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르보이스] 배달 앱을 지웠더니 벌어진 일

식물 세계와 오랜 우정을 굽어보고, 새로운 일상의 규칙을 만들기 까지. 우리들의 일상이야기.

 
 사진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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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달 앱을 지웠다. 그리고  
배달 음식을 시키지 않은 지 꼭 한 달째다. 시작은 사소했다. 쓰레기를 버리기 위해 다용도실 문을 연 어느 날 문득 지구인 한 사람이 만들어내는 쓰레기의 양이 이렇게나 많다면 인간 역시 공룡의 절차를 밟게 될 게 틀림없다는 확신을 갖게 된 것이다. 양손과 팔꿈치까지 동원해 쓰레기가 가득한 상자와 봉투를 들고  4층 계단을 내려가다가 위태롭게 상자 끝에 걸려 있던 탄산수 병이 떨어지는 것을 시작으로 온갖 플라스틱이며 비닐이며 유리며 상자가 계단으로 굴러떨어지는 장면을 망연자실 바라보면서 다짐했다. 이제 이런 쓰레기는 그만 만들겠다고.
 
배달 음식은 특히 썩지 않는 플라스틱 쓰레기의 양을 어마어마하게 늘렸다. 최저 배달비를 맞추기 위해 사이드 메뉴를 추가하며 쓰레기를 늘리고 통장을 비우고 있다는 죄책감이 적립금의 몇 배로 마음속에 누적됐다. 설거지 거리가 없는 대신 재활용 쓰레기는 버리는 날마다 내려가도 모자랄 정도로 쌓였다.
배달 음식을 끊기 위해서는 배달 앱의 고리부터 끊어야 했다. 배달 앱을 지우고 냉장고와 건조식품 보관함을 정리해 남은 식재료를 확인한 뒤, 앞으로는 직접 장을 보러 마트에 가기로 다짐했다. 장을 보러 가면서 산책하면 기분 전환에도, 건강에도 도움이 될 터였다. 며칠간은 꽤 능동적으로 움직였다. 채소 위주로 장을 보고, 과자 같은 간식 배달을 위해 쓰던 마트 배송도 끊으니 절로 건강해지는 것 같았다.
 
그것도 잠시. 쓰레기를 버리는 횟수는 줄어들었지만 요리 시간과 설거지가 비약적으로 늘었다. 야심 차게 사 온 채소는 늘 생각보다 빨리 시들었고, 언제나 조미료라든가 부가 재료 같은 게 부족한 내 요리는 맛도 부족했다. 게다가 언제나 커피 곁에 있던 디저트류 간식과 심심한 입을 달래줄 무언가가 사라지자 삶에 은은한 슬픔이 깃들기 시작했다. 식이 조절을 해본 사람이라면 이 슬픔이 무엇인지 알리라.  그나마 배달 음식을 시켜 먹을 때보다는 가계부에 도움이 되고, 내가 무엇을 먹고 있는지 알고 먹는다는 것만이 위안이었다.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환경과 내 지갑을 위해서라도 이 도전에 성공하고 싶었다.
 
하지만 충동적인 도전이 시작되고 보름쯤 지나 크리스마스와 새해, 한파가 찾아오면서 사정은 조금 복잡해졌다. 내 재활용 쓰레기통과 통장 잔고 너머의 세상을 생각하게 된 건 역시 스마트폰 화면을 통해서였다. 자주 가던 식당이 문을 닫는다는 소식을 알게 된 날, 어떻게든 영업을 이어가고 싶다는 또 다른 식당의 다짐을 SNS에서 봤다. 단골 카페와 브런치 식당, 운동하던 학원까지도 폐업 위기에 놓였다. 자영업자뿐이 아니다. 라이더들은, 택배 노동자들은 어떨까? 나 하나는 배달 음식 없이 생활할 수 있지만, 그 또한 노동이 창출되는 분야인 한 누군가의 수요로 유지되고 있고 또 되어야 한다. 거리를 두는 한편 모두가 연결된 이런 세상에서 내 선택은 나만의 것일 수 없었다. 적당히 소비하고, 서비스를 이용하고, 무언가를 사고팔며 서로의 수고에 조금씩 기댈 때 비로소 세상은 돌아간다. 그걸 다시금 깨닫고 나자 내 실천이 자기만족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끝을 알 수 없는 팬데믹을 기약 없이 통과하는 지금, 작은 집에 홀로 있는 나는 그 어느 때보다 세상과 내가 연결돼 있다고 느낀다. 그래서 더욱 각자도생의 구호로 잠식돼 가는 세계가 염려스럽다. 분명히 시작점이 있었을 하나의 바이러스가 세계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처럼 우리는 부정적인 영향 또한 주고받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내 선택 역시 어딘가에, 누군가에게 긍정적이고 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의미다.  때문에 더욱 나는 나와 세상이 조금 더 좋은 방식으로 연결되는 선택을 하고 싶다. 겨우 재활용 쓰레기 줄이기와 배달 음식 안 먹기를 실천하면서 지나치게 거창한 주제로 점프하는 건지도 모르겠지만, 요즘 내 생각은 언제나 세상으로, 미래로, 바깥으로 향한다. 마치 갇혀 있는 것에 대한 보상이라도 받으려는 듯. 그렇다면 다소  뻔하더라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수밖에.
 
배달 음식을 시키지 않으면서 동네 식당과 카페의 음식을 즐길 방법은 직접 가는 것이다. 용기를 들고 가서 포장해 오면 된다. 지난해 동안 장바구니를 들고 다니는 버릇이 생긴 것처럼 익숙해지면 불편하다는 느낌도 없어질 것이다. 아니, 이 세계의 미래를 당겨 썼던 풍요와 편리가 이제 끝나야 한다는 것을 인식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의미 있는 불편일지도 모르겠다. 그런 의미에서 내일은 단골 식당에 가서 사장님의 안부를 묻고, 새로운 메뉴를 먹어볼 생각이다. 솔직히 내가 만들어 먹는 별맛 없는 요리에 질리기도 했고.
 
writer_윤이나  칼럼과 에세이, 드라마 등 거의 모든 장르의 글을 쓰고 여러 권의 책을 냈다. 콘텐츠 팀 헤이메이트 멤버로 다양한 여성들의 이야기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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