 뾰족하게 그려지는 글자들은 역시나 시원하고 가감 없다.
‘글자공감’이라는 홈페이지에서 당신의 작업을 봤다 2014년 말부터 운영했다. 레터링 작업은 그 이전부터 계속해 왔는데 혼자 쌓아두고 보는 것보다 공개적인 장소에 올려두고 피드백을 받고 싶었다. 별 생각 없이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좋아해 주더라. 그래서 처음에는 ‘김양진글자표현연작’이던 이름을 ‘글자공감’으로 바꿨다. 내 이름을 붙여놓은 게 괜히 부끄러워서.
‘부끄럽다’에서 느껴지는 수줍음과 달리 문장들은 ‘꼭 애매한 것들이 외모로 지적질’이라든지 ‘그런 소리 하지 말고 퇴근시켜 주세요’라든지… 세다 그때그때 느끼는 감정과 하고 싶은 말들을 문장으로, 어울리는 레터링으로 표현한다. 그래서 ‘인생이 그렇지 뭐’라고 심드렁하다가도 ‘인생을 다채롭게 삽시다’라고 기운 넘치기도 한다. 거슬러 올라가면 유치원 때 그렸던 그림일기가 첫 포트폴리오이자 프로젝트일 거다(웃음).
글자를 시각적으로 디자인할 때 무엇을 가장 중시하나 ‘어떤 어조로 읽히는가’. 사람들이 글을 읽을 때 작게 중얼거리거나 속으로 목소리를 내는 데는 글자의 굵기나 질감이 영향을 준다고 생각한다. 굵은 목소리, 거친 목소리, 단조로운 목소리, 빠른 목소리…. 어떤 목소리가 이 문자에 어울릴지 어조를 떠올리며 레터링한다.
오늘 떠오른 단상은 ‘무기력한 염세주의보단 무지한 낙관주의가 낫다.’
어떤 목소리를 닮은 레터링일까 두 가지가 떠오른다. 정자체로 딱딱하고 재미없게 디자인한 것과 화려하게 장식해 예쁘긴 한데, 딱히 왜 이렇게 생겼는지 모르겠는 것 하나. 정답은 없다.
김인엽
artist
솔직 담백한 모던 에세이스트
자기 얼굴을 꼭 닮은 캐릭터를 모나미 플러스 펜으로 꾹꾹 눌러 담는 김인엽의 그림은 거칠고 단순하지만 폭포수 줄기만큼이나 통쾌한 구석이 있다. 동시에 프레임 여기저기엔 청춘의 복잡한 상념이 흘러 넘친다. 한눈에 봐도 그래픽 노블을 떠올릴 정도로 위트 넘치는 글과 독특한 묘사가 빛나는 단편만화 여러 편을 엮은 <신도시>는 그가 1인 출판 개념으로 직접 펴내는 비정기 간행물. 우리나라 1기 신도시인 산본에서 나고 자라면서 겪은 자전적인 성장담과 그가 절대로 멈출 수 없는 일 중 하나라고 실토한 생각의 연쇄를 빠져 나와 정제된 상상력이 절반씩 섞인 결과물이기도 하다.
“<호밀밭의 파수꾼>을 제일 좋아하는데, 저 역시 홀든 콜필드가 걸었던 그 길을 걷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제 작품을 소설과 같은 맥락으로 봐주시는 분들도 많지만 욕설이나 가감하지 않는 성적 묘사 덕분에 외설적이라고 평가하는 분들도 많아요. 근데, 어른이 할 수 있는 가장 자유롭고 순수한 표현이 그런 식의 ‘유아틱함’ 아닐까요?” 미대 시각디자인학과 재학생으로 입시미술은 배워본 적 없고, 한때는 디자이너로 불리는 삶을 살아볼까 짧게 고민했던 김인엽이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건 의외로 공군 유격대로 군생활을 마친 직후부터다. 시간이 남아 문학 책만 200권가량 섭렵하고 나니, 어떤 작가든 결국 똑같은 얘기를 하고 있단 생각이 들었고, 괜히 겁먹을 필요 없이 그때그때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아도 괜찮겠다는 묘한 안도감이 동시에 찾아왔다고. 그때부터 그의 작업도 시작됐다.
“미래의 포트폴리오? 저는 그냥 부지런하게 작업을 하는 게 좋아요. 돈을 벌든 못 벌든 작업은 노동인 것 같아요. 창작 행위 자체가 대단하다고 생각하지도 않고, 그냥 그 자체가 좋아서 할 뿐이에요. 다만 젊을 때 젊게 살 수 있는 게 젊음, 축복받은 사람이라는 말이 가장 중요하다는 걸 상기하면서 삽니다. ‘노답’인 인생에 정답 같은 건 없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