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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튜어트 머독과의 조우

5년 만에 정규 앨범을 발표한 ‘벨 앤 세바스천’이 첫 단독 공연을 위해 한국을 찾았다. 전날 입국한 탓인지 피곤한 기색이 짙었던 스튜어트 머독은 한국의 겨울이 너무 춥다고 말했다. 예상대로 담담했지만 예상보단 잘 웃었다.

프로필 by ELLE 2015.02.28

 

지산록페스티벌 이후로 5년 만의 내한 공연이자 한국에서 첫 단독 공연이다. 한국 무대가 기억나는가 무대까지 올라와서 함께 춤추며 노래했던 팬들이 있었고, 어느 순간 객석 중앙에 있던 내가 기억난다. 정말 사랑스러운 공연이었다. 한국 관객들은 열정적이다. 오늘도 많은 관객들과 더불어 노래하고 춤출 수 있길 바란다.

 

무대에서 관객들을 보는 건 어떤가 음악에 자신을 완전히 맡기는 모습이 좋다. 물론 방식은 다양하다. 가만히 서서 음악을 느낄 수도 있고, 폭발적인 에너지를 분출할 수도 있다. 가장 좋은 건 우리가 공연을 즐기는 기분을 관객들도 똑같이 느끼는 것이다.

 

 

 

 

 

 

 

한국에서의 첫 단독 공연 중인 벨 앤 세바스천스튜어트 머독.

 

 

이번 내한 공연 준비 과정이 궁금하다 예전보다 훨씬 활동적인 공연이 될 것이다. 이번 앨범엔 춤출 수 있는 곡들이 늘었으니까. 다만 중요한 건 벨 앤 세바스천의 클래식한 느낌을 바탕에 둬야 한다는 것이다. 현악기, 트럼펫 연주자들이 무대에 함께 설 예정인데 그중 한 명은 한국인이다. 신곡을 연주할 땐 특별한 영상도 상영된다.

 

프랑스 동화에서 빌려왔다는 밴드 이름처럼 벨 앤 세바스천의 음악에선 동화적인 순수함이 느껴진다 어느 정도 사실이다. 때때로 동화 같은 믿음이 필요하다. 사람들은 자신의 순수함이 바보 같아 보일까 봐 부끄럽게 여길 순 있지만 그 순수함에 대한 믿음은 중요하다. 그런 믿음이 동화처럼 신념과 용기로 이어지곤 하니까.

 

음악을 만드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건 무엇인가 내 삶과 나를 둘러싼 사람들의 삶이다. 대개 무언가를 표현하고 싶은 욕구에 사로잡힐 때 음악 작업이 시작된다. 질투와 절망, 갈망 같은 욕구랄까. 하지만 본질적으로 음악적 영감은 그와 다른 곳에서 오는 것 같다. 좋은 멜로디를 쓸 수 있다는 자신감을 잃을 때가 종종 있지만 좋은 멜로디들이 되레 나를 끌어들인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밴드의 멤버가 많은 만큼 갈등을 피할 순 없을 거 같다 처음 밴드를 결성하는 기분이란 가슴 떨리는 연애 같은 것이었다. 밴드를 시작한 뒤로 모든 것이 더 좋아졌다. 다만 애인이 7명이나 된다는 사실이 조금 특별했지만(웃음). 우린 마치 갱단처럼 어디에서든 함께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지쳐갔다. 그래서 많이 싸웠고, 잘 알다시피 몇몇 멤버는 밴드를 떠났다. 물론 우린 여전히 서로를 아낀다. 항상 친구로 지내며 함께 하는 일을 일상으로 만들어내는 건 서로에게 중요하다. 한 가지 배운 게 있다. 만약 밴드에 소속돼 있다면 밴드 내에 있는 친구와 너무 자주 어울리면 안 된다는 거(웃음).

 

 

 

 

 

 

 

벨 앤 세바스천의 아홉 번째 정규 앨범 <Girls in Peacetime Want to Dance>.

