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리가 끊어지다
어느 월요일 아침, 찌뿌둥한 기분으로 눈뜬 나는 평생 겪어본 적 없는 허리 통증과 맞닥뜨렸다. 잠들기 전만 해도 낌새조차 없던 고통이었다. 혹시 허리를 삔 적 있나? 아니었다. 무거운 걸 들거나 운동한 적 있나? 그 또한 아니었다. 주말 내내 인간성이 희미해질 정도로, 진짜 누워만 있었기 때문이다. 세수는커녕 화장실에 가고 싶을까 봐 물도 마시지 않은 독기 만땅의 휴일이었다. 생활이 이토록 결백한데 까닭 모를 요통은 점점 심해졌다. 헛기침만 해도 등줄기에 벼락이 내리치는 것 같고, 자세를 바꿀 때마다 곡소리와 함께 식은땀이 줄줄 났다. 고문 상황이라면 통장 비밀번호를 불고도 남을 아픔이었다. 크고 작은 고통과 맞닥뜨릴 때마다 알 수 없는 궁금증이 나를 찾아왔다. 얼마 만한 통증인지, 어느 정도를 많이 아프다고 표현하는지, 이런 고통에는 도대체 어떤 조치를 취해야 할지 판단하기 어려워서다. 하지만 고통은 궁금증을 허락하지 않았다. 헷갈리지도 않았다. 사람이 궁지에 몰리면 본성이 나온다고들 말하던데, 나는 고작 두어 가지 욕설에 그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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땀범벅이 된 나의 우선 과제는 출근. 회사에 가려면 주말 내내 오일 뱅크 같은 몸뚱이를 씻고 옷을 갈아입어야 한다. 허리가 1mm도 굽혀지지 않아 잠옷을 벗는 것조차 불가능하다. 윗옷은 어찌어찌 벗어도 바지는 스스로 처리할 수 없었다. 결국 홀딱 벗은 채 잠옷 바지만 허벅지에 매단 자세로 망연자실 서 있게 된다. 만감이 교차했다. 병가를 내야 하나? 월요일 아침에 병가는 너무 발칙하지 않을까? 지금 평판이 문제야? 허리 수명의 골든 타임이 야무지게 줄어들고 있는데…. 짧은 순간에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그때 지나가던 고양이가 나를 보고 악의적인 표정을 짓더니 내게로 튀어올랐다. 평소대로 내 다리를 스크래치하려는 모양이었다. 원래 질색하며 피했지만 오늘은 나를 시류에 맡겼다. 고양이 맷돌이가 악착같이 매달려 내 다리를 벅벅 긁어준 덕분에 자연스럽게 바지가 내려갔다. 발치에 걸린 바지를 걷어 차 손으로 낚아채는 내가 똑똑한 바보 같았다. 그날은 상체만 비누칠 하는 찝찝한 샤워를 했다. 머리가 빌딩 루프톱처럼 몸에 달려 있는 게 천만다행이었다. 머리가 지하 주차장 위치였다면 머리도 못 감았을 거다. 어기적어기적 필사의 노력 끝에 지각 2분 전, 사무실에 도착했다.
“살이 갑자기 많이 쪄도 허리가 아플 수 있대요. 저 아는 분도….” 점심시간, 숟가락을 들지도 놓지도 못하는 내게 동료가 지나가듯 한마디했다. 디스크, 염증, 근육통, 관절염, 수면 부족, 스트레스 등등 요통을 유발할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이 제시되고 난 후였다. 고개를 갸웃거리던 나는 비만 키워드에서 ‘유레카!’를 외쳤다. 그러잖아도 최근 심심찮게 살이 찌면서 배가 나오고 있었다. 척추 뼈 대신 전봇대를 심어 놔도 뱃살이 지탱하기에는 무리일 것이다. 나는 동료에게 고마움을 표시한 후, 대책을 강구하기 시작했다. 깊게 생각할 것도 없었다. 뱃살 때문에 허리가 아픈 거라면 해결책도 뱃살 제거일 터. 퇴근길엔 이를 악물고 30분 동안 동네를 걸었다. 당장 아파 죽을 것 같아도 오늘 걸어야 내일 덜 아플 것 같았다. 나는 유전적으로 축복받은 건치인데, 오늘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신이 보시기에 이 악물 일이 많을 삶이라 미리 튼튼하게 해준 게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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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대책 없이 많이 먹긴 했지만(‘먹는다’보다 ‘처먹는다’는 표현이 어울릴 폭식 릴레이) 그렇다고 이런 형벌은 심했다. 자영업이 어렵다고 난리인 와중에 하루 두 번씩 꾸준히 배달 음식을 주문했다. 그만큼 내수 경제에 실낱 같은 도움은 되고 있다고 생각했다. 식생활에 만만찮은 돈을 들였는데 이제는 통증과 비참함까지 지불해야 한다니 억울했다. 내가 참치였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다. 아무 노력 없이도 누군가 내 뱃살을 다 도려갈 텐데. 그렇게 되면 비싼 횟감을 공짜로 얻고, 나로 인해 죽을 뻔한 참치 몇 마리도 살고, 나는 나 대로 날씬한 몸매를 가질 수 있다. 한편으론 내가 평범한 사람이라는 데 안도감이 들었다. 만약 내가 대통령, 우주 비행사, 톱스타, 재벌 등등이었다면 그 대단한 인생을 운영하는 데도 대단한 합의와 에너지가 필요했을 거다. 이렇게 갑자기 체중이 불어나면 그 또한 커리어에 지장 있겠지. 하지만 작가는 어떤가? 나무젓가락 같은 몸매든 축구공 몸매든 작가는 그냥 작가다. 회사원도 마찬가지다. 뚱뚱이든 날씬이든 출퇴근 시간 잘 지키고 성실한 사람이 최고다.
갑자기 혼자 사는 삶이 가뿐하게 느껴졌다. 자꾸 살이 찌는 이유도 깨달았다. 나는 살이 쪄 불편하지만 견딜 만했다. 살이 쪄도 아무렇지 않은 것이다. 오늘의 허리 통증은 마음이 편해도 너무 편한 내게 누군가 경고를 날린 건 아닐는지. 결국 적지 않은 체중을 감량했고 이제 통증은 없다. 자연스럽게 하루 두 번의 배달 음식도 없어졌다. 아주 가끔씩 행복한 돼지였던 그때가 그립다.
Writer
정지음
싫은 것들을 사랑하려고 글을 쓴다. 25세에 ADHD 진단을 받은 이후 질환과 함께 살아가고 있는 1992년생. 〈젊은 ADHD의 슬픔〉으로 8회 브런치북 대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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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 에디터 전혜진
- 글 정지음
- 사진 unsplash
- 아트 디자이너 이아람
- 디지털 디자이너 석지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