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중에 술집이나 할까.”
스물네 살, 대학교 4학년 막학기. 취업이 막연하던 시절 공염불처럼 되뇌던 말이었다. 토익 점수며 자격증이며 스펙 챙기기에 지치고 자소서 공란에 숨이 막혀오는 순간마다 한숨처럼 내뱉던 말. 열심히 살기는 차마 자신 없고 와장창 술 퍼 마실 때만 활기가 넘치니 그저 해보는 농담이었다. 요즘으로 따지면 ‘유튜브나 할까’와 비슷한 정도로 아무나 한 번쯤 해보는 그런 말. ‘로또 되면 뭐 하지’ 정도의 실현 가능성은 물론, 로또를 산다는 최소한의 실천조차 하지 않는 그런 말. 막걸리 대학교로 불릴 만큼 폭음으로 이름 높은 학교의 전통을 성실히 계승하는 학생 중 한 명이었을 뿐, 나의 전공은 외식업계와도, 하다못해 경영학과와도 전혀 관계없는 국어국문학과였다. 거의 침 흘리는 수준으로 영양가 없이 흘리는 얘기인 걸 알아서 친구들도 그다지 성의 있게 반응해 주지 않았다. 내가 술집이나 해야겠다는 타령을 시작하면 친구들은 ‘갑자기 무슨 술집이야’라는 말 대신 ‘그래, 너랑 딱이다’라고 대충 대꾸해 줬다. 좀 더 세심한 아이들은 ‘너 욕 잘하니까 욕쟁이 할망구 컨셉트로 하면 되겠다’라고 나의 회피성 망상을 좀 더 상냥하게 북돋워주기도 했다. 그러니까 전혀 일어날 리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졸업 후 나는 별다른 특이사항 없이 대충 평범한 회사에 취직했다. 주류 회사는 아니었다. 내 업무는 해외 파트를 관리하는 일이었고, 그 역시 전공과는 거의 상관없는 것이었다. 이후로도 한두 개의 비슷비슷한, 여전히 전공과는 상관없는 회사를 거치던 어느 날, 나는 갑자기 코치가 됐다. 멘탈 코치, 스피치 코치 같은 거 아니고 진짜로 사람들을 트레이닝시키는 운동 코치가. 무려 내 나이 서른다섯의 일이었다. 기나긴 인간의 생애를 생각해 봤을 때 전반적으로 서른다섯이 엄청나게 많은 나이라고는 생각지 않지만, 코치라는 직업의 인상을 생각해 보면 ‘지금?’ ‘이제 와서?’ ‘난데없이?’ 등등의 부사가 먼저 떠오르는 나이인 것은 사실이다. 사실은 코치가 되기로 결심했을 때 스스로 그런 생각을 많이 했다.
보통 코치라는 직업은 일반적으로 어릴 때부터 운동하다 체대를 졸업하거나 일정한 선수생활 등의 코스를 거쳐 도달하는 직업이다. 그러나 나는 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운동으로 몸을 관리한다는 개념 자체가 없었다. 술로 몸을 어떻게, 어디까지 망칠 수 있을지 ‘빠삭’하다면 했을까. 운동이라고 할 만한 운동을 시작한 것도 심지어 스물여덟 살의 일이었다. 그리고 그때조차 내가 이렇게 운동을 좋아하게 될 줄은, 업으로 삼으리라고는 꿈에서조차 상상하지 못했다.
‘인생에는 예상치 못한 일이 많이 일어난다’는 말은 틀렸다. 인생이 곧 예기치 못한 일들의 총합 그 자체다. 우리는 아무것도 100% 확신할 수 없다. 그냥 자연의 섭리가, 우주의 이치가 그렇게 세팅돼 있기에 1년 후의 주식 현황도, 다음 주 금요일에 새로 산 재킷을 입을 수 있을지 여부도, 내일 아침 사무실에서 마주칠 상사의 기분도 예측할 수 없다. 그것은 자신에 대해서도 지극히 마찬가지라 우리는 하루아침에 불운한 사고에 휩쓸려 유명을 달리할 수 있다는 가정과 100세까지 썩 유쾌하지 못한 컨디션으로 살아야 할 수도 있다는 극단적인 가정을 동시에 하며 삶을 살아야 한다.
불확실이 확실하게 예정돼 있는 삶에서 한 가지 분명한 게 있긴 하다. 진부하다고 말해도 별수 없다. 바로 건강이다. 욜로족이나 파이어족이나 일단 건강해야 한다. 어디 아픈 데가 없어야 쓰고 싶은 데 쓰면서 즐기고 산다. 아니, 애초에 건강해야 뭘 하고 싶고, 갖고 싶다는 욕망이 생긴다. 잔잔하게 오래오래, 가늘고 길게 살고 싶다고 말하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 누구도 몸 여기저기에 호스를 꽂고 기계에 호흡을 의지하는 기나긴 삶을 희망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니 일단 운동하는 게 맞다. 자극과 평온 중에 어떤 것을 원하든 혹은 뭘 원할지 아직 정하지 못했든. 어떤 경우에도 튼튼해야 한다, 몸도 마음도. 그래야 혹시 시련의 이벤트가 찾아와도 버텨낼 수 있다. 찢어지고 나서 다시 더 크게 붙는 근섬유처럼.
나는 요새 조주기능사 자격증을 준비하고 있다. 의도한 건 아니지만 진짜로 모교 앞에 술집을 오픈하게 됐기 때문이다. 정말이지 인생은 ‘어쩌다가’와 ‘어쩌다 보니’의 연속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운동한다. 체육관과 술집, 또 그 다음에 찾아올 ‘그럴 리 없는 일’을 기다리면서.
에리카
여성 전용 헬스장 샤크짐 공동대표. 사무직 직장인으로 살다가 30대에 완전한 ‘운동인’으로 각성했다. 더 많은 여자가 운동해야 한다는 믿음하에 〈떼인 근력 찾아드립니다〉를 펴냈다.