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도 믿을 수 없는 독특한 사무실
한국 건축계의 현재를 말할 때 이름이 빠지지 않는, 젊은 건축가 김찬중 소장의 더시스템랩은 왜 분당 아파트 밀집 지역의 슈퍼마켓 2층에 창고 같은 사무실을 차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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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의 천장을 뜯고 지붕까지 층고를 올려 박공형식(시옷자 모양)의 지붕 구조가 드러나 있는 더시스템랩의 사무실 전경.
 
 
 
 
 

 
1 슈퍼마켓 2층, 정체를 알 수 없는 골강판 외벽 뒤로 건축사사무소가 숨어 있다.
2 김찬중 소장이 앉은 아일랜드형 테이블 뒤는 오픈형 탕비실로 냉장고, 정수기, 에어컨 등 가전제품을 모두 벽 속에 숨겼다
 
 
 
 
 

 
3 더시스템랩이 설계했던 어느 빌딩의 한 조각은 그대로 우드 데크의 오브제가 되었다.
4 천장에 매달린 프레임 가운데 조명.
5 책상과 책상 사이에 파티션은 없지만 거리는 충분히 여유 있다.
 
 
 
 
 

 
6 김장철이면 배추가 쌓여 오르내리기도 힘들다는 남다른 고충(?)의 마트 옆 좁은 계단을 올라오면 시크한 출입구를 만나게 된다.
7 더시스템랩이 설계한 한남동 빌딩처럼 굽이치는 물결 같기도, 에이리언의 뱃속 같기도 한 모양의 선반.
8 사무실 한 켠의 휴식 공간은 최대한 집처럼 편안하게 느끼게끔 거실의 커피 테이블 세팅으로 꾸며져 있다.
 
