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 신자는 아닙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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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는 멀게 느껴지지만 절이라는 공간은 친숙하다. 한국의 사찰은 종교 시설인 동시에 문화유산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사람들은 절을 관광지처럼 찾기도 한다. 절의 문턱은 이토록 낮지만 그곳에 이르는 길은 쉽지 않다. 대부분 산사(山寺)이기 때문이다. 산이 많은 지형적 이유, 수행하기 좋은 환경, 조선시대의 ‘억불정책’ 같은 역사적 이유로 절은 산으로 갔다. 깊고 높은 산속에 있는 사찰일수록 선물 같은 풍광을 품고 있다. 도착하면 ‘여기까지 오느라 고생했다’며 슬며시 내어주는 비경. 힐링을 넘어선 카타르시스다.


일주일에 두어 번 절에 간다. 산사에 오르는 이유는 대부분 운동 삼아, 때로는 복잡한 마음을 달래러, 때때로 위로받고 싶어서. 대웅전 앞에 앉아 숨을 고르며 풍경 소리를 듣거나, 경치를 보며 멍하니 앉아 있다가 온다. 어떤 간절함이 생긴 날엔 대웅전에 들어가 절을 하거나 소원 초를 켜기도 한다. ‘방법은 잘 모르지만 이렇게 하면 되는 거겠지?’ 내가 절을 즐기는 방식은 이 정도다. 절에 그렇게 자주 가도, 그렇게 오래 있어도 누구 하나 나에게 관심을 두지 않는 게 좋다. 왜 왔냐, 또 왔냐, 어디서 왔냐, 또 와라, 계속 와라 하지 않고 제 갈길 가는 사람들. 아는 사람 하나 없지만 내 집 같은 편안함. 요즘 MZ에게 불교가 하나의 문화처럼 번지는 이유도 이와 다르지 않을 거다.


친구에게 온 DM. “오늘 안 오길 잘했어. 여기 지금 놀이공원처럼 줄을 서.” 2026 불교박람회가 열리는 나흘 동안 약 25만 명이 방문했다고 한다. 종교박람회에 그렇게 많은 사람이 몰릴 일인가. 관람자의 73%가 2030 세대이고, 불교도가 아닌 방문자의 비율이 48%라는 점에서 젊은 층에게 불교는 더 이상 종교가 아닌 취향, 문화, 라이프스타일 영역으로 인식되고 있는 듯하다. 내가 그곳에 가려 했던 이유도 종교가 아닌 ‘된장’ 때문이었다. 전통 방식으로 만든 사찰의 된장을 구입하고 싶어서. 물론 구입하려던 된장은 현장에서 품절됐지만 연락처를 얻어 ‘된장과 간장 구하기’에 성공했다. 맛은 소문대로였다. 깊고 정갈한 정성이 켜켜이 전해졌다. 이 정도면 ‘식탁에서 만난 불교’라 해도 되는 건가? 이 말은 어느 정도 사실이다. 이후 불교에 대한 호감이 지대한 관심으로 바뀌었으니까.


