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언덕 위에서 배운 것

지난 3월, 아버지는 폐암 4기 진단을 받았다. 다섯 명 중 한 명은 암 환자라는 보험사 광고 문구가 떠올랐다. 고객 유치를 위한 협박성 멘트가 아닌, 인생 예언 그 자체였다. 아버지는 혼자 첫 진단을 들었다. “어쩌겠노. 불운할 확률에 내가 뽑힌 게 아니라 인간의 숙명 그 자체”라고 담담하게 전화로 말했다. 물론 아버지도 나도 괜찮지 않지만, 그렇다고 진단 후의 모든 순간이 괜찮지 않은 것도 아니었다. 동안 우리 집의 유일한 자랑은 크나큰 자산도, 특출난 재능도 아니었다. 오직 3대를 탈탈 털어 양가에 암 환자 한 명 없다는 것이 큰 자산이라고 자랑했는데…. 그런 우리 가족에게도 ‘가족력’이 하나 생긴 것이다. 아버지의 진단이 집안의 새로운 내력(來歷)이 될지, 기적 같은 힘(가족력)이 될지 지켜보는 일만 남은 여름. 그러나 지금부터 내가 전할 아버지의 굳건한 태도 덕에 어느 때보다 감사한 마음으로 여름 땡볕의 언덕을 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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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진단을 듣고 며칠이 지났을 때 나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느꼈다. 누구나 가족의 병환은 상상조차 힘들다. 의료진에게 자신의 여생이 얼마 남았냐고 툭툭 질문을 던지는 아버지를 보며 절망과 애처로움, 조바심, 슬픔이 순서 없이 지나가더니 마지막엔 생뚱맞은 감정이 올라왔다. ‘용기’였다. 늦기 전에 아버지의 삶을 이야기로 그것도 재밌게 써야겠다는 ‘용기’가 찾아왔다. 이왕이면 장르는 소설로, 시점은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말이다. 제목도 미리 지었다. 아버지와 딸의 ‘콜라텍 로맨스’라고 말이다. 아버지의 결혼생활은 낭만적이지 않았으나 다행스럽게도 큰 딸내미와 케미스트리는 잘 맞았다. 딸 덕에 보너스로 산 인생이니 이제 가도 여한 없다고 했다. 부모가 이혼한 지 24년. 그때의 아버지를 살린 건 정신과의 약이나 상담도 아니고 괴짜같은 딸들과 오늘의 댄스, 즉 사교춤이었다. 엄마가 등록해 준 댄스 학원 덕분에 남은 여생을 춤추며 버텨냈다니 이 얼마나 아이러니한 삶인가.


