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매가 최고야

두 달 뒤면 유학을 떠난다. 이번에는 한 학기도 아니고 일 년을 살아야 한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하다. 장애 학생의 유학은 정보가 턱없이 부족하다. 휠체어를 몇 대 가져가야 할지, 기숙사는 접근 가능(Accessible)한지 알기 위해 입학이 확정되기 전부터 몇 번의 미팅을 거쳤다. 장애 때문은 아니더라도 혼자 외국에서 살아 남는 게 얼마나 외로운 일인지 잘 알고 있기에 누구든 붙잡고 함께 살아 달라고 말하고 싶었다. 그러다가 내 옆에서 조잘조잘 떠드는 애가 눈에 들어왔다. 다섯 살 차이 나는 동생. “언니랑 같이 영국 갈래?” 마침 워킹 홀리데이를 떠나고 싶다던 애였다. 갑작스럽게 자식 둘을 떠나보내야 하는 부모님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나 혼자 보내는 게 내심 걱정이었나 보다.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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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과 사이가 좋은 편은 아니었다. 치고 받고 싸우는 게 당연한 유년기를 거쳐 학생이 되고 나서는 야간 자율학습과 학원으로 얼굴 보는 일이 더 적었다. ‘장애-비장애 형제’라는 특수 상황도 한몫했다. 병원에서 인생의 절반을 보내야 했던 내 곁에는 언제나 엄마가 있었고, 그 멀리에는 친척 집을 전전해야 했던 어린 동생이 있었다. 아기였던 동생은 엄마와 떨어지기 싫다고 조르는 법이 없었다. 외박하고 다시 병원으로 돌아가는 엄마와 내 뒤에서 가만히 손을 흔들던 동생을 보던 그날은 어김없이 체했다. 우리 사이에는 늘 부채감과 원망 같은 게 있었고, 때로는 쩔쩔매느라 소통이 더 어그러진 순간도 있었다. 당시 “엄마는 언니만 챙겼잖아”는 동생의 비장의 무기였다. 울퉁불퉁한 시간을 거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동생은 갑자기 조잘거리며 언니를 졸졸 따라다니던 초등생 시절로 돌아갔다(아마 돈 한 푼 안 내는 호주 여행을 시켜준 탓이었을까? 호주 햇살에 ‘퇴마’당한 걸까?).


자매 사이가 좋든 나쁘든 변치 않은 생각은 ‘역시 자매가 최고야’ 하는 마음이다. 어릴 때는 홈쇼핑 광고 흉내를 내며 조그마한 화장실에서 함께 샤워하는 게 재미있었다. 나이가 드니 나름의 재미가 있다. 함께 여행을 가기도 하고, 옷을 골라 주기도 하고, 공구에 돈을 보태기도 한다. 호주 여행에서 실수로 욕조가 있는 숙소를 잡은 적 있었다. 혼자 욕조에 들어갈 수 없어 고민하는데 동생은 나를 번쩍 들어 욕조로 욱여넣었다. “내가 여동생이라 얼마나 다행이야?”라며 너스레를 떠는 동생을 보며 “그래 고맙다”며 몸을 벅벅 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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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밀한 돌봄 때문에만 자매가 좋다는 건 아니다. 최근 화제 속에 종영한 <도시여자대피소>에서 나온 “나와 같은 슬픔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은 형제뿐”이라는 말이 많은 공감을 얻었다. 자연스럽게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일 년 전 강아지 쮸가 아팠을 때 우리 자매는 가까이 붙어 앉아 오래도록 흐느꼈다. 그리곤 각자 할 일을 찾아 몸을 일으켰다. 내가 병원비를 준비하고 진료에서 물어봐야 할 것들을 정리할 때, 동생은 7kg이나 되는 강아지를 안고 병원에 데려가고, 약도 빠뜨리지 않았다. 내 인생의 절반, 동생의 인생에 3분의 2를 함께 보낸 형제를 잃을 수 있다는 슬픔은 우리 둘만 공유할 수 있는 것이었다. 앞으로도 우리만 아는 슬픔이 우리를 덮칠 수도 있겠지만, 그 앞에서 서로 기대며 단단해졌던 시간을 생각하면 마냥 두렵지만은 않다.


어쨌든 우린 함께 영국에 가게 됐다. 수십 곳에 연락을 돌려 풀타임 학생이 아닌 동생을 받아주는 사설 기숙사에 자리를 맡았다. 앞으로 우리에게 어떤 미래가 찾아올지 모르지만 기댈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생각에 든든하다. 자매끼리 자취하는 독자가 있다면, 부디 현명하게 살아가는 법을 나눠주시길 바랍니다!


Wri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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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우

‘구르님’이라는 이름으로 글을 쓰고 영상을 만든다. 뇌병변장애인의 삶을 담은 ‘굴러라 구르님’ 채널을 운영하고 있으며, <우리의 활보는 사치가 아니야> 등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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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에디터 전혜진
  • 글 김지우
  • 사진 unsplash
  • 아트 디자이너 이아람
  • 디지털 디자이너 석지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