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60년대 들어 여성이 일하기 시작했다는 말은 사실이 아니다. 여성들은 항상 일하고 있었다. 20세기에 변한 것이 있다면 여성들이 밖에 나와 일하고 노동의 대가로 돈을 받기 시작한 것이다.” 〈잠깐 애덤 스미스 씨, 저녁은 누가 차려줬어요?〉로 잘 알려진 스웨덴 출신의 저널리스트 카트리네 마르살의 말처럼 여성들은 항상 일해 왔다. 주류 경제학이 간과하거나 배제했던 노동과 경제에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는 이 책에는 여성의 가사노동 이야기도 포함되어 있다. 저평가된 가사노동과 임신·출산 및 육아 노동의 가치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겠지만 고모들 이야기를 꺼낸 것은 그 때문만은 아니다. 고모들은 내 사촌들을 낳고 기르고 온 가족을 돌보는 동시에 거의 평생 동안 ‘바깥일’ 또한 해왔기 때문이다. 비록 그것이 공장과 마트 직원, 판매원, 식당 일과 카페, 재배업 등 세상이 보기에 임시직에 가까워 보이는 노동이었다고 해도 말이다. 엄마 또한 시부모님과 두 아이를 돌보며 아빠와 같은 직종에서 퇴직 전까지 일했다. 그러니 생계부양자이자 가장인 ‘아버지’, 집안을 돌보는 ‘어머니’로 구성된 가정이 절대다수인 것처럼 그려내는 교과서나 미디어의 가족 풍경이 항상 의아했을 수밖에. 우리 가족이 유별나다고? 그럼 세상에 고생한 홀어머니 서사가 왜 그토록 많을까? 경제적으로 무능한 삼촌, 형제,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가 한 집 건너 하나인데 그럼 그 식구들은 누가 다 먹여 살렸을까? 그럼에도 남성 가장의 신화는 왜 여전히 공고할까? 가장으로 살았거나 살뜰한 정보로 재산 증식에 기여한 중장년 여성들의 노동력과 지식은 마땅한 존중을 받은 적이 없다.
“어차피 가장은 남자니까 여자는 적게 벌어도 된다고? 무슨 소리야, 나는 엄마가 먹여 살렸는데!”라는 질문에서 시작한 〈나는 엄마가 먹여 살렸는데〉는 저자 김은화 씨가 어머니 박영선(가명) 씨의 생을 구술 인터뷰한 책이다. 1956년생 박영선 씨의 생애 타임라인은 다음과 같다. 4녀 3남 중 넷째로 출생해 고등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했으나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일을 시작. 25세에 결혼해 아이 둘 출산. 퇴직 후 주식과 경마에 빠진 공무원 남편과의 이혼과 시부모 병수발은 일반적인 불행의 범주에 속할 것이다. 평생 일해 온 박영선 씨처럼 실제로 우리는 중장년 여성의 노동력을 어디에서든 본다. 고속도로 톨게이트, 청소 노동자, 식당과 마트, 렌털업과 보험, 재래시장과 지하상가, 옷가게, 요양원과 병원, 가사돌보미와 종교 기관…. 얼마 전 만난 한 셰프는 “유명 한정식집들이 난리다. 이모님들이 연세 때문에 그만두시는데 그분들을 대체할 사람이 없다”고 했다. 다른 자리에서는 “광장시장 한복집 어머니들이 은퇴하면 그 공임비에 한복을 만들 사람은 없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중장년 여성의 노동이 노동으로 잘 인식되지 않을뿐더러, 대체 불가할 정도로 저렴하게 착취되어 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돌봄 노동은 어떤가? 어린아이부터 고령의 노약자, 집안에 병자가 있을 경우 돌봄 노동의 무게가 전적으로 여성 구성원에게 지워진다. 사회가 제도적으로 해결하지 못한 문제를 많은 가정이, 그리고 각 가정의 여성들이 지탱하고 있음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물론 노동의 가치와 고됨에 성별의 잣대만을 가져다 댈 수는 없다. 떨어지거나, 끼이거나, 폭발, 화재 등으로 사망하는 고위험 산업재해의 사망자는 대부분 남성이다.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의 발표에 따르면 2021년 1월, 지난 한 달 동안 출근했던 65명이 집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그러나 일을 하고도 그것이 노동임을 인정받지 못하는데 익숙해진, 사회의 틈새를 자신들의 노동력으로 빈틈없이 채우고 있으면서도 제대로 존중받지 못한 중장년 여성들의 이야기는 더 많이 쓰여야 하지 않을까.
〈나는 엄마가 먹여 살렸는데〉는 다음과 같이 마무리된다. “이 책은 영선 씨만을 위해 쓴 것이 아니다. 그녀의 곁에는 늘 여성들이 있었다. 마산수출자유지역에서 함께 일했던 여성 노동자들, 공동체를 위해 일하던 부녀회 친구들, 한복 학원을 같이 다녔던 동기들, 물류 창고에서 함께 먼지를 뒤집어쓰던 여성 노동자들, 요양보호사로 매일 육체의 한계를 시험당하던 중년의 여성들 말이다. 그녀들 하나하나를 생계부양자로 호명해 주고 싶다.” 우리부터 우리 엄마들의 삶을, 또 다른 가장들의 삶을 불러내야 한다.
이마루 〈엘르〉 피처 에디터. 지방 도시 출신으로, 세상이 말하는 수도권 기준이 아닌 다른 곳에서 살아가는 다양한 여성들의 삶의 풍경에 대해 관심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