주말마다 콜라텍에 나가 춤추던 아버지는 조금씩 건강과 용기를 찾았다. 더 웃긴 건 콜라텍을 병아리처럼 종종 따라나선 큰딸의 등장이다. 물론 매번 아빠를 따라 나선 건 아니다. 아버지가 불쑥 초대한 날 또는 큰딸의 잦은 이사로 동네를 옮길 때마다 괴짜 부녀는 지역의 콜라텍을 찾아 나섰다. 어둑한 조명 아래 앉아 있으면 “아줌만교 아가씬교?” 춤을 권하는 중년 할배들이 내게 다가왔다. 내 얼굴을 보고 화들짝 놀라 몇 명이나 달아났다. 콜라텍에 다 큰 딸내미를 달고 오는 아버지는 조선팔도에 당신 밖에 없을 거라는 아줌마들의 웃음소리도 아직 귓가에 선하다. 그렇게 나는 포항, 청량리, 문산, 양평 콜라텍을 입장해 봤다. 춤은커녕 스텝도 밟을 줄 모르는 딸은 내성적이고 신중한 아버지가 몸을 흔드는 모습이 기특했다. “아빠 여기 물은 어때요?” 나는 내 몸에 붙은 불안과 우울까지 아버지가 털어내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이번엔 암세포까지 떨어뜨려야 하니 얼마나 강렬하게 흔들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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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암 선고 이후 올여름도 씩씩하게 살고 있다. ‘죽음을 두려움 없이 받아들였다’기보다 죽음은 내 영역이 아니기에 ‘그저 지금 할 수 있는 것에 최선’을 다한다는 마음이 멋지게 느껴졌다. 처음엔 아버지가 삶을 대하는 태도를 무심함이나 낙천으로 오해한 순간도 있었다. 곱씹어보니 아니었다. 부지런히 자신을 흔들어 마음의 컵을 채우던 사람이니, 이번에도 나눠줄 게 남아 있었던 거다. 컵이 빈 채로 흐르는 다정함과 넘치는 채로 흐르는 다정함은 겉으로는 같아 보여도 사정이 전혀 다른 모양이다. “다정함은 제 컵의 넘치는 물로 나누는 것”이라는 말이 맞는 거다. 아버지는 최근 진단 석 달 만에 ‘관해(寬解)’ 판정을 받았다. 의학적으로 관해는 원 발암의 크기가 30% 작아졌을 때 쓸 수 있는 용어라 했다. 1970년대 미국 언론인 노먼 커즌스가 희귀 질환 앞에서 매일 코미디영화를 보며 웃음으로 회복했다던 오랜 일화가 남의 얘기가 아닌 것 같았다.


아버지에게 헌신하는 내 마음의 컵도 슬쩍 들여다봤다. 늦은 감이 있었다. 요즘 나는 하루에 1시간 넘게 양쪽 부모의 마음을 번갈아 위로한다. 죄책감과 불안에 휩싸인 엄마에게 엄마 탓 아니라고 말하고, 다시 아버지에게 전화해 “오늘 하루 어땠냐?”고 묻는다. 불안을 받아쓰기하듯 듣고 나면 에너지가 고갈된다. 나에 대해선 쓸 글도 할 말이 없다. 어느새 나도 모르게 나를 태워 두 사람을 데우고 있었다. 내 마음보다 타인의 마음을 먼저 만지는 쪽이 상황을 훨씬 좋게 만든다는 걸 어릴 때부터 배워왔다. 이런 걸 ‘부모화’라고 부른다지만 나는 어려운 말보다 그날의 이불 속 온도가 더 정확한 진단서 같다. 사랑이라 믿었던 습관이 실은 몸에 새긴 생존법일지도 모란다는 생각. 좋은 딸, 좋은 기록자가 되는 데는 열심이지만 내가 뭘 원하는지 뒷전이었던 것도 결국 같은 뿌리일 거다. 이제는 아버지 옆에서 응원만 하지 말고 내가 일어나 춤을 춰야 하는 순간 같다.


인생이 크게 흔들리는 지금,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어느 때보다 단단해지고 있다. 아버지의 병이 가르쳐준 건 슬픔이 아니라 순서였다. 어둠속에서 두 눈 반짝이며 앉아 있는 나부터 사랑하고 내 욕망의 모양을 알아야 진짜 이타심이 시작된다는 것. 자기로 가득 찬 사람만이 지치지 않고 나눌 수 있다는 것. 나는 아버지 곁을 지키는 동시에 아버지가 살아 계실 동안 내 컵의 나를 채우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다. 이 글을 읽는 당신께 응원 대신 신청곡을 부탁한다. 케미스트리 좋은 부녀의 마지막 댄스 이야기를 잘 완주해 보겠다.


Wri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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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지민

전 에코 라이프스타일 매거진 〈그린 마인드〉 편집장. 지금은 강원도 춘천에서 가족과 함께 살며 여성과 엄마로서 지속 가능한 삶을 고민하는 내용을 담은 〈육아가 한 편의 시라면 좋겠지만〉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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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애디터 전혜진
  • 글 전지민
  • 사진 unsplash
  • 아트 디자이너 이아람
  • 디지털 디자이너 석지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