 

 

 

<Girls in Peacetime Want to Dance>라는 앨범 타이틀은 어디에서 비롯됐는가 음반 커버에 대한 아이디어를 떠올리고 나서 타이틀을 지었다. 커버 아트워크엔 하반신이 로봇인 소녀와 상반신이 로봇인 남자가 나오는데 전쟁 직후에 상처를 입은 인물들에 대한 가상의 시나리오에 가깝다. 음악으로 보면 예전보다 직관적이고 댄서블한 곡을 만들고자 노력했고, 앨범 타이틀도 그런 테마를 이어나간 결과에 가깝다. 개인적으론 전쟁과 평화에 대한 이야기라고 말하고 싶다.

 

이번 앨범은 디스코풍의 분위기만으로도 전작들과 상당히 차별적이다 아무래도 긴 공백이 있었기 때문에 전작들에 대해 생각할 시간이 많았고 멤버들 간에 새로운 것을 해보자는 의견도 오고갔다. 디스코 성향이 강해진 건 천천히 진행돼 오던 변화의 일부다. 멤버 모두 오래전부터 사람들이 춤출 수 있는 음악을 만드는 데 관심이 있었다.

 

가사에 정치적인 성향이 포함됐다는 세간의 의견은 어떻게 생각하나 그저 곡을 쓰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스며든 이슈다. 개인적으로 정치보단 개인의 고난과 역경에 대한 관심이 더 많다. 그저 어느 개개인에게 정치, 미디어, 일련의 사건들이 예기치 않게 삶에 부딪혔고 영향을 주었는가를 생각하게 됐다.

 

이번 앨범을 통한 새로운 변화에 대한 반응이 엇갈린다 우린 우리에게 주어진 음악을 만든다. 기본적으로 밴드를 잘 유지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 그만큼 노력하고 있다. 오직 팬들을 기쁘게 할 음악을 하는 건 우선순위가 아니란 말이다. 다만 팬들끼리 그런 의견을 주고받는 건 반갑다. 그런 반응으로부터 우리 음악이 정말 지지받아 왔다는 느낌을 얻었다.

 

사적인 이야기를 모티프로 곡을 쓴 적이 없었다고 들었다. 그런데 이번 신보의 1번 트랙인 ‘Nobody’s Empire’는 지극히 개인적인 사연을 바탕에 둔 넘버라는데, 변화의 계기가 궁금하다 사실 기존에 썼던 노래들과 특별히 다르진 않다. 다만 다른 곡들에서 ‘나’라는 존재가 관여하는 비중이 작았을 뿐이다. 여전히 가사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풍부하게 보이게 만들 장치들을 찾고 있고, 이를 바탕으로 노래하는 중이다. 그런데 스스로 놀란 적은 있다. 그냥 가만히 앉아서 실제로 일어났던 일들을 자연스럽게 써내려 갈 수 있게 된 이유는 아직도 모르겠다.

 

지난 앨범인 <Write About Love>에선 노라 존스와 캐리 멀리건이 참여했는데 특별한 경험이 아니었을까 당시 나는 새로운 목소리를 갈망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에 <언 애듀케이션>의 시사회에서 캐리 멀리건을 만나 우리 앨범에 참여할 생각이 없는지 물어봤다. 그녀는 고마울 정도로 흔쾌히 승낙했다. 사실 녹음할 때 심하게 긴장하는 것 같았는데 역시 배우답게 감정을 잡는 데 능숙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노라 존스의 스모키한 목소리를 좋아한다. 그래서 한번 곡에 참여할 수 있는지 문의해 봤는데 수락해 주더다. 투어 중이었음에도 시간을 내서 스튜디오까지 찾아오기도 했다. 레코딩 준비를 완벽하게 마친 채 그녀를 기다리던 멤버들과 녹음실의 모두가 긴장해 있었던 기억이 난다.

 

 

 

 

 

 

 

벨 앤 세바스천의 내한 공연 무대.

