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출생은 꺼지지 않아

“20세기 출생들은 이제 좀 꺼져봐.” 한국대중음악상 ‘올해의 음악인’에 빛나는 2002년생 에피(Effie)의 곡 ‘2025기침(Feat.Ian Kumming)’의 첫 소절을 들었을 때 솔직히 ‘긁혔다’. 사실 그럴 일도 아니었다. 1999년에 태어난 투모로우바이투게더 연준이라면 모를까, 까마득한 1980년대에 태어난 내가 뭐가 억울하다고? 그럼에도 이 노래를 듣고 긁혔던 건 스스로 꽤 ‘힙’하다고 평가한 신의 아이콘에게 네 인정 따위는 필요 없으니 꺼지라고 문전박대당한 느낌을 적나라하게 받았기 때문인 것 같다. ‘영포티’ 담론은 나보다 촌스러워 ‘보이는’ 남성을 향한 것이라며 선을 긋고, 아직 법적으로 40세는 아니라고 위안했던 속내가 산산이 벌거벗겨진 느낌.


© unsplash

© unsplash


하지만 9월이면 꼼짝없이 40세가 된다. 실제로 올해부터 뭔가 단단히 달라졌다고 느낀다. 코르티스가 ‘Youngcreatorcrew’라는 곡을 낸 덕분에 ‘영크크’와 ‘늙크크’가 ‘젠지’와 ‘영포티’를 대체하는 밈이 됐는데, ‘늙크크’의 ‘크크’ 발음이 너무 수치스럽게 느껴져 입 밖으로 단어를 내뱉을 수조차 없었다. 물론 나도 코르티스의 데뷔곡 ‘What you want’는 좋은 노래라고 생각한다. 코르티스 콘서트 첫째 날 이 노래가 두 번 연달아 터져 나올 때는 마음이 벅차오르기까지 했다. 하지만 나보다 조금 어린 1988년생 유병재 씨가 가장 좋아하는 코르티스의 노래로 같은 곡을 골랐을 때 내심 늙은이 귀는 다 똑같구나 싶었다. 하물며 ‘도가니 사리기(That’s Red-Red)’? 너희 10년 뒤에도 그 노래 부르며 춤출 수 있어? 재계약 안 할 거야? 호통치고 싶을 뿐이다. 키키의 ‘미감’이 ‘감다살’이라는데, 나는 올여름 리본과 줄무늬 스타킹으로 장식한 세일러복을 입은 하츠투하츠의 영상만 주구장창 봤다. 그래, 이렇게 화면 흔들림 없이 멤버들 얼굴이 ‘쨍’하게 잘 보여야지 하면서…. 올해 6월 개봉한 영화 <와일드 씽>은 1990년대 가요계를 회고하는 영화다. 개봉 첫 주 상영관, 내 앞에 앉았던 20대 커플은 놀랍게도 단 한 장면에서도 웃지 않았다. 영화관에서 들리는 웃음소리는 나와 그리고 내 대각선 뒷자리에 앉은 영포티(죄송하지만) ‘짤’의 현신 같은 남성 두 명이었다. 몸도 변했다. 오른팔과 어깨가 계속 저리고 팔을 뒤로 돌리기 어려워 증상을 찾아보니 회전근개 증후군이라는 것과 유사했다. 옆으로 누워서 스마트폰을 하는 것도 어릴 때나 가능한 거구나. 헤어라인을 따라 난 흰머리가 급속하게 늘어나면서 뿌리염색을 하는 게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꼴이 됐다. 놀랍게도 내 흰머리의 존재를 인식하고 나니까 주변 3040 여성 중 상당수가 비슷한 위치에 흰머리가 나 있다는 사실이 보였다. 이럴 바에는 한 살이라도 어릴 때 탈색해 보는 건 어떨까? 미용실 원장님이 곤란한 듯 말했다. “마루 씨, 그동안 ‘새치 염색’을 하고 있어서 탈색을 여러 번 해도 색이 어떻게 나올지 장담할 수 없어요.” 이어진 경험담은 한층 적나라했다. “예전에 꼭 하고 싶다고 세 번 탈색한 마루 씨보다 조금 더 나이 많은 손님이 계셨는데요. 그날 저녁에 두피가 너무 아파서 응급실 가셨대요.” 수십만 원을 쓰고 두피에 진물을 흘리며 응급차를 부를 수는 없었다. 심지어 이 영구적인 의료대란 속에서 말이다.


