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련한 내일

“갑자기 설사를 하셔서 지금 나갈 수 없어.” 생일 축하 메시지를 건네자 그녀에게서 돌아온 답이었다. 환갑을 넘긴 그녀는 아흔이 넘은 시어머니를 돌본다. 대략 한 세기를 살아낸 시어머니의 정신은 윤회처럼 점점 유아기로 돌아가는 중인데 말이다. 다만 신체는 되돌리지 못해 그녀는 시어머니의 육중한 몸과 소화기관이 뱉어내는 흔적을 힘에 부쳐 하면서도 군말 없이 받아낸다.


© unsplash

© unsplash


그녀의 생일은 어제였다. 남편과 생일이 가까운 탓에 결혼 이후 그녀는 늘 그와 묶여 축하를 받았고, 제 날짜에 축하를 받아본 적이 드물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녀의 생일을 또렷이 기억해 주는 건 오랜 친구와 광고 문자, 쓰지도 않는 운전면허증뿐이었다.천성이 순한 그녀의 생일은 그렇게 밀려나고 밀려나다 결국 남의 편, 어머니가 흘린 대변을 닦아내는 자리에까지 다다랐다. 남편. 시쳇말로 ‘남의 편’이라며 웃었는데, 이제 보니 농담이 아니라 정확한 명명이었다. 노모의 아들은 자기 어머니의 몸을 닦아본 적은 있는지, 나는 끝내 묻지 못했다.

하지만 그녀는 그것을 ‘팔자’처럼 받아들이는 것 같았다. 요양원에 모시는 게 어떻겠냐는 자식들의 제안이 나올 때마다 그녀는 걸레를 접던 손을 멈추지 않고 같은 말을 했다. “가족도 버거워하는 사람을 남의 손에 맡기면 어떻게 취급할지 뻔한데, 어머니가 불쌍해서 어떻게 그러냐.” 결혼과 출산 후 직장을 그만두며 시작된 그녀의 돌봄 인생은 도무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70kg의 시어머니를 일으키는 동안 그녀는 척추에 주기적으로 주사를 맞고, 굽은 왼손 둘째손가락을 갖게 됐다. 몸이 힘들다고 호소하면서도 동시에 그녀는 쓰라림을 삼켰다. 젊은 시절 자신은 즐겁게 살았기에 남편과의 의리를 지키고 싶다고 했다. 한국전쟁을 겪어낸 시어머니에게 같은 여자로서 연민을 느끼며 이 정도는 감내할 수 있다고도 했다. 돌봄은 그렇게 여자에게서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여자에게로 흘러내려오고 있었다. 가까이서 지켜보던 나는 다짐했다. ‘절대 엄마처럼 미련하게 살지 않을 거야.’

그렇게 착한 천성과 희망적 사고로 현재를 버텨온 그녀가 처음으로 우울을 이야기했다. “어제는 생일날 형체도 알아볼 수 없는 분비물을 치우고 있는데 괜히 기분이 그렇더라. 혼자 맥주 한 캔 마셨어.” 형체 없는 것을 치우고 나서 그녀가 제 생일에 허락한 유일한 형체는 맥주 한 캔이었다.


© unsplash

© unsplash


유년 시절, 그녀는 어린 딸에게 절대 반려동물을 키울 수 없다고 했다. 그때는 인색한 금지인 줄 알았으나 나보다 앞선 세월을 산 이의 예언이었다. 아무리 작은 생명일지라도 돌봄의 무게와 책임이 결코 가볍지 않다는 것을, 돌봄은 한번 시작되면 끝나지 않는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다.

첫 독립 후 식구가 된 나의 개는 어느덧 열네 살을 넘겼다. 걸음은 느려졌고, 정신보다 몸이 먼저 새끼 때로 돌아가는지 자다가 오줌을 흘릴 만큼 배변 실수가 잦아졌다. 난생처음 내 몸이 아닌 다른 몸에 기저귀를 채우던 날, 나는 그녀를 생각했다. 감히 견줄 수 없는 무게라는 걸 안다. 나의 돌봄은 고작 10여 년이고, 그녀의 돌봄은 반생이다. 그럼에도 기저귀 테이프를 붙이는 그 몇 초 동안 누군가 내게 ‘미련하게 개는 키워서’라고 했다면 어땠을까? 미련하다는 말. 속으로 수없이 던져온 말은 돌봄으로 점철된 그녀의 세월을 통째로 욕보이는 말이었다.

생일은 조금 서글펐지만, 그녀는 주어진 하루에 최선을 다했다. 내가 ‘인생의 의미’니 ‘가치 있는 삶’이니 하는 허공에 손을 뻗어 잡으려는 동안 그녀는 매일같이 자기 삶의 ‘선의’를 위한 결정을 해왔다.

돌봄은 끝나지 않는다. 그저 자리를 옮길 뿐. 그녀가 시어머니의 몸을 받아내는 동안 누군가는 그녀의 마음을 받아내야 하며, 시어머니의 정신이 유아기로 돌아가듯 돌봄을 주던 이도 돌봄을 받아야 할 찰나가 올 것이다. 닦아주던 손은 언젠가 닦임을 받는 손이 되고, 그 곁을 지키는 일은 또 다른 이 혹은 내 미련한 내일이 될지도 모른다.

돌보는 사람에게도 돌봄이 필요하다 싶어 그녀를 차에 태웠다. 다만 그녀에게 필요한 것은 생일을 제 날짜에 기억해 주는 일, 혼자 마시는 맥주 옆에 앉아주는 일, 미련하다는 말 대신 애쓰고 있다는 말을 건네는 일이라는 걸 겨우 깨닫고 그녀의 밀려오는 우울이 바람에 날아가기를 바라며 가로수가 우거진 도로를 달렸다. 365일 중 그 특별한 하루를 우리는 기꺼이 축하했다.

Writer

작가 이미지

윤지수

제10회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 특별상을 수상한 〈유기견, 유기묘, 유기인의 동거일지〉 저자. 그는 스스로 ‘유기인’이라 칭한다.

Category

Credit

  • 에디터 전혜진
  • 글 윤지수
  • 아트 디자이너 이아람
  • 디지털 디자이너 석지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