 

 

밴드가 결성된 지 20년이나 됐다. 밴드를 유지하게 만드는 근본이 무엇이라 생각하나 우리 음악이 소수 취향에 가깝지만 지금까지 우리만의 방식에 충실해 왔기 때문에 밴드도 지속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지금도 50년 뒤에 올드 팝이 될 음악을 연주하고 있다. 그래서 그 음악들이 대단한 성공으로 연결되리라 생각하지 않는다. 우린 이제 젊지도, 섹시하지도 않으니까. 대중이 원하는 것을 충족시켜 주는 게 기본적으로 팝 문화의 본질이기도 하고.

 

미디어 노출을 꺼리는 편이었지만 이젠 페이스북으로 팬들과 소통할 정도로 적극적이다 바쁜 일정을 소화하며 살다 보면 작은 여유를 잊게 된다. 그 와중에 팬들과 일상을 공유하는 건 생각보다 큰 힘이 된다. 우린 미디어나 SNS에 발 빠른 사람들이 아니다. 그래서 팬들과의 소통 창구를 이제야 찾아낸 것뿐이다.

 

벨 앤 세바스천이 한국에서 첫 번째 단독 공연을 갖는 오늘 당신이 연출한 <갓 헬프 더 걸> 역시 개봉된다 사실 벨 앤 세바스천의 음악과 닮은 영화다. 분명 밴드와는 분리된 작업이었지만 벨 앤 세바스천이란 밴드를 떠올릴 수밖에 없는 영화일 거다. 여자 주인공의 시점으로 영화를 바라보게 된다는 것도 우리 음악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경험과 차이가 있다. 어쨌든 뮤지컬 영화인 만큼 관객들이 즐겁게 봐줬으면 좋겠다.

 

영화를 만들겠다는 계획은 언제 시작됐나 아마 10년 전이었을 거다. 사실 음악을 하기 전엔 내가 뮤지션이 될 거라고 상상하지 못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렇게 돼 있었다. 영화감독도 마찬가지다. 우연히 여성 뮤지션에 관한 음악을 상상하다가 가사가 아닌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다. 어쩌다 그리 됐는진 몰라도 이브(에밀리 브라우닝)라는 캐릭터가 떠올랐다. 그걸 모티프로 네 곡 정도를 쓰고 나니까 다른 두 주인공을 떠올리게 됐다. 그땐 밴드 활동에 한창이었던 터라 영화 작업으로 연결할 시간적 여유가 없었지만 생각 이상으로 집중력을 발휘했고, 그 뒤로 돌이킬 수 없게 돼버렸다(웃음).

 

영화 작업 전에 영화음악부터 만들었는데 당시엔 레코딩과 영화 제작을 동시에 진행할 만한 여유가 없었다. 마침 레코딩 기회가 먼저 찾아왔고, 그래서 진행했다. 완전히 독립적인 작업이었다. <갓 헬프 더 걸>의 앨범에 참여한 가수들과 함께 투어를 다녔다. 그 과정을 통해 영화를 만들 수 있는 동기를 얻었던 거 같다.

 

첫 영화였으니 만만하진 않았을 텐데 촬영 첫날이 기억난다. 촬영지에서 배우들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너무 초조했다. 그래서 근처의 교회에 들어가서 숨을 고르고 기도했다. 앞으로 벌어질 일이 너무 불안했다. 개인적으로 음반 작업보다 아홉 배는 힘들었다. 다행히도 많은 이들의 도움을 받았고, 잘 끝낼 수 있었다.

 

음악 활동이 중단되는 것에 대한 멤버들의 불만은 없었나 사실 멤버들이 내가 지칠까 봐 걱정했다. 게다가 영화 작업 기간 동안 투어를 하지 못하게 되면 멀어질 수 있을 거란 불안감도 있었고. 하지만 멤버들만큼 나를 지지해 준 사람도 없었다. 그래서 지금처럼 다시 모일 수 있는 것이 굉장히 기쁘다.

 

영화 작업을 계속하고 싶은가 기회가 된다면? 영화는 내게 우아하고 낭만적인 예술이다. 그리고 난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애착이 큰 사람이다. 앞으로 영화란 것이 어떻게 변할진 몰라도 난 어쩔 수 없는 영화광이니까.

 

 

 

Credit

  • editor 민용준 photo 김상곤
  • CHuN YEONG SANG(공연 스케치) desgn 하주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