 
더시스템랩의 김찬중 소장은 지금 업계에서 가장 센세이셔널한 건축가다. 한남동 대로변에 있는 흰색 에이리언 같은 5층 건물, 압구정동 골목에 있는 기이한 굴곡의 폴 스미스 매장 건물, 연희동에서 ‘냉장고’라 불리는 갤러리 등을 지은 이력을 들으면 더시스템랩이 실험적인 건물을 짓는 데 얼마나 매진하고 있는지 알게 된다. 이런 건축을 하는 사람들의 사무실은 얼마나 자유로울까? 모든 게 카오스처럼 어질러져 있을까? 출근할 때 아무 옷이나 입어도 될까? 김찬중 소장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그는 이렇게 말했다. “마트 2층으로 오세요.” 네? 뭐라고요? “아침 9시부터 보통 12시간 정도 근무해요. 건축설계사무소 대부분이 마찬가지고요. 저도 직장생활 해봤지만, 그만큼 사무실에 앉아 있으면 미쳐버리거든요. 남의 사무실만 멋지게 설계할 게 아니라 우리도 제대로 된 환경을 누려야 지속 가능한 디자인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3년 전 이 사무실을 발견하기 전, 김찬중 소장은 경기도 일대의 공장과 창고 건물을 샅샅이 뒤지고 다녔다. 멋진 사무실을 원했던 건축가에게 어째서 꿈의 사무실이 창고였을까? 천장이 높고 내부가 하나로 뻥 뚫린 공간 그리고 멀리 가지 않아도 외부 공기를 쐴 수 있는 공간, 그에겐 오직 두 가지의 필요조건만 있었다. “요즘은 기술이 좋아서 창문을 열지 않아도 거의 완벽하게 환기가 돼요. 그럼에도 외부 공기를 직접 쐬는 건 정말 중요하죠. 우리 회사에서 설계한 한 재단의 직원으로부터 편지를 한 통 받은 적 있어요. 실은 퇴사를 고려하고 있었는데 제가 설계한 새 사무실로 이사 간 후 다시 일을 열심히 할 수 있을 것 같아 회사를 그만두지 않기로 했다고요. 저에게는 되게 의미가 있는 편지였어요. 당장 그런 환경에서 지내야겠다고 다짐했죠.” 하지만 멋진 데크가 있는 강남 소재 건물은 월세가 어마어마했고, 대안으로 찾아낸 창고들은 도심에서 너무 멀었다. 그러다 우연히 분당에 왔을 때, 지금의 사무실 앞을 지나게 됐다. 2층짜리 건물인데 1층은 꽤 넓은 슈퍼마켓이고 슬쩍 올라가 본 2층은 분당의 모든 쓰레기를 다 모아둔 것처럼 난장판이었다. 그러나 층고가 상당했고, 옥외 공간도 있었다. 당장 부동산을 뒤져 장기임대계약을 했다. 아무도 사무실로 쓰지 않을 법한 아파트 단지에 있는 입구 상가였으나 이미 마음속으로 ‘유레카’를 외친 그는 이곳이 좋았다. 천장을 뜯어 지붕까지 노출시키고, 옥외 공간에는 우드 데크를 설치한 후, 실내와 실외를 구분하는 벽은 강화유리로 바꿔 시야를 확보했다. 실내에는 골강판 철판에 도장을 해 컨테이너 박스 같기도, 실제 공장 같기도 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너무 말쑥한 사무실을 만들고 싶진 않았어요. 경직되잖아요. 뭘 좀 깨뜨려도 혼나지 않을 것 같은, 자유롭게 돌아다니면서 일할 수 있는 구조를 생각해 보니 공장 같은 레이아웃이 나왔어요.” 천장에는 사각 철제 프레임이 매달려 있는데, 그 위에 카센터에서 쓰는 전깃줄 릴이 매달려 있고, 조명 역시 프레임에 붙어 있다. 원래는 음향 시스템까지 설치하고 싶었다. “벽에 콘센트를 연결하면 사람들이 벽에 붙어 살게 되는데, 머리 위에 있으면 움직일 수 있는 공간만 있으면 모여서 뭘 만드는 작업을 할 때도 동선이 유동적이죠.” 사무실 안에 있는 모든 책상과 집기에는 기성 가구든 제작 가구든 바퀴가 달려 있어 이리저리 밀고 다닐 수 있다. 파티션도 없지만 회의실도 없다. 입구에 소파와 커피 테이블을 놓은 리빙 룸 같은 공간이 있는데, 여기가 손님 응대 겸 회의실이자 휴식 공간으로 쓰이는 곳이다. 집보다 오래 머무르는 사무실에서 최대한 편안하게 사고할 수 있게끔 집을 연상케 하는 분위기는 낸 것이다. 직원들은 만족할까? 더시스템랩은 이직율이 제로에 가깝다. 처음 회사를 설립했던 2012년의 원년 멤버가 현재 모두 재직 중이고, 대규모 프로젝트를 하는 회사치곤 적은 인원인 13명의 직원이 모두 각자 맡은 일의 책임자가 된다. 모든 직원이 오너 입장으로 회사를 다니게 하는 게 김찬중 소장의 목적이자 의지다. 그런 와중에 사무용 가구 사이로 한국에 몇 피스밖에 수입되지 않았다는 토머스 헤더윅의 스펀(Spun) 체어, 데이비드 치퍼필드가 디자인한 의자, 뱅앤올룹슨의 오디오 시스템이 여기저기 보인다. 비싼 디자인 가구를 자랑하듯 로비에 전시하는 방식이 아니라 실제로 매일 쓰는 사무실 생활용품(?)이라는 것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그들이 비싼 물건을 사무실에 가져다 놓은 이유는? “건축가는 건축주와 아주 밀접하게 대화합니다. 몇 년씩 관계가 계속되기도 하고요. 실제로 그들이 원하는 걸 디자인으로 구현하려면 그들의 라이프스타일을 알아야 해요. 공부해서 아는 건 한계가 있거든요. 한번은 직원이 고급 빌라 화장실을 디자인해 왔는데, 자기 집 화장실에서 필요할 만한 요소만 넣었더라고요. 그래서 사무실에서 누릴 수 있는 것들을 다 누려보자, 삶의 방식을 바꿔보자고 제안했죠. 비싼 게 다 좋은 건 아니지만, 폭넓은 삶의 유형을 자연스럽게 접해야 한다는 거였어요.” 더시스템랩에는 믹스 커피가 없다. 배달 음식 그릇도 없다. 트레이닝 바람에 슬리퍼를 신고 있는 피폐한 야근 전사도 없다. 자발적 야근은 충분히 많지만 일과 생활이 전도돼 있는 비극은 이 사무실 안에서 감지되지 않는다. 김찬중 소장은 직원들이 삶을 망가뜨려 가면서 일하는 것이 얼마나 소모적인 것인지 잘 알고 있다. 한국뿐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도 도제 시스템의 폐해가 여전한 건축계에서 ‘열정 페이’ 따위로 직원들의 인생을 빼앗는 것을 충분히 봐온 그였다. 오히려 직원이 개인으로서 경험할 수 없는 것을 회사에서라도 편안하게 얻기를 바란다. 그중 김찬중 소장이 일하는 공간은 더 멋지고 특별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책상도 없다. 회의 테이블 귀퉁이 의자에 노트북을 놓고 앉아 일한다. “자유롭게 일하자고 해놓고 제 방에 틀어박혀 있는 게 무슨 소용인가요?” 작은 수첩과 휴대폰뿐인 소지품을 든 그가 테이블 한 켠에 자리를 잡는다. 에디터와 포토그래퍼가 사무실을 나서자, 촬영팀을 내외하고 있던 직원들이 우르르 그의 곁에 모여 앉는 모습이 유리로 내비쳤다. 보고도 믿을 수 없는 더시스템랩의 유기적인 풍경이었다. 
 
 
Credit
- editor 이경은
- photographer 김도원
- DESIGN 오주희
엘르 비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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