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순간의 진심이라도
」“어떻게 이 일을 시작하셨나요?” 이 질문에 정확히 열 번째 같은 답을 반복했을 때, 나는 지루함을 넘어 실망감을 느꼈다. 아, 나에 대해 전혀 알아보지 않고 왔구나. 많은 사람들을 인터뷰하는 인터뷰어로 지내다 보면 가끔 인터뷰이가 될 때도 있다. 감사한 일이지만 그래도 같은 질문이 도돌이표처럼 반복되다 보면 사람인 이상 지치고 만다. ‘이 사람은 내 다른 인터뷰나 영상은 보지 않았구나’ ‘이 사람은 그래도 나에 대한 관심이 있구나’ 나에게 질문을 던지는 상대방에 대한 인상은 5분만 대화하다 보면 금방 파악할 수가 있다. 시간이 아깝게 느껴졌던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오던 길, 나는 무언가 변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거창하게 들릴 지 모르겠지만, 인터뷰를 한다는 것은 한 사람의 인생을 들여다보는 일이다. 1~2시간이라는 짧은 시간, 그것도 카메라가 돌아가고 여러 사람이 지켜 보는 그 시간 동안 상대방이 속내를 꺼내 보이도록 하는 일은 말처럼 쉽지 않다. 어떤 이야기를 해야 마음을 열지는 예측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니 다 준비하는 수밖에 없다. 열 번 시도해서 한 번만 성공해도 그 대화는 성공적이니까. 그러나 한 번의 성공이 필요하다는 말은, 다른 아홉 번의 시도가 무의미해도 괜찮다는 뜻은 아니다. 상대방의 상처를 들춰내는 일은 아닌지, 너무 뻔한 질문에 지루해하는 것은 아닌지, 최악의 경우 나와 마주하고 있는 이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게 되지는 않을지, 모든 것을 고려해야 한다.
준비 과정은 대략 다음과 같다. 상대가 유명인이라면 기본 정보를 찾아본다. 짧게는 한 시간, 길게는 서너 시간이 걸린다. 케이팝 그룹처럼 인원이 많은 경우라면 멤버들의 기본 정보만 찾아봐도 하루가 다 간다. 모두가 퇴근한 사무실에 혼자 남아 새벽 3시까지 정보를 찾아 헤맨 적도 있다. 그럼 이제 이 사람의 뼈대를 겨우 본 것이다. 그 후에는 살을 붙여야 한다. 요즘 좋아하는 음식은 무엇인지, 어떤 노래를 자주 듣는지, 과거와 달라진 취향은 없는지,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는 무엇인지, 좋아하는 말은 무엇인지 등등 그 사람의 신념을 알아볼 수 있는 모든 정보를 찾아본다. 그렇게 준비하다 보면 이 사람의 인생이 어렴풋이 그려지고, 내가 잠시 그 사람의 인생에 노크해도 될 타이밍이 언제인지 보인다.
생각보다 대단치 않은 지점에서 사람들은 마음을 열어준다. 이게 가장 놀라운 지점이다. 반려동물의 근황, 은사와의 첫 만남, 가장 좋아하는 말처럼 어쩌면 흔히 알려진 그 사람에 대한 정보들이 조명받는 순간, 그들은 나의 노크에 환대해 준다. 인터뷰이의 감정과 기분을 아주 조금만 생각했을 뿐인데, 그들은 그 노력을 단번에 알아봐준다. 그저 한때 스쳐 지나가는 인연일지라도 누군가와 시간을 공유한다는 것은 기적과 같은 일이다. 이 기적과 같은 순간은 대단치 않은 준비와 노력으로 충분히 아름답게 채워진다.
대단치 않은 준비를 알아봐주는 사람들은 어쩌면 진실한 대화의 순간을 바라 마지않던 사람들이기도 하다. 인터뷰를 준비한다는 일은 그래서 경건하고 조심스럽다. 이제는 너무 익숙해진,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 말을 되새김질한다. 이 불교 교리에 따르면 누군가와 목적을 가지고 만나는 시간은 억겁의 시간을 돌아 만나게 된,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순간이다. 그러므로 적어도 나와 만난 사람들이 실망감을 느끼는 일은 없길. 이 대화가 잠시나마 그들에게 휴식 같은 순간을 선사할 수 있길. 비록 완벽할 수는 없더라도 이 신념을 크게 벗어나지 않겠다는 바람을 갖고 매일을 마무리한다.
writer_이은재
SBS PD. 유튜브 콘텐츠인 〈문명특급〉 MC 혹은 ‘연반인 재재’로 좀 더 친근하다. 가볍고 재기발랄한 방식으로 세상에 생각할 거리를 던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