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디 워홀의 철학 혹은 심술
“나는 테이프 레코더와 결혼했다”고 말하던 팝아트의 거장 앤디 워홀이 평생 기록한 녹음 테이프에서 발췌해 몇 개의 테마로 나눠 정리한 <앤디 워홀의 철학>은 일상의 철학과 심술궂은 생각들이 꽤나 쿨하게 뒤범벅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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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길이 후대에 남는 사람들은 후대에 남길만한 것을 남긴다. 나와 같은 후대가 그들의 업적보다 사적 발자취에 더욱 열광하는 것은 성취 이전의 혹은 성취를 뒷받침했으리라 짐작하는 그들의 근본에 대한 탐구욕 혹은 모험심 때문일 확률이 높겠다. 퇴계 이황과 장 그르니에가 수많은 편지를 남겼다면, 앤디 워홀은 “나는 테이프 레코더와 결혼했다”고 말할 정도로 엄청난 양의 녹음된 테이프를 남겼다. 미술관에서 울리던 그의 음성이 <앤디 워홀의 철학 The Philoshphy Of Andy Warhol From A to B and Back Again>(미메시스)같은 텍스트로 재단된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그의 일상은 미술관에 발목 잡혀 있을 게 아니라 일상에서 공유되어 마땅한 일상적인 것들이기 때문이다. 결국 철학이 사람됨과 생각의 그릇이라 한다면, 덕분에 그것은 들쑥날쑥할 수도 타인의 공감을 일으키지 못할 수도 혹은 맥락이 없어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책은 내가 미처 소통하지 못한 고백들이 쿨하게 담겨 있다는 점만으로도 흥미롭다. 또한 그의 코카콜라나 통조림 팝아트 작품처럼 보편 타당한 주제나 표현만은 아니라는 점도 맘에 든다. 물론 그 공감의 결이 일관되진 않는다. 짜깁기한 녹음 테이프 속 잡담들을 한결같이 엮어낸다면 그것이라 말로 진정한 가짜가 아닐까. 나는 이 책을 ‘앤디 워홀의 철학’보단 ‘앤디 워홀의 단상’으로 읽었다. 네 번째 챕터부터 읽기 시작했는데 ‘아름다움’에 대한 그의 단상에서 몇 가지 흥미로운 부분들이 있어 그 중 일부를 공유하려 한다.

4 아름다움
나의 초상화. 영원한 아름다움과 일시적 아름다움, 그것들을 가지고 무얼 할 것인가. 청결한 미인. 그저 그런, 좋은 표정. 그대의 표정을 그대로 유지하라. 아름다움의 단조로움.
# 어떤 사람이 그 시대에 미인이고, 그의 용모가 실로 당당하며, 그런 상태에서 시간이 가고 취향이 바뀌어 10년이 지난다. 세월이 흘렀음에도 그의 용모는 조금도 변하지 않는다. 그리고 스스로를 잘 관리하고 있다. 그렇다면 그는 여전히 미인일 것이다.
슈라프트 레스토랑은, 한 시절의 아름다움을 그대로 갖춘 식당이었다. 그들은, 급기야 그들의 매력이 다하여 대기업에 팔릴 때까지 끊임없이 유행에 뒤떨어지지 않기 위해 보충하고 수정하는 노력을 했다. 하지만 그들이 외관과 스타일을 그냥 유지하고, 그런 스타일이 별로라고 생각되는 시기를 버틸 수 있었다면, 지금쯤 아주 성업하고 있을 것이다. 당신은 자신의 스타일이 유행이 아닌 시기를 버텨나가야 한다. 왜나하면 당신의 스타일이 훌륭하더면 그 스타일의 시대가 다시 돌아올 것이고 당신은 한 번 더 인정받는 미인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 당신이 어떤 사람에게 관심이 있고 그가 당신한테 관심이 있는 것 같으면, 그가 당신이 가진 미적 결함들을 눈치채지 못하길 바라지 말고 문제를 전부 끄집어내어야 한다. 예를 들어, 짧은 다리처럼 인위적으로 바꿀 수 없는, 영원한 미적 문제를 가지고 있을 수도 있다. 그럴 때는 그냥 말하라. “아마 당신도 보셨겠지만, 내 다리는 몸 전체의 길이에 비해 너무 짧아요.” 다른 사람이 그 문제를 발견하게 하지 말아야 한다. 일단 발설하고 나면 이후의 관계에서 더 이상 문제로 등장하지 않으며, 만약 문제가 되었을 때도 당신은 이렇게 말할 수 있다. “그래요, 그건 처음에 이미 말씀드린 건데요.”
# 그저 그런 모습은 내가 좋아하는 모습니다. 내가 만일 너무 ‘나쁘게’ 보이기를 원하지 않는다면, 나는 ‘그저 그렇게’ 보이기를 바랄 것이다. 그것이 외모에 관한 나의 두 번째 선택이다.
# 그러나 당신이 체중에 무관심할 수 없다면, 앤디 워홀식 뉴욕 다이어트를 실행해보라. 나는 레스토랑에서 음식을 주문할 때 내가 좋아하지 않는 것을 주문한다. 그렇게 해서 다른 사람들이 먹을 때 가지고 놀 거리를 만든다. 그런 다음 레스토랑이 아무리 세련된 곳이라 해도 개의치 않고 웨이터에게 음식을 접시째 싸달라고 조른다. 일행과 함께 레스토랑을 나가면 나는 길 위 어딘가 음식을 놓고 갈 수 있는 구석자리를 찾는다. 뉴욕에는 쇼핑백에 자기의 생활 필수품을 다 넣어 가지고 다니는 노숙자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 어떤 이들은, 심지어 지적인 사람들초차, 폭력이 아름다울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나는 그 말을 이해할 수 없다. 아름다움은 순간적인 것이고, 나에게는 그 순간들이 결코 폭력적이었던 적이 없다.
Credit
- EDITOR & PHOTO 채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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