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방송 제작 팀엔 왜 이렇게 여성이 많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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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년은 한국과 일본을 오가면서 보냈다. 한일 합작 프로젝트를 담당했고, 일본에 짧게나마 유학했던 나에게는 여러모로 의미 있는 경험이었다. 2007년경 교환학생으로 유학을 간 당시에는 동방신기가 자리 잡기 시작한 단계였는데, 20여 년이 지난 지금은 한국 방송이나 음악의 위상이 일본은 물론 세계적으로 완전히 달라졌고, 일하는 내내 그걸 체감할 수 있었다.


본격적으로 일본 제작진과 협업한 건 이번이 처음이고, 협업 과정에서 많은 걸 배웠다. 험난한 스케줄 속에서 두 개 언어로 함께 ‘으쌰으쌰’하면서 일하던 어느 날, 일본 측 담당자 중 한 명이 나에게 물었다. 그는 이 프로젝트를 함께하는 수많은 협력사 중 한 곳의 담당자였기 때문에, 그의 질문이 일본 방송계나 이 프로젝트를 대표하지 않는다는 점은 미리 밝혀둔다.


“한국 방송계는 업무 강도가 정말 높은 것 같은데. 여성 스태프들이 왜 이렇게 많나요?” 잠시 질문을 곱씹었다. 한국 방송계에 여성 스태프가 실제로 많나? 막내 작가 시절을 돌이켜보면 작가는 대부분 여성, PD는 대부분 남성이었다. 그랬다가 점점 여성 비율이 늘어갔고, 공교롭게도 이번 팀에서는 PD 역시 한 명을 제외하면 전원 여성이다. 제작진 회의를 할 때도 한국의 각 분야 헤드 스태프는 나를 포함해 대부분 여성이었다.


물론 모든 방송국이 그렇지는 않다. 하지만 그 질문에서 어딘가 승리감이 든 것은 사실이다. 10여 년 전, 남성 위주의 방송판에서 ‘PD는 아빠, 작가는 엄마’ 프레임을 아무렇지 않게 말하던 남성 PD가 떠올랐다. 함께 있던 작가 선배는 그 말에 대한 부연으로 “큰 결정은 아빠가 하는 거고, 출연자를 달래거나 분위기를 부드럽게 하는 건 작가가 하는 일”이라고 덧붙였다. 돌이켜보면 여러모로 엉망진창인 설명이다. 아빠와 엄마의 역할과 맞지도 않을뿐더러 PD와 작가 업무에 대한 설명으로도 맞지 않는다. 무엇보다 그런 마음가짐으로 일하는 건 작가 입장이든 PD 입장이든 무책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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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시간을 지나 “왜 이렇게 여자가 많나요?” 하는 질문을 받은 게 자랑스럽기도 했고, 여성 PD로서 여러 고민을 공유했던 동료들도 떠올랐다. ‘드디어 이런 날도 오는구나’ 싶어 다시 질문을 곱씹었다. 상대방은 의도하지 않았지만 ‘여성은 업무 강도가 높은 일은 할 수 없다’는 생각을 내비친 건 맞았다. 악의 없는 질문이었기 때문에 나도 악의 없이 답했다. “한국 방송계의 업무 강도가 높은 건 맞는데 여성 스태프들이 왜 이렇게 많냐면… 업무 강도가 정말 높으니까 여성 스태프가 많은 것 같아요.”


부연 설명이 필요한 것 같아서 다시 덧붙였다. “이런 문제에 민감한 사람도 있을 테니까 ‘제가 겪은 한에서’라고 덧붙일게요. 제가 만난 여성 스태프들은 대부분 일을 해결해요. 지금 함께 일하는 모든 사람이 그렇죠. 반면 마지막 순간에 자존심을 앞세워 일을 그르치거나 융통성 없는 선택으로 일을 키웠던 사람들은 제 경험상 여성보다 남성이 많았던 것 같아요. 그리고 우리가 몸담은 분야는 실제 소비자도 여성 비율이 높아요. 여성의 시선이 더 많이 필요하죠. 물론 지금 저희 팀은 여성 비율이 높지만, 이게 신기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남성이 대다수인 많은 집단을 볼 때 신기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처럼요.”


말하면서 느낀 건 나 역시 어린 시절에는 이렇게 생각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첫 직장은 대표적 남초 회사인 정유사였고, 방송 스태프가 됐을 때도 작가 팀을 제외하고는 남성이 더 많았다. 그러니 남성의 리더십밖에 볼 일이 없었다. 버티는 남성, 해내는 남성. 하지만 연차를 쌓아가면서, 여성 PD들이 버티고 증명하면서 판을 넓혀준 덕분에 직접 경험할 수 있었다. 일을 해결하는 여성, 버티는 여성, 책임지는 여성. 언제부터인지 알 수 없을 만큼 자연스럽게 메인 PD가 여성인 것은 메인 PD가 남성인 것만큼이나 대수롭지 않은 일이 됐다.


얼마 전에 본 캠페인이 떠오른다. 많은 소녀가 나와 “저는 첫 여성 우주비행사가 되고 싶지 않아요” “저는 첫 여성 노벨상 수상자가 되고 싶지 않아요”라는 게 아닌가. 위대한 처음보다 여성이 무엇이든 될 수 있는 세상이 와야 한다고. 더 이상 여성 PD가 신기하지 않은 2026년을 살아가면서 그간 스쳐 지나간 얼굴들에게 연락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러분! 이제 평범하다고, 아주 흔해졌다고 하니 더욱 더 여성이 많은 게 그러려니 할 수 있도록 잘 살아남아서 흔해지자고요.’

Wri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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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민지

다양한 비혼자의 일상을 이야기하는 예능 팟캐스트 〈비혼세〉 진행자이자 출판 레이블 ‘아말페’ 대표. 〈걸어서 환장 속으로〉 〈난 슬플 땐 봉춤을 춰〉를 썼다. 여성의 몸과 사랑, 관계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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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에디터 전혜진
  • 글 곽민지
  • 사진 unsplash
  • 아트 디자이너 김민정
  • 디지털 디자이너 오주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