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둥지를 파고들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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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를 했다. 내 생애 몇 번째 이사일까. 누군가는 지독히도 한곳에 오래 살기도 해서 한때는 이 숫자를 세어보는 게 흥미로운 놀이였던 적도 있었다. 아파트에서 아파트 그리고 또 아파트로 몇 번을 이사하는 동안에도 주소의 ‘동(계)’이 바뀌지 않는 경우는 별로 많지 않아서 재미있었고, 내가 엄마 품을 떠나 독립한 뒤로는 오히려 엄마가 10년 넘도록 그 동네 붙박이가 됐다는 것도 신기했다. 반대로 나는 15년 동안 혼자서 열 번 가까이 이사했다. “글쎄. 내가 역마살이 있나 봐. 호호.” 웃으며 했던 말도 이제는 재미가 없다. 이사를 그만하고 싶기 때문이다. 지금보다 어릴 적에는 이사할 때마다 새로운 집의 구조와 새로운 동네가 반가워서 그 번거로움을 감내할 수 있었을지 몰라도 이제 오랫동안 마음 편히 쉴 수 있는 집을 갖고 싶어졌다. 그런 때가 된 것이겠지. 함께 사는 고양이, 나 때문에 많은 이사를 감내한 슈와 앙꼬에게 미안해서라도 말이다. 두 마리를 어깨에 이고 지고 빽빽한 건물 사이를 간신히 통과하며 지내온 시간이 어언 15년이 지났다. 그리고 그렇게 기다리던 집이 은평구 골목에 있었다. 친구가 살고 있던 집이었다.


우리는 이곳에 오래 살아볼 심산으로 리모델링을 결심했다. 부엌을 드러내고, 집 크기에 비해 조금 크게 느껴지는 개수대를 줄여 냉장고 자리를 넉넉하게 만들기로 했다. 화장실에 달린 1인 가구용 붙박이장을 떼어내고 2인이 사용할 수건이 넉넉하게 들어가는 거울 장으로 바꿨다. 전 주인과 그 전 주인, 어쩌면 더 예전부터 쌓여왔을지 모를 바닥의 오래된 흔적도 들어냈다. 오래된 나무 바닥을 부수고 콘크리트 바닥을 평평하게 샌딩하는 동안 철거된 싱크대 뒤쪽에 쌓인 먼지를 닦았다. 비로소 이 집과 인사를 나눈 기분이 들었다.


바쁘게 두 집을 오갔다. 내가 잠시 머물던 집과 오래 머물 기대를 품은 집. 작은 짐들을 미리 옮겨놓기 위해 이동하던 날이었다. 잠시 신호 대기를 하고 있었는데 기다란 나뭇가지를 문 까치가 차량 앞 유리창을 스치며 지나갔다. 눈으로 까치를 쫓았다. 까치는 앙상한 나뭇가지 위에 제가 물고 온 나뭇가지를 살포시 올려놓더니 이리저리 자리를 잡았다. 그러곤 다시 어디론가 날아올랐다. 나뭇가지를 나무 위에 놓고 떠난다니, 둥지를 짓고 있는 게 분명했다. 나는 나뭇가지를 문 새들을 자주 목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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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도 이런 새들을 종종 발견하곤 했다. 그럴 때마다 자신보다 긴 나뭇가지를 물고 나는 부리가 귀여워서 웃어넘기곤 했는데, 오늘 본 까치에게서는 어떤 애환이 느껴졌다. 작디작은 그 새는 그 일을 몇 번이나 반복해야 할까? 튼실한 나뭇가지를 골라내고 다시 날아와 뼈대를 쌓는. 그리고 또다시 날아가 다른 나뭇가지를 찾아 돌아오는 그 일을. 하지만 까치는 그렇게 몇 날 며칠을 묵묵히 날며 결국 비바람을 견뎌낼 집을 완성할 것이다. 그 과정이 얼마나 고될지 보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새로운 집을 물색하고, 물건을 정리하고, 싸고, 다시 풀 자리를 정하고 푸는 번거로움. 그렇게 생각하면 나는 15년 동안 계속해서 둥지를 옮겨 다닌 거다. 나뭇가지 몇 개를 얹었을 뿐인데 다른 곳으로 옮겨야 하거나, 겨우 뼈대를 완성했다 싶으면 또다시 짐을 싸는 방식으로. 그래서 이 집을 허물고 다시 세우기로 결정했을 때 기뻤다. 공을 들이는 건 무언가를 기대한다는 마음과 닿아 있기 때문이다. 기대는 언제나 마음을 쓰고, 시간을 쓰게 한다. 공들인 그 집에서, 그 안에서 흘려보낼 시간과 그 시간이 나를 품어줄 것이라는 믿음 같은 것. 그것은 고됨과 번거로움을 감내하게 한다. 허물고 다시 쌓아 이곳에서 우리 오래 살자. 그 믿음이 있으면 또 날 수 있다. 기대에는 그런 힘이 있다.


공사가 끝난 집에는 아직 먼지가 자욱하다. 창문을 열고 바람이 그 먼지를 밀어내길 기다리면서 작은 짐들을 내려놓고 바닥에 앉아 담배를 물었다. 텅 빈 집안을 천천히 훑었다. 여러 번 이사하면서 깨달은 건 헐벗은 집은 실제보다 좁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모든 게 사라지고 먼지가 자욱하게 쌓인 집 한가운데 서서 ‘이쯤엔 침대를 놓아야지’라고 생각했다. ‘이 벽에는 장롱을 두고, 여기엔 캣 선반을 달아야지.’ 아직 달지도 않은 조명을 상상하고, 고양이들이 오르내릴 선반 위치를 하나하나 결정했다. 기울어진 벽에 달린 커다란 창문으로 몇 번의 계절을 바라보는 꿈을 꿨다. 창문을 두드리는 여름 빗방울과 어딘가에서 날아와 앉은 낙엽 같은 것을 떠올렸다. 운이 좋다면 나뭇가지를 물고 나는 까치를 발견할지도 모를 일이다. 새롭게 장만한 부엌에서 얼마나 밥을 지어 먹게 될지, 슈짱과 앙꼬가 가장 좋아할 곳은 어디일지를 가늠해 봤다. 이 둥지에서 차곡차곡 쌓여갈 너와의 시간을 예감했다. 그러자 몇 번이고 날아오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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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수현

엘르보이스의 최신 소식을 전하는 에디터입니다. 다양한 소식을 기대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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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에디터 전혜진
  • 글 손수현
  • 디지털 디자이너 민경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