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지였던가, 김지민이었던가

김민지였던가 김지민이었던가. PT 20회 차가 넘어가도록 그녀의 이름이 단박에 떠오르지 않는다. 회원에게 너무 관심이 없는 무정한 트레이너 아니냐고? 아니다. 나는 그녀가 미국의 명문 대학으로 유학을 갔다 왔고, 거기서 운동 클럽에 가입했다가 캐비닛에서 충격적인 체취를 경험했고, 한국에 돌아와 신설동 근처에서 자취하며 세무 관련 일을 하는 걸 알고 있다. 또 상사 중에 아직도 전근대적으로 다 같이 ‘n차’를 달리는 ‘회식 집착광공’이 있어 한 달에 최소 두 번 정도 과음할 수밖에 없으며, 그녀가 역사와 사회 문화 전반에 관련된 깊이 있는 대화를 좋아하고, BMW를 몰며 테오 브랜드의 안경을 쓴다는 것도 안다. 그녀의 키와 몸무게, 근육량, 견갑과 고관절, 흉추의 가동 범위를 알고 있고 유당불내증과 새우 알레르기가 있다는 사실을 포함해 그녀에 대해 그야말로 방대한 양의 정보를 확실하게 알고 있다. 오직 단 하나, 그녀의 이름만 빼고.


©unsplash

©unsplash

사람의 이름을 잘 기억하지 못하는 건 내 오랜 약점이다. 진짜, 진짜로 이건 애정이나 관심의 정도와 전혀 상관없다. 나는 가끔 엄마라는 호칭도 생각이 안 나서 엄마를 언니라고 부르는, <삼강오륜>에 어긋나는 패륜을 저지르기도 한다. 일찍이 김춘수 시인은 <꽃>을 통해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비로소 꽃이 되었고,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며 사람의 이름을 정확하게 부르는 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를 설파하셨다. 이게 얼마나 심각한 사안이냐 하면 아직도 이 시가 몇십 년째 공교육 교과서에서 빠지지 않는다. 만약 내가 그의 이름을 틀리게 불러댔다면? 아무래도 그는 나에게 ‘아… (꽃) 같다’는 악감정을 가지겠지.


사회생활을 할 때 이런 약점은 대부분의 분야에서 불리하게 작용한다. 다수의 회원을 면 대 면으로 상대해야 하는 체육관 대표에겐 더더욱 치명적이다. 주 3회, 꼬박꼬박 3개월을 넘게 다녔건만 아직도 내 이름을 틀리게 부르는 회원이라니, 눈물 나게 서운해서 ‘다음달 재결제 따위 없다!’며 수강 신청을 받아주지 않는다 해도 할 말 없는 것이다. 심지어 서양에서는 의도적으로 이름을 틀리게 부르는 게 오랜 역사이자 전통의 ‘꼽주기’ 일환이다. 앤디를 톰이라 불러놓고 내 이름은 톰이라고 하면 “아, 그래, 미안해, 제임스”라는 식으로 말이다. 그리고 헤어지면서 “잘 가게, 매튜” 하는 거지. 왜 서양인은 굳이 이름으로 사람을 ‘꼽줘서’ 내 약점을 더 극악무도하게 만드는 걸까? 암튼 머나먼 바다를 건너가면서까지 남의 나라를 침략하는 잔인한 족속들 아니랄까 봐.


게다가 하필 한국어는 ‘You’ 같은 2인칭 대명사가 폭넓게 활용되지 않는 타입의 언어다. ‘You’는 남녀노소,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갖다 붙일 수 있는 편리한 대명사지만, 한국에서 ‘You’처럼 상대를 함부로 ‘당신’이나 ‘그쪽’으로 불러버리면 당장 로맨스 드라마의 플래그가 서버린다(로맨스 드라마에서 서로를 당신이나 그쪽이라고 부르는 이성은 99% 커플이 된다는 무서운 사실을 우리는 오랜 경험과 학습으로 잘 알고 있다. 심지어 못마땅한 투라면 더더욱. ‘자기야’와 동급으로 보면 된다). 특히 한국에서는 이 이름 모를 병증을 에둘러 숨길 방도가 없다.


‘회원님’이라고 부르면 되지 않냐고? 순진한 소리. 그런 얄팍한 속임수 따위는 순식간에 간파당해 버린다. ‘회원님’은 최소 막 상담을 끝내고 결제를 했거나 첫 번째 수업 회차를 진행 중인 대상자에게만 허용되는 제한적인 용어다. 당신이 대학생이라고 생각해 보라. 교수가 한 학기 내내 당신을 ‘000 학생’이 아니라 그저 ‘학생’이라고 부른다면 기분이 어떻겠나? 내가 그동안 튀는 행동으로 교수의 이목을 끌지 않고 무난히 다수의 수강생 사이에 녹아들어 대학원 같은 무시무시한 곳에 끌려갈 일 없도록 올바르게 처신을 잘했다는 안도의 한숨이 들지 않을까? 마찬가지다. ‘회원님’은 ‘학생’과 마찬가지로 익명의 대명사, 불특정 대명사다. 이 사실을 나도 알고, 그 회원님도 안다. 이 사람이 나를 이름으로 특정하지 못한다는 것을.


나는 최후의 방법으로 한국에 팽배한 집단주의를 활용한다. 그녀를 뚜렷하게 부를 자신이 없다면 나와 묶어서 하나로 만들어버리는 것이다. 대한민국은 특이하게도 어느 나라보다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면서도 요즘 세상에는 파시즘적으로도 보일 수 있는 단일성을 강조한다. 우리 민족, 우리 나라, 우리 가족, 우리 언니, 우리 바둑이. 마법의 키워드는 ‘우리’다. 나는 오랜 시행착오 끝에 마침내 실패하지 않는 공략법을 찾았다. “우리 오늘 컨디션은 어떠실까요?” “우리 로잉 머신 타면서 몸 풀어볼까요?” “우리 이제 스트레칭해 볼까요?” 이 화법은 친근감까지 가미해 회원과 깊은 라포를 형성하게 해준다. 나는 오늘도 이렇게 시간을 벌며 티 나지 않게 스마트폰 스케줄러에 저장된 그녀의 이름을 훔쳐보기 위해 노력한다. 그래서 그녀는 김민지였던가, 김지민이었던가.


Writer

작가 이미지

전혜진

세상은 ‘덕후’들이 만듭니다. 과몰입 전문 피처 에디터.

Category

Credit

  • 에디터 전혜진
  • 글 에리카
  • 아트 디자이너 정혜림
  • 디지털 디자이너 석지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