© unsplash

© unsplash


나이 드는 게 끔찍하다고 말하는 게 아니다. 다만 조금 인정하게 됐다. 나이보다 어려 보인다느니, 요즘 40대는 예전 30대나 다름없다는 말에 나 또한 은은하게 위로받으며 살아왔다는 것을. 마침 내가 18년째 몸담고 있는 콘텐츠 업계는 ‘나잇값 못하는’이 곧잘 ‘젊은 감각’으로 등치되는 곳이다. 나와 친밀한 관계를 맺은 절대 다수는 싱글 여성인데 결혼과 출산, 육아같이 삶의 우선순위가 명확해지는 일을 겪지 않은 성인들이 나이 들어가는 방식은 조금 다르다. 생활 패턴은 30대 초반 때나 30대 후반이나 달라지지 않고, 오히려 30대 중반 이후 여유가 생겨 운동을 시작하면서 체력이 더 좋아졌다고 느끼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이제는 인정해야 한다. 나는 분명 나이가 들었으며, 스무 살의 내가 1960년대생을 바라봤던 방식으로 지금의 스무 살들이 나를 바라본다는 사실, 아니 20대의 내가 그랬듯 1980년대생은 젊은이들에게 궁금증의 대상조차 아니라는 사실을 말이다. 나는 코르티스의 콘서트에서 마치 클럽이나 레이브 파티에 온 것처럼 뛰어놀 수 없다. 이 공연이 어쩌면 첫 콘서트일지도 모르는 수많은 ‘영크크’와 달리 나는 너무 많은 공연을 봤고, 2005년생과 2008년생, 2009년생 다섯 명으로 이뤄진 남자애들의 “핸드폰을 내려놓으라(Put Your Phone Down)”는 외침이 딱히 해방구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그러던 중에 얼마 전 열린 클릭비 콘서트는 뜻밖의 깨달음을 줬다. 공연명은 ‘Click-B Re:Click(한여름 밤의 꿈 Vol.2)’. 무려 25년 전인 2001년, 내가 생애 처음으로 갔던 K팝 콘서트인 그들의 콘서트를 소환하는 제목이었다. ‘추억은 추억으로 남겨둬야지’라며 가지 않으려 했던 결정을 번복한 게 너무 잘했다는 걸 첫 곡이 터져 나오는 순간부터 알았다. 제목이 기억나지 않는 곡도 따라 부를 수 있었다. 응원법도 그대로였다. 오랜만에 만난 무대 위의 오빠들도, 주변 관객들도 내가 두려워할 만큼 그렇게 ‘늙지는’ 않았다. 추억이 힘이 없다는 건 거짓말이었다. 추억은 힘이 있었다. 중년의 입구에서 들은 ‘백전무패’의 가사 “너 겁먹지 말고 일어나 세상 앞에서 너 두려워 울지 마 너 모든 걸 다 걸고 싸워”는 완전히 달랐다. 지난해 아시안팝페스티벌에서 자우림의 ‘팬이야’를 듣다가 눈물을 주룩주룩 흘렸던 기억이 오버랩됐다. “I’m my fan, I’m mad about me, I love myself.” 과하고 작위적이라고 느꼈던 가사가 그날 밤에는 얼마나 절실한 독려처럼 들렸는지.

청년적금 따위는 존재하지도 않고 최저 시급이 2980원이었던 20년 전을 통과해 과연 생애첫주택자금대출 수혜를 받을 수 있을지 기웃대는 나이까지 왔지만 그 사실에 자기연민이 비집고 들어갈 틈도, 그래야 할 이유도 없다. 공연 막바지 클릭비 ‘오빠’들은 정말 당황스럽게도 20여 년 만의 ‘컴백’을 예고했다. 10월에 열린다는 부산 공연은 세 시간을 채우지 못할지도 모르지만, 일단 나는 내 자리가 있다면 꼭 가서 앉아 있을 예정이다. 그건 회고나 과거의 인물에 대한 응원이 아니다. 내가 비로소 직시하기로 결심한 내 미래이자 노화다. 그러고 보면 이제 막 민증을 뽑은 코르티스가 현명했다. ‘쿨’한 척하는 건 정말이지 ‘레드레드’다.

Writer

작가 이미지

이마루

콘텐츠 중독자. 쓰고 만드는 일 외에도 좋은 시민이 되려고 합니다.

Category

Credit

  • 에디터 전혜진
  • 글 이마루
  • 아트 디자이너 이아람
  • 디지털 디자이너 석지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