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롭지만 맛있는 불량연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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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연프’에 미친 사람이다. 월요일은 출근 때문에 바쁜 관계로 제외하고, 화요일은 <환승연애> 시즌4로 시작해, 수요일은 <나는 솔로>, 목요일은 <나는 솔로, 사랑은 계속된다>로 이어지고, 금요일은 유튜브 <때때때>로 마무리한다. 사랑을 쟁취하려는 자들의 몸부림 덕분에 이미 내 안의 도파민은 폭발적으로 발산되는 중. 최근 4일치의 도파민을 단 하루에 끌어 쓰게 만든 연프가 등장했다. 그 이름은 바로 <불량연애>. 이른바 ‘사회의 주변인으로 살아가는 11인의 남녀가 공동생활을 하며 진짜 사랑을 찾아가는 일본 최초의 불량배 순애 리얼리티 쇼’. 순애보 불량배들이 사랑을 좇아 집합했다니! 가슴이 두근거렸다. 티저 영상은 문신으로 도배된 화려한 등짝과 팔뚝을 비추며 시작되고, 출연자 남자 두 명의 첫 만남으로 이어진다. 두 사람의 첫마디는 “어이! 뭘 쳐다봐? 해보자는 거야?” “덤벼!”다. 일촉즉발의 분위기를 보니 불량배 11인의 출신이 궁금해졌다. 전 폭주족 총장, 전 야쿠자, 지하 격투기 선수, 쇼 댄서 등…. 소년원을 들락거렸거나 마약관리법을 위반해 체포됐거나, 사회에서 ‘문제아’라 불렸고, 어둠의 세계를 전전하던 이들은 도대체 왜! 넷플릭스라는 전 세계적 미디어 공간으로 침투한 걸까? 그것도 오직 사랑을 위하여.


남자 출연자들은 날카로운 발톱을 드러내며 각축전을 벌인다. 요리 시간에는 “칼 있는 데서 시비 걸지 마!”라고 하다가 마음에 품은 여자가 보이면 “네일 망가지니까 요리하지 마”라는 ‘스윗’한 멘트를 선물한다. 요리할 때는 누구보다 예리한 눈빛에 섬세한 남자가 된다. 여자 앞에선 장사 없다! 호스트 바 출신의 ‘메기남’이 여자 출연자 갸루가 만든 타코야키를 맛없다고 하자 기존 출연자 태클이 메기남에게 달려가 업어치기를 하고, 커플끼리 데이트하며 다정하게 하는 질문은 “너 체포된 적 있어?”. 이런 탓에 11인의 사랑 터전에는 시큐리티가 상주한다. 한 편의 누아르에 로맨스 한 방울 떨어트린 느낌. 하지만 이들에게도 아이처럼 순수하고 꽃잎처럼 여린 구석이 있다. 어릴 적 겪은 성폭력이나 이지메 같은 결핍과 상실로 힘을 기를 수밖에 없었던 사연을 당당히 밝히고, 서로 공감하며 사랑의 싹을 틔운다. 야쿠자였던 남자 출연자 ‘츠짱’은 가진 거라곤 주먹밖에 없어 보이지만 알고 보면 누구보다 순정파다. 사랑하는 여자에게 야쿠자인 자신을 떠나라고 선언한 후 그 여자가 결혼할 때까지 솔로로 살다가 그녀가 결혼하자 이 프로그램에 출연하기로 결심한 것. 출연자의 대다수가 평범한 직장인인 <나는 솔로>보다 <불량연애> 속의 험악한 11인이 더 애틋하고 진심인 사랑을 갈구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순간도 있다. 이 불량배들은 첫 만남 때는 온갖 허세를 부리지만, 본격적으로 사랑 전투장에 투입되는 순간부터 온갖 재롱을 부린다. 그 와중에 상대방의 사연과 인격, 사랑에 대한 가치관을 바라본다. ‘양아치’도 사람이다. 우리도 사랑 앞에서 별 수 없는 인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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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프’를 좋아한다고 말하면, 대개 두 가지 반응이다. 극호 또는 극불호. 극불호의 반응에는 보통 짧은 대화만 오가지만, 사실 그 안에는 꽤 분명한 취향의 갈림길이 숨어 있다. 연애 프로그램은 자극적인 예능이라기보다 사람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대한 태도에 가깝다. 누군가는 이를 감정의 낭비로 보고, 누군가는 인간을 관찰할 수 있는 가장 밀도 높은 공간으로 본다. 나는 분명히 후자 쪽에 서 있다. 나는 연애보다 ‘사람’을 좋아한다. 정확히 말하면, 사람이 감정 앞에서 얼마나 쉽게 흔들리는지, 또 그 흔들림이 얼마나 솔직한지를 보는 걸 좋아한다. 그래서 ‘연프’가 좋다. 사랑은 사람을 가장 쉽게 무장 해제하는 조건이니까. 단단했던 태도는 느슨해지고, 확신에 찼던 말은 끝을 흐린다. 그 어떤 것도 마다하지 않고 용감해질 수 있으며, 눈물 콧물 쏟으며 바짓가랑이를 잡을 수도 있고, 그의 부름에 한걸음에 달려가는 체력도 아낌없다! 마음을 얻으려 귀여운 짓도 했다가 심술도 났다가…. 진짜 별의 별 짓을 다 한다. 어제의 자신과 오늘의 자신이 같지 않다는 걸 사랑은 너무 쉽게 드러낸다. ‘연프’에서는 현실에서 한 달에 한 번 볼까 말까 한 순간들이, 한 회차에서 연달아 터진다.


반대로 연애 프로그램을 피하는 사람들은 그 밀도를 감당하기 어렵다. 누군가 상처받는 장면이 불편하고, 삼각관계의 긴장감이 재미보다 피로로 다가온다. 그들에게 ‘연프’는 드라마가 아니라 간접 체험형 감정 노동이 아닐는지…. 굳이 떠안지 않아도 될 감정을 왜 소비해야 하느냐는 질문은 충분히 타당하다. 하지만 나에게 ‘연프’는 단순한 예능 프로그램이 아니다. 사람이 사람을 좋아하게 될 때 얼마나 일관성을 잃고, 얼마나 우스워지고, 얼마나 솔직해지는지를 반복해서 확인하는 장소일 뿐. 그 과정은 때로는 웃기고, 과하고, 민망하지만 그만큼 인간적이다. 어떤 사람에게 인간의 본능은 흥미로운 관찰 대상이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피하고 싶은 소음일 수도 있으니까. 재미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의 감정을 어디까지 들여다보고 싶은가 하는 차이이기 때문에 호불호가 갈리는 게 당연하다. 결국 ‘연프’는 ‘사람을 얼마나 가까이서 보고 싶은가’를 묻는다. 나는 그 질문에 비교적 쉽게 고개를 끄덕이며, 오늘도 사람이 사랑 앞에서 얼마나 드라마틱한지 지켜본다. 연애를 배우기 위해서도, 대리 설렘을 느끼기 위해서도 아니다. 아마 나는 앞으로도 솔직하고 인간적인 장면에 시선을 빼앗길 것 같다. 그래서 오늘도 그 화면 앞에 앉아 사랑을 갈구하며 허우적대는 사람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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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소진

엘르보이스의 최신 소식을 전하는 에디터입니다. 다양한 소식을 기대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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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에디터 정소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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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트 디자이너 민홍주
  • 디지털 디자이너 김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