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느 날 동거인의 어머니인 이옥선 여사께서 우리 집을 방문했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에도 썼다시피 운동하는 선배 세대가 거의 없는 나에게 멘토 같은 분이다. 병약한 젊은 날을 보낸 뒤 40대 이후에 운동을 시작해 70대인 지금은 “늙으면 자신감이 체력에서 나온다”를 외치며 아무렇지 않게 물구나무서기를 하신다. 저녁 식사를 하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우리는 소화를 위해 몸을 슬쩍슬쩍 움직이다가 갑자기 거실 바닥에 앉아 요가를 시작했다. 생활체육인끼리 단란한 화합의 장을 이루고 있었지만, 가벼운 무술 대련 분위기와 비슷했다. 스승과 제자가 나무로 된 칼을 부딪치며 검술을 연습하는 장면 같은(“이런 애송이 녀석! 넌 아직 멀었다!”). 배를 천장으로 향해 몸으로 아치를 만드는 차크라 아사나 동작을 가르쳐주면서 어머니는 말씀하셨다. “선우 너 제법 소질이 있구나!” “어머니, 저 그래도 요가는 2년 넘게 했는걸요.” “아직 몸이 변할 때는 아니지. 무슨 운동이든 10년은 바라보고 해야 몸에 변화가 생기는 거야.” 부끄러워진 3개월 차 수영 올챙이 앞에서 20년 차 요가 수련자가 덧붙였다. “누굴 이기려는 마음 대신 슬렁슬렁해야 오래 할 수 있어.” 누굴 이기려는 마음. 내가 운동하는 동력이 그것이었을까? 그래서 마음대로 성과가 나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혼자 지는 기분이 들었을까? 아무도 나와 승부를 겨룬 적 없는데 멋대로 우월감에 도취되고 때론 또 열패감에 시달린다면, 그건 건강한 동력이 아니라 비뚤어진 호승심일 것이다.
시어도어 다이먼의 <배우는 법을 배우기>라는 책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악기를 연주하거나 운동을 한다는 것은 단순히 어떤 동작을 익히거나 음계를 연주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 아니다. 이는 자신의 부적절한 반응과 감정, 태도에서 자유로워지는 법, 다시 말해 자신의 여러 모습을 배우는 것이며….’ 내가 자유로워져야 하는 부적절한 태도가 무엇인지 분명했다. 나는 이기고 지는 걸 떠나는 법, 잘하지 못하는 채로도 계속하는 법부터 배워야 했다. 한번은 수영 선생님에게 사정이 생겼는지 대타 강사가 왔다. 본수업 대신에 자기 스타일로 진도를 나가면 곤란하니까 몇 가지 팁 위주로 알려주겠다면서 이런저런 기술을 시범 보인 다음 그가 말했다. “어차피 지금 제 얘기는 여러분이 수업을 마치고 샴푸하면서 같이 씻겨나가겠지만요.” 정말 신기하게도 지금은 수업 내용이 죄다 희미해지고 저 말만 기억 난다. 여전히 평영은 좀처럼 늘어나지 않고 접영은 아직 갈 길이 멀다. 하지만 다행히 물에 몸을 담그는 포근한 즐거움, 시선이라는 중력으로부터 놓여나는 자유로움에는 몰입할 수 있다. 듣고 배우지만 씻겨나가고, 느낌을 잡았다가 놓치고 다시 손에 넣는 시간들이 오래 쌓이면 뭔가가 될까. 일하면서 내 몸에 습관을 새겼던 20년의 시간은 확실히 그런 식이었던 것 같다. 운 좋게 수영을 계속할 수 있다면 70대쯤에는 멋진 접영 폼을 가진 할머니가 될지도 모른다. 아무도 이기려 하지 않고 슬렁슬렁.
황선우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저자이자 운동 예찬론자. 여성의 일과 몸을 둘러싼 다양한 이야기를 전한다.
▷ '엘르 보이스'는 지금을 사는 여자들의 이야기를 다룬 에세이입니다. 매주 목요일 업데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