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간을 통과할 때까지 기다리셔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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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소설이 진도를 나가지 못해 꽤 애를 먹었다. 나에게 ‘진도를 나가지 못한다’는 건 기껏해야 하루이틀, 분량으로 치면 몇 장면 정도일 뿐인데 최근에는 두 달 동안 여러 장면이 나아가지 않았다. 여태껏 북 토크에서 “소설이 안 풀릴 때는 어떻게 하세요?”라는 질문에 “소설이 안 풀린 적은 없습니다”라며 큰소리쳤는데, 그 대답이 부끄러워지던 순간이었다. 나에게는 영원히 오지 않을 거라 생각했던 순간도 결국 오는구나. 나는 부랴부랴 소설이 막힐 때 다른 작가들은 어떻게 대처하는지 찾아봤다. 엄청난 해결 방안이 있을 리는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실낱같은 희망을 걸어보았지만, 역시나 다른 작가들도 뾰족한 해법은 없었다. 막힌 곳이 뚫리길 기다리는 것뿐이라고. 하지만 이 뚫는 작업도 결국 내가 해야 한다는 점에서 참 부지런하게 막막함을 느껴야 했다.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매일 아침 똑같은 시간에 자리에 앉아 꾸역꾸역 몇 문장을 쓰고 하루를 마무리했다. 글이 잘 나오는 날은 일을 잘한 날, 그러니까 다른 일에 비유하면 자영업 매출이 잘 나왔거나 회사 실적이 좋은 날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런 날은 일의 성취감과 노동 자체에서 오는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고, 그렇지 않은 날, 그러니까 손님이 한 명도 오지 않았거나 실적이 팀 내 꼴찌를 찍은 날이라 할 수 있는 날에는 내 능력에 대한 자괴감과 노동이 정말 힘듦으로만 남는다. 나는 두 달 내내 후자였다. 소설을 쓰는 게 곤욕이었다. 이 상태가 더 진행된다면 어쩐지 소설이라는 게 무엇인지 모르는 상태에까지 이르게 될 것 같은 두려움을 느꼈다. 뚫는 작업이 시급했다.


처음 한 작업은 소설을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 떠올려보는 것이었다. 글이 나아가지 않는 데에는 몇 가지 분명한 이유가 있는데, 그중 하나가 어느 구간에서 잘못된 길로 흘렀을 가능성이 높다. 나는 소설을 되풀이해 읽으면서 질문을 던진다. ‘지금 쓰고 있는 글이 내가 원하는 방향대로 잘 나아가고 있는가?’ ‘크게 어긋난 것 같지는 않다’ ‘하려는 말을 못하고 있는 건 아닌가?’ ‘지금 단계에서는 하고 싶은 말이 나올 수 없다’ ‘캐릭터나 설정이 마음에 안 드는 게 아닌가? 바꿀 생각은?’ ‘음…. 아냐, 지금 캐릭터와 설정 모두 마음에 든다’ ‘서술 방식이 틀렸나? 인칭을 바꾸거나 주인공을 달리해서 처음부터 다시 써보는 건?’ ‘으악! 그렇게까지 큰 공사를 하고 싶지는 않다.’ 자, 빠르게 소설 내부에는 문제가 없는 것으로 결론 내리고, 그렇다면 이제 바깥을 살펴야 한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사람에게 어떤 문제가 있는지. 그때부터는 소설이 아니라 내 마음을 훑어본다. 글이 써지지 않은 시점부터 지금까지의 내 마음을. 그 결과 역시 빠르게 내려졌다. 내 마음의 문제가 맞았으므로.


2025년에 들어선 이후로 어머니 병세의 악화로 늘 바빴다. 오랫동안 병원에 계셨고, 늘 죽음과 붙어 있었기에 불쑥 가까워진, 어쩌면 이별할 수도 있겠다는 감정으로부터 많이 단련돼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던 것이다. 매일같이 병원을 오가는 대중교통에서 울면서도 내 마음에 아무 부침이 없다는 오만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당장 오늘을, 내 곁에 있는 사람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벅찬데 이 마음에 새로운 세계와 인물이 들어올 틈이 있겠는가.


이 사실을 깨달은 후로 내가 택한 방법은 현상 유지였다. 이 막힘을 뚫기 위해 노력하지 않겠다는 다짐과 함께.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이 상황을 바꿀 수 없으니 억지로 공사하지 말아야겠다고, 시간이 또 자연스럽게 흐르기를 기대하는 수밖에 없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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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상반기를 모두 보내고 7월까지 이렇다 할 진전 없이 보낸 다음에야 조금씩 막혔던 구간이 뚫리고 있다. 그렇다고 이전의 고민과 문제가 해결됐냐면 그건 또 아니다. 나는 여전히 불쑥 다가온 이별 앞에 자주 무너지고 무기력해지지만, 중요한 건 막힌 이유를 알았다는 것. 그리고 그것은 내가 억지로 뚫으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모든 것이 다시 평안해지기를, 내 마음이 잠잠해지기를 기다리는 일뿐이라는 것.


한편으로는 시원하고, 한편으로는 서운한 이 감정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돌이켜 생각해 보면 나는 일이 되지 않는 이유를 뻔히 알면서도 그것을 마주보고 싶어 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런 일에 사사롭게 영향받지 않는, 나름 프로페셔널한 사람이라 믿고 싶었을까. 아니면 슬퍼하는 나를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많은 걸 이뤄가고 있는 과정에서 여전히 스무 살 초반, 엄마가 막 아프기 시작했던 때의 나로부터 한 뼘도 자라지 않은 것처럼 느껴졌다. 이 구간도 기다리다 보면 통과하게 될까. 마음을 들여다보고 내 상황이 어떤지 깨달은 후에 막혔던 소설이 다시 뚫린 것처럼 지금 이 구간도 통과하면 다 괜찮아지겠지. 소설은 앞으로 전개 과정과 결말을 내가 짰으니 다 알고 있어 구간 통과가 두렵지 않은데, 내 삶은 내가 알 수 없어 두렵기만 하다. 다 괜찮아지면 좋겠지만 아닐 수도 있으니까. 이런 고민이 많은 요즘인데, 역시나 내가 할 수 있는 건 이 구간이 지나가길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그것도 야속하게.


Wri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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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선란

1993년생 소설가. 2019년 첫 장편소설 〈무너진 다리〉를 펴낸 후 〈천 개의 파랑〉〈어떤 물질의 사랑〉〈밤에 찾아오는 구원자〉를 썼다. 동식물이 주류가 되고 인간이 비주류가 되는 지구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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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 에디터 전혜진
  • 글 천선란
  • 사진 unsplash
  • 아트 디자이너 민홍주
  • 디지털 디자이너 오주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