된장 에피소드 덕분에 불자인 지인에게 공양간 초대를 받았다. ‘절밥’을 먹어보고 싶었는데 방법을 몰랐다. 공양간은 어딘지, 몇 시에 여는지, 어떻게 먹는 건지, 신자가 아니어도 먹을 수 있는 건지. 문턱 낮은 불교에 느껴지는 벽이 있다면 아마 이런 게 아닐까? 점심 공양 가는 길에 지인은 도슨트처럼 사찰의 구석구석을 설명해 줬다. 절에 들어가면 왜 일주문부터 합장하는지, 해탈문과 사대 천왕은 무엇인지, 법당마다 모셔진 부처가 왜 다른지, 무슨 기도를 해야 하는지, 절은 어떤 순서로 돌아봐야 하는지, 합장은 언제 하면 되는지, 절은 어떻게 하는지, 불전함에 정성을 넣을 때는 어떤 마음가짐을 가져야 하는지, 전래동화 같은 불교 벽화 스토리까지. 평소 막연하게 느껴졌던 사찰 문법들이 이해되자 불교와의 거리감이 확실히 좁혀지는 듯했다(해답이 궁금하다면 각 사찰의 종무소에 찾아가 보길!). 그날의 점심 공양도 맛있었다.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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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로 여러 사찰을 찾아다녔다. 멀지 않은 곳에 이렇게 아름다운 절들이 있는지 몰랐다. 공양밥을 먹었던 진관사는 고려 현종이 창건한 크고 단정한 절이다. 비구니 사찰인 동시에 사찰음식으로 유명하다. 소나무로 둘러싸인 산책로를 걷다 벤치에 앉아 보길. 그것만으로도 충만한 기분이 들 것이다. ‘보현다실’이라는 찻집엔 스님들이 가마솥으로 끓여낸 진한 쌍화탕을 파는데 실제로 감기몸살에 효험이 있었다. 진관사의 여러 전각 중 나한전은 6ㆍ25 때 소실되지 않은 덕분에 오래 보존된 건물 중 하나다. 원하는 소원 하나는 반드시 이뤄준다 하여 종교를 떠나 많은 이들이 이곳을 찾는다. 암자라고 생각했던 진관동 삼천사는 생각보다 규모가 컸다. 맑고 큰 계곡길을 따라 오르면 어느 순간 웅장한 모습을 드러낸다. 신라 문무왕 661년 원효대사가 창건했다. 3.2m 병풍바위에 새겨진 2.6m의 마애여래입상은 고려시대 불상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보물이다. 존재 자체로 영험한 기운이 전해진다. 이 절은 산신각이 유명한 소원 명당이다. 풍수지리를 모르는 사람이어도 이곳에 서면 명당터의 기운을 느낄 수 있을 거다. 독특한 울림이 있는 삼천사의 풍경소리를 들으며 잠시 머물다 왔다.


자주 가는 절은 구기동 금선사다. 승가사에 가려다 잘못 찾아간 곳인데 절경에 반해 여러 번 다녀왔다. 구기동 골목 끝 북한산국립공원 입구로 들어가 비봉 방향 등산로로 10분 정도 올라간다. 이런 산속의 절이라니. <하울의 움직이는 성> 같기도 하고, 새 둥지에서 잠시 쉬어 가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등산과 힐링이 한번에 가능한 코스다. 절마다 고유의 역사가 있고, 산사의 분위기가 달라 매번 흥미롭다. 한국에 이렇게 많은 절이 있는데 이 절은 어떨까? 저 절은?


사찰의 일주문에 도착해 합장하는 순간부터 마음의 결이 묘하게 정돈되는 걸 느낀다.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마음을 정결히 한 뒤, 사찰 구석구석 발자국을 찍어본다. 은은하게 풍기는 향 내음, 고요함을 어루만지는 풍경 소리. 절은 나에게 종교적 신념을 강요하는 대신 그저 편안히 머물다 가라고 자리를 내어준다. 비워내고 나면 가득 채워주는 곳.


개운하기 위해 찾아가 동전을 붙이면 어떻고, 간절한 소망 하나를 이루기 위해 돌탑을 쌓아보면 또 어떠하리. 반드시 그 종교를 믿지 않아도 좋아할 수 있는 방식이 있다는 걸 절이 알려줬다. 사찰을 찾는 일은 거창한 신앙의 시작이 아니라, 마음이 머무는 장소를 하나 늘리는 일일지도 모른다. 이번 주엔 어느 산사를 찾아가 볼까? “이 정도면 불교 신자 아니냐?”고 묻는다면 아직은 아니라 말하고 싶다. 모르는 것이 많아 더 알아가고 싶은 사람일 뿐. 불교의 인연법처럼 그것이 일어날 일이라면 서두르지 않아도 분명히 알아차리게 되는 순간이 오지 않을까? 그러니 이 글은 종교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그냥 내가 좋아하는 어떤 장소에 관한 이야기다.


Writer

작가 이미지

전혜진

세상은 ‘덕후’들이 만듭니다. 과몰입 전문 피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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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에디터 전혜진
  • 글 나정원
  • 사진 unsplash
  • 아트 디자이너 김민정
  • 디지털 디자이너 오주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