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정치인 친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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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 되고 친구 만들기 어렵다는데, 나는 운 좋게 좋은 친구를 많이 만났다. 세 번의 이직을 했는데 세 번의 이사를 하며 친구들을 사귄 느낌이랄까. 같이 잘해보고 싶은 일이 생기고, 서로 잘됐으면 하는 마음이 커지고, 우정이 쌓여 각자 다른 곳에 있어도 안부를 묻고 만나는 사이가 됐다. 어른이 되고 만난 친구들의 편안함의 진가는 설명이 많이 필요하지 않다. 일이나 삶에 대한 고민을 나눌 때 맥락 설명을 뛰어넘고 본론으로 바로 갈 수 있다. 정치에서 일을 시작해 보겠다고 한 뒤 기가 팍 죽는 이야기를 잔뜩 들었는데, 그중 하나는 ‘자고로 정치판은 친구가 없는 세계’라는 거였다. 선의는 기대도 하지 말고 늘 뒤통수를 조심하라고 했다. 아직 내가 운이 좋은 걸까. 뒤를 노리기는커녕 곁이 되는 정치인 친구가 많아졌다. 드라마처럼 사무실 가죽 소파에 앉아 찻잔을 홀짝이기보다 여느 친구들처럼 커피와 생맥주를 마신다. 맥락 설명을 뛰어넘어 본론으로 넘어가 이런 게 힘들고 고민이며, 선출직 정치인은 4년 계약직이라며 불안을 토로하는 친구의 이야기를 듣다가 결국 어떻게 변화를 만들 수 있을까, 내가 해보니 이건 이렇던데 어떻게 더 잘할까로 끝나는 대화를 나눈다.


이렇게 정치에서도 우정이 가능할 수 있다고 용기를 준 건 당시 대전시 유성구 의원이었던 황은주였다. 그는 두 번째 직장을 다닐 때 만난 직장 밖 동료였다. 내가 다음 회사로 옮기는 동안 은주 님은 지방의원이 됐다. 처음 뭣도 모르고 ‘뉴웨이즈’를 시작할 때 은주 님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젊치인’ 에이전시로 정당 밖 인재 팀을 만들고 싶다고 했을 때 은주 님은 그 일이 얼마나 어려울지에 대한 걱정과 함께 이런 고민을 할 혜민 님 같은 동료가 생겨 좋다며 전화를 끊었더랬다. 그리고 몇 주 뒤 다시 전화가 왔다. 쉽지 않을 거라고 말했던 게 계속 마음에 걸렸다며, 현역 의원으로서 가진 경험이나 자원들이 앞으로 도전하고 싶은 분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면 더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고 했다. 정치에 친구는 없다고 겁주던 말로는 절대 불가능할 것 같은 상상력이었다. 문제 해결을 잘하기 위해서라도 같은 의회에 정당이 달라도 젊은 사람이 더 많아져야 하고, 내가 겪은 시행착오를 다음 사람이 굳이 또 겪기보다 훨씬 더 나은 시작을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은주 님 말고 또 있을까? 우리만 가능한 우정인지 궁금해 현역 의원의 이메일과 연락처를 수집해 발송했더니 10%가 넘는 사람이 하겠다고 답변을 줬다. 그렇게 현역 지방의원을 모아 ‘코치단’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출마 경험이 없는 우리 팀이 지방선거 출마자들을 지원할 수 있게 됐다. 그때 2018년에 당선된 현역 코치단들의 도움을 받은 2022년 도전자들은 이제 2026년 도전자들에게 같은 우정과 연대를 내민다. 받은 도움들이 마치 내리 우정처럼 다음 사람에게 이어져야 한다는 걸 당연하게 여긴다. 덜 헤매고 덜 상처받게끔 곁에 있는 동료가 돼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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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리 우정도 가능하다면 팔짱 끼는 우정도 가능할까? 정치를 시작하고 나면 계속할 이유를 찾는 것보다 그만할 이유를 찾는 게 쉽다. 성과보다 고생이 더 잦은 일이니까 힘들다. 그렇다고 돈이 되는 것도 아니고 쓸 때가 더 많다. 그런 순간에도 계속할 수 있는 이유가 뭐냐고 물으면 대부분 동료를 말한다. 서로가 서로의 용기가 되고 안전망이 돼 지칠 때마다 푸념도 하고 응원도 받을 수 있는 동료가 있으면 그래도 계속할 수 있다는 거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정치에 도전하고 싶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부트 캠프를 시작하면서 참여자들에게 학습과 성장의 기회뿐 아니라 우정을 제공하기로 했다. 서로의 허물을 감싸는 드라마에 나올 법한 정치인의 우정 말고 여느 업계에서 서로 배우고 신뢰하는 폭넓은 우정. 그 우정을 위해 몇 가지 전략을 세웠다. 우선 첫 만남부터 다르게 해본다. 팀으로 모여 앉은 상황에서 자기소개를 통해 서로를 알아가고, 꽤 흥미롭고 멋진 사람들이 모였다는 기대감을 준다. 각자 관심 있다고 언급한 사회 문제 키워드가 적힌 종이도 나눠준다. 같은 팀은 점심도 같이 먹고, 가상의 선거 캠프를 만들어 결과를 만들어내는 미션도 함께 수행해야 한다. 그리고 하나의 진실을 알려준다. 각 팀은 연령과 지역, 정당을 고려해 가장 다른 사람들을 모았다는 사실. 같은 목표를 공유하는, 같고도 다른 사람들은 우정을 통해 세계를 넓히고 정답이라고 믿어온 것에 대해 질문할 기회를 준다. 이런 후기를 들으면 짜릿해진다. “저 국민의힘 지지하는 30대 남성을 처음 만났는데, 걱정이랑 달랐어요.” “전 더불어민주당이 너무 진보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만 만났는데, 더불어민주당이 보수 정당이라고 이야기하는 분들을 처음 만나서 재미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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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트 캠프가 끝나고도 이렇게 만난 팀은 같이 북클럽이나 정책 스터디를 하고, 1박 2일로 놀러 가 각자가 속한 정당에서의 계획과 고민을 나눈다. 누구는 자신이 속한 정당의 허물에 부끄러워할 때면 그 허물을 숨기는 게 아니라 바꿔나갈 변화를 만들어가겠다고 한 거 아니었냐고, 응원할 테니 기운 내고 변화를 같이 모색해 보자고 격려한다. 그렇게 어느덧 아홉 번의 부트 캠프를 하고 100명이 넘는 (예비) 정치인 친구들이 연결됐다. 내년 6월 3일은 전국동시지방선거다. 다른 선거에 비해 관심도 낮은 선거지만 어느 선거보다 가장 많은, 4000여 명의 의사결정권자를 정하는 중요한 선거다. 이 4000여 명의 의사결정권을 자기만의 옳음을 강요하기보다 ‘더 나은 정치’라는 목표를 가지고 우정을 나누는 정치인이 더 많이 가져가게 된다면 어떨까? 서로가 못하기를 바라는 게 아니라 같이 잘하고 싶은 게 생기는 정치, 함께 해볼 수 있다는 신뢰와 더 잘하려는 동료 옆에서 긴장하는 정치, 이런 새로운 풍경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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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에디터 전혜진
  • 아트 디자이너 이아람
  • 디지털 디